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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도시 - 이동하

작성자바른샘|작성시간12.09.04|조회수4,876 목록 댓글 0

 

                                    장난감 도시 - 이동하(李東河, 1942~ )                                            바른♥국어

[전체 줄거리]

  6·25가 끝난 지 2~3년 후, 국민학교 4학년이던 ‘나’는 가족과 함께 고향을 버리고 ‘장난감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된다. 고향의 국민학교에서 장래의 면장감이란 찬사를 받던 ‘나’와 가족들은 도시로 왔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궁핍한 판자촌 생활이 시작되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언제나 촌놈이라는 것이며, 이사 와서 한 달 동안 ‘나’가 터득한 것은 도시 생활의 냉엄한 질서였다. 아버지의 귀가는 언제나 빈손이었고, 학교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또 다른 것이었다.

“어둡고 혼탁한 때다. 그러나 너희들은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랄 것을 나는 믿는다. 너희들 중 한 사람을 잃느니보다는 매일처럼 매질을 하면서 너희들을 지키고 싶다. 그러나 너희들은 훗날 이 때를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를 지킨 것은 오직 매였다고 말하지 말라. 너희들 중에 비록 단 한 사람이라도 매를 맞지 않은 친구가 없었다는 사실만을 꼭 기억해 두기 바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귀가하지 않았다. 무슨 물건을 자전거에 실어 나르다가 경찰에 붙잡혀 가서 유치장에 있다는 것이었다. 시골 마을에서 장래의 면장감으로 찬사를 받던 ‘나’는 아버지마저 잃어버리고 울음이 목울대까지 차올랐으나 울지는 않았다. 다만 그날 느낀 것은 벙어리가 어떻게 우는 것인가를 스스로 터득했을 뿐이었다.

 

[핵심 정리]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성격 : 자전적, 회고적

*특징 : 1인칭 독백체의 서술. 짧고 간결한 문장을 통한 내용의 효과적 전달

*배경 : 6·25 직후의 도시(대구).

*인물 : 나 - 주인공. 시골에서는 면장감이란 찬사를 들었으나, 도시 이주 후 비참한 현실을 겪는 소년.

*주제 : 생경한 도시에서의 소년의 경험과 그를 통한 의식의 성장

*이동하(李東河, 1942~ ) 일본 오사카 출생.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전쟁과 다람쥐’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현 목포대 교수. 그는 자전적인 요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가진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우울한 귀향’, ‘모래’, ‘파편’, ‘폭력 연구’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

  ‘장난감 도시’는 작가 자신이 겪은 비참했던 어린 시절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전쟁, 실향, 굶주림, 헤어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어머니의 죽음 같은 것 때문에 자신의 체험을 소설화하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의 작품 ‘우울한 귀향’ 속에 그려진 시간의 축(軸), 즉 과거는 ‘나’의 출생에서 고향을 떠날 때까지이고 현재의 시간대는 대학 시절이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대학생이 되기까지의 비어 있는 시간대가 바로 ‘장난감 도시’인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품에서 도시적 삶의 내면을 파헤쳐 보려는 데에 끈질긴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처음으로 도시에서 돈벌이를 하러 나간 아버지가 풀빵을 거의 다 남겨 가지고 돌아와서 밤늦게 벌이는 만찬(?)과 아버지의 말 등에서는 아버지의 낙천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 도시의 냉엄한 질서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의 인간적인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웃음을 주면서도 뒤가 홀가분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웃음으로 재미를 주면서 주제를 풀어 놓는다는 식이다.

결국 ‘장난감 도시’는 삶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오늘날의 삶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는 데에 이 작품의 미학이 있다. 또한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작품의 미학을 배가시키고 있다.

 

[지문1]

[앞부분 줄거리]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도시로 이사를 갔다. 내가 이 무렵의 일을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학예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순경이 집에 와서 삼촌의 소재를 물었고, 그것이 고향을 떠나게 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가족이 마을을 떠날 때 배웅을 나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난생처음 대해 본 도시의 인상은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자. 도착하자마자 내가(1인칭 주인공 시점) 찾은 것은 물이었다.

생각보다 여정은 짧았다. 마을을 출발한 지 불과 두세 시간 만에 우리는 도시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그 사실만 가지고도 나는 좀 실망할 정도였다. 내가 지금까지 상상한 바로는, 도시란 결코 그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도시란 보다 더 멀고 아득한 곳(내가 기대하고 있었던 도시의 모습)에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곳에 닿기 위해서는 철로 위를 바람처럼 내달리는 급행열차로도 하룻날 하룻밤은 꼬박 걸려야만 했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온 것은 털털거리는 짐차였다. 그것으로도 고작 두세 시간밖에 걸리지 않다니……ⓑ그처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이 무슨 결함처럼 내게는 느껴졌다.

녀석들은(나의 초등학교 친구들) 지금도 그 교실에 앉아 있을 것이었다. 사철나무가 병사들처럼 늘어서 있는 남향 창으로른 풋풋한 햇살이 온종일 들이치고, 방아깨비 선생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간단없이(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그 4학년 우리 반 교실에 말이다. 유일하게 나의 자리는 비어 있을 게다. 창 쪽으로 둘째 줄 여섯 번째 책상……거기 내가 남긴 흠집과 낙서를 누군가 눈여겨보고 있을 게다. 그러고는 도회지로 전학 간 나를 조금은 부러워할 게다. 하지만 작정만 한다면 누구나 쉽게 우리 뒤를 쫓아올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도시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왜 도시가 멀고 아득한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제시됨

아버지는 물 대신 나에게 돈을 주셨다. 그것은 단풍잎처럼 작고 빨간 1원짜리 종이돈이었다. 나는 곧장 한길가(넓은 길- ‘한’는 접두사(大), 파생어)로 뛰어나갔다. 딸딸이(삼륜차나 경운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 파생어-의성어+이(접미사)) 위에다 어항보다 큰 유리 항아리를 울려놓은 물장수가 거기 있었다. 항아리 속엔 온갖 과일 조각들이 얼음덩어리와 함께 채워져 있었다. 나는 꼭 쥐고 있던 돈과 한 잔의 물을 맞바꾸었다.(돈으로 모든 것을 사야만 하는 도시) 유리컵 속에 든 물은 짙은 오렌지빛이었다. 손바닥에 닿는 냉기가 갈증을 더 자극했다. 그러나 나는 마시지 않았다. ⓒ이 도시와 그 생활이 주는 어떤 경이와 흥분 때문에 실상은 목구멍보다도 가슴이 더 타고 있었다. 나는 유리컵을 조심스럽게 받쳐 든 채 천천히 돌아섰다. 그러고는 두어 걸음을 떼어 놓았다. 물론 나의 그 어리석은 짓은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금세 제지를 받았던 것이다.

