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신지학 일반

비전과학 공부에 대한 조언 (11) - 자아에 대한 잘못된 망상의 극복

작성자아카샤|작성시간26.06.21|조회수28 목록 댓글 0

 

자아에 대한 미망(delusion 잘못된 망상)의 극복

 

비전과학(오컬트)을 공부하는 젊은 학도가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자기 관점이 점차 변화하고 있으며 오래된 관념이 더 새롭고 더 참된 것들로 대체되고 있음을 스스로 발견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는 미망의 한복판에서 살면서 그것들을 실재로 착각해 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그의 작업의 한 부분은 미망을 극복하고 겉모습에 의해 가려진 실재하는 진리의 인식에 이르는 것이다.

 

겉보기의 것과 실재하는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니, 인간 진화가 끝나야만 그러한 분별력이 완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컬트 진리의 탐구자는 그 길 위에 앞으로 자기를 세워줄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으며, 그것이 지금 중요한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육체적 자아가 전부라는 환상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유아기부터 자아를 몸과 동일시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생각에서조차 잠시 둘을 분리하는 것이 처음에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인식은 얻어져야 한다.

 

몸이 손이나 펜만큼이나 자아의 도구라는 것을 온전히 깨닫는 것이 오컬트 진보의 첫 번째 단계 중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 앞에는 미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작업이 있으며, 몸을 자아로 생각하게 만드는 이 미망이 그 과업의 출발점이다. 그것이 성취되면, 더 어려운 것들에서의 성공으로 이끌어줄 가장 고무적인 전진의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몸이 전혀 참된 자아가 아니라 단지 우리 편의를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점차 습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 중 유용한 한 가지 방법은, 몸이란 자아와 영구적 관계가 없는 물질의 단순한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이 물질적 물질의 집합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항상 오고가고 있고 심지어 며칠 동이라도 한결같은 상태로 있지 못한다.

 

몸의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더 느리게 새 물질로 교체되지만, 불과 몇 년 안에 (일부 생리학자들이 제시한 7년은 이제 사실에 비해 너무 긴 것이라고 한다) 전체 몸이 새로운 물질(세포)로 교체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이 오늘 가지고 있는 육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구성하는 본래의 원소들로 돌려보내질 것이며, 지금 지구 위에 널리 흩어져 있는 물질이 그때(다음 생)쯤이면 그가 앞으로 가질 물질 육체로 빚어져 있을 것이다.

 

과학적 사실의 문제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많은 물질적 몸을 가지지만, 그것들의 오고감의 과정이 너무나 점진적이고 감지할 수 없어서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생애의 과정에서 사람이 몸으로 사용하는 물질의 양 — 보통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물질 — 은 1톤이 넘을 것이다. 아주 조금만 생각해도 그 분량의 물질을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펜 속에 있는 잉크 물질이 자아의 사용을 위한 다른 도구로 빚어진 것처럼, 자아를 위한 작동하는 도구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모인 물질의 양에 불과하다. 다만 몸의 경우에는 물질이 한꺼번에 다 사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비전과학의 학도가, 모든 기억을 가진 자아가 물질체의 이 끊임없는 변화에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자신이 몸이라는 생각의 미망은 그의 마음에 대한 힘을 잃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몸을 단지 형성되고, 재형성되고, 사라지는 원자의 변화하는 집합체로 끊임없이 생각하되, 자아는 영구적이고, 지속적이며, 독립적이어서 일시적으로 물질체를 사용하고 있으나 때가 오면 그것에서 완전히 물러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라.

 

자아를 우리가 아는 익숙한 형태로부터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여기서 신지학과 같은 비전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스트랄체가 물질적 몸의 복제라는 사실에 의해 도움을 받을 것이다. 아스트랄이 물질 영역보다 한 단계 더 실재에 가깝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는 아스트랄체(astral body)를 자아를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하여 생각 속에서 자기를 물질체로부터 분리하고, 물질 덩어리와는 완전히 독립된 상위 몸체에서 모든 속성과 힘이 표현되는 자아를 그려볼 수 있다. 물론 거기서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육체적 자아를 아스트랄체로부터도, 멘탈체(mental body)로부터도 분리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가 좋은 결과를 가지고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아를 그 몸체들로부터 분리하는 생각으로 원인체(causal body)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그는 이 비가시적 몸체들에 대해 물이 스펀지에 스며들듯이 물질체를 자유롭게 투과하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항상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존재이며, 그가 거주하는 다양한 몸체들은 복잡한 전체의 부분들에 불과하고, 각각의 몸체들이 생명 기능을 하는 총체에서 자기만의 별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한다. 마치 신체 그 자체를 독립적으로 바라볼 때 그 인체의 복잡성을 떠올리는 것이 그에게 아마도 도움이 되는 것과 같다.

 

육체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것은 여러 등급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등급 하나하나가 저마다 육체의 한 부분(section)을 이루면서, 각각이 육체의 윤곽을 그대로 보여 준다.

