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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명 |
도총관공(都摠管公) 경신(敬臣)파 |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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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조 |
경신(敬臣) |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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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
50세손 |
시대 |
고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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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
| 도총관공(都摠管公) 경신(敬臣)파
김수로왕의 후손인 경신(敬臣)은 고려 충렬왕朝에 진(鎭) 총관부(摠管府) 관군총관(管軍摠管)으로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의 파조(派祖)이다.
2세 원현(元鉉)은 고려때 광정대부 첨의평리 상호군 영부사(匡靖大夫 僉議評理 上護軍 領府事)를 지내셨다. 방려, 계금, 계희, 극검, 관, 유신등 명현이 이어졌다.
경신(敬臣)의 칠세손(七世孫)인 담헌(淡軒) 극검(克儉)은 성종조(成宗朝)에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담헌공파(淡軒公派)의 분파조(分派祖)이며 극검(克儉)의 현손(玄孫) 만증(萬增)은 진사(進士)로 1592년 임란때 김해(金海) 퇴은촌(退隱村)에서 성주목(星州牧) 용기(龍基)현(現) 고령군(高靈郡) 성산면(星山面) 대흥리(大興里))로 이거하고 만증(萬增)의 현손(玄孫) 연(衍)은 효종시(孝宗時) 초곡방(草谷坊) 삽제(揷祭)(현(現) 용암면(龍巖面) 명포리(明浦里))로 연(衍)의 6세손(世孫) 업변(業變)이 조곡방(租谷坊)(현(現) 용암면(龍巖面) 계상리(溪上里))에 정착하여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도총관공 경신파에서 분파된 파 : 생원공 계인파, 서강공 계인파, 주부공 초파, 퇴은공 계희파, 담헌공(淡軒公) 극검(克儉)파
※ 도총관(都總管) : 조선 때 오위도총부(五衛摠總府)의 우두머리로 정 2품의 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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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총관공(都摠管公) 경신(敬臣)파 항렬표 |
시조로부터세수/파조로부터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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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0 |
70/21 |
71/22 |
72/23 |
73/24 |
74/25 |
75/26 |
76/27 |
77/28 |
78/29 |
79/30 |
80/31 |
8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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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운 |
履/이 |
燮/섭 |
堯/요 |
鍾/종 |
胄/주 |
東/동 |
烈/열 |
桓/환 |
會/회 |
泰/태 |
柱/주 |
炫/현 |
김해김씨(金海金氏) 도총관공 휘경신파(都摠管公諱敬臣派)는 고려때 도총관(都摠管)을 지내신 휘경신(諱敬臣)을 중조(中祖)로 모시는 계파(系派)입니다.
도총관 휘경신파는 고려때 광정대부 첨의평리 상호군 영부사(匡靖大夫 僉議評理 上護軍 領府事)를 지내신 2세 휘원현(諱元鉉)을 비롯하여 4세 축은공(築隱公) 휘방려(諱方礪), 6세 서강공(西岡公) 휘계금(諱係錦), 퇴은공(退隱公) 휘계희(諱係熙), 8세 담헌공(淡軒公) 휘극검(諱克儉)을 비롯하여 휘관(諱寬), 휘유신(諱庾信=超) 등 명현(名賢)이 배출된 명문세가라 하겠습니다.
이중 4세 축은공(築隱公) 이하가 축은공파(築隱公派)라고 하는데 전남 보성과 장흥을 중심으로 많은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남 장흥군 안양면 수양리에 축은공 휘방려(築隱公 諱方勵), 퇴은공 휘계희(退隱公 諱係熙), 담헌공 휘극검(淡軒公 諱克儉), 절옹공 휘 혼(節翁公 諱渾)을 배향한 사현사가 있습니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에 한림정(翰林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이는 세종때 한림(翰林)과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역임하신 퇴은(退隱) 김계희(金係熙)께서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정자를 짓고 놀던 곳이라 합니다. 정자 이름은 퇴은정(退隱亭)이라 하였으나 세상에서 공의 초직(初職)을 따라 한림정이라 불렀으며 건물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지금은 이 일대를 한림정(翰林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에 황해,전라관찰사와 호조참판을 역임한 담헌(淡軒) 김극검(金克儉)검의 묘소가 있는데 이 부락 이름을 공의 관직을 따라 관찰사촌(觀察使村)이라고 부르며 이곳에는 공이 만년에 점필재( 畢齎) 김종직(金宗直)과 놀던 월파정(月波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소실되고 1959년에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6세 서강공(西岡公) 이하를 서강공파(西岡公)파라고 하는데 경남 김해와 기장을 중심으로 많은 자손들이 거주하며,
8세 담헌공파(淡軒公派)는 김해와 성주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족보는 축은공파, 서강공파, 담헌공파로 나뉘어 간행되어 오다가 1998년 무인보(戊寅譜)에서에서 통합되었고, 항렬도 축은공파와 서강공파가 각기 다르게 정하여 왔었는데 무인보에서 중조로부터 33세 이후는 통합이 이루어 졌음이 확인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