1. 어떤 곡들을 주로 들어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기는 한다. 음악에 관한 기사도 열심히 보고 가능하면 음악회도 자주 갈려고 노력한다. 울 객석문화가 좋은 것은 그런 음악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더욱 정이 가는 것이다. 그렇담 난 진짜 소위 말하는 음악 애호가일까.
사실 말하자면 요즘 음악을 거의 듣지 않고 있다. 집중적으로 듣는 일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거저 지나가면서 들리는 데로 듣고 있는 모양으로 정리하고 싶다. 음악이 내 중심에서 밀려났다고 말하기는 아니래도 중심의 중심에 있다고는 말 못하겠다. 언젠가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찬찬히 음악을 듣는 일은 내게 사치스러운 일처럼 여겨졌다. 뭐 할 일이 많다고, 뭔 신경 쓸게 많다고 하겠으나 음, 그렇게 돼 버렸다. 그래도 하루 종일 내 내를 따져보면 음악이 거의 내 곁에 있는 셈이다. 마치 공기처럼. 그렇다고 내가 막강한 애호가인 것은 절대 아니고 싶다. 그냥 묻어가고 싶다. 음악도 사랑도 우정도……
그래도 말한다면 바흐나 모차르트나 뭐 이런 거가 좋다고 얘기는 한다. 그럼 다른 연주자는? 브람스에 미칠 때도 있었고 드뷔시 라벨, 바르톡, 말러…… 따지고 보면 좋지 않은 음악이 없다. 난 짬뽕이다. 뭐가 똑 부러지는 것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겐 뭐가 좋냐고 묻는 자체가 이러쿵 저러쿵 썰을 풀어야 하는 귀찮음이다.
2. 요즘 읽는 책은 뭐예요?
내게 책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이 꽤 있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 어떤 이는 시인을 꼽으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책을 많이 읽게 생겨 그러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카페에 괴상한 글을 가끔 올려서 그런 질문을 유발시키는 것인지. 그렇담 참 괴이한 일이다. 책을 많이 읽게 생긴 얼굴은 특정 지어지지 않는다. 내가 쓴 카페 글은 점잖은 독서의 분위기하고는 거리가 멀지 싶은데.
책에 대해서 말하자면 원래 내 소원이 만권당이었다. 만권의 책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냥 가지는 것이 아니고 직접 읽고 한 책이 만권이었음 했다. 그러고 있다가 어느 날 따져봤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한 주에 한 권을 읽는다면 일년에 오십 여권 십 년이면 오백 여권…… 이백 년이 돼야 만권을 읽는 다는 거다. 그래서 목표를 천권당으로 조정했다. 요건 이루었지 싶다. 근데 천 권 정도 읽어가지고는 독서의 세계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겠더라. 그니까 하루에 한 권 정도 읽어 일년에 삼백 권, 십 년에 삼천 권 삼십 년에 만권 정도를 읽어야 진실로 독서광일 수 있고 또 책에 대해 왈가왈부할 최소한의 자격증을 따는 셈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의 책이 얼마나 많은 가.
책을 많이 읽는 일은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음악을 듣고 좋은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술과 음식을 먹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책만 읽고 앉았으면 뭔가 결핍이 발생하고 만다. 그래도 책은 그 결핍을 가장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긴 하다.
책에 대한 욕심으로, 아니 편의성으로 하루에 서너 권을 장소나 시간대에 맞게 각각 보고 있다. 여기선 이거 저기선 저거. 그럼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겠네 하겠지만 결국 읽게 되는 거는 마찬가지였다. 나도 많이 읽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다.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가 하고 묻는 것은 정말 제대로인 질문이 아니다. 제대로인 얘기는 제일 기분 좋게 읽은 책은 무엇이냐 가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 읽는 책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세계의 책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할 책도 있다. 또 그냥 시작했기 때문에 관둘 순 없고 어영부영 읽고 있는 책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걸 꼭 밝힐 필요가 없지 않을까.
3. 남(여)친 있냐고요?
이거 묻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남녀를 막론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이 질문이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 참 안돼 보인다. 그러고 참 기분 나쁜 질문이다. 물론 내가 그런 질문을 받을 만큼의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반 정도는 내 책임인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기분 나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가정을 가진 사람이 애인을 가질 확률이나 좀 비정상이지 싶다라고 말할 만한 가정을 가진 사람이 애인을 가질 확률이 피차마차일 것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다만 공개적으로 이런 질문을 받는 사람은 좀 비정상적인 커플, 싱글이나 이런 이들에게 집중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근데 정상적인 가정과 비정상적인 가정을 구분하는 거는 또 뭐야? 말도 안 된다.) (피차마찬가지일 수 없을 수도 있다. 정상적인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연애 시장에 가치가 훨씬 높게 평가되는 바 애인을 가질 확률도 훨씬 높을 수도 있다. 이 지적도 확실하지 않지만. )
애인이 있다고 선뜻 네 있어요 라고 대답할 만한 사람은 몇 이나 될까. 없어서 없다고 얘기할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하고 없는 사람은 있다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지 않을까. 물어서는 안될 질문일 것 같다. 그러나 이 질문은 마지막 질문의 굉장한 시작질문이 될 게 틀림없다.
애인이 있어서 기분 좋은 상태라면 싱글벙글 거리면서 자신과 같은 즐거움을 너도 혹시 하고 있니 하고 묻는 것일 수 있다. 애인이 있는데 골치 아픈 상태라면 나는 이런데 너도 혹 골치 아프고 있지 않니 하고 묻고 있는 것이다. 애인이 없는 상태이면서 그 쪽으로 안테나가 번득이고 있는 때여서 쉽게 이런 말을 묻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혹 내 애인이 돼 주세요 하는 바람으로 이 말을 하는 경우인데 은근히 작업적 멘트에 해당된다.
4. 서로 얘기들은 하지만.
곤란한 질문들은 세상에 많다. 이런 저런 질문에 답을 하기도 하고 그냥 묵무부답을 행사할 때도 있다. 아무리 대답해도 답답할 때도 있다. 단답으로 끝나면 꽤 괜찮게 된다만. 진짜 내가 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땐 내 머리통에다가 USB를 꽂고 통째로 복사한 다음 상대의 머리통에 꽂아 주면 제일 좋겠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확실한 대답은 없다. 나 자신도 뭐가 정답인지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이 좀 더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