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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 성석제

작성자일수샘|작성시간21.04.07|조회수5,881 목록 댓글 0

 

투명 인간 - 성석제                     수샘국어

 

[줄거리] 김만수의 조부는 일제의 억압을 피해 산골 깊은 곳에 숨어 살고, 김만수의 부친은 지식인이었던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공부 대신 농사일에 전념하며 6남매를 낳고 살아간다. 첫째 아들인 백수는 똑똑하여 서울대에 입학하지만,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병사(病死-병으로 죽음)한다. 백수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가족과 형제들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둘째 아들인 만수는 공업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기술을 배우고, 큰딸인 금희는 구로 공단에 취직하기 위해 가출한다. 대학생이 된 셋째 아들 석수는 공활(대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단체로 공장에 들어가 일을 거들면서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실정 등을 학습하는 활동)에 참여했다가 수사 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그들의 수하(手下-부하)가 된다. 서울 생활 도중 연탄가스 사고로 인해 똑똑하던 둘째 딸은 바보가 되고, 자동차 부품 회사에 취직한 만수는 바보가 된 둘째 누나를 돌보며 살아간다. 또한 만수는 종적을 감춘 석수의 아들을 맡아 키우고, 막내 여동생의 결혼 자금과 살림집을 마련해 주고 식당을 차릴 수 있게 도와준다. 만수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자, 만수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공장을 불법 점거하게 되고, 결국 손해 배상 소송을 당해 큰 빚을 지게 된다. 만수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돈을 벌어 빚을 갚다가 ‘투명 인간’이 된다.

 

[핵심 정리]

*성격 : 사실적, 비극적

*특징 : 여러 인물이 1인칭 서술자로 번갈아 교체됨(1인칭 주인공 시점의 주관적 성격을 피할 수 있음) 수많은 삽화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전개 방식(특정한 사건에 무게를 두지 않고 총체적으로 상황을 전달하며 사건이 전개됨)

*주제 : 산업화 과정에서 우직하게 살아온 인물이 겪게 되는 비극적인 삶의 모습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전쟁과 분단,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라는 현대사의 굴곡진 여정을 살아가는 삼대의 이야기를 김만수의 삶을 중심으로 다룬 소설이다. 여러 인물이 1인칭 서술자로 번갈아 교체되고, 그에 따라 수많은 삽화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전개 방식을 통해 특정한 사건에 무게를 두지 않고 총체적으로 상황을 전달하며 사건이 전개된다. 김만수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와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거쳐 온 분단 이후의 근대화 과정과 맞물려 그려진다. 경제 발전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산업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고생스럽게 살았지만, 결국 뚜렷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투명 인간’이 되고 마는 김만수의 비극적인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지문 분석]

[앞부분의 줄거리] 만수의 조부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개운리에서 숨어 살게 되고, 만수의 부친은 힘들게 농사지으며 살아간다. 만수의 형인 백수는 대학에 진학하고, 돈을 벌려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는다.

 

너에게는 아무런 흠도 없었다. 너는 금강석처럼(직유-백수의 내면과 외면이 강인하다는 것을 강조) 단단한 심신에 가족이 너 때문에 무엇을 희생할까 염려해 혼자 힘으로 입신(立身)하려는 의지로 뭉쳐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강건하던 네가 왜 이국(베트남)에서 풍토병(그 지역 특유의 병, 지방병-뒷내용을 보면 고엽제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음)으로 죽는단 말이냐.(백수가 베트남에서 전투 중에 전사한 것이 아님을 암시)

군인이라면 전장에서 총검으로 생사를 결(結-맺다, 끝내다)하고 눈먼 포탄에 혹 사지가 결딴이 나는 수가 있다. 전우를 구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초인적인 힘으로 적탄 앞에 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렇게 죽어 간 많은 병사들, 장군도 장교도 아니고 이름 없는 수많은 소모품으로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이겨진 존재라고(만수 조부가 굴곡진 현대사를 고통스럽게 인식) 한다면 억울한 중에도 이해를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젊고 건강한 네가 풍토병에 걸려서 죽었다니, 전장에서 죽지 못하고 병원에서 죽었다고 명예로운 죽음으로도 치지 않는 병사(病死-병으로 죽음)라는 걸 어찌 믿으란 말이냐.(믿을 수 없음, 설의법)

