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데프트의 메시지
우리 중 많은 제자들이 오랫동안 위대한 마스터들을 매일 묵상해 왔고, 그 중 일부는 수년 동안 경외심과 헌신의 강렬함으로 그분들에게 가까이 다가갔으며, 우리 중 운이 더 좋은 사람들에게는 종종 그분들과 개인적으로 접촉하고 때로는 다른 형제들을 위해 마스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떠맡는다. 그러한 메시지를 떠맡는 영예를 얻는 사람은 분명 그 메시지를 공들여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문제에서 일반적 법칙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자신의 성향, 편견, 혐오감이 어떤 식으로든 마스터께서 말하라고 지시한 메시지에 자신의 색을 입히지 않도록 매우 경계해야 한다. 그는 마스터의 메시지를 공들여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자는 위대한 마스터들이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일하고 있으며, 전달하는 제자의 편의를 위해 그 법칙의 조항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방금 언급한 것처럼, 메시지의 수신자는 매우 중요한 직접적인 말씀을 물질계에서 한 마디 한 마디를 받아 적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마스터가 제자 중 한 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때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가능한 말로 설명해 보겠다.
우선 마스터는 습관적으로 의식을 매우 높은 차원, 즉 보통 우리가 열반(nirvana)이라고 부르는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그는 순식간에 의식을 낮춰 자신이 원하는 어떤 차원으로든 내려갈 수 있지만, 원인체(causal body, soul)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거의 시도할 가치가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몸 밖으로 나온 제자는 그의 발달 정도에 따른 수준에서 활동하지만, 메시지의 전달을 맡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최소한 원인체의 몸(혼의식)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며, 그 수준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생각의 전달을 이해하려면 그러한 의사소통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여기 물질계에서 생각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은 물질계보다 더 높은 삶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감정과 생각은 각각 아스트랄계와 멘탈계에서 명확하게 떠다니는 어떤 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각각의 생각과 감정은 자기 나름의 별도의 형태를 지니지만, 그것들이 섞이면 우리는 그 색깔이 신기하게 혼합되어 있는 형태를 발견한다. 우리가 상상력으로 원인체에서 작용하는 자아(Ego)를 상위 멘탈계로 상승시키려 노력하여 마스터의 생각이 그곳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늘 그렇듯이 그곳에서 우리는 언어를 발견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주요한 차이점은, 자아(Ego)는 단어와 문장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마스터께서는 자신의 메시지를 일련의 생각들로 표현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마스터는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어떤 주제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결코 그것을 주장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우리가 여기 아래에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어떤 주제가 마스터 앞에 나타나면, 그는 그것을 보고 그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가 어떤 생각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 그것은 마치 지식과 추론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공을 상대에게 던지는 것과 같다. 그는 하나의 생각을 투영하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스터의 생각은 제자에게 사랑스러운 작은 구체들의 우박처럼 쏟아지며, 각각의 생각들은 다른 생각들과의 관계가 명확하게 정리된 생각들이다. 그러나, 제자가 운 좋게도 그러한 우박들을 충분히 기억하여 번역할 만큼 영리하다면, 그는 그 한순간에 쏟아진 폭우를 표현하는데 여러 페이지의 종이가 필요하며, 심지어 그 표현마저 불완전한 표현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그에게 주어진 것은 단어가 아니라 생각들일 뿐이며, 따라서 제자는 반드시 자신의 언어로 그 생각들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운이 좋게도 그가 마스터의 생각들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해석했다면 그 생각들은 마스터의 것이지만, 표현의 형식은 전적으로 제자 자신의 것이다. 따라서 제자의 특이한 점이 분명히 나타나고 메시지를 읽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 누구누구의 스타일이야." 이 누구는 메시지를 전달한 중개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그런 말은 옳은 말이지만, 그런 뻔한 사실 때문에 메시지에 담겨진 정신이나 그 중요성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
오래 전 블라바츠키 부인은 당시(1888년) 마스터들로부터 자주 받았던 편지를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 마스터들은 편지를 쓸 필요도 없고 여유도 없기 때문에, 100여 통의 오컬트 편지 중 마스터의 손으로 쓰여진 것은 거의 없으며, 그것들은 거의 마스터의 이름으로 그리고 마스터를 대신하여 보내진 것들이다. 마스터가 "내가 그 편지를 썼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그 편지 안에 담긴 모든 말들이 마스터가 구술하고 그의 직접적인 감독 아래서 인상받아 전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아데프트들은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을 자신들의 첼라의 마음에 인상을 주고, 필요한 경우 이미지를 새겨넣거나 강우*의 과정을 도와줌으로써 그것을 받아적게 하거나 강우한다. 이는 전적으로 첼라의 발달 상태, 얼마나 정확하게 생각들을 전달하고 비슷하게 받아적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루시퍼』 3권 P 93
* (역주) 강우(precipitation) - 상위계로부터 아래로 빛과 사랑, 지혜와 직관이 내려오는 것.
