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최척전 - 조위한

작성자바른샘|작성시간12.10.09|조회수3,378 목록 댓글 0

                                   최척전(崔陟傳) - 조위한                                        바른국어

[줄거리]

남원에 사는 최척(崔陟)이 정상사(鄭上舍-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를 달리 이르던 말)의 집으로 공부하러 다녔다. 어느 날, 옥영(玉英)이 창틈으로 최척을 엿보고 그에게 마음이 끌려 구애(求愛)의 시를 써서 보냈다. 그리고 시비(侍婢) 춘생을 보내 답신(答信)을 받아 오게 한다. 최척은 춘생을 통해 옥영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부친의 친구인 정상사에게 혼사를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한다. 옥영은 이 혼사(婚事)를 반대하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마침내 둘은 약혼을 하게 된다.

혼인날을 정해 놓고 기다리던 중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남원 지역에 의병이 일어났고 최척도 여기에 참전하게 되었다. 혼인 날짜가 지나도록 최척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옥영의 어머니는 부자의 아들인 양생(梁生)을 사위로 맞으려 한다. 그러나 옥영은 최척이 돌아올 때를 기다려, 두 사람은 드디어 혼인을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이 때 맏아들 몽석이 태어난다.

정유재란으로 남원이 함락되면서, 옥영은 왜병의 포로가 되었고 최척은 흩어진 가족을 찾아 헤매다가 실심한 끝에 명나라 장수 여유문과 형제의 의를 맺고 중국으로 건너가 살게 되었는데, 자신을 매부(妹夫)로 삼으려는 여유문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편 일본에 잡혀간 옥영은 계속 남자로 행세하면서 불심(佛心)이 깊은 왜인을 만나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상선을 타고 다니면서 장사 일을 돕게 된다.

여러 해가 지나 여유문이 죽자 최척은 항주의 친구 송우(宋佑)와 함께 상선을 타고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남(安南)에 배를 타고 갔다가, 상선을 타고 안남까지 오게 된 아내 옥영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들은 중국 항주(杭州)에 정착하여 둘째 아들 몽선을 낳아 기르며 십 수 년간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 몽선이 장성하게 되자 홍도(紅桃)라는 중국 여인과 혼인을 시킨다. 홍도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전했다가 실종된 진위경의 딸이었다.

이듬해 호족(胡族, 청나라)이 침입하여 최척은 아내와 아들을 이별하고 명나라 군사로 출전하였다가 청군의 포로가 된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명나라의 청병(請兵)으로 강홍립을 따라 조선에서 출전했다가 역시 청군의 포로가 된 맏아들 몽석을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부자는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고향으로 향한다.

한편 옥영은 주도 면밀(周到綿密)한 계획을 세워 몽선·홍도와 더불어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고국으로 돌아와 일가가 다시 해후하여 단란한 삶을 누리게 된다.

 

[등장인물]

*옥영 : 호감이 가는 이에게 먼저 시를 전달함.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인상. 후에 남편을 찾기 위해 조선으로 갈 때, 아들 몽선과 며느리 홍도를 설득하고 그들에게 일어·중국어를 가르치고 조선, 중, 일본의 의복을 준비하는 치밀한 성격.

 

[핵심 정리]

*갈래 : 군담소설, 영웅소설, 애정 소설, 역사 소설

*연대 : 1621년(광해군 13)

*배경 : 공간적 - 조선, 중국, 일본 / 시간 : 임진왜란, 추보식 구성

*특징 : ①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사실적으로 잘 반영됨

          ②전쟁으로 인해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이산의 아픔이 사실적으로 잘 드러남.

*의의 : 당시의 우리나라 사회·역사의 본질적 문제를 사실주의적으로 드러내고 있음.

