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잔등(殘燈)>
▣ 해제 ▣
이 작품에는 당시 대부분의 작가들이 보여 주었던 광복의 흥분된 감격과는 대조적으로, 광복과 함께 하는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함께 실망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고, 민족의 지나온 길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암시되어 있다.
▣ 작품 개관 ▣
▪ 갈래 : 중편소설
▪ 배경 : 시간 : 일제말 - 해방기 시점에서 부각시킨 일제 징용 시대의 현실.
공간 : 만주, 청진 등지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의의 : 해방을 맞이하는 태도에 대한 새로운 조명
▪ 제재 : 해방 직후, 다양한 삶의 방식과 일본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 주제 : 인간의 만남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애의 미덕 / 식민지 시대의 분노와 복수심,
해방의 감격과 무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 정신의 모색.
▣ 등장인물 ▣
▪ 나(千) : 주인공. 화가. 지성인. 징용에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내면적 성격의 인물. 해방이 되자 만주 장춘에서 회령, 청진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두 가지 태도를 체험한다.
▪ 방(方) : '나'와 함께 귀국길에 오른 친구. 사교적․행동적인 인물.
▪ 소년 : 뱀장어를 잡아 일본인들에게 팔지만, 돈 많은 일본인들을 알아내어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것이 본업(本業).
▪ 국밥집 할머니 : 국밥 장수. 일찍 남편을 잃고 외아들이 독립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죽 음. 아들의 일본인 친구도 죽은 데에서 일본인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는 인정 많은 인물.
▣ 구성 ▣
▪ 발단 : 친구인 '방(方)'과 함께 장춘에서 청진으로 향함.
▪ 전개 : 열차를 놓쳐 '방'과 헤어짐.
▪ 위기 : 수성강 둑에서 뱀장어를 잡는 소년을 만남.
▪ 절정 : 청진역에서 국밥 장사를 하는 할머니를 만남.
▪ 결말 : '방'과 함께 다시 군용 열차로 청진을 떠나 서울로 향함.
▣ 줄거리 ▣
『‘나’는 일제 시대 만주로 끌려갔다가 해방이 되어 ‘귀향’이라는 여로(旅路)에 있다.
여로의 중간에 만난 청진의 국밥집 할머니는 밤마다 잠 안 오는 버릇이 있어 밤늦게까지 국밥 가게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할머니는 갓 서른의 나이로 남편을 여의었고, 공장살이하던 아들마저 일경에 잡혀 가 옥사한 불행한 생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불행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밥집을 찾아드는 난민들에게 너그러울뿐더러 자기 아들을 죽게 한 일인들에게 원한과 저주를 넘어, 곤대하고 연민적(憐憫的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바로 이 할머니에게서 은원(恩怨)을 넘어선 사랑의 실체를 볼 뿐만 아니라, 아들의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해득해 냄으로써 그 뜻을 따뜻함으로 실현하고 있는 모성애의 깊이에 감동한다.
그것이 어떻게 된 밥 한 그릇이기에, 덥석덥석 국에 말아 줄 마음의 준비가 언제부터 이처럼 되어 있었느냐는 것은, 나의 새로이 발견한 크나큰 경이가 아닐 수 없었다. 경이보다는 그것은 인간 희망의 넓고 아름다운 시야를 거쳐서만 거둬드릴 수 있는, 하염없는 너그러운 슬픔 같은 곳에 나를 연하여 주었다.』
『해방 후, 광복의 열기와 착찹함, 그리고 무질서가 뒤얽힌 시대 상황에서 친구인 '방(方)'과 장춘(長春)에서 청진까지 오던 '나'는 열차를 놓친다. '방'과 헤어진 뒤 화물차를 얻어 타고 청진 못 미친 수성까지 오게 된다.