너의 불쌍한 부모를 어찌하느냐. 너의 가련한 아우 어찌하느냐. 짐승과 초목들도 호곡(號哭-목 놓아 슬피 울음)하는구나. 비바람도 슬프게 흐느끼는구나. 온 식구들이 울고 온 집안의 생명이 울고 온 마을이 울고 땅이 울었다.(과장, 의인, 감정이입, 만수 조부가 느끼는 슬픔의 정도를 알 수 있음)

아, 하늘이시여, 어찌 늙은 내게(서술자-백수의 할아버지) 이런 참혹한 슬픔을 주시나이까. 어서 나를 데려가소서. 나를 죽이소서. 내 뼈를 꺾어 바수고 불로 남김없이 태워 재를 만들고 지옥의 바람에 날리소서. 나를 죽이소서. 제발 나를 죽이고 우리 모두의 백수를, 귀하디귀한 금강석을 돌려주소서.

 

안녕하십니까. 고엽제(枯葉劑-제초제의 일종. 농업의 용도로 제조되었으나, 다이옥신과 같은 독성이 함유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 베트남 전에서 미군에 의해 대량으로 사용됨) 피해자 가족 준비 모임입니다. 오늘은 고엽제에 대해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베트남 전쟁 기간 중미국은 베트콩(베트남의 공산주의자)의 은둔지와 무기 비밀 수송로로 이용되어 온 정글을 제거하고 시계(視界-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또 베트콩 경작지의 농작물 제거를 위해 1962년에서 1971년까지 330만 헥타르가 넘는 면적에 고엽제를 살포했습니다. 이는 베트남 전 경작지의 15퍼센트, 전 삼림의 30퍼센트에 해당합니다. 고엽제는 미 재향 군인회 추산 약 8,360만 리터,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 평화 연구소 추산 9,100만 킬로그램이 살포되었습니다.(구체적 수치 제시-사실성, 객관성 확보) 고엽제를 지상에서 사람이 직접 뿌리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미군은 헬기 등을 통한 공중 살포를 훨씬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인간의 손에 의해 직접 가루 형태로 구석구석 효과적으로 뿌려졌으니 그 인간 중에 상당수가 한국군이었습니다.(형이 죽은 풍토병의 원인이 고엽제와 관련된 것임을 강하게 암시)

< 중략 >

할아버지는 평생 술 한 잔을 마신 적이 없었다. 한 방울의 알코올조차 할아버지에게는 소화시킬 수 없는 독이었다. 그런데 오빠의 죽음을 전해 준 우체부가 저녁에 다시 집으로 왔다. 늘 병석에 누워 있다시피 하던 할아버지가 동네 어귀에 있는 유태백네 집까지 가서 그 집 소주를(할아버지가 느끼는 슬픔과 괴로움의 깊이를 부각시키는 소재) 얻어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었다고 전해 주러 온 것이었다. 온 식구가 울고 있는 중에도 누군가는 할아버지를 모시러 가야 했다. 만수를 데리고 일어섰다. 할아버지를 양쪽에서 부축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할아버지는 “백수야, 백수야, 이제 네 부모를 어찌하느냐. 불쌍한 어린 동기들을 어찌하느냐. 내 어찌 사느냐.” 하며 우셨다. 집으로 들어서서 방에 눕혀 드리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만수를 앞에 불러 앉혔다. / “이제는 네가 이 집안의 기둥이다.”

할아버지는 만수의 머리통을 끌어 당신의 주름투성이 이마에 만수의 이마를 맞댔다.

“네가 형을 대신하여 집안을 지켜야 한다. 비 새는 천장, 연기 솟는 방바닥 같은 네 부모를 떠받치고 수숫대 담벼락과 같은(직유) 형제를 이끌어 줘야 한다. 형이 없는 빈자리를 채울 사람은 만수야, 오로지 너뿐이다. 내 말을 알겠느냐.”