*주제 : 전쟁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애정, 전쟁 중의 가족의 이산과 재회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애정 문제와 가족의 이산과 재회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임진·병자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로서 <임진록>, <박씨전>, <임경업전> 등 많은 고전 소설이 있지만 대부분 이민족에 대한 적개심을 북돋우면서 민족적 영웅의 활약상을 통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고자 창작된 것들이다. 그러나 <최척전>에는 민족적 영웅도 무용담(武勇談)도 없다. 전쟁으로 인한 당대 백성들의 고난과 역경을 사실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은 두 가지 면에서 후대의 군담·영웅 소설과 연관성이 있다. 전란으로 인한 가족의 이산과 재회라는 구성의 유사성, 그리고 초월적 힘이나 우연적 요소에 의한 사건 전개 방식의 유사성이 그것이다. 다만 <최척전>에서는 이러한 측면이 그다지 강하지 않아 비교적 사실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그러나 후대의 군담·영웅 소설에서는 사실적 전개는 축소되고 초현실적 힘의 작용이 사건 전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초월적인 천상계에서 정해준 운명에 따라 고난과 행복이 교차되었으며, <최척전>에는 보이지 않던 적강(謫降) 모티프(motif, 화소)가 추가되었다.

<최척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시의 전쟁이 조선인과 중국인의 삶에 어떤 운명의 그림자를 드리웠는가를 탐구하고 있으며 작품의 무대도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등으로 확장되어 있다. 또, 조선인 몽선과 중국 여인 홍도와의 결연은 다른 고전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사건이다.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기처럼 여기던 시대상까지 고려한다면 작가 정신의 진취성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특히, 여주인공 옥영(玉英)은 자신의 뜻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했으며 강인한 의지와 슬기로 전쟁이 가져다 준 역경을 극복하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여인으로 부각되어 있다. 이것은 후대 소설에 나타나는 ‘춘향'이나 ‘춘풍의 아내' 같은 강인하고 능동적인 여성상의 선구적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옥영이나 최척이 영웅적 인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신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몰락한 양반의 후예로서 평범한 사람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연구 문제]

1. ‘최척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 ‘최척전’이 후대의 군담 · 영웅 소설과 다른 점은?

- 비현실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아 (사실성)이 뛰어나다.

- 후대 소설에 나타나던 (적강) 모티프가 없다.

 

[지문1] 전라도 남원(南原) 땅에 한 소년이 있었으니. 이름은 최척(崔陟)이요, 자는 백승(伯昇)이라 했다. 최척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서문 밖 만복사(萬福寺) 동쪽에서 아버지와 외로이 살고 있었다. 최척은 나이가 어렸지만 생각이 깊고 마음은 한없이 착했으며, 벗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소년의 아버지는 일찍부터 이런 충고를 했다.

“네가 공부를 즐겨하지 않는다면 커서 무뢰한(無賴漢-힘이 없는 사람) 밖에 더 되겠느냐. 도대체 너는 어떤 인물을 본받고자 하느냐? 지금 한창 난리가 일어나 고을마다 장정을 널리 뽑고 있다는 걸 너도 들어 알게다. 그런데 너는 오직 놀기에만 힘쓰니 어찌 이 늙은 애비를 기쁘게 할 수 있겠느냐. 이제 책을 마련해 줄 터인즉, 선비를 찾아가 배우도록 하려무나. 비록 과거 급제하여 명성을 얻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전쟁터에는 끌려가지 않을 것이다. 저 성남(城南)에 정상사(鄭上舍-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를 달리 이르던 말)란 선비가 있다. 그와는 소시적부터 친구여서 잘 아는 사이이다. 그는 면학에 힘써 문장이 능하니, 초학자를 가르침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도록 해라.”

최척은 당일로 정상사를 찾아갔다. 그는 간곡히 가르침을 청했다. 그래서 정상사는 끝내 거절을 못하고 문하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가 공부를 시작한 지도 몇 달이 지났다. 이미 학문은 크게 진전을 보았다. 동네 사람들은 소년의 총명함을 칭찬해 마지않았다. 최척이 글을 배울 때면 한 소녀가 숨어들어 글 읽는 소리를 몰래 엿듣곤 했다. 나이는 열일곱 여덟쯤 됐을까. 새카만 윤기 어린 머리를 가진, 그림같이 아름다운 소녀였다.