제자가 오랫동안 마스터를 위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익숙해지면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훨씬 더 뛰어난 번역 능력과 정확성을 얻게 되지만,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방정식을 허용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것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방식은 다음과 같다.
단순히 특정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를 들어) 우리의 위대한 대통령처럼 발전적이고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메시지를 전달할 때, 우리는 그 의미가 정확하고 그 표현의 형식이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개인적 변수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개인적 상황이 그 자체를 방해할 것이 분명하다. 불행히도, 그것은 종종 의사소통의 스타일 (결국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쉽게 무시될 수 있음)뿐만 아니라 그 내용과 관련하여 그렇게 된다. 그 이유와 방법을 이해하려면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의 체질과 발달에 대해 잠시 고려해야 한다.
우리 높은 등급의 제자들은 나의 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여러 단계에 있는 인간의 아스트랄체와 멘탈체에 대한 여러 가지 삽화가 제공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삽화들은 항상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아스트랄이나 멘탈과 관련되어 있어서 꽤나 지속적인 활동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몸들의 외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계란 모양의 아스트랄과 멘탈 질료는 피상적으로만 활성화되어 있으며, 보통 사람의 경우 영향을 받는 표면층은 대개 얇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각 몸들에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많은 부분이 있다. 즉 몸들의 외부 활동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실제로 거의 움직이지 않는 무거운 핵심 코어(혼)가 있다. 그러나 비교적 아직 불활성화된 이 물질 덩어리는 더 활성화된 부분(인성)의 영향을 거의 받지는 않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인성에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인성이 사실 멘탈체, 아스트랄체, 육체와 같은 하위 몸들을 통해 작용하는 자아(혼)의 파편이라고 말했다. 이 작업의 방법과 세부 사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 책의 제 7장 내면의 삶, "잃어버린 혼들"이라는 제목 아래, 그리고 『오컬티즘의 길에 관한 강연』 257-261쪽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에서 자아(혼)은 아직 완전히 깨어있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는 (불합리하게 들리겠지만) 혼의 상당 부분이 아직 활동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혼을 활성화하는 것은 모나드이지만, 우리의 자아(혼)는 아직 부분적으로만 깨어나 있을 뿐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인성을 움직이는 것은 혼이지만, 그 통제 작용 역시 아직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가 주의 깊게 주목해야 할 특정 조건들이 설정되어 있다. 어떤 고양된 순간에 혼에서 인격으로 힘이 유입되면 일시적으로 인격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지만, 반면에 아스트랄체와 멘탈체의 사용되지 않은 부분의 꾸준한 압력은 당분간 인격의 수준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
깨어나지 않은 무기력한 물질 덩어리(코잘체)인 혼은 인성의 활동적인 부분이 다소 주춤하게 될 때 스스로를 주장하는 나름의 특정한 생명력과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그 사람이 자신의 하위 세 몸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때 더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특성은 사람마다 당연히 다르지만, 심한 자기중심주의가 거의 지배적이다. 이 알맹이의 부진한 깨어남이 만들어내는 생각들과 인상들은 종종 자만심과 우월감, 그리고 실제든 상상이든 어떤 위험에 처했을 때 본능적인 자기 보존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진보된 인간의 빛나는 영광에 도달하기 전에(『보이는 인간과 보이지 않는 인간』, 그림 21 참조), 이 무거운 핵심 코어에 빛이 서서히 스며들어 따뜻해지고 녹아내려 빛나는 반응이 일어나는 오랜 기간의 느린 전개 과정이 있다. 인성의 미묘한 지배력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매우 느린 과정이다. 물론 하위 인성은 그 사람이 자신의 하위 본성 전체를 통제함에 따라 점차 제거될 것이지만, 그러는 동안 그는 자신의 하위 인성을 찬양하는 어떤 정보들에 진지하게 회의감을 갖거나, 모든 인류 중에서 자신만이 세상에 대변혁을 일으키는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고 스스로 암시하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일 것이다.