만수는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만수가 가족 공동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자기 인생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갈 것임을 짐작) 나뭇가지처럼 엉성하고 비쩍 마른 몸에 믿고 의지할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다 같이 부축을 하고 왔건만 여자인 나는(서술자-백수의 여동생) 그저 우는 일밖에 없는 것같이 여겨졌다. 기분이 이상해서 돌아보니 석수가 어두운 마당 한 켠에 주먹을 쥔 채 서 있었다.

기둥이(비유, 백수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감) 부러지고 쓰러져 가는 일밖에 남지 않은 집구석에 새 기둥이 무슨 소용이며 천장은 뭐고 바닥은 뭔가. 남자들은 이해하기 힘든 족속들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울었다.(백수의 죽음과 그 고통을 짊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

 

대학에 다니던 형이 월남에 갔다가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온이후 우리 집은 납덩이 같은 침묵에 둘러싸였다.(직유) 형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금기시되었다. 월남이나 군인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늘로 가고 없는 형은 우리 육 남매 중 유일하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었고 남아 있는 우리는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서로를 무기력하게 바라보았다.(역설적 표현, 우리 가족의 절망적 상태를 효과적으로 드러냄)

할아버지는 병환이 심해져서 하루 종일 자리에 누워 있기만 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간호하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쉬지 않고 일만 했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자나 깨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달랐다.

저녁에는 어두워져도 불을 켜지 않았다. 석유를 사 오곤 하던 형이 생각이 나서인지 아버지가 불을 켜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밤이 되어도 불을 켜지 않는 이유가 백수와 관련된 것임) 어둠 속에서 말없이 저녁을 먹은 우리는 숙제도 하지 못했다. 하지 않아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상처를 핥는 짐승처럼 각자 웅크리고 바람 소리 같은 한숨과 신음을 내뿜었다.(직유,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가족과 개인에게 부과되어 있음)

공부를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 소용없음) 형은 공부를 잘했다. 아는 것도 많았다. 물어보면 모르는 게 없었다. 효도를 하면 뭘 하나. 형은 어떤 집에서도 부러워하던 효자였고 모범적인 아들이고 모범적인 손자였다. 글을 잘 쓰면 뭘 하나. 형은 국민학교 때부터 백일장에 나가서 빠짐없이 상을 타 왔다. 어디에 가든 일기를 썼고 편지도 잘 썼다. 실험도 잘했고 호기심도 많았다. 동생들한테 잘해 주면 뭘 하나. 형은 누나들이나 만수, 옥희한테 그럴 수 없이 다정하고 살뜰하게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었다. 글이며 노래, 바둑, 한글을 가르쳐 주고 하모니카를 사 주고 책을 읽게 했다. 나무 이름, 풀이름, 별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어릴 적부터 식구들을 대표해 아버지한테도 할 말을 했다. 우리의 우상이 되었다. 마침내 밤하늘에 올라가 영원히 변치 않고 빛나는 별이 되어 버렸다.

형은 툭하면 꿈에 나타났다. 형은 군복을 입고 혼자 베트콩 일개 연대를 무찌르고 무공 훈장을 탔다. 고시에 패스해서 판사가 되었고 나를(서술자-백수의 남동생 석수) 한심한 놈이라고 판결했다. 부모님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 면서 그 기대를 배신하면 감옥에 처넣고 굶겨 죽일 것이라고 했다. 형은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면서 삐라를 뿌렸다. 금빛 삐라가 공중에서 날아 내리는 것을 보고 수천 명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뛰어갔다. 형은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날아갔다. 알약을 보여 주면서 한 알만 먹으면 일주일 동안 굶어도 된다고 했다. 형을 볼 때마다 약이 올랐다.