'나'는 제방을 따라 내려가다가 삼지창을 들고 뱀장어를 잡는 한 소년을 발견한다. 이 소년은 뱀장어를 잡아서 일본인에게 파는데, 사실은 숨어 있는 돈 많은 일본인을 알아내어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일이 본업(本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에 열성적으로 앞장서고 있는 모습을 '나'는 망연히 바라만 본다.
'방'을 만나려고 청진역으로 왔을 때, 국밥 장사를 하는 어떤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갓 서른에 남편을 여의었고, 독립 운동을 하던 아들마저 일경(日警)에 잃은 사람이다. 그런 불행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난민들에게 너그러울뿐더러, 일본인에게까지 원한과 저주를 넘어 관대하고 동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인간 희망의 넓고 아름다운 시야'를 발견한다.
'나'와 '방'은 다시 군용 열차로 청진을 떠난다. '나'의 머릿속에는 국밥집 할머니의 잔등(殘燈), 뱅장어를 잡던 소년의 잔등(殘燈)이 흐린 불빛으로 새겨진다. '나'는 해방된 조국에서 이국 병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남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줄거리의 구조
|
공간 |
사건 |
시간 |
텍스트 내용 |
|
회령 |
‘방’과 헤어짐 |
아침 |
-동이 트자마자 나옴, 아침 7시 차 |
|
수성 |
두 가지 회상 고기잡이 소년과 만남 |
한낮 |
-구릿빛 몸이 해를 받아 번쩍번쩍 빛나는 한낮 |
|
청진 |
국밥집 할머니와 만남 |
밤 |
-절반이상이나 불이 꺼지다 남은 침침한 골목 -무대 조명이 꺼지고 관객이 흩어져 버린 것 같은 광장의 어두움 -불은 모조리 꺼지고 바라크들만 써늘한 공기 속에 마주보고 있는 을씨년함 |
인물의 대립 구조
|
나 |
방 |
|
체념을 위한 행동자 |
관찰과 행동을 앞세운 체관자 |
|
돌발적 |
교제적 |
|
내연적 |
원심적 |
|
돌발적 · 발작적 |
점진적 |
|
답보적 |
행동적 |
|
뱀장어를 잡는 소년 |
주인공 |
국밥을 파는 할머니 |
|
꿈틀거리는 뱀장어와 함께 싱싱한 생의 의욕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 |
제 3자 정신 - 객관적 입장 |
‘인제 앞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정도로 인생의 깊은 인정을 머금은 ‘한 점 불 그늘’ |
|
잔류 일본인에 대해 증오에 찬 처벌을 행함, 감시와 처벌의 대상. |
인류애적 관용의 자세로 잔류일본인들을 불쌍한 피난민, 동정의 대상으로 봄. | |
|
낮 |
밤 | |
|
너른 강가 |
좁은 장막 | |
|
미성숙 |
초월 | |
|
섬광 |
잔등 | |
|
증오 |
관용 |
▣ 감상 ▣
◉ <잔등>은 허준이 해방 후 처음으로 쓴 소설로, 화자인 1인칭 화자가 해방이 되어 장춘(長春)에서 친구 방(方)씨와 서울로 귀국하는 과정을 다룬 것이다. 이 소설 속의 실제의 거리는 함북 회령에서 청진까지이며, 이 속에 자나온 장춘까지의 거리와 나아갈 서울까지의 거리가 압축되어 있다.
이 여로는 ‘장춘서 회령까지 스무 하루를 두고 온 여정이었다’로 시작된다. 무개화차를 수없이 갈아타기도 하고, 시그널도 소용없는 역 구내에서, 혹은 플랫홈에서 언제 기관차가 나타나 움직일까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장춘에서 회령까지 스무 하루가 걸렸다. 그것은 시간 개념이다. 그리고 장춘이란, 8ㆍ15 전까지만 해도 괴뢰정부 만주국의 수도로서 이름이 신경(新京)이었으며, 주인공이 이 여로에서 주로 머문 청진은 일본 군항(軍港)이었고, 8ㆍ15 직전 소련군과 교전이 있던 요충지대로, 신경(新京) 못지않은 공간적 개념이다.