“이봐, 너 어디로 가져가는 거냐?”

나를 불러 세운 물장수가 그렇게 물었다. 나는 금방 얼굴을 붉히었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물장수가 다시 말했다.

“잔은 두고 가야지, 너, 시골서 온 모양이로구나. 그렇지?”

나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숨이 찼다. 콧날이 찡해지고 가슴이 꽉 막혔다. 그러나 그 자리에 더 어정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던지듯 잔을 둘려준 나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가족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우리 세간들이 골목에 잔뜩 쌓여 있었다. 시골집(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삶의 장소) 안방 윗목을 언제나 차지하고 있던 옛날식 옷장, 사랑채 시렁 위에 올려 두던 낡은 고리짝, 나무로 만든 쌀뒤주와 조롱박, 크고 작은 질그릇 등, 판잣집(시골집과 대조, 불안하고 답답한 삶의 공간)들이 촘촘히 들어 서 있는 그 골목길 위에 아무렇게나 부려 놓은 세간들은 왠지 이물(異物)스러운(성질이 음험하여 속을 헤아리기 어려운,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주었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흔히 보고 느껴 오던 바와는 사뭇 다른 모양이요, 빛깔이었다. 아마도 이웃인 듯한, 낯선 사람 몇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바쁜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나는 판자벽에 기대고 웅크리고 앉았다. 물맛이 어떠했던가를 생각해 보려 했지만 도무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속이 메스껍기도 했다. 눈앞의 사물들이 자꾸만 이물스레 출렁거렸다. 이사를 왔다, 하고 나는 막연한 기분으로 중얼댔다. [A]【그래, 도시로 이사를 왔다. 아주 맥 풀린 하품을 토해 내며 새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배경 묘사→ ⓓ촘촘히 들어앉은 판잣집들, 깡통 조각과 루핑(지붕을 이는 재료-주로 섬유 제품에 아스팔트 가공을 한 방수포)이 덮인 나지막한 지붕들, 이마를 비비대며 길 쪽으로 늘어서 있는 추녀(처마 네 귀의 기둥 위에 끝이 번쩍 들린 크고 긴 서까래. 또는 그 부분의 처마)들, 좁고 어둡고 질척한 그 많은 골목들, 타고 남은 코크스(점결탄-구멍이 많은 연탄) 덩어리와 검은 탄가루가 낭자하게 흩어져 있는 길바닥들, 온갖 말씨와 형형색색의 입성(의복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어지러이 드러내고 있는 주민들, 얼굴도 손도 발도 죄다 까맣게 탄 아이들…….) ⓔ나는 자꾸만 어지럼증을 탔고, 급기야는 속엣것을 울컥 토해 놓고 말았다. 딱 한 잔 분량의, 오렌지빛 토사물이었다.】

세간들을 대충 들여놓은 다음에 우리 가족은 이른 저녁을 먹었다. 아니 그것은 때늦은 점심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우리 가족이 도시에서 가진 첫 식사였다.

밥은 오렌지 물을 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노란 빛깔이었다. 물이 나쁜 탓일 거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공동 펌프장에서 길어 온 그 물은 역할 정도로 악취가 심했다.

“시궁창 바닥에다가 한 자 깊이도 안 되게 박아 놓은 펌프 물이니 오죽할라구요…….”

어머니는 아예 숟갈을 잡을 생각조차 없는 듯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대기만 했다.

“내다 버린 구싯물(구정물)을 다시 퍼마시는 거나 다름없지 뭐예요.”

하지만 나는 심한 허기에 시달리고 있던 판이었다. 게다가 어쨌든 귀한 이밥(쌀밥)이었다. 식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한 술을 떠 넣었다. 그러고는 생전 처음 입에 넣어 보는 음식처럼 조심스레 씹었다. 쇳내 같은, 아니 쇠의 녹 냄새 같은 게 허끝에서 달착지근하게 느껴졌다. 다시 한 숟갈을 퍼 넣었다. 그러자 저 오렌지빛의 물을 마시고 났을 때처럼 속이 다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피곤한 하루였다. 남폿불을 켤 것도 없이 우리 가족은 일찌감치 자리를 펴고 누웠다. 조그만 방 하나가 우리 가족이 차지한 공간의 전부였다. 바닥도 벽도 천장도 죄다 판자쪽으로 둘러친, 그것은 방이라기보다 흡사 커다란 나무 궤짝 같은 느낌(불안감, 답답함)을 주었다. 그나마 세간들이 차지하고 남은 공간엔 도무지 네 식구가 발을 뻗고 누울 재간이 없었다. 나는 결국 윗목에 놓인 장롱 위에다 따로 요때기를 깔고 이층 잠을 자기로 했다.

피곤한 탓이리라. 다들 금세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허공에 떠 있는 것같이 잠자리가 도무지 불안할뿐더러 속도 계속 편칠 못했다. 게다가 판자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방에서부터 밤늦도록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건너왔다. 나는 자꾸만 몸을 뒤채었고, 그럴 때마다 낡은 장롱이 삐걱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가 깜박 무겁고 아득한 잠의 벼랑 밑으로 굴러떨어졌는데 기이하게도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웃음을 지었다. 우린 어쩌면 장난감 도시(6·25직후 암담한 도시의 처참한 생활공간)로 잘못 이사를 온 건지도 몰라…….

 

[문제] 1. 위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나’는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갈증을 느끼게 된다.

 ② ‘나’는 도시에서 체험하는 것들에 대해 생소함을 느낀다.

 ③ ‘나’는 도시라는 공간과 도시에서의 생활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④ ‘나’는 도시가 ‘나’의 고향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느낀다.

 ⑤ ‘나’는 고향에 두고 온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향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2. 위 글의 서술상의 특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②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③ 1인칭 독백체의 서술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④ 서술자가 작품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내용의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⑤ 화자를 어린 아이로 설정함으로써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을 섬세하게 나타내고 있다.

