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의 장거리 첫차, 새벽 5시 버스는 항상 7시나 되어야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는 약간 늦게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5시 10분 정도? 그러나 우리의 예상을 깨고 진카행 버스는 이미 만차가 되어 출발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다음날인 토요일이 진카에 마켓이 서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말고도 진카행 버스에 타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평소같으면 일정을 하루 늦춰서 가고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우리가 진카에 가는 이유 역시 마켓이 서기 때문이었고 오늘을 놓치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우리는 다이렉트로 가지 말고 끊어서 가기로 했다. 일단 콘소까지 가는 버스를 알아보려 했는데, 누군가가 오더니 잠깐 기다려보라고 한다. 장거리버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못 타는 경우에는 다른 미니버스가 그 동네까지 가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조금 기다려보니 미니버스 한 대가 진카를 간다며 버스터미널 안으로 들어왔다. 그 후의 상황은.... 이런 걸 아비규환이라고 하는건가. 버스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타야하는 사람은 많았기 때문에 버스에 올라타려는 사람들의 몸부림은 실로 대단했다. 다행히도 우리는 어떤 친절한 남자가 자리를 잡아줘서 앉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무거운 배낭을 든 배낭여행자들은 절대 이 싸움판(?)에서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미 오래전에 만차되어 있던 진카행 대형버스를 비롯해 우리가 탔던 버스도 만차가 된 지 한참 후인 아침 7시에 출발했다. 진카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었다. 좌석 앞뒤가 좁아서 다리를 거의 우겨넣다싶이 했는데, 통로에는 사람이 앉아 있어서 통로쪽으로 다리를 뻗을 수 조차 없었다. 에어컨이 있을 리 만무한 데다가 열린 창문으로는 끊임없이 뜨거운 모래바람이 들이닥쳤다. 무엇보다도 그 길.... 처음부터 끝까지 비포장도로인 그 꼬불꼬불한 산길. 여행하면서 20시간 버스도 타보고 45시간 기차도 타봤지만, 제일-아니 두번째로 힘들었던 건 9시간동안의 이번 진카대장정이었다.



우리나라 산길 저리가라 할 정도로 꼬불꼬불한 산길에, 몸 전체에 진동이 울리는 것 같은 비포장도로....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경험이었다. 길도 이렇게 안 좋은데다가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해야하고, 사람까지 많이 태우고 있으니 속도가 날 리 없었다. 버스 미터기가 25km/h 이상 올라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중간중간 서서 사람을 태우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고, 버스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진카에 도착했다. 9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계속 느린 속도로 왔으니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되지만.
이렇게 해서 도착한 진카는 그야말로 사람 열받게 하려고 작정한 마을같았다.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가장 짜증나는 건 끈질기게 달라붙는 호객꾼과 가이드들이다. 심지어는 필요 없다고 해도 끝까지 따라오다가 어디 숙소에라도 들어가면 재빨리 끼어들어 가격 교섭을 해준다. 물론 '더 비싸게'. 원래 숙소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불러서 소개비를 떼어먹는 것이다. 숙소주인이 영어를 못하는 경우에 가장 많이 쓰는 수법이다. 그리고 진카는 이런 녀석들이 제일 많은 동네였다. 여길 가도 저길 가도 끊임없이 누가 따라오고, 자기가 가이드 해주겠다고 하고.... 문제는 이것들한테 아무리 욕을 해도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는 거였다.
나와 배낭만 덩그러니 남겨놓은 채 숙소를 찾으러 갔던 A오빠는 과연 잔뜩 열이 받아 돌아왔다. 그나마 합리적인 가격대의 숙소를 찾아서 그 곳에 짐을 풀고 나왔는데, 이번에는 식당이 문제다. 달랑 오믈렛과 빵쪼가리 몇 개 줘놓고 25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2명이서 먹어도 배부른 인제라가 12인데 말이다. 대판 싸우고 나왔는데, 정작 갈 곳이 없었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인제라를 25 넘는 가격에 팔고 있었던 것. 결국 우리는 전기 포트에 라면을 끓여 저녁을 떼울 수 밖에 없었다.
진카가 이렇게 된 이유는 유명한 접시부족 '무르시' 때문이었다. 아랫입술을 늘려 접시를 끼우고 다니는 무르시 족은 그 특이한 생김새와 아직도 보존된 전통생활방식으로 인해 관광상품화된 지 오래였다. 그들이 사는 부족마을 근처의 동네이다 보니 바가지도 심해지고 이상한 놈들도 많이 생긴 것이었다.
진카에서 좀 쉴 계획이었던 우리는 결국 다음날 마켓을 보면 그 길로 이 곳을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잠시도 이런 동네에는 있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마켓을 구경나간 우리는 한참동안 무르시 족을 찾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부족들은 많이 보이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무르시들은 일주일에 한번 서는 이 마켓에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다고 했다.