어느 날이었다. 정상사가 식사를 하느라고 글방을 비워 최척 혼자서 글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창틈으로 조그만 쪽지가 들어왔다. 최척은 이상히 여겨 그것을 주워서 펴 보았다. 그 쪽지에는 시경(詩經)에 있는 표유매(摽有梅)의 마지막 장이 쓰여 있었다. 그는 이 글을 읽자 마음이 마냥 들떴다. 마음을 억제할 수 있었다. 언제 밤이 오려나 몹시 기다려졌다. 그러다가 공부하는 사람이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쏟아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그럴수록 마음은 달아올랐다. 이윽고 스승이 글방으로 나오는 기미를 알고 그는 쪽지를 소매 속에 숨겼다.

최척은 공부를 다 하고 글방을 나섰다. 문 밖에 지켜 서 있던 푸른 옷을 입은 계집아이가 뒤를 따라오며 / “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했다. 최척은 계집아이를 보자 쪽지 생각이 났다. 그가 집으로 가는 길에 자세히 물으니 계집아이가 대답했다.

“저는 이낭자(李娘子)의 시녀인 춘생(春生)이라 하옵니다. 낭자께서 저를 보내시며 낭군님에게 청하여 화답의 시를 받아 가지고 오라고 하시었사와요.”

최척은 이 계집아이가 의심쩍어, / “ 너는 정가(鄭家)의 사람이 아니냐? 어째서 이낭자라고 하느냐?”고 물었다. 계집아이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저의 낭자께서는 서울 숭례문(崇禮門) 밖 청파동(靑坡洞)에서 살고 있었어요. 아버지이신 이경신(李景新) 어른은 일찍 돌아가셔 어머니 심씨(沈氏) 홀로 딸을 데리고 살고 있답니다. 이름은 옥영(玉英)이라 하옵는데 오늘 낮 창 너머로 시를 던져준 사람이 바로 저의 낭자이옵니다. 지난 해, 난리를 피해, 강화(江華)에서 배를 타고 나주로 피난 나왔습니다. 올 가을에 거기서 다시 여기 정씨 댁으로 옮겨왔답니다. 그것은 한 과년한 딸을 두었기 때문이랍니다. 표형(表兄) 되시는 정상사에게 혼사를 부탁하기 위해서였사옵니다.”

최척은 아버지를 뵙고 청혼을 해보도록 간청했다. 아버지는

“그들은 화족(華族-높은 양반)이니까 반드시 부자가 아니면 혼인하러 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집은 빈한해서 응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네가 굳이 원한다면 내 한번 청혼을 해보긴 하겠다만 성패는 하늘에 달렸느니라.”

이튿날이었다. 최공은 정상사를 찾아갔다. 아들의 혼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정상사는

“나에게 표매(表妹)가 와 있긴 있다네. 서울에서 난을 피해 내 집에 와있네. 그 딸은 재색과 행실이 아주 뛰어나 내가 신랑감을 널리 구해고 있는 중일세. 자네 아들의 재주가 뛰어나고 또한 준수하니 신랑감으로는 적합하다고 생각되나. 집안이 가난한 것이 한일세 그려. 그러나 한번 누이와 상의해 가부간에 알려줌세.”

최공이 돌아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최척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정상사는 최공을 보낸 다음 안으로 들어가 심씨(沈氏)와 상의했다.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제가 집을 버리고 피난을 나와 외롭고 위태로워도 의탁할 곳이 없잖아요, 다만 딸 하나밖에 없으니 부잣집으로 출가시키기를 원해요. 가난한 집의 아들은 비록 그 마음이 아무리 어질다 하더라도 원치 않아요.”

