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의 발 아래에서
크리슈나무르티가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이 책에 담긴 말씀은 거의 전적으로 쿠트후미 대사의 말씀이다.
저자 크리슈나무르티는 서문에서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라며 "나를 가르친 마스터의 말씀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이 쓰여졌을 때 크리슈나무르티의 몸은 열세 살이었다. 그것은 입문에 요구되는 지식이 가능한 한 빨리 전달되는 것이 좋겠다는 마스터의 계획에 필수적인 일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 말씀들은 마스터가 가장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로 필요한 가르침의 전체적인 정수를 전달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이 특별한 경우의 요구에 대해 이토록 간결하면서도 완전하고, 단순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괄하는 진술은 없었을 것이다. 이 준비의 길의 단계들의 세부사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많은 책들이 쓰여졌고,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단어의 정확한 의미의 색조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이 작은 설명서에서 마스터께서는 그 모든 것을 과감히 제쳐두고 가르침의 정수만을 현대적 용어로 최대한 표현하여 현대적 삶에 삽입하셨다.
예를 들어, 그는 비베카, 바이라냐, 샤삼파티, 무묵슈트바(Viveka, Vairagya, Shatsampatti and Mumukshutva)의 네 가지 제자의 자격을 식별력, 무욕, 선행, 사랑(Discrimination, Desirelessness, Good Conduct and Love)으로 번역하는데, 산스크리트어 무묵슈트바를 글자 그대로 ‘사랑’이라는 영어 단어로 직역하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단순히 해방에 대한 열망을 뜻하기 때문이다. 마스터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주장한다. 자유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모든 세속적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며, 그 가운데서도 그 한계에 얽매이는 조금의 속박감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유는 지고의 존재와의 통합, 모든 것의 배후에 계신 분, 즉 신과의 합일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의 사랑에 완전히 스며들어야만 자유가 우리에게 가능해진다.
이 책에 제시된 것보다 더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제자의 자격에 대한 설명은 없으며, 그 가르침을 철저히 수행할 사람은 누구나 확실히 입문의 문을 즉시 통과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마스터가 한 개인을 직접 가르치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지만, 크리슈나무르티를 통해 수만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도달하여 헤아릴 수 없는 정도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 작은 책이 어떻게 쓰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하다.
매일 밤 나는 이 소년의 아스트랄 몸을 마스터의 집으로 데려가야 했고, 거기에서 그에게 가르침이 주어졌다. 마스터께서는 매일 밤 15분 정도의 시간을 소년과 대화하는 데 할애했지만, 대화가 끝날 때마다 항상 한 문장 또는 몇 문장으로 말씀한 내용의 요점을 모아 쉬운 요약문을 만들어 소년에게 반복해서 들려주었고, 소년이 그것을 외우도록 하셨다. 소년은 아침에 그 요약을 기억하고 적어 두었다. 이 책은 마스터의 가르침의 전형인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년이 자신의 말로 직접 만든 것이다. 소년은 당시 영어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힘들게 적어 내려갔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작성한 메모에 대해 특별히 고민하지 않았다. 얼마 후 그는 애니 베산트 박사와 함께 베나레스로 올라갔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아디야르에 있는 내게 편지를 보내서 대사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메모한 것들을 모아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메모들을 최대한 잘 정리해서 타이핑을 했다.
그때 내게는 이 말씀들이 거의 마스터의 말씀인 것으로 보였다. 나는 기록에 실수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타이핑한 사본을 쿠트후미 대사께 가져가서 친절하게 읽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것을 읽어보시면서 여기저기 한두 단어를 고치고, 연결과 설명을 위한 메모와 크리슈나무르티에게 말씀하신 것들 중 나도 기억나는 몇 가지 다른 문장들을 추가하셨다. 그리고 나서 말씀하셨다. "그래, 맞는 것 같네. 그렇게 하지" 그러고는 "주님 마이뜨레야께 보여드리자."고 덧붙이셨다. 그래서 대사와 나는 함께 원고를 가져가 그 원고를 세계의 교사(스승)인 분께 보여드렸고, 그분은 그것을 읽고 승인하셨다. 마이뜨레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이걸 책으로 만들어서 알시온(크리슈나무르티)을 세상에 소개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우리는 그를 세상에 소개할 생각이 없었고, 아직도 교육을 받고 있는 13살 소년에게 수많은 생각이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컬트 세계에서는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행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이 책을 인쇄소에 맡겼다.