그리고 이 여로는 새로운 것에의 기대와 실망과 우연성을 함께 포괄하면서 끊임없이 긴장으로 충전된 가장 확실한 공간이다. 다시 말해서, 생활이 제거되고 ‘생’만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류큐샤크’를 짊어지고 모자까지 제쳐 쓴 이들의 행색은 귀소 본능과 결부된 유토피아에 젖은 고향길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소설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긴장감은 예측 불허의 ‘기다림’의 문제이다. ‘기다리고, 그리고 가는 것이다’. 기다리지 않는 여로는 없다. 그리고 가지 않는 여로는 없다. 바로 여기에 서사성이 제거된 자리의 인생이라는 궁극적인 최대의 여로와의 동질성이 놓인다. 이 여로에서의 서사성 극복은 이 작가의 자의식의 운명 분석에서 획득한 독특한 소설적 달성의 하나로, 서사성의 시적 주술성을 극복하고, 산문성의 가능성을 보인다.
‘그러나 역시 운명은 손길이 아니 보이는 바람과 같다고나 해야 할 것처럼 바람에 불리우는 줄이야 누가 모를까마는, 아침이 아니고는 어느 연로에 기쁨을 놓고 가고, 어느 연로에 슬픔을 놓고 갔는지, 더듬어 알기 힘든 것인가 하였다.’
이러한 문장에서 보이는 자의식 차단은 해방 후의 한국 작가들 대부분이 서사성에 눈멀어, 자기의 흥분된 감격 이외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과 대비되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잔등>이 해방을 맞아 일본인의 귀국 모습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묘사한 거의 유일한 소설이라는 것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작품 <잔등>에서 유일하게 서사성이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이 작가가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전체성을 발견해 나가고 구성했음에서 연유되어 있다. 특히, 청진 거리에서 국밥 장사를 하는 할머니가 바라보는 일본인 거지떼의 모습이 1인칭 관찰자의 시점 속에 엄격히 통제되어 작가로 볼 때, 할머니의 ‘잔등’, 일본인의 ‘잔등’, 그리고 그 다음 차원에 역사의 ‘잔등’으로 나아가는 순서 속에 이른바 전체성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여기서 발견이라 하는 것은 이 귀환 동포 대열을 작가가 곳곳에서 ‘피난민’이라 지적하고 있음에 관련된다. 주인공이 청진에서 서울로 떠나면서 느끼는 센티멘탈이나 흥분에서 보듯, 여로란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요, 새로운 종말을 뜻한다.
작품 <잔등>의 주제는 표면상으로는 철로이며, 내용상으로는 여로이며, 의식상으로는 피난민 의식으로 규정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잔등>은 단순한 피난 행객(行客)의 기록이 아니라, 소설 구조상 ‘문제적인 것’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 김윤식 : <한국 현대문학 명작사전>(1982) -
◉ 이 작품은 ‘장춘서 회령까지 스무 하루를 두고 온 여정이었다’라는 구절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구절에서 ‘귀향’의 노정을 다루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로 속에서 주인공이 겪은 갖가지 일들이 접속적으로 펼쳐진다. 즉, 함께 동행하는 방(方)과의 우정, 길손에게 따뜻하게 잠을 재워주는 인정, 출발도 가약도 없는 기차와 간단없이 끊어지는 교통 샂벙, 일인(日人)들의 패전 뒤의 일상, 러시아 군대의 위력 등이 체험적으로 그려지고, 갖가지 여로의 시련이 펼쳐진다.
이 작품은 ‘나’와 방(方), 그리고 청진의 국밥집 할머니라는 인물의 전형성을 통해 작품의 줄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귀향’이라는 길의 여정 위에 펼쳐지는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과, 그 연대감은 이 <잔등>의 주제 의식뿐 아니라, 작가 의식을 두드러지게 함축하고 있다.
