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 실현
살아있는 모든 것은 실제로 하나이며, 그것을 사실로 아는 것은 형제단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의무이다. 우리는 자아가 하나라는 것을 배웠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입문의 후보자가 붓디계에 들어설 때처럼 우리가 직접 그것을 보게 될 때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육신의 삶에서 우리들 각자가 우물 밑바닥에 살면서 윗 세상의 햇빛을 올려다보는 것과 같고, 그 빛이 많은 우물들 깊은 곳까지 내리쬐며 하나의 빛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그 ‘하나의 빛’이 우리들 마음의 어둠을 비추고 있는 것과 같다. 입문자는 인성이라는 우물 밖으로 나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빛이 실은 모든 것의 무한한 빛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원인체 안에 사는 동안 자아는 이미 모든 것 안에 있는 신성한 의식을 인정했고, 다른 자아를 바라볼 때 그의 의식은 마치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을 인식한듯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붓디계에서는 외부로부터 그를 맞이하는 것은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그 의식이고 그것은 그의 것이다. 이 때 '너'와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그것은 둘을 초월하면서도 동시에 둘을 포함하는 무언가의 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기이한 발전 속에서도 분리감은 완전히 상실되었지만, 개별성의 상실은 없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분명 사실이다. 그 사람은 자신의 배후에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는 먼 과거에 이런 저런 행동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결코 변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 안에 다른 많은 표현도 포함되어 있다고 느낀다. 지금 여기에 우리 중 백 명이 동시에 의식을 직관계(붓디계)로 끌어 올릴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하나의 의식이 될 것이지만, 각자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의식이 이제 다른 의식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예전과 전혀 변함이 없는 의식이다.
각자가 보기에 우리 자신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흡수하거나 포함시킨 바로 그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분명 일종의 환상적 존재 안에 있으며, 조금 더 깨닫게 되면 우리 모두가 더 큰 의식의 모든 측면들이며, 지금까지 우리(인성)의 자질들과 지성, 에너지라고 생각했었던 것들이 사실은 항상 자아의 자질과 지성, 에너지였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우리는 유서 깊은 오랜 공식인 "당신이 바로 그것이다(Thou art That, You are That 또는 I am That)"이 실제로 실현되는 순간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 아래 세계에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파악하거나 그것을 지적으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직접 그 경이로운 세계로 들어가서 다시는 흔들릴 수 없는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일이다.
이 붓디 의식이 육체적 뇌에 완전하게 인상을 남길 때, 그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행동과 관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약간의 친절함이나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이나 사물을 그 자체로 보며, 우리 자신의 두뇌의 생각이나 손의 움직임을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 사람이나 사물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더 많은 지식이나 다른 관점을 가진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부분이 상당히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의 동기를 우리 자신의 동기로 인정한다.
그러나, 인간이 붓디계의 가장 낮은 영역에 들어갈 때 즉시 모든 생명체와의 통합을 완전히 의식하게 된다고 가정해서는 안된다. 그 감각의 완전성은 오로지 그가 이 통합의 영역의 가장 높은 하위 영역에 도달했을 때, 많은 수고로움과 고생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차원에 들어가는 것은 의식의 엄청난 확장을 경험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면전에는 노력과 자기 계발의 시간이 열려져 있다. 이는 명상을 통해 우리 위에 있는 상위계에 의식을 열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여기 아래에서 하는 일과 비슷한 수준의 노력과 자기 계발의 시간에 열려져 있다. 우리는 자신의 길을 하위계의 한 단계씩 쟁취해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진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그 하위 수준에서의 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입문을 통과하여 의식적으로 붓디계에 진입한 후에, 이제 기술적으로 "세 가지의 커다란 족쇄들*"로 불리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하위계에서 자신을 더 발전시키는 이 작업이 이제 후보자 앞에 놓여지게 되는데. 이는 그의 더 이상의 진보를 난처하게 만든다. 그는 이제 확실히 "거룩함의 길(Path of Holiness)"에 들어섰으며, 불교 체계에서는 이를 "Sotapatti or Sovan(시냇물에 들어선 자, 수다원)"이라고 부르고, 힌두교에서는 그를 ‘방랑자’의 의미를 지닌 파리브라자카(Parivrajaka)라고 부르는데, 그는 하위 삼계의 그 어떤 곳도 자신의 피난처라고 느끼지 않는다.
*(역주) : 세 가지 족쇄 – 성자의 흐름 즉 "시냇물"에 들어선 자들이 단계적으로 벗어나야 하는 10가지 족쇄*가 있는데, 그 중 앞의 세 가지이다. 보다 상세한 것은 다음 9장과 10장에서 다루어지겠지만, 먼저 불교 체계에서 본 10가지 족쇄와 입문의 4 단계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10가지 족쇄(10결)
(오하분결)
1. 유신견 – 육체적 자아(하위 자아)가 고정되어 있고 그것이 자신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하위 자아의 정체성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
2. 계금취견 - 형식적 계율들과 의례와 의식들을 중시하고 그것을 잘 지킴으로써
해탈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그것들에 집착하는 것.
3. 의심 - 붓다의 가르침(불법) 등 영적 진리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는 것.
4. 감각적 욕망 –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 (탐욕)
5. 악의(진애) - 반감, 증오, 분노, 적개심 등의 성내는 마음
(오상분결)
6. 색계욕 - 감각적 욕망을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순수 물질의 세계와 그 느낌에 대한 집착
아스트랄계에 대한 욕망
7. 무색계욕 – 욕망과 감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순수 정신계나 관념에 대한 집착
멘탈계에 대한 욕망
8. 아만 – 남보다 더 낫다는 비교의 마음과 얕잡아 보는 교만심
9. 들뜸 –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고자 하는 조바심과 현재보다 과거와 미래로 헤매는 마음
10. 무명 – 어리석음, 상위 지식의 결여로 인해 미세하게 여전히 무지한 부분이 남아 고통이 있음.
● 성자의 4 단계 (4향 4과 또는 4쌍 8배)
10가지 족쇄와 관련하여 불교에서는 성자들의 단계를 크게 4 단계로 나누고
다시 향과 과를 나누어 총 8개로 나눈다. 그것은 10가지 족쇄의 단계적 정복과 관련되며,
향(向)은 다음 단계의 입문을 향해 가고 있는 예비입문자들이며,
과(果)는 그 입문을 받아 성취한 상태를 말한다.
(제 1입문에서 제 4입문까지)
1. 수다원(향) - 세 족쇄에서 조금 벗어나기 시작함.
수다원(과) (제 1입문) – 세 가지 족쇄에서 벗어남 (7번 윤회 남겨둠).
2. 사다함(향) - 탐심과 진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함.
사다함(과) (제 2입문) - 탐욕, 분노(진심)에서 상당히 벗어남 (1번 윤회 남겨둠).
3. 아나함(향) - 하위 자아에 대한 통제력을 얻기 시작하고 하위 세 몸들의 통합이 시작됨.
아나함(과) (제 3입문) - 욕계에 대한 집착(5가지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나 더 이상 욕계에 태어나지 않음.
(물질계에 윤회하지 않음). 혼의 하위자아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이 갖춰짐.
4. 아라한(향) - 상위 5개 족쇄에서 벗어나기 시작함.
아라한(과) (제 4입문) - 10가지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