 

첫째로 뼈를 이루는 단단한 물질이 있다. 뼈는 나머지 전체를 떠받치는 골격이며 우리 몸의 윤곽을 잡아 준다. 하지만 골격이 곧 몸은 아니다.

 

다음으로는 살이라 부르는, 뼈와는 다른 등급의 물질이 있다. 살 역시 몸의 형태를 나타내지만, 그것이 몸 전체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다음으로 신경이 있다. 만약 모든 신경을 제자리에 그려 넣어 신경계 도해를 만든다면, 우리는 거기서 또 한 번 인간의 형태를 완벽하게 그려 낸 윤곽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신경 또한 몸 자체가 아니라,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는 몸의 한 부분일 뿐이다.

 

또한 피라고 부르는 액체가 있다. 만약 피의 순환을 갑자기 멈춰 그 즉시 얼려 버리고, 순환이 멎는 그 순간 모세혈관 속 입자들이 모두 제자리에 그대로 머문 채, 몸을 이루는 나머지 물질은 어떤 마법으로 전부 사라진다고 해 보자. 그래도 우리는 그 안을 흐르던 피만으로 인간의 형태가 완벽하게 그려진 윤곽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피가 인간의 형태를 그려 낸다고 해서 피가 곧 몸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육체(physical body)라 불리는 복합적 전체의 또 하나의 부분일 뿐이다. 육체가 성립하려면 이 모든 부분이 필요하며, 그것들이 서로 얽힌 채 저마다 다른 기능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런데 저마다 고유한 일을 맡은 이 여러 부분 가운데 어느 하나를 두고 "이것이 곧 육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인간을 이루는 여러 몸 가운데 어느 하나를 두고 "이것이 곧 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잘못된 일이다.

 

이 모든 등급의 물질이 저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 몫의 활동을 이어 가며 육체를 이루어 내듯이, 다시 말해 인간이 물질계(physical plane)에서 활동하는 통로가 되는 그 기제(mechanism)를 함께 구성하듯이, 우리가 여러 계(界, planes)에서 활동하는 통로가 되는 서로 다른 몸들 역시, 우리가 동시에 존재하는 세 세계(three worlds)에서 에고(ego)의 활동 전체를 펼쳐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육체, 아스트랄체(astral body), 하위 멘탈체(lower mental body), 인과체(causal body) — 이 넷은 하나의 복합적 전체를 이루는, 서로 떼어 낼 수 있는 네 부분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인간 그 자체는 아니다. 인간 그 자체, 곧 에고이자 자아(self)는, 이 모든 몸을 통하여 활동하는 보편 의식(universal consciousness)의 개별화된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망상(delusion)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데 성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은, 육체의 감각이란 사실을 매우 미덥지 못하게 전달하는 해석자여서, 가장 단순한 일에서조차 우리를 잘못 이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육체의 감각은 우리에게 지구는 가만히 멈춰 있고 태양도 달도 그 둘레를 돈다고 일러 준다. 우리가 육체적 감각의 바로 이 속임수에서 벗어나려면, 이성에 의지하여 기계로 측정하고 여러 사실을 꼼꼼히 견주어 보아야 한다. 그러고도 많은 사람은 끝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곧게 뻗은 통나무가 한쪽 끝을 맑은 물에 담근 채 개울가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우리 눈은 통나무가 물에 들어가는 지점에서 꺾여 있다고 보고한다. 두 열차가 나란히 서 있는데 우리가 탄 열차 옆의 다른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눈은 정작 우리 열차가 움직인다고 의식에 잘못 보고한다. 손의 검지와 중지를 엇갈리게 꼰 다음 그 손끝 사이로 구슬 하나를 이리저리 굴리면, 촉각은 구슬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고 우리에게 잘못 알려 준다.

 

육체적 감각의 증언이 얼마나 미덥지 못한지를 보여 주는 사실과 경험은 이 밖에도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배우는 이는 이 점을 늘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즉 우리가 이런 일들에서 육체의 감각에 이렇게 속듯이, 다른 더 중요한 일들에서도 똑같이 그것들에 속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구가 둥글며 태양 둘레를 돈다는 심상(心象)을 마음에 품고 있다 보면 마침내 지구가 평평하고 멈춰 있다는 생각이 도리어 부자연스럽고 터무니없게 느껴지듯이, 그는 자신이 활동하는 여러 몸이 서로 침투하며 맺는 관계(interpenetrating relationship)에 관한 진리를 곰곰이 생각함으로써, 마침내 옛 망상이 사라져 더는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육체는 그에게 실제로, 나 자신이 아니라 나 자신이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가 움직이며 그것을 통하여 날마다의 활동 속에서 남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탈것(vehicle, 몸체)이 된다. 더디지만 틀림없이 이 사실이 그의 의식 속에 자리 잡으며, 그로써 그는 실재(real)와 비실재(unreal)를 분별((discrimination)하는 데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