점점 집이 싫어졌다. 집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게 무섭고 싫었다.(형 백수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게 되면서 백수의 가족들이 그 고통을 짊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 내가 날이 이슥하도록 늦게까지 밖에서 놀다 가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관심도 없었다. - 성석제, 「투명 인간」

 

[문제]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만수의 조부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개운리에서 숨어 살게 되고, 만수의 부친은 힘들게 농사지으며 살아간다. 만수의 형인 백수는 대학에 진학하고, 돈을 벌려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는다.

 

너에게는 아무런 흠도 없었다. 너는 금강석처럼 단단한 심신에 가족이 너 때문에 무엇을 희생할까 염려해 혼자 힘으로 입신하려는 의지로 뭉쳐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강건하던 네가 왜 이국에서 풍토병으로 죽는단 말이냐.

군인이라면 전장에서 총검으로 생사를 결하고 눈먼 포탄에 혹 사지가 결딴이 나는 수가 있다. 전우를 구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초인적인 힘으로 적탄 앞에 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렇게 죽어 간 많은 병사들, 장군도 장교도 아니고 이름 없는 수많은 소모품으로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이겨진 존재라고 한다면 억울한 중에도 이해를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젊고 건강한 네가 풍토병에 걸려서 죽었다니, 전장에서 죽지 못하고 병원에서 죽었다고 명예로운 죽음으로도 치지 않는 병사라는 걸 어찌 믿으란 말이냐.

너의 불쌍한 부모를 어찌하느냐. 너의 가련한 아우 어찌하느냐. 짐승과 초목들도 호곡하는구나.비 바람도 슬프게 흐느끼는구나. 온 식구들이 울고 온 집안의 생명이 울고 온 마을이 울고 땅이 울었다.

아, 하늘이시여, 어찌 늙은 내게 이런 참혹한 슬픔을 주시나이까. 어서 나를 데려가소서. 나를 죽이소서. 내 뼈를 꺾어 바수고 불로 남김없이 태워 재를 만들고 지옥의 바람에 날리소서. 나를 죽이소서. 제발 나를 죽이고 우리 모두의 백수를, 귀하디귀한 금강석을 돌려주소서.

 

안녕하십니까. 고엽제 피해자 가족 준비 모임입니다. 오늘은 고엽제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베트남 전쟁 기간 중미국은 베트콩의 은둔지와 무기 비밀 수송로로 이용되어 온 정글을 제거하고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또 베트콩 경작지의 농작물 제거를 위해 1962년에서 1971년까지 330만 헥타르가 넘는 면적에 고엽제를 살포했습니다. 이는 베트남 전 경작지의 15퍼센트, 전 삼림의 30퍼센트에 해당합니다. 고엽제는 미 재향 군인회 추산 약 8,360만 리터,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 평화 연구소 추산 9,100만 킬로그램이 살포되었습니다. 고엽제를 지상에서사람이 직접 뿌리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미군은 헬기 등을 통한 공중 살포를 훨씬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인간의 손에 의해 직접 가루 형태로 구석구석효과적으로 뿌려졌으니 그 인간 중에 상당수가 한국군이었습니다.

< 중략 >

할아버지는 평생 술 한잔을 마신 적이 없었다. 한 방울의 알코올조차 할아버지에게는 소화시킬 수 없는 독이었다. 그런데 오빠의 죽음을 전해 준 우체부가 저녁에 다시 집으로 왔다. 늘 병석에 누워 있다시피 하던 할아버지가 동네 어귀에 있는 유태백네 집까지 가서 그 집 소주를 얻어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었다고 전해 주러 온 것이었다. 온 식구가 울고 있는 중에도 누군가는 할아버지를 모시러 가야 했다. 만수를 데리고 일어섰다. 할아버지를 양쪽에서 부축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할아버지는 “백수야, 백수야, 이제 네 부모를 어찌하느냐. 불쌍한 어린 동기들을 어찌하느냐. 내 어찌 사느냐.” 하며 우셨다. 집으로 들어서서 방에 눕혀 드리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만수를 앞에 불러 앉혔다.

“이제는 네가 이 집안의 기둥이다.”

