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입문
이제 입문의 후보자는 다섯 번째 입문, 즉 아테프트(Adept)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 창조된 목적을 달성하였다." 이제 그는 불교도들이 아세카(Asekha)라고 부르는 초인이 되는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그가 인간계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다 실현했기 때문이다. 힌두교도들은 그가 자유로운 해방된 삶의 존재라고 하여 지반묵타(Jivanmukta)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그가 다른 존재들과 분리된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보편적 의지 즉 유일자의 의지와 하나가 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깨어있는 의식 속에서도 열반의 빛에 항상 서 있으며, 육체를 가지고 지상에 머물기로 선택하다가 훗날 그 육체에서 벗어나면 우리의 말과 생각 너머에 있는 모나드계로 더 높이 올라간다.
주님 붓다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라.
말과 생각의 끈으로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불가해한 것을 잡으려 하지 말라.
그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자 모두 잘못되었다.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기독교의 상징에서 성령(성신, Holy Ghost)의 승천과 강림은 초인(아데프트)의 성취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초인이 지상 너머 인류 위쪽으로 분명히 승천하지만, 그렇게 승천을 선택하고 나서 그리스도처럼 원할 때 다시 돌아와서 인류를 가르치고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승천하면서 성령과 하나가 되고, 오순절 때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머리에 불의 혀를 쏟아부었을 때처럼 그가 새로운 능력을 가지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항상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러한 능력을 부어주는 것이다.
이전 책들에 실린 인간의 원리를 보여주는 도표들을 살펴보면, 프라크리틱 우주계 (Prakritic Cosmic plane)* 안에 현현된 로고스와 인간의 혼 안에 현현된 로고스의 관계가 보일 것이다. 우리는 삼중의 영인 삼중의 아트마가 열반이나 영계의 하위 부분에 있으며, 로고스의 제 3 위격인 성령(Holy Spirit)의 가장 낮은 현현이 같은 계의 상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 아데프트는 그 수준에서 성령과 하나가 되며,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성령 축제인 오순절에 대한 진정한 설명이다. 아세카(아데프트)가 제자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의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라한은 비록 그 자신도 가르칠 것이 매우 많겠지만, 아라한은 여전히 아데프트 밑에서 일하며 그를 위해 행동하고 물질계에서 그의 명령을 수행하지만, 아직 성령과의 특별한 연결이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해 제자를 받지는 않는다.
* 역주 : 프라크리틱(Prakritic Cosmic plane) 우주 계는, 대우주(Macrocosm)의 일곱 계들 중 가장 하위 계로서 현재 우리 물질계가 속한 소우주(Microcosm)를 가리킨다.
아데프트 너머의 상위 입문들
아데프트의 입문 위에는 초한(Chohan)의 입문이 있고, 더 나아가 오컬트 하이어라키에 대한 장에서 장차 이야기할 다른 입문들도 있다. 존재의 사다리는 빛의 구름 위로 더욱 뻗어 올라가는데, 우리들 중 소수만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우리보다 더 높은 것에 서서 우리보다 무한히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존재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들 시야 너머에도 뭔가 더 뻗어있다는 것뿐이다. 그분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단계에 대해 알고 있지만. 여전히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의 높이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비록 내가 방금 말한 것, 즉 우리 중 누구도 그 사다리의 끝을 볼 수 없고 하이어라키의 더 높은 위계에 있는 존재들의 일은 거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존재와 그들이 하는 일이 세상의 어떤 것만큼이나 실제적이고 확실하다는 것을, 아니 그보다 더 확실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위대한 분들에 대한 우리의 비전에는 조금도 모호함이 없다는 것을 완벽하게 분명히 하고 싶다. 비록 내가 그분들이 하시는 일의 더 높은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지만, 지난 수년 동안 나는 보디사트바께서 그 일에 종사하는 것을 거의 매일 끊임없이 보아왔고, 세계의 주님이신 그분의 경이롭고 이해할 수 없는 면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에, 그런 분들은 내가 아는 어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실재하는 사람들이며, 나는 그들의 존재와 그들이 세상에서 하는 역할에 대해 가능한 한 확신하고 있다.
그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엄청난 진실에 대해 나는 완전히 확신하지만, 나는 그들을 설명할 수도 없고 그들이 하는 일의 일부분 이상을 이해할 수도 없다. 나는 다른 태양계에서 온 디얀 초한들(Dhyan Chohans*)과 행성의 영들과 마스터들을 보았고, 그분들의 존재와 초월적 영광을 확실히 알고 있지만, 그분들의 엄청난 삶의 일이 무엇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태양계의 로고스의 현현을 직접 보았고, 동료들 가운데 있는 그대로의 그를 보았지만, 그분들이 그를 바라볼 때 내가 그에게서 본 형언할 수 없는 장엄함보다 수백만 배의 것을 볼 수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바가바드 기타의 아르주나(Arjuna)가 신성한 형상을 보았다고 말했듯이, 나도 의심의 여지 없이 그분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기록에 남기고 싶다. 감히 말하건대, 나는 이런 글을 쓴다는 이유로 내가 어느 정도 조롱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은 "당신은 누구인가요?"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았고, 그에 대한 목격의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 역주 : 디얀 초한(Dhyan Chohan)
카르마와 우주법칙들의 관장을 대리하며 니르바나의 명상 상태에 들어있으며,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우주와 행성의 주님들이며 천상의 빛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우리들이 생겨난 기원이기도 하며 동시에
우리가 온전히 진화하여 회귀할 우리의 미래적 자아의 모습들로 볼 수도 있다.