수많은 소수부족들이 와서 마켓을 서성거리고 있었지만 무르시 족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보기 위해서 진카에 온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의 마을까지 찾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려면 차도 빌려야 하고 가이드도 대동해야 하는 둥 돈이 엄청 많이 들 것이었다. 몇시간을 서성거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마켓을 떠나려는 찰나, 웬 현지인이 하나 또 귀찮게 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 마켓에 무르시가 오지 않았냐고 물으니, 두 명이 왔는데 저 쪽에 있다며 따라오라고 한다.
분명히 그 남자는 가이드 비를 달라고 할 터였지만, 무르시 족이 보고 싶어서 눈이 빠질 지경이었던 우리에게는 그만큼 반가운 소식도 없었다. 그를 따라서 마켓의 구석진 곳으로 가니 과연 무르시 족 2, 3명이 있었다. 가이드는 한명을 한번 사진 찍는게 4birr 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무르시 족들을 막 함부로 대하며 여기 서봐라 저기 서봐라, 자세 좀 이렇게 해봐라 하는 둥 명령조로 말하였다. 보고 있는 우리가 화가 날 정도였다. 이들을 함부로 사진찍는 우리 관광객들 때문에 생긴 폐해겠지만.... 정말 마음 한켠이 씁쓸해지는 광경이었다.

입술에 끼우는 접시는 오늘 놓고왔다고 했다.
이런 특이한 의식은 여자에게만 행해진다고 한다

무르시 족을 본 후에야 우리는 아무런 미련 없이 진카를 뜰 수 있었다. 진카 다음으로 갈 목적지는 '투르미'라는 동네였다. 물론 그 동네까지 가는 여정이 평탄할 리 없었다. 소수부족들이 많이 사는 오모밸리 지역은 사람도 잘 안 다니고 길도 험해서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트럭을 히치해야 하는데, 이 트럭들이 바가지를 엄청나게 씌운다는 게 문제다.
처음에는 마을 한 가운데서 기다리다가 나중에 알고보니 동네 입구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동네 입구까지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갔다. 난생처음 타 보는 오토바이. 정말 무서웠다.... 동네 입구에서 트럭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들 너무 센 가격을 불렀던 것. 한 명에 500씩 달라고 하던 놈부터 400씩 달라고 하던 놈.... 오후 4시쯤에야 겨우겨우 1인당 150에 트루미 바로 전 동네인 디메카까지 가는 트럭을 히치해서 탈 수 있었다.

짐칸이 아닌 안 쪽에 타긴 했지만 원래 2명이 타는 좌석에 3명이 끼어 탔던 지라 엄청 불편했다. 게다가 진카-디메카 구간은 에티오피아 여행자들에게 악명이 자자할 정도로 험했기 때문에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
디메카에 내리자마자 바로 옆의 트럭이 트루미까지 간다기에 갈아탔다. 열명 정도의 현지인들과 트럭 짐칸에 타고 가는데, 트루미까지 가는 길은 1시간 조금 넘을 뿐인데다가 길도 순탄해서 아주 편했다. 특히 짐칸에 누워 밤하늘에 수놓인 별들을 보며 달렸던 그 길.... 이 날 하루종일 여러군데 시달리며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달리는 트럭 위에서,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별들을 보며 갔던 그 순간만으로도 나는 모든 것을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아프리카에 다녀온 사람 말고 또 누가 이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을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