 

3. <보기>를 바탕으로 위 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도시는 ‘이중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도시의 첫 번째 이미지는 화려함과 안락함이다. 도시인들은 행복과 편의를 도시에서 제공받는다. 이런 면에서 보면, 도시는 ‘인공 낙원’인 셈이다. 그러나 도시에는 이와는 정반대의 이미지가 도사려 있다. 도시는 적자생존이라는 야만의 법칙이 통용되는 곳으로, 도시인의 삶은 경쟁으로 구성되고, 도시인들은 그 경쟁에서 도태될까 봐 끊임없이 불안과 소외에 시달리며, 실제로 경쟁에서 도태되어 낙오자가 되기도 한다. 결국 도시는 낙원이 아니라 ‘위장된 야만’에 불과하다.

 ① ‘나’의 가족들은 도시에서 편의를 제공받게 되겠군.

 ② 이사 전에 ‘나’는 도시를 첫 번째 이미지로 생각했겠군.

 ③ ‘나’와 ‘나’의 가족은 경쟁에서 도태되어 낙오자가 될 수도 있겠군.

 ④ ‘나’의 어머니에게 도시는 ‘인공낙원’이 아닌 ‘위장된 야만’의 공간이겠군.

 ⑤ ‘나’의 가족들은 도시로 이사를 와서 경제력, 심리적으로 불안과 소외에 시달리며 살게 되겠군.

 

4. [A]의 ‘나’와 <보기>의 시적 화자가 ‘도시’라는 공간에 대해 공통적으로 느끼는 심리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와사등 -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 내 홀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냐.

 

기인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구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기일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① 옛 추억에 대한 서글픔                    ② 삶의 방향에 대한 상실감                 ③ 무질서한 도시에 대한 낯섦

 ④ 화려한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          ⑤ 도시에서 느끼는 고독감과 비애

 

5.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 주지 못하고 있다.

 ② ⓑ : 기대했던 도시와 다른 것에 대한 ‘나’의 실망감이 드러난다.

 ③ ⓒ :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진 것에 대한 ‘나’의 심리가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④ ⓓ : ‘나’가 살아가게 될 공간이 화려하고 안락한 도시가 아니라 황폐한 변두리 판자촌임을 보여 준다.

 ⑤ ⓔ : 도시에서 처음으로 마신 오렌지빛 물을 토해 버리는 것은 ‘나’가 앞으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정답> 1⑤ 2④ 3① 4③ 5③

[지문2]

  이른 아침 한때의 도매 시장은 썰물이 빠지듯 파장을 맞은 것이다. 두둑한 전대를 허리에 두른 화주(貨主-물건의 임자)들마저 빈손을 툭툭 털며 해장국집을 찾아가고 나면 그때부터 우리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A]【일테면 그것은 도시의 이삭줍기였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에서 지스러기를 줍듯 우리는 거래가 끝난 시장 바닥에서 그것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대단한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거래량이 많고 운이 좋은 날은 비록 심하게 상하거나 짓물러 터진 것일지언정 두어 관 가까운 푸성귀들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이것은 물론 나와 누나의 몫을 합친 분량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란 흔치 않아서 이 아침의 우리네 소득은 대체로 보잘것없었다.】

시장통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아무리 혼잡한 때라고 하더라도 10분이면 족히 통과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곳을 우리는 보통 두 시간, 때로는 서너 시간 동안이나 뒤지고 다녔다. 그것도 마치 굶주린 들쥐 떼처럼 여러 패거리로 작당을 한 채.

㉠“저 각다귀(모깃과의 곤충) 같은 녀석들이 들쑤시고 다니는 꼴을 보니 오늘 장은 이미 파장이구먼…….”

어쩌다 한발 늦게 나온 상인들은 별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서며 일쑤 그런 식으로 투덜대게 마련이었다.

우리 일행은 자연스레 두 패거리로 나누어졌다. 그래서 시장통의 양쪽 끝에서부터 각각 뒤져 나가기 시작했다. 전략상 누나와 나도 갈라졌다. 누나가 입구 쪽에서부터 시장 안으로 추어 오는 동안 나는 그 반대쪽에서부터 입구 쪽을 향해 거슬러 나왔다. 당연한 귀결로서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에 누나와 나는 시장통 중간 지점에서 마주쳤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누나의 바구니를 재빨리 점검해 보았다. 새알만씩 한 감자 스무남은 개와 약간의 양배추 겉쪽이 담겨 있었다. 그만하면 평균치가 넘는 소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에 비해 내 쪽은 좀 실속이 없었다. 자루 하나 가득히 눌러 담은 것은 모두 무청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양은 네가 훨씬 많다, 얘.”

누나가 콧등에 보송보송 돋아난 땀을 훔치며 내게 말했다. 멋쩍게 나는 웃어 보였다.

“우린 그만 집에 가는 게 좋겠다.” / 누나가 앞장을 서 걸으며 말했다.

“애들이 너무너무 뒤지고 다녀서 시장 바닥이 다 말갛다. 얘…….”

잠자코 나는 누나의 뒤를 따라 걸었다. 시장 바닥은 말갛기는커녕 우리들이 극성스레 파헤친 쓰레기들로 온통 어지러웠다. 그것을 거두어 갈 사람이라고는 이제 청소부들뿐이리라. 마지막 한 조각까지도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샅샅이 뒤져내고 남은 찌꺼기들뿐이었다.

㉢“내일부터는 우리 나오지 말자.” / 갑자기 누나가 말했다.

“그건 왜?” / “글쎄……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애.”

시장 어귀에 우리 패거리 중의 몇 녀석이 웅성거리고 서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있다고 판단했다. 완장을 두른 시장 관리인 하나가 우리들 중 한 녀석의 멱살을 우악스럽게 다잡아 쥐고 있는 광경이 얼른 눈에 띄었다.

“저 새끼가 무얼 쌔볐대!(훔쳤어)”

우리들 중의 한 녀석이 재빨리 내게 속삭였다. 그 음성은 야릇한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단번에 나는 가슴이 써늘해짐을 의식했다.

㉣“쥐어박기 전에 그걸 몽땅 쏟아내 봐!”

관리인이 멱살을 풀어 주며 다그쳤다. 더 이상 발뺌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음인지 마침내 녀석이 자루 속에 든 것을 땅바닥 위에 죄다 쏟아 놓았다. 싱싱하고 때깔 좋은 무 몇 덩이가 굴러 나왔다.

㉤“저 새끼! 내 그럴 줄 알았어. 어제두 호박을 두 개씩이나 쌔볐다니깐…….”