그런데, 우리가 성급하게 책을 내놓아 세상에 알리게 되면서 모든 불편한 사항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마이뜨레야께서 여전히 옳았고 우리가 틀렸으니, 왜냐하면 그 책이 우리에게 가져온 선(Good)이 우리에게 가져온 문제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으로 읽고 나서 그들의 삶 전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든 것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하기 위해 나는 이 글을 썼다.
이 책은 27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지금까지 40여 개 이상의 판본이 나왔고, 10만 부 이상이 출판되었다. 지금도 미국에서 100만 부의 판본이 준비되고 있다. 이 책은 놀라운 일을 이루어냈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는 다가오는 세계의 스승(교사)에 대한 특별한 승인이 각인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이 책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것, 즉 그분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이 이 길로 들어가려는 노력에 가장 큰 도움이 될 다른 책들도 있다. 『침묵의 소리, The Voice of the Silence』와 『길 위의 빛, Light on the Path』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애니 베산트 박사의 훌륭한 책인 『바깥 법정에서, In the Outer Court 』와 『제자도의 길 , The Path of Discipleship』도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이후 애니 베산트 박사와 나는 위에서 언급한 세 권의 고전에 대한 해설서인 『오컬티즘의 길에 관한 대화』라는 책을 공동으로 출간한 바 있다.
제자의 태도
이 책들을 앞에 둔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분명히 두 가지 특별한 노선, 즉 자신의 인간됨을 발달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확실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가르침에서 그 앞에 놓인 것은 분명히 일반적인 삶에 대한 완전히 다른 태도를 의미한다. 그것은 마스터들 중 한 분께서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일하고자하는 이는 자신의 세계를 떠나 우리의 세계로 들어와야 한다."라는 문구로 표현했다. 이것은 동양의 문헌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제자가 육체적 삶과 사업(비지니스)의 평범한 세계를 버리고 정글이나 동굴 또는 산으로 은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마음의 태도를 완전히 버리고 그 대신 마스터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 사람은 삶의 사건들을 주로 자신과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마스터께서는 그 사건들이 세상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관련해서만 생각하신다. 전체적으로 진보하는 경향이 있고 인류를 진화의 길로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선한 것으로 지지받아야 하며,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것들을 방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그에 반대하거나 제쳐두어야 한다. 진화를 돕는 것이 선이고, 진화를 지연시키는 것이 악이다. 여기서 우리는 외부 세계와는 매우 다른 기준, 즉 우리가 지지해야 할 것과 저항해야 할 것을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는 시금석을 갖는다. 우리는 이 시금석을 외부의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성품의 자질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마스터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한, 그 분께 우리는 쓸모가 있을 것이며, 우리가 마스터처럼 우리 자신을 만들어 그분을 따라 함께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그분이 생각하고 보시는 대로 우리도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세 개의 문
이런 시구가 있다 :
신성한 신전으로 들어가는 세 가지 문이 있는데,
그것은 지식의 문, 일의 문, 기도의 문이다.
그리고 문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느 쪽 문으로든 들어올 수 있다.
세 가지 방법이 항상 있다. 사람은 깊은 공부를 통해 마스터의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알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그는 오랫동안 계속되는 깊은 헌신과 마스터를 향한 혼의 끊임없는 고양을 통해 그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분을 위해 어떤 확실한 활동(일)에 자신을 던지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염두에 두고 그 분을 위해 확실히 행해진 것이어야 한다. "이 일에 공로나 영광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고 마스터의 이름으로 하리니 그 영광과 찬미가 그분께 있기를."
위에 인용한 시의 다른 부분에서도 "기도하지도 않고 공부하지도 않으면서도 바르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명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공부하려고 하면 매우 힘들어한다. 우리는 우리 본성의 모든 면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계속 시도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은 일에 자신을 던지고 동료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마스터의 이름으로 일을 하고, 그분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생각에 훨씬 더 민감하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분을 생각하면서 선한 행동을 행하는 것이 모든 호소 중 가장 확실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멀리 있는 친구를 생각하면, 그의 생각은 그 친구에게로 가서 그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그 친구는 그 순간 마음이 다른 일에 많이 몰두하지 않는 한 생각을 보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마스터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분에 대한 생각은 어떤 인상의 주게 되며, 비록 그 순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인상의 손길은 거기에 있으며, 그는 그것을 알 것이며 그에 대한 응답으로 그분의 사랑과 에너지를 보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