성격적인 전형이 서로 다른 ‘나’와 방은 공동의 목표를 갖고 닥쳐오는 추위와 불안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고난의 역경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의 짙은 인간애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국밥집 할머니와의 만남은 여로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할머니는 불행한 삶의 역경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사람들의 역경에 동정과 사랑을 갖는 인간 희망의 넓고 아름다운 시야를 지니고 있다. ‘내’가 바로 거기에 ‘연하여진다’는 것은 사랑의 파장이 확대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 청진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할머니의 영상이 황량한 폐허 위에 퍼덕이는 ‘한 점 먼 불 그늘’의 발광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단순한 추억의 불꽃으로서가 아니라, 지향적인 가치의 불꽃임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해방기 문학이 감격적인 감상벽에 젖어 있는 데 비해, 흥분과 희열에 빠지지 않고 당대의 시대적 현실과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깊이 있게 파헤친 탁월한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해방기의 문학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해방에 대한 감격을 직설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문학작품으로서의 정교함이나 미학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 특성이다. 그러나 이 <잔등>은 해방과 귀향의 감격적인 의식에 함몰되니 않고, 냉철한 시각으로 인간애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허준의 <잔등>은 귀국의 여정을 다루면서도 당대의 시대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파하면서, 인간적 삶의 따뜻한 애정을 ‘잔등(殘燈)’의 불빛이라는 상징을 통해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장춘서 회령까지 스무하루를 두고 온 여정이었다."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인 '나'의 귀로에는 광복의 감격도, 고통스러웠던 식민지 체험에 대한 푸념도, 새로운 각오나 희망도 끼어들지 않는다.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뜻밖의 광복을 맞이하여 거의 무감각하게 무개 화차(無蓋貨車)에 올라탔고 피난민 대열에 휩싸인다.(귀환 동포 대열을 '나'가 '피난민'이라고 지칭하고 있음은 주목되는 사항이다.)
'나'는 광복을 맞이한 우리 동포들이 패망한 일본을 어떠한 태도를 바라보고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되는데, 청진에서 만난 두 사람이 그 반응의 실상을 보여 주는 극단적인 예가 된다.
하나는, 광복 이후의 시대를 걸머지고 나아갈 소년으로, 일본인들의 거동을 샅샅이 위원회에 고발하여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서 벌떡 일어설지도 모른다."며 일본인에 대한 철저한 증오심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다른 하나는, 청진역 근처에서 국밥을 팔고 있는 노파인데, 이 노파는 일제에 의해 아들을 잃어버렸으나, 아들과 함께 일본 통치의 비리를 폭로하다가 죽은 일본인을 생각하면서, 패망한 일본인들의 거지 행색에 오히려 동정과 연민의 눈물을 흘린다.
이 두 사람을 통하여 '나'는 광복의 격앙된 흥분 상태와 균형을 잃어버린 증오심을 확인하기도 하고, 패자에게 보내는 동정과 그 밑바닥의 더 큰 비애를 맛보기도 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나'가 회령에서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나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청진을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청진을 떠나면서 그 할머니의 영상을 황량한 폐허 위에 퍼덕이는 '한 점 먼 불 그늘', 곧 '잔등(殘燈)'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단순한 추억의 불빛이 아니라 지향적인 가치의 불꽃임을 암시한다. '나'는 흥분과 비애를 동시에 바라보는 제3자의 정신, 좀더 냉정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는 패망한 일본을 심정적(心情的)으로만 인식했던 당시의 흥분과 비애를 객관적으로 응시하고자 했던 작가의 정신이 숨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왜 너의 문학엔 8ㆍ15의 희열이 없느냐?'고 덤비던 사이비 진보주의, 특히 안회남(安懷南) 등의 문학 동맹(文學同盟) 계열과 작가 허준(許俊)은 대립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