그날 밤이었다. 옥영은 어머니와 함께 잠자리에 들어 최척의 말을 할까 망설이며 눈치를 살폈다. 옥영이 눈물을 흘리니 어머니가 알고,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려무나.” 했다. 옥영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붉혔으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어머님이 사윗감을 고르시는 데 부잣집만 바라고 있으니.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님의 그 뜻을 저인들 어찌 모르겠어요. 부잣집인 데다가 사윗감이 어질다면 오죽이나 좋겠어요. 그러나 생활은 부유하더라도 남편이 변변치 못하다면 그 넉넉한 살림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이 아니옵니까. 저는 집안이 부자라 하더라도 남편 될 사람이 어질지 못하다 하오면 그런 집으로는 시집을 가지 않겠어요.” / “너 그게 무슨 당돌한 소리냐?”

“당돌한 말이 아니옵고 제 의견을 말했을 뿐이어요. 제가 알기로는 최척이라는 사람이 아저씨 댁에 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품이 충후(忠厚)하고 성실하와 단연코 경박한 탕자(宕子)는 아닌가 합니다. 그런 분을 남편으로 섬긴다면 죽어서도 한이 없겠어요. 더구나 가난한 것은 선비로서 떳떳한 길이 아니옵니까. 저는 원래부터 불의(不義)로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는 것은 원치 아니합니다. 부디 그 댁으로 혼사를 정해 주시어요. 이런 말은 처녀로서 드릴 말씀이 아닌 줄 아옵니다만 혼사는 일생에 있어 가장 중대한 일이옵기에 감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씀드리옵니다. 만일에 부잣집으로 출가를 했다 하더라도 남편이 어질지 못하여 일생을 그르친다면 어찌할 것이옵니까. 이것은 깨진 병을 다시 원상태로 할 수 없으며, 물들인 실을 다시 희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옵니다. 제 아무리 가슴 아파 한들 또한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옵니다. 더구나 이 몸은 남의 집에 얹혀 있사오며, 거기다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잖았어요. 그리고 적병(敵兵)이 이웃 고을까지 쳐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이런 다급한 시기에 정말 충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장모를 잘 받들어 모시겠어요?”

심씨는 딸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튿날 심씨는 정상사와 마주앉아 말했다.

“제가 지난 밤 동안 곰곰 생각해 보았어요. 최랑(崔郞)은 비록 가난하지만 훌륭한 선비인 것 같아요,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 인력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출가시키기보단 차라리 잘 아는 처지인 최랑으로 사위를 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요.”

“누이가 그렇게 원한다면 내 반드시 성사시켜 줌세. 최생은 가난하나 사람됨이 옥과 같네. 비록 서울 넓은 바닥에서 구한다 하더라도 그만한 사람은 드물 거여, 앞으로 뜻을 이루어 학업이 대성한다면 우물 안의 개구리는 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게.”

그날로 매파(媒婆)를 보냈다. 사주를 써 약혼했다. 내친걸음에 9월 보름날로 혼인날까지 받아두었다. 부모보다도 당사자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혼인날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마음 태우고 있었다.

 

[지문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얼마 동안의 세월이 흘렀다. 남원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의병장은 참봉(參奉)을 지냈던 변사정(邊士貞)이었다. 이 의병들이 영남(嶺南)으로 진격할 때였다. 최척은 활을 잘 쏠 뿐만 아니라 말 타는 재주가 비상하다 하여 의병으로 뽑혔다. 최척은 진중에서 고민하다 못해 병이 들었다. 결혼 날은 하루하루 다가왔다. 그는 의병장을 찾아가 휴가를 신청했다. 의병장은 말했다.