내게 귀엣말을 하던 녀석이 분개한 음성으로 중얼댔다.

예의 관리인에게 우리도 죄다 조사를 받았다. 결과는 그 관리인을 더 노엽게 만들었다. 다른 몇몇 녀석들에게도 그런 잘못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결코 대단한 것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개중에는 더러 억울한 경우도 있었으리라고 믿긴다. 그러나 단지 과일 한 개, 푸성귀 한 포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변명할 수 있는 상황은 전혀 못 되었다. 이 아침의 이삭줍기에서 조그만 행운을 차지했던 자들은 그 당연한 값으로 예의 관리인에게 따귀를 한차례씩 얻어맞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가장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했던 것은 문제의 잘못도, 따귀를 얻어맞은 일도 아니었다. 만인환시리(많은 사람이 둘러서서 보는 가운데)에 길바닥에 쏟아 놓은 우리들의 소득물이 너무나 초라한 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모두 아침잠을 설치곤 했던 것을 생각하고 나는 몹시 부끄러워졌다.(거지같다는 느낌이랄까)

땅바닥에 쏟아 놓은 것들을 누나가 경황없이 쓸어 담았다. 무엇에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두 손이 허둥거렸다. 빨갛게 얼어 터진 누나의 손을 나는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손등에 빗물(누나의 눈물이거나 나의 눈물) 같은 것이 두어 방울 떨어져 번졌다.

문득 나는 고개를 쳐들었다. 하늘을 보았다. 아침 햇살이 도시의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문제]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현재의 사건을 과거의 사건과 연계시켜 주제 의식을 암시하고 있다.

 ② 잦은 장면 전환을 통해서 사건의 긴박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③ 시대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여 사건이 갖는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

 ④ 인물들이 체험한 다양한 사건을 삽화 형식으로 나열하여 보여 주고 있다.

 ⑤ 주인공이 경험한 사실과 그에 대한 심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2. 서사적인 흐름을 고려할 때, ‘관리인’의 등장이 갖는 기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인물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② 인물이 현재의 처지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③ 인물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④ 여러 인물들에게 경쟁심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⑤ 인물이 현실의 폭력성을 비판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3. [A]를 <보기>와 같이 바꾸어 썼을 때의 효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와 누나의 작업은 도시에서의 이삭줍기였지요.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에서 수확하고 남은 지스러기를 줍듯이 우리는 거래가 끝난 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배추 이파리, 무 이파리, 상품 가치가 없어 버려진 새알만 한 감자 등을 쓰레기 더미에서 뒤지고……, 더러운 것을 털고……, 가져온 마대에 담고……물론 대부분 많은 수확을 얻을 수는 없었지요. 그러나 거래량이 많고, 유난히 버려진 푸성귀가 많은 특별한 날에는 심하게 상하거나 짓물러 터진 것일지언정 두어 관 가까운 푸성귀를 마대에 담아 가져올 수 있었지요. 물론 나와 누나가 주운 것을 합한 것이긴 하지만요. 운이 좋은 날은……1년에 몇 번……있을까 말까 했지요. 이날도 우리가 뒤지고, 털고 해서 마대에 담은 푸성귀는 보잘것없었지요. 시장을 오가던 아주머니들이 우리의 몰골을 보고는 “아이고, 불쌍한 땅강아지들”이라고 하며 안쓰럽게 바라보시곤 했지요.

 

 ① 제삼자의 시선을 추가하여 서술자의 궁핍한 처지를 부각시켜 준다.

 ② 친밀한 느낌을 주는 말투를 써서 서술자와 독자의 거리를 좁혀 준다.

 ③ 제재와 행위를 더욱 구체화하여 독자들이 장면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④ 말줄임표로 호흡을 늦춰서 서술자가 과거의 경험을 음미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⑤ 기존 장면에 새로운 사건을 추가하여 독자들이 긴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4.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장사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패거리들까지 설치는 것에 대한 상인들의 못마땅한 심리가 담겨 있다.

 ② ㉡ : 함께 고생한 동생을 위로하는 누나의 마음이 담겨 있다.

 ③ ㉢ : 당분간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을 확보한 누나의 안도감이 담겨 있다.

 ④ ㉣ : 상대방이 물건을 훔쳤다고 의심하는 관리인의 강압적인 태도가 담겨 있다.

 ⑤ ㉤ : 패거리에게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동료의 행태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정답> 1⑤ 2② 3⑤-새로운 장면이 추가된 것이 없다. 4③-‘누나’는 ‘나’가 느끼지 못한 심상치 않은 상황을 느끼고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문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이사를 오고 나서 한 달이 지나도록 아버지는 실상 이 문제(가족의 생계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막상 닥치고 본즉, 입에 풀칠을 하는 일처럼 어려운 문제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반평생을 넘어 불혹(40살)의 나이를 살아오는 동안 당신(아버지, 3인칭 극존칭)이 의지해 온 것이라곤 오직 몇 마지기의 땅뙈기밖엔 없었다. 흙은 그래도 ㉠정직한 상대(노력한 만큼 대가를 돌려주는 흙)였다. 못지않게 정직한 아버지의 손을 거의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 앞에 놓인 상대는 결코 함부로 믿을 수 있는 것이 못 되었다. 정직한 만큼 아버지는 무능했다.

그만하면 가진 돈도 바닥날 때가 되었을 법하다고 느낄 무렵, 아버지는 몇 가지 도구들을 떠메고 들어왔다. 하나는 풀빵을 구워 내는 빵틀이었고, 다른 하나는 냉차 항아리였다. 뒤엣것은 내가 길거리에서 흔히 보아온 물건이었지만, 앞의 빵틀은 난생처음 대해 보는 도구였다. 그것은 모두 스물 네 개의 구멍이 가로세로 질서정연하게 파인 무쇠판이었다.

흔한 냉수 한 사발도 공짜가 없는 게 도시의 삶이었다. 제자리에서 잠시 돌아누워도 당연히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곳이다. 무위도식을 하며 산 한 달 동안 우리 가족이 터득한 지식이란 도시생활의 그 ㉡냉엄한 질서(이주한 후에 깨닫게 된 도시의 속성)였다. 어쨌건 이 일은 아버지로서 ㉢처음이자 마지막 투자(처음 시도해 본 일이 결국 실패한 후 더 이상의 시도는 없었다는 의미-아마도 돈이 다 떨어졌기 때문인 듯)임이 분명했다.