그들은 위계 질서를 가진 집합적이면서도 고유의 개별성을 가진 지성들로 인식될 수도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의 존재들로 알려져 있다.
나는 연설과 글을 통해서 누구도 신지학에 대한 믿음을 내 주장에 근거해서 세우지 않기를 바란다고 반복하여 선언한 바 있다. 나는 각자가 스스로 체계를 연구하여 자신의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어떤 교리를 받아들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경험에서 알고 있거나 현재로서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가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책과 다른 책에서 제시했던 증거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제시할 증거가 있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20세기에 신지학에 관해 글을 쓰는 우리는 거의 2천 년 전에 성 요한이 했던 분명한 다음의 진술을 충분히 재확인할 수 있다.
- 태초부터 있었던 것, 우리가 들은 것, 눈으로 본 것, 손으로 만져 본 것을 ...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 -- 요한 일서 1장 3절
세상이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것은 우리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영을 느낀 자,
그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의심케 하거나 부인하게 할 수 없나니,
오 세상이여, 너 세상이 부인할지라도 나는 한 목소리로 말하리라,
너는 저편에 서라, 나는 여기 있을 것이니.
- 마이어스 교수의 「성 바울」
일곱 가지의 길
아세카(아데프트) 입문 직후에 이 높은 길에 일곱 가지의 위대한 길들이 열리는데, 아데프트는 그 길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주제에 대해 나는 『인간 : 어디서, 어떻게, 어디로』에서 말한 내용을 인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
- 인간계를 지나 초인간의 삶, 즉 해방된 영의 문턱에 서게 되면, 그에게는 일곱 가지의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그는 우리의 지식을 훨씬 뛰어넘는 활동을 통해 열반의 지복에 찬 전지전능함에 들어가서 미래의 어떤 세계에서 아바타 또는 신성한 화신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을 "다르마카야(Dharmakaya, 법신法身, True body)의 옷을 입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는 "영적인 기간"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이 말에는 미지의 의미들을 포괄하는 것이 담겨져 있고, 그 중에는 "삼보가카야(Sambhogakāya, 보신報身, 수행의 과보로 얻어지는 지복과 빛의 몸)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니르마나카야(Nirmanakaya, 응신應身 또는 화신化身의 옷을 입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는 로고스의 대리인들이 일을 위해 끌어오는 영적인 힘의 보물창고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그는 그 자신이 완전하게 통달한 이 세계를 관장하고 수호하는 오컬트 하이어라키의 일원(대백색형제단의 마스터)으로 남을 수도 있다. 또한 다음 주기의 체인으로 넘어가 형태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는 찬란한 천사나 데바(천신)의 진화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아니면 그는 로고스의 즉각적인 봉사에 자신을 바쳐서, 태양계 어느 곳에서나 태양 로고스에 의해 사용될 수 있으며, 그분의 종이자 메신저로서 살면서 그분의 뜻(의지)을 실천하고 그분이 다스리는 태양계 전체에 대한 일을 할 수도 있다. 장군에게 그의 참모들이 있고, 그들이 전장의 모든 곳으로 장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이들은 모든 것을 지휘하는 그의 참모들이며, "그분의 기쁨을 행하는 그의 장관들"이다. 그런데 이 길은 매우 어려운 길이며, 아마도 초인(아데프트)에게는 가장 큰 희생이 따르는 길이므로 가장 위대한 명예를 수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전 참모진의 일원들은 물리적 육체는 없지만, 자신이 파견된 행성 지구의 물질을 “만드는 힘”인 크리야샥티(kriyashakti, 생각의 힘을 사용하여 물질계에 사물을 드러내는 것)를 통해 스스로 몸을 만들어낸다. 이 참모진에는 아데프트 수준에서 위쪽으로 매우 다양한 수준에 있는 존재들이 포함되어 있다.
법신의 옷을 입은 존재는 모나드로 철수하고 열반계의 원자조차도 버린다. 보신의 옷을 입은 존재는 열반계의 원자를 간직하고 자신을 삼위의 영으로 나타내며, 화신의 옷을 입은 존재는 원인체(혼 soul)를 지니고 그가 진화하는 동안 간직해온 영구 원자들을 지니고 자신의 원할 때면 언제든지 자신의 주위에 멘탈체와 아스트랄체, 육체를 구현시킬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영적 힘을 세계에 쏟아붓는 저수지를 공급하기 위해 자신이 비롯된 세상과의 연결을 확실하게 유지시킨다. 이 화신은 세상을 더 큰 불행과 슬픔으로부터 보호하는 수호의 벽을 형성하는 존재로 「침묵의 소리」에서 묘사하고 있다. 내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행과 슬픔이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고 이 위대한 존재들이 그것을 막아 수호해 준다는 의미로 보이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고통받는 사람 그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가 자신의 입법자이며,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과 보상을 결정한다. 그러나, 화신의 의무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커다란 영적 힘을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는 항상 이 힘을 만들어내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데 사용하기 위해 형제단의 봉사에 모든 것을 바친다. 따라서 아데프트를 성취한 사람들 중에서 비교적 극소수의 존재만이 오컬트 하이어라키의 일원(마스터)으로 지구에 남게 되지만, 이 존재들과 이들이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므로 우리는 이 책의 나머지 장들에서 그 주제들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