그러한 자신과의 약속(암시)은 많은 개인적인 영감을 주는 강신술 모임(교령회)에서 소통하는 영의 일정한 상투적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부 영을 의도적으로 기만하는 것으로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 영은 아스트랄계의 삶에서 자신에게 크게 다가오는 어떤 위대한 진실들에 강한 인상을 받고 깨어날 때가 매우 많아서, 이 진실들이 적절하게 세상에 제시될 수 있다면 자신의 태도가 실제로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느끼면서도, 육체적 생애 동안 그 같은 생각들이 계속 퍼뜨려지는 가운데에서도 정작 그 자신은 그 진실들에 대해 조금도 주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그들에게 가면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라는 다이브의 말에, 아브라함의 대답은 지혜로움을 보여준다.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누군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아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누가 16:31).
*(역주) 인간이 죽은 후에 아스트랄계에서 지상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과 진실들을 많이 알게 되고,
자신이 다음에 환생하면 위대한 진실대로 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과 약속을 하지만, 막상 지상의 삶에
들어오면 혼이 일깨워지지 못하고 하위 인성의 삶에 매몰되어 자신과의 약속을 망각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자신이 어떤 하위 본성의 압력을 받아 고정된 틀에 갇히게 되면, 어떤 상황이 되어도
편견에 갇혀 진실에 열려 있기가 어렵다는 의미이다.
이 잠재의식적 자아의 음흉하면서도 지속적인 압력은 (평균적 상식을 가지지 않은) 한 사람을 예사롭지 않은 자기기만에 빠지게 하여, 그 기만적 영향력이 없었다면 그 자신에 대해 즉각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을 것을,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자기 암시의 효과를 개척한 쿠에(Émile Coué)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이 이상한 미개발된 잠재의식에 호소한 덕분이었다. 그 특이한 것 중 하나는, 인성의 깨어있는 부분이 의지를 통해 자신의 인성에 영향(인상)을 주려고 하는 시도에 늘 반감을 보인다는 점이다. 인성은 나태하고 편견이 있기 때문에 항상 어떤 변화나 시도를 불러일으켜 작동시키려는 것에 반대한다. 따라서, 쿠에는 특히 환자들에게 의지를 전혀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했는데, 그것은 의지가 반대되는 것을 일깨울 뿐이기 때문이며, 단지 잠재의식적 자아(subconscious self)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흡수할 때까지 그저 단순하고 조용하게 자기암시를 반복하라고 조언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인상을 주는데 사용하는 암시 방법 중 하나는, 육체가 수면 중일 때 암시하는 것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심지어 자동 암시(auto-suggestion)조차도 가능한 한 거의 같은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했으며, 환자는 부드럽게 중얼거리며 잠에 빠지도록 조정되었다.
"나는 매일,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암시의 힘 즉 잠재의식적 자아가 현재 이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억누를 수 없는 이기심과도 쉽게 조화를 이루며)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다 활동적인 의식에 꾸준히 영향을 미치는 암시의 힘이다. 따라서 무지한 사람에게는 위험과 나약함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발달되지 않은 덩어리가 실제로 현명한 사람에게는 영적 상승의 길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역주) 맥도널드 베인의 『상위 힘의 사용』 레슨 VII - “가장 높은 형태의 치유의 힘” 아래 링크 참조
https://cafe.daum.net/awaretrans/r0uT/13
이 모든 것의 교훈은 무지는 항상 위험하며, 아무리 고상한 의도라도 과학적 지식의 부족을 항상 보상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장난을 잘 치거나 책략을 가진 사람은 숨겨진 본성의 법칙들을 잘 모르는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그 법칙들을 연구한 사람은 수많은 함정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조차도 자신의 지식을 과신해서는 안된다. 끊임없는 경계는 정확성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많은 조언이 있었으며, 우리는 분명히 그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모든 개인적인 감정을 피하고, 무엇보다도 자만심을 피하라. 개인의 모든 영광을 깊이 불신하라. 왜냐하면, "야망은 첫 번째 저주"이며 "제자가 탐낼 힘은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지혜를 얻으려거든 겸손하고, 지혜를 얻었으면 더욱 겸손하라." 자신을 완전히 잊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은 많은 위험으로부터 구원 받게 될 것이다. 그의 마음은 수정처럼 순수하여 그를 통해 로고스의 빛이 더럽혀지지 않고 빛날 것이다. 그의 모든 본성은 마스터의 진동에 진실로 반응하여 더 높은 차원으로부터 오는 생각과 메시지가 어떤 낮은 접촉에도 왜곡되거나 오염되지 않고 그를 통해 흐를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스터들이 사랑하는 인류에 봉사함으로써 마스터들을 가장 잘 섬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