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 장소...
쉬린제, 달콤한 과일주의 마을
셀축에서 8km 정도 떨어진 작고 예쁜 시골마을. 흰 회벽에 붉은 기와를 올린 그리스풍 전통가옥들이 신비탈을 따라 들어서 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의 풍광 덕분에 주말이면 터키 사람들도 즐겨 찾는 관광지로 외지인들을 상대하는 숙박업이나 특산품 판매가 마을의 주요 수입원이다.
멋진 풍경과는 다르게 마을의 원래 이름은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뜻인 치르킨제였다. 그리스인 노예들이 풀려나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다른 관심을 끊기 위해 일부러 안좋은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지역의 상태를 물어보는 오스만 통지자에게 사실과는 달리 추하다며 거짓말을 한 덕분에 마을을 세울 수 있는 땅을 얻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을 가옥들은 대부분 19세기에 지어진 것들. 한때는 1800여채의 그리스 가옥들이 들어서 있었다고 하는데 외진 산속에 위치한 덕분에 오스만 통지하에서도 나름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며 살수 있었다고. 하지만 1923년 터키-그리스 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인구교환 협정에 따라 이곳에 살던 그리스인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 그리스 테살로니키 등지에서 살던 터키계 후손들이 정착하였다.
이런 마을의 역사속에서 남겨진 과일주 전통이 쉬린제의 독특한 명물이자 관광상품, 포도주를 비롯하여 사과, 복숭아, 체리, 딸기, 오디 등으로 만든 다양한 과일주를 판매한다. 할머니들이 파는 아기자기한 수공예품과 올리브 오일, 비누 등을 구경하면서 산책을 즐길수도 있다.
올리브나무
와인 무료시식
화덕에서 빵을 굽고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삭당거리의 양갈비 를 먹으러 갔다.맛있다는 양갈비 집까지는 버스로 5분 걸어서 10~15분 정도 거리양갈비4쪽에 우리돈으로 15,000원정도,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금방해서 뜨거울땐 모르겠는데 갈비가 식으니 약간은 나는거 같은데, 그래도 맛은 있네요? 술은 입가심으로 맥주 몇병만 주문하고 , 우리소주로!! 한국식 노래방 반주에 노래도 하고 춤도추고........
터키 남서부 데니즐리(Denizli) 주에 위치한 파묵칼레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유서 깊은 고대도시 유적이 어우러진 곳이다.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라는 뜻으로 경사면을 흐르는 온천수가 빚어낸 장관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석회성분을 다량 함유한 이곳의 온천수가 수 세기 동안 바위 위를 흐르면서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어 마치 하얀 목화로 만든 성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 온천수는 섭씨 35도로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치료와 휴식을 위해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로마 시대에는 여러 황제와 고관들이 이곳을 찾았는데 하얀 결정체가 대지의 경사면을 온통 뒤덮은 장관을 감상하면서 심신의 치료를 겸할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였기 때문이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다.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처음 세워져 로마 시대를 거치며 오랫동안 번성했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이곳에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원형극장은 최대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도 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에 하나인 이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은 온욕실과 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 이어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번성하였으며,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족의 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파묵칼레’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배세력의 변천 속에서도 지속적인 번영을 누려왔던 히에라폴리스이지만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는 폐허가 되었다. 대지진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도시를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하였고 이후 발굴 및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유적을 동시에 갖춘 이곳은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복합)으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 [Hierapolis-Pamukkale] (두산백과)
히에라 폴리스 유적
히에라폴리스유적
산타클로스의 유래
산타클로스라는 말은 AD 3C 경 소아시아 지방 미라의 대 주교였던 세인트(성)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라틴어로 상투스 니콜라우스입니다. 그가 살았을 때 자선심이 지극히 많았던 사람으로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으며 사후에는 아이들과 항해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12월6일을 그의 축일로 지켰습니다.
성 니콜라스의 전설은 노르만족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12세기 초부터 프랑스의 수녀들에 의해 니콜라스 축일 하루전날인 12월5일 가난한 이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겨났습니다. 성 니콜라우스의 이 같은 미담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 니콜라우스라고 불렀는데 특히 AD 17세기경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산테 클라스라고 불러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이 발음이 그대로 영어화했고 AD 19세기 크리스마스가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오늘날의 산타클로스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로,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효시였으며, 본래 날렵하고 키가 큰 모습에서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토마스 나스트라는 19세기의 만화가가 20년동안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면서 완성한 것이고, 현재처럼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은 1930년대의 일로,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 선전에 등장하고 난 뒤부터였다고 합니다.
아름답고 신비한 수중세계 케코바
파무칼레에서 차로 약 4시간 떨어진 곳에 기원전 2세기경 비잔틴 문명을 꽃피웠던 수중도시 케코바가 있다.
케코바는 한때 번성한 문명도시였지만 지진으로 인해 바닷속으로 잠겨버렸다. 유람선을 타고 섬 근처로 가면 바닷속에 가라앉은 항아리와 섬으로 이어지는 계단, 목욕탕 등 그 시대의 흔적을 그대로 살펴볼 수 있다. 간혹 수면 아래에 십자가가 보이는데 바로 당시의 묘지 흔적이 유람선 투어를 통해 눈부신 에메랄드빛 바다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주변에는 그당시에 세워진 석관들을 많이 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