무슨 요술단지라도 구경하듯 신기해하는 식구들을 둘러보며 그러나 아버지는 호기 있게 말했다.

“자, 우리도 내일부터는 길거리로 나서는 거다. 그래 가지고 이놈의 빵틀로 마구 돈을 찍어내는 거야. 암!”

아버지의 그 우직한 낙관론을 비판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못지않게 우리의 기대 또한 컸다. 감히 입을 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마음 설레게 소망했다. 그것이 단순한 빵틀이기를 넘어서 한꺼번에 ㉣스물넉 장의 지폐(경제적 여유를 간절히 바라는 가족의 기대감)를 찍어 내는 기계일 것을…….

다음날 우리 가족은 한길로 진출했다. 번잡한 대로의 한 귀퉁이를 무단 점거한 우리는 사과 궤짝 위에다 문제의 빵틀을 걸었다. 그러고는 탄불을 피우고, 밀가루 반죽과, 팥소(앙꼬)를 내왔다. 물론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흙을 만져 오던 손은 어설프고 투박했다. 아버지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우리는 키들거리며 웃어댔는데 결국 그 웃음이 쑥스럽고 거북한 감정을 많이 덜어주었다.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첫 완제품을 만들어 낸 것은 한낮이 되어서였다. 아버지가 조금은 떨리는 손끝으로 그 중의 한 개를 꺼내들었을 때, 우리는 때맞추어 도시의 하늘을 무겁게 휘저으며 울려 퍼지는 정오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우리도 아버지를 따라 풀빵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요모조모로 관찰했다. 막 깨어난 병아리처럼 귀엽고 샛노란 빛깔이었다. 치자 물을 너무 들인 탓일 거라고, 어머니가 즉석에서 분석했다. 누나는 또 팥소가 바깥쪽으로 흘러나와 있는 것을 가리키며 아무래도 반죽이 묽은 듯하다고 평가했다.

[A]【“옳아, 다음번엔 주의를 해야겠어. 자, 그럼 맛들을 보지 그래?”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일제히 한 입씩 빵을 베어 물었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마다 골똘히 맛을 음미하면서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어떤가, 맛이?”

아버지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선뜻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꿀 먹은 벙어리였다. 뜨겁고, 달착지근하고, 그리고 뒷맛이 약간 …… 쓴, 그러나 이 맛을 어떻게 평해야 옳을 것인가?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그런 유의 음식을 시식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뒷맛이 좀 쓴 것 같군 …….”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먼저 품평했다. 좀 난감한 표정 이었다.

“그래요. 뒷맛이 이상하게 써요.”

어머니가 뒤이어 말했고, 우리도 조심스레 동의했다.】

 

[중략 부분의 줄거리] 온종일 손님을 기다렸지만 풀빵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생업을 시작한 첫날 밤, 아버지는 팔리지 않은 풀빵을 가득 들고 돌아온다. 이에 가족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야릇한 분위기였다. 조금은 허전하고, 또 조금은 거북스러운 그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결코 짜증스럽거나 서글픈 기분은 아니었다. 우리는 다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려 하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시선을 내리깐 채 우리는 말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자, 먹자구. 밤도 깊고 하니 오늘 저녁밥은 이걸로 때워야지 뭐.”

[B]【만찬의 시작을 선언하듯 아버지가 말하고 풀빵 하나를 통째로 입에다 넣었다. 그러고는 유리잔을 집어 들며 또 말했다.

“서양 사람들은 빵만 먹고 산다는데 우리라고 한두 끼 정도야 어떨라구. 시골 구석에 백혀 있어 봐. 이런 재미가 어디 있나…….”】

나는 풀빵을 하나 집어 아버지처럼 한입에 냉큼 밀어 넣었다. 그것은 식어서 차고 딱딱했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먹어 댔다. 미적지근한 냉차로 목을 연신 축여가면서.

비로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누나와 내가 해종일 찍어 낸 것은 아버지가 기대하던 지폐가 아니라 역시 풀빵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또 생각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지폐를 찍어 내는 일에는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만찬을 끝낸 우리 가족이 ㉤성냥개비(좁은 방에서 가족들이 몸을 붙여 잠을 자는 모습을 비유)들처럼 나란히 드러누웠을 때쯤엔 고단한 이웃들의 숨소리가 판자벽을 낭자하게 넘어왔다.

 

1.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적절한 것은?

① 중심 사건을 다양한 인물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

② 서술자가 인물의 심리를 모두 알고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③ 사건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④ 작품 밖의 서술자가 특정 인물의 시각을 중심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⑤ 작중 인물이 서술자가 되어 자신의 내면과 경험한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2. <보기>를 토대로 ㉠~㉤의 의미를 이해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장난감 도시」는 6. 25 전쟁이 끝난 직후 생계를 위해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장난감 도시’는 판자촌을 빗댄 표현이자 차가운 도시의 단면을 암시 하는 제목이다.

① ㉠ : 노력한 만큼 대가를 돌려주는 흙에 대한 생각의 표현이다.

② ㉡ : 이주한 후에 깨닫게 된 도시의 속성을 말해준다.

③ ㉢ : 요행을 바라고 과감하게 투자했던 시도임을 말해준다.

④ ㉣ : 경제적 여유를 간절히 바라는 가족의 기대감이 담겨 있다.

⑤ ㉤ : 좁은 방에서 가족들이 몸을 붙여 잠을 자는 모습을 비유한 표현이다.

 

3. [A]와 [B]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A]에서 풀빵 맛을 본 후 눈치를 살피는 가족의 모습에는 암담한 앞날을 예감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② [B]에서 아버지의 대사에는 거북한 분위기를 풀어주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그 안에는 착잡한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③ [A]와 [B]에는 가족들이 각박한 현실과 가난한 삶을 가족애로 이겨내려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④ [A]와 [B]에는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무능함을 느끼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

⑤ [A]와 [B]에서 아버지의 물음에 대해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모습에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정답> 1⑤-이 소설은 작중 인물이 서술자가 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나’는 유년 시절에 겪었던 경험과 자신의 내면을 떠올리고 있다.