할아버지는 만수의 머리통을 끌어 당신의 주름투성이 이마에 만수의 이마를 맞댔다.

“네가 형을 대신하여 집안을 지켜야 한다. 비 새는 천장, 연기 솟는 방바닥 같은 네 부모를 떠받치고 수숫대 담벼락과 같은 형제를 이끌어 줘야 한다. 형이 없는 빈자리를 채울사람은 만수야, 오로지 너뿐이다. 내 말을 알겠느냐.”

만수는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뭇가지처럼 엉성하고 비쩍 마른 몸에 믿고 의지할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다 같이 부축을 하고 왔건만 여자인 나는 그저 우는 일밖에 없는 것같이 여겨졌다. 기분이 이상해서 돌아보니 석수가 어두운 마당 한 켠에 주먹을 쥔 채 서 있었다.

기둥이 부러지고 쓰러져 가는 일밖에 남지 않은 집구석에 새 기둥이 무슨 소용이며 천장은 뭐고 바닥은 뭔가. 남자들은 이해하기 힘든 족속들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울었다.

 

대학에 다니던 형이 월남에 갔다가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온이후 우리 집은 납덩이 같은 침묵에 둘러싸였다. 형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금기시되었다. 월남이나 군인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늘로 가고 없는 형은 우리 육 남매 중 유일하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었고 남아 있는 우리는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서로를 무기력하게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병환이 심해져서 하루 종일 자리에 누워 있기만 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간호하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쉬지 않고 일만 했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자나 깨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달랐다.

저녁에는 어두워져도 불을 켜지 않았다. 석유를 사 오곤 하던 형이 생각이 나서인지 아버지가 불을 켜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말없이 저녁을 먹은 우리는 숙제도 하지 못했다. 하지 않아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상처를 핥는 짐승처럼 각자 웅크리고 바람 소리 같은 한숨과 신음을 내뿜었다.

[A]【공부를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 형은 공부를 잘했다. 아는 것도 많았다. 물어보면 모르는 게 없었다. 효도를 하면 뭘 하나. 형은 어떤 집에서도 부러워하던 효자였고 모범적인 아들이고 모범적인 손자였다. 글을 잘 쓰면 뭘 하나. 형은 국민학교 때부터 백일장에 나가서 빠짐없이 상을 타 왔다. 어디에 가든 일기를 썼고 편지도 잘 썼다. 실험도 잘했고 호기심도 많았다. 동생들한테 잘해 주면 뭘 하나. 형은 누나들이나 만수, 옥희한테 그럴 수 없이 다정하고 살뜰하게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었다. 글이며 노래, 바둑, 한글을 가르쳐 주고 하모니카를 사 주고 책을 읽게 했다. 나무 이름, 풀이름, 별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어릴 적부터 식구들을 대표해 아버지한테도 할 말을 했다. 우리의 우상이 되었다. 마침내 밤하늘에 올라가 영원히 변치 않고 빛나는 별이 되어 버렸다.】

[B]【형은 툭하면 꿈에 나타났다. 형은 군복을 입고 혼자 베트콩 일개 연대를 무찌르고 무공 훈장을 탔다. 고시에 패스해서 판사가 되었고 나를 한심한 놈이라고 판결했다. 부모님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 면서 그 기대를 배신하면 감옥에 처넣고 굶겨 죽일 것이라고 했다. 형은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면서 삐라를 뿌렸다. 금빛 삐라가 공중에서 날아 내리는 것을 보고 수천 명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뛰어갔다. 형은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날아갔다. 알약을 보여 주면서 한 알만 먹으면 일주일 동안 굶어도 된다고 했다. 형을 볼 때마다 약이 올랐다.】

점점 집이 싫어졌다. 집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게 무섭고 싫었다. 내가 날이 이슥하도록 늦게까지 밖에서 놀다 가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관심도 없었다.   - 성석제, 「투명 인간」

 

 

1. 윗글의 서술상 특징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작중 인물이 아닌 서술자가 특정 인물의 일생을 요약해서 제시하고 있다.