2③-이 작품은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해 온 가난한 한 가족이 도시 생활에 적응하면서 고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가 빵틀을 마련하여 풀빵 장사로 나서게 된 것을 뜻밖의 행운을 바라는 무모한 투자로 보기는 어렵다. 처음 시도해 본 일이 결국 실패한 후 더 이상의 시도는 없었다는 의미이다. / ② ‘냉엄한 질서’란 쉽게 돈을 벌 수도 없고, 공짜도 없는 차가운 도시의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3②-[A]와 [B]는 가족의 대화와 ‘나’의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A]는 풀빵을 시식하는 장면으로, 가족 모두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고 있다. [B]는 첫날의 장사 결과를 기다리는 가족이 아버지가 팔지 못한 풀빵으로 저녁밥을 대신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야릇한 분위기’, ‘거북스러운 그런 분위기’였다는 데 에서 알 수 있듯이 무거운 식사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B]에서 아버지는 무겁게 가라앉은 가족들의 분위기를 말로 풀어주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그 내 면에는 착잡한 마음(앞날의 생계 걱정,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등)이 내재되어 있다.

 

[지문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아침 점심을 나는 일쑤 걸렀다. 거지 같은 위를 채우기 위해 비를 맞으면서까지 누나가 있는 두부 공장으로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나의 얼굴을 보는 일도 반갑지 않았지만, 거기다 다리 한 짝이 없는, 두부살의 오빠를 보는 일은 더 싫었다. 친구 태길이가 약이 오를 때면 매번 들먹이듯, 그가 내 미래의 매형이란 사실 때문에 나의 굴욕감은 더 컸는지도 모른다. 도대체가, 누나는 왜 두부살의 네 오빠들 중에서 하필이면 다리 한 짝을 전쟁터에다 내버리고 온 사내를 골라잡은 것인지 그 점이 나를 더 속상하게 했다.

저녁마저 거르는 날은 누나 쪽에서 나를 찾아왔다. 치마폭에 감추어 온 것들을 가만히 내 머리맡에 내려 두고는 잠자코 돌아섰다. 누나는 진작부터 나의 적의를 눈치 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그녀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때로는 내 이부자리 속으로 살며시 기어들어 자고 가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두부 공장에서 밤일이 없는 때뿐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누나에 대한 나의 적의가 조금이라도 늦추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지난 겨울에 비해 누나는 확실히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고, 친구 두부살처럼 뽀얗게 살이 올라 있었다. 수증기가 자욱한 작업장에서 누나가 때때로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있었다. 그 고된 노동과 천대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지극히 행복한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어머니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을 때 그토록 절망에 빠져 있던 그녀가 이제는 행복한 것이다. 친구 두부살의 집에서, 다리 한 짝이 없는 그 사내의 곁에서 말이다.

누나의 그 건강과 행복이 나의 적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때로는 적의를 넘어 어떤 혐오감까지도 느끼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일테면 누나에게서 그 기분 나쁜 냄새를 맡았을 경우였다. 그랬다. 그것은 언젠가 어머니를 따라 외삼촌댁에 갔다가 그에게서 맡은 바 있었던 그 녹슨 총기 냄새였다. 외삼촌은 다리 대신 팔 한 짝을 전쟁터에다 묻고 온 사내였던 것이다.

다리 한 짝이 없는, 두부살의 오빠에게서도 분명히 그 냄새가 났다. 누나가 모처럼 내 곁에서 잠들어 있던 어느 날 밤, 그자가 느닷없이 우리의 방으로 굴러들었던 것이다. 그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나는 기왕에 민며느리로 들어간 사람이었고, 나는 또 그 사내의 속절없는 처남인 셈이었다. 당당한 틈입자를 우리는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는 흠뻑 젖어 있었다. 외양은 빗물에 젖어 질척거렸고 영혼은 술에 젖어 마비돼 있었다. 그가 좁은 방 한가운데에 사지를 내던지고 철버덕 드러누웠을 때, 솔직한 내 심정으로는 대갈통을 목침으로 까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야릇한 것은 누나의 태도였다. 그녀는 다소 놀란 표정이긴 했지만 그러나 곧 침착해졌다. 쌀자루처럼 널브러진 사내의 몸뚱이로부터 젖은 옷가지들을 한 겹씩 차근차근 벗겨 냈고 머리칼이며 얼굴이며 몸뚱이 등 더 이상 벗겨 낼 수 없는 부분들은 마른 수건으로 정성 들여 닦아 내고 있었다. 나는 말문이 막힌 채 그녀의 거동만을 멍하니 지켜보았을 따름이었다. 아마도 누나는-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맹렬히 저항했다-정상이 아니다. 누나는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누나의 얼굴에 광기는 없었다. 거의 아무런 표정도 담고 있지 않은, 지극히 담담하고 조용한 얼굴이었을 뿐이었다. / “나 좀 도와주렴.”

[A]【누나가 내게 말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누나와 그 사내에 대한 적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거부할 수가 없었다. 누나와 둘이서 간신히 그를 한편으로 옮겨 뉘었는데 그때 나는 비로소 사내의 의족을 보았다.

삼십 촉짜리 흐릿한 조명 아래서도 그것은 차갑고 이물스럽게 거기 놓여 있었다. 날카로운 비수에 가슴이 찔리듯 나는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외삼촌을 기억해 냈고, 그리고 그에게서 맡았던 저 녹슨 총기의 냄새를 다시 맡았던 것이다.】

[B]【밤새 땅을 파헤치느라고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우리 판자촌 골목 어떤 지점을 파헤쳐도 온갖 무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엠원 소총에서부터 박격포탄에 이르기까지, 부러진 대검에서부터 시작하여 탱크의 캐터필러 조각에 이르기까지, 군번이 새겨진 알루미늄 조각에서부터 깨진 철모에 이르기까지…… 모양도 크기도 용도도 각양각색인 그 물건들은, 그러나 한결같이 뻘겋게 녹이 슬어 있었다. 지난 전쟁을 실제로 목격한 적이 없던 나는 몹시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소리쳤다. / “야, 여기다 여기! 바로 여기서 전쟁을 했던 거야…….”】

[C]【그러고는 문득 깨어났다. 문살이 훤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사내는 깊은 잠에 떨어져 있었지만 누나는 단정한 차림새로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너 어디 아프니? 헛소리를 하게…….” / 그러면서 누나가 내 이마를 짚었다.】

“치워!” /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나는 꽥 소리를 치며 누나의 손을 떨쳐 버렸다. 그러고는 홑이불 자락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썼다. 갑자기 누나가 혐오스러워졌다. 그녀의 손에서도, 몸뚱이에서도 녹슨 총기의 냄새가 물씬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1. 위 글에 제시된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할 때, 다음 중 가장 처음에 올 것은?