② 서술자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인물의 외양과 행동을 희화화하여 전달하고 있다.

③ 공간의 이동에 따라 서술자를 달리하여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④ 이야기 밖의 서술자가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교차시켜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⑤ 서술자의 교체를 통해 특정한 상황에 대한 각 서술자의 입장이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2. 문맥상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백수의 내면과 외면이 강인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② ㉡: 백수가 베트남에서 전투 중에 전사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③ ㉢: 할아버지가 느끼는 슬픔과 괴로움의 깊이를 부각한다.

④ ㉣: 집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할아버지의 노고를 상징한다.

⑤ ㉤: 밤이 되어도 불을 켜지 않는 이유가 백수와 관련된 것임을 드러낸다.

 

3. [A]와 [B]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A]와 [B]에는 모두 대상의 우월한 면모가 언급되어 있다.

② [A]와 [B]는 모두 대상의 특정한 모습을 묘사하면서 나열하고 있다.

③ [A]와 달리 [B]에는 대상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의 서술이 포함되어 있다.

④ [B]와 달리 [A]에는 대상의 행위로 인해 유발된 두려움이 부각되어 있다.

⑤ [B]와 달리 [A]는 대상이 실제로 보여 주었던 행동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4.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투명 인간」은 지식인 조부와 그의 아들 및 만수를 비롯한 손주들의 삶을 통해 현대사의 굴곡진 여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소설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가족 공동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자기 인생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만수의 모습과, 무기력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가족과 개인에게 부과했던 가혹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인물들이 겪는 사건이 어느 개인의 특수한 체험이 아니라 한국인이 공유하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공동체적 이야기임을 보여 주며, 타자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윤리가 통용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① 전쟁터에서 죽어 간 병사들을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이겨진 존재’라고 표현하거나, 백수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짐승과 초목들도 호곡하는구나.’라고 표현하는 장면에서 만수 조부가 굴곡진 현대사를 고통스럽게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군.

② 할아버지가 만수에게 ‘부모를 떠받치고’, ‘형제를 이끌’고, ‘형이 없는 빈자리를 채’우라고 말할 때, ‘만수는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리는 장면에서 만수가 가족 공동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자기 인생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군.

③ 형의 죽음으로 인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서로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상처를 핥는 짐승처럼 각자 웅크리고 바람 소리 같은 한숨과 신음을 내뿜’는 장면에서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가족과 개인에게 부과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군.

④ ‘베트남 전쟁 기간 중’ ‘고엽제를 지상에서’ ‘직접 가루 형태로 구석구석’ 뿌린 ‘인간 중에 상당수가 한국군이었습니다.’라는 장면에서 ‘형이 월남에 갔다가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온’ 사건이 한국인이 공유하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성격의 이야기임을 짐작할 수 있군.

⑤ ‘남자들은 이해하기 힘든 족속들이다.’라고 생각하며 울고,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게 무섭고 싫’다고 느끼는 장면에서 타자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윤리가 통용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군.

 

<정답> 1⑤-이 글은 1인칭 서술자인 ‘나’가 장면마다 다른 인물로 교체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백수의 할아버지인 ‘나’는 백수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고, 백수의 여동생인 ‘나’는 백수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백수의 남동생인 ‘나’는 백수의 죽음으로 인해 어두워진 집안의 풍경과 형에 대한 기억을 전달하고 있다.

2④-집안의 장손이자 대들보였던 백수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들의 슬픔과 이로 인한 절망감을 기둥이 부러지고 쓰러져 가는 상황에 비유한 것이라고 볼 때, ‘기둥’은 백수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감이라고 볼 수 있다.

3④-[B]의 ‘그 기대를 배신하면 감옥에 처넣고 굶겨 죽일 것이라고 했다.’라는 표현에는 형의 말로 인한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A]에는 형의 행동으로 인해 유발된 두려움이 나타나지 않는다.

4⑤-인용된 장면은 집안의 장손인 백수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게 되면서 백수의 가족들이 그 고통을 짊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모습을 드러낸 부분이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윤리가 통용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수샘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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