① 어머니가 숨을 거둔다. ② ‘나’가 외삼촌댁을 방문한다.

③ 두부살의 오빠가 우리 방에 찾아온다. ④ ‘나’가 꿈에서 깨어나 누나의 손을 뿌리친다.

⑤ ‘나’가 두부 공장에서 웃으며 일하는 누나를 본다.

 

2.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인물 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

② 객관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인물의 행위를 서술하고 있다.

③ 공간적 배경에 따라 서술자를 달리 하여 상황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④ 인물의 체험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심리와 태도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⑤ 서술자가 인물과 사건을 권위적으로 논평하여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3. <보기>를 참고하여 [A]~[C]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에서는 ‘녹슨 총기’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작품이 한국 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녹슨 총기’는 전쟁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녹슨 총기의 냄새’는 전쟁으로 인해 빚어진 비정상적인 현실에 대한 ‘나’의 심리적 반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① [A]의 ‘녹슨 총기의 냄새’는 ‘사내’에 대한 ‘나’의 심리적 반응과 관련이 있다.

② [A]에서 ‘녹슨 총기의 냄새’라는 공통점을 지닌 ‘사내’와 ‘외삼촌’은 ‘나’를 둘러싼 비정상적 현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③ [B]를 통해 ‘녹슨 총기’가 전쟁의 상흔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④ [B]에서 ‘나’가 전쟁과 관련된 꿈을 꾼 이후 ‘녹슨 총기 냄새’는 [A]의 ‘사내’에서 [C]의 ‘누나’로 전이된다.

⑤ [A]에서 [C]로 갈수록 ‘녹슨 총기 냄새’를 불러일으키는 ‘나’의 심리적 반응의 대상이 축소되고 있다.

 

4. <보기>를 참고하여 위 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결핍은 익숙하던 것이 사라진 데서 비롯한다. 그로 인해 결핍의 상황에 처한 존재는 주변을 이질적인 것으로 느끼게 되며, 그것은 주변에 대한 적대감으로 심화되기도 한다. 이질감과 적대감은 결핍에 빠진 존재의 내적 불안감의 표현이지만, 그 이면에는 결핍이 극복되기를 바라는 강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① 누나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결핍으로 인한 이질감과 적대감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②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고 어머니가 숨을 거둔 상황은 익숙하던 것이 사라진 ‘나’의 결핍의 상황으로 볼 수 있다.

③ 두부살의 오빠에 대한 ‘나’의 혐오감은 ‘나’에게 익숙하던 존재였던 ‘누나’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④ 누나에 대한 ‘나’의 맹렬한 저항은 누나를 잃은 결핍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강한 욕망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⑤ 누나의 건강과 행복에 대한 적대감은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답> 1②- ‘나’의 누나는 두부 공장 집 민며느리가 된 상태이며, 누나가 집에 와 있던 어느 날 ‘두부살의 오빠’가 찾아오는 사건이 발생한다. ‘나’는 또한 과거 어머니가 살아 계실 적 어머니와 함께 외삼촌댁에 방문한 적이 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누나가 두부 공장에서 일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따라서 가장 앞서 일어난 일은 ‘나’가 외삼촌댁에 방문한 사건이다.

2④-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의 곁을 떠난 것, ‘나’가 과거 외삼촌을 만나 ‘녹슨 총기 냄새’를 맡은 것, 누나가 두부 공장 집 민며느리가 되어 ‘나’를 찾아오곤 하는 것, 다리 한 짝이 없는 매형이 누나를 찾아온 것 등은 ‘나’의 체험을 서술한 내용이다. ‘나’가 누나의 결혼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것, 누나와 매형에게서 ‘녹슨 총기의 냄새’가 난다고 느끼고 혐오감을 갖는 것 등은 이러한 체험에 대한 ‘나’의 심리와 태도를 서술한 것이다.

3⑤-[A]에서 ‘나’는 전쟁과 관련된 인물인 ‘외삼촌’과 ‘두부살의 오빠’에게서 ‘녹슨 총기 냄새’를 맡지만, ‘녹슨 무기’를 발견하는 꿈에서 충격을 받는 [B] 이후 [C]로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누나에게서까지 그 냄새를 맡고 혐오감을 느낀다. 이는 전쟁 불구자와 결혼한 누나를 비정상적 인물로 인식함에 따라 누나에게까지 <보기>의 심리적 반응이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4①- ‘나’는 가족도 없이 배고픔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결핍의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나’의 곁에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누나가 두부살의 오빠와 결혼함에 따라, ‘나’는 누나를 향해 이질감과 적대감, 곧 ‘적의’를 느낀다. ‘나’가 느끼는, 누나를 향한 ‘적의’ 이면에는 곧 누나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누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욕망이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누나는 ‘나’와는 달리 적대감이나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있으므로, ①에서와 같이 누나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기는 어렵다.

 

 [지문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판자촌 주민들의 고단한 잠을 앗아 가는 이웃은 그들 외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우리(1인칭 관찰자 시점) 집과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모주(母酒)꾼(술을 늘 많이 먹는 사람. 술꾼. 모주망태) 주 씨(주인공)도 그런 이웃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괴상한 술버릇 때문에 일쑤 주민들의 잠을 거덜 내곤 했다.

이웃이 다 그러하듯이 그 역시 한(恨)이 많은 사람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데려 오기 위해 서너 차례나 38선을 넘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마을로 흘러들 무렵엔 그는 혈혈단신이었다. 생사를 걸었던 수차례의 모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주 씨는 솜씨 있는 목수였다. 그래서 다른 이웃들에 비해 수입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의 경우에는 이 점 또한 불행의 하나였다. 이웃들이 언제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급급해할 동안 그는 그 좋은 수입으로 일쑤 술청에 틀어박혀 있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주모(酒母)가 갈퀴 같은 손으로 그의 주머니를 홀랑 까뒤집어 먼지 한 점까지 탈탈 털어 낸 후에야 등을 밀려 나오게 마련이었다.

마을의 골목길은 멀쩡한 사람의 눈에도 좁게 보였다. 하물며 고주망태가 된 주정뱅이에게 있어서랴. 톱과 각자[角尺]와 장도리 따위들이 비죽이 내밀려 있는 연장 망태기를 느슨히 울러멘 그는, 길 양켠의 판자벽에 이마를 연신 짓찧어 가며 갈짓자로 돌아오곤 했다. 그럴 때의 그와 어쩌다 맞닥뜨릴 때면 나(서술자)는 항용 야릇한 호기심에 내몰리는 것이었다. 고주망태가 되어 있는 그의 몸뚱이 어딘가로부터 어쩌면 한 줄기 시원한 술발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주 씨가 판자벽에 정면으로 얼굴을 갈아붙였을 때도 그의 안면을 적신 건 피였지 무색투명한 술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실망했던

건 아니다. 되레 더 벅찬 감동을 나는 맛보곤 했다. 그랬다. 이제 생각하면(서술자가 어른이 된 지금 현재) 그의 몸뚱이 속에는 술보다 더 독한 격정(분단으로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분노)이 언제나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지난 생애에 대한 뼈를 깎는 회한과, 그리고 남은 생애에 대한 바닥 모를 허망감이…….

주 씨의 기이한 주벽(酒癖-술을 즐기는 버릇)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제 집을 찾아든 그는 우선 문짝부터 안에서 걸어 잠갔다. 그러면 그때부터 세간들을 깡그리 짓부숴 대는 듯한 소리가 닫힌 문 밖으로 요란하게 울려 나왔다. 그의 주벽이 발동한 것이다.

그에게는 아내와 대여섯 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물론 이 마을로 흘러든 이후에 만난 사람들이었다. ㉡이웃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가 최초로 이 마을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서너 해 전의 일이었고 더군다나 지금의 식솔들을 거느리게 된 것은 불과 두어 해 전부터의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당연히 그 아이의 의붓아비인 셈이었다.

어쨌거나 그의 주벽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통하게도 그의 아내와 아들까지 말 한마디 하는 법이 없었다. 닫아 걸린 문짝 안에서부터 무언가를 두들겨 부수는 소리만 요란하게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 소리가 때로는 온밤 내내 계속되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날이면 애꿎은 이웃들은 별도리 없이 잠을 설치고 마는 것이었다. 신소리(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 잘하는 고물상 곽 씨조차도 이 경우만은 뭐라 입대지 않았다. 그 대신 커다란 목소리로 다른 이웃을 불러댔다.

[A]【“여보쇼 김 씨! 우리 세상 사는 얘기나 좀 하십시다. 그래, 요즈막 양키 시장 경기는 어떻소?” / 그러면 응수하는 소리가 금세 판자벽을 건너오고, 또 더러는 다른 쪽에서 제3자가 끼어들고, 그래서 때 아닌 심야의 대화가 판자벽을 넘나들며 한동안 이뤄지게 마련이었다.

“경기구 뭐구, 이러다간 벼락부자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소. 허허…….”

“좋지요. 거지들만 우글우글하는 동네에 그런 사람 끼여 살기 좀은 불편할 거요마는……허허…….” / “거 다 좋은 시절 얘기하시느만. 그러지들 말고 나란 사람도 좀 비벼 댑시다그려. 두고 보시우. 세상이 나를 이 지경으로 버려 놨소만 사람 하난 반듯하단 말이오. 암, 이래도 졸가리 있는 집 자손이니깐. 히히…….”

“그 방 이 씨는 뭣하고 있소? 끽소리 한마디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좀 수상쩍구만.”】

이런 식으로 잠을 설친 이웃들이 다음 날 아침에 예의 주 씨 집을 들여다보노라면 그 집은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외벽과 방바닥만 빼고는 제자리에 붙어 있거나 놓여 있는 것이라곤 거의 한 가지도 없을 정도였다. 완전히 쑥대밭이 된 속에서, 그러나 그들 기이한 가족은 다정스레 아침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또다시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이번의 경우는 재건을 위한 힘찬 변주곡이었다.

이미 말했듯이 그는 솜씨 좋은 목수였다. 스스로 파괴한 것을 재건설하는 데도 그의 솜씨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아내의 의견을 묻는 소리와, 자르고 깎고 두들기는 소리와 그리고, 버릇처럼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가 골목 밖으로 해종일 흘러나왔다. 이웃들도 그제야 마음 놓고 그 집 안을 기웃거려 볼 수가 있었다. 그랬다. 모든 일이 절도 있고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B]【부엌이 있던 곳에 방이 들어서고, 방이 있던 자리에 부엌이 만들어졌다. 동편에 있던 다락은 서편에 다시 매달려지고 서편에 깔렸던 쪽마루는 동편으로 옮겨 자리 잡았다.】 요컨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조형이 그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광경을 모든 이웃들은 거짓 없는 감탄과 선망(羨望-부러움)의 눈초리로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주 씨에게는 나무 궤짝 같은 자신의 방만이 오직 유일하게 허락된 우주요, 장난감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1. ‘주 씨’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② 숭고한 꿈을 잃었으나 다시 그 꿈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③ 시대 상황의 피해자로서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고자 한다.

④ 역사적 상황으로 인한 상처를 개인적인 울분으로 표출한다.

⑤ 사회적 약자로서의 고통을 공동체적 이념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2. [A]의 서사적 기능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무겁고 긴장된 분위기를 이완시킨다. ②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알려준다.

③ 주된 사건의 흐름을 멈추거나 지연시킨다.

④ 신소리를 잘 하는 ‘곽 씨’의 성격을 드러낸다.

⑤ ‘주 씨’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평가를 보여 준다.

 

3. 문맥상 [B]에 대한 감상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주 씨 집은 날마다 천태만상(千態萬象)이로군.

② 주 씨 가족들이 보기에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겠군.

③ 주 씨에게는 집을 고치는 일이 여반장(如反掌)이로군.

④ 주 씨에 대한 가족들의 불평은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나겠군.

⑤ 주 씨가 자신의 솜씨를 믿고 과대망상(誇大妄想)에 빠져 있군.

 

4. ㉠과 ㉡의 공통된 서술 효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작중 세계가 허구라는 점을 알리는 표지로서 독자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

② 작중 사건이 실제 현실이라는 점을 알리는 표지로서 사건 전개의 개연성을 강화하고 있다.

③ 새로운 정보를 추가한다는 점을 알리는 표지로서 일인칭 관찰자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④ 실존 인물의 말을 동원한다는 점을 알리는 표지로서 작중 사건의 사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⑤ 작품 외부의 믿을 만한 인물에 의존한다는 점을 알리는 표지로서 서술자의 말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정답> 1④    2⑤    3③    4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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