이 때가 어느 때라고 감히 결혼한다고 휴가를 달라는고, 상감께서도 몽진(蒙塵-피난길에 오름)하셔 풀밭, 진흙 속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계셔. 신자(臣子)된 도리로서 마땅히 총칼을 들어 적을 무찔러야 함이 옳은 일이 아닌고, 하물며 너는 아직도 장가들 나이가 아니잖느냐. 왜적을 격파하고 난 연후에 장가들어도 늦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는 내색도 하지 말라.”(인의 사적인 일보다는 나라의 위급함이 먼저라며 허락해주지 않는 의병장)

이렇듯 엄하게 책망하며 끝내 허락해 주지 않았다. 최척은 종군한 뒤로 혼인날이 박두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옥영은 혼인날을 헛되어 보냈다. 그녀는 하루하루 수심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옥영의 이웃에 양성(梁姓)을 가진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 자는 옥영의 아름다운 미모며 착한 마음씨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약혼자인 최척이 출정하여 돌아오지 않음을 틈타 구혼을 했다. 몰래 보화(寶貨)를 정가로 들여보냈고, 매파를 충동질했다. 매파는

최생이라는 자는 빈곤하기 그지없나이다. 날이면 날마다 때(끼니) 걱정을 하니 부친 봉양하기에도 어렵습니다. 항상 남한테서 쌀을 꾸어오는 처지라 합니다. 그런 처지에 아내를 얻는다면 그 어려움이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요. 더구나 최생이란 자는 전장(전쟁터)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그 생사를 알 수 없지 않는가요. 그런데 비해 양씨는 원래부터 한다한 부자가 아닌가요. 그의 아들 또한 어질어 최생만 못잖으니, 아주 금슬 좋은 부부가 될 것이 뻔하지요.” / 하며, 성가시게 보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격으로, 심씨는 마음이 소롯이 기울어졌다. 끝내 승낙을 하고 말았다. 결혼 날짜도 열흘 앞세워 정하기까지 하였다. 옥영은 이를 알았다. 그날 밤, 옥영이는 어머니와 마주하자 단연코 반대하여 말했다.

최랑이 오지 못한 것은 그 몸이 의병장에게 매인 때문이지요. 고의로 약속을 저버린 것이 아니온데, 최랑을 기다리지도 아니하고 스스로 파혼하는 불의(不義)를 저는 원하지 않사옵니다. 만약 딸의 뜻을 꺾고자 한다면 저는 당장 죽어버리겠어요. 어머니마저 이 마음을 몰라주는데, 어찌 하늘인들 알아줄 리 있겠어요?”

심씨는 너는 어찌 제 고집만 부리느냐. 응당 남의 딸이 되었으면 부모의 처분만 기다려야 할 것이 아니냐. 감히 어느 앞이라고 시집가는 것까지 간섭을 하려 드느냐.” / 하고 딸을 몹시 책망했다. 밤이 깊었다. 심씨는 잠결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놀라 깨어났다. 옆에 누워 자던 딸이 없었다. 당황하여 급히 찾아 나섰다. 옥영은 창 밑에 엎어져 있었다. 수건으로 목을 졸라맨 것이었다.(가치관이 뚜렷하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인) 이미 손발을 싸늘하게 식었고, 가느다란 숨소리만 가쁘게 들렸다. 이것마저 점점 희미해지더니 뚝 끊어지고 말았다.

심씨는 통곡했다. 부랴부랴 목을 맨 수건을 풀었다. 손길은 마냥 떨렸다. 이때 춘생이 깨어나서 불을 밝혔다. 그녀도 주저앉아 통곡했다. 급히 서둘러 물 몇 모금을 입을 벌리고 흘려 넣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간은 흘렀다. 이윽고 가느다란 숨결이 되살아났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너나없이 달려와 구완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였다. 심씨는 양가와의 혼사문제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발 없는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다. 최공의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왔다. 그는 그 사실을 아들에게 알렸다.

그 무렵, 최척은 병으로 몸져누워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서신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병세는 다급해졌다. 의병장도 이를 알고 최척을 불렀다. 곧 귀가 조치를 취해 주었다. 최척이 집으로 돌아온 지도 수일이 지났다. 그렇게 위독하던 병세도 씻은 듯이 나았다. 마침내 그날 섣달 초사흘이 다가왔다. 최척은 정상사의 집으로 가서 옥영과 혼례를 치렀다. 두 사람의 기쁨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최척은 아내와 장모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에 들어서기도 전이었다. 친척들이 몰려와 신부의 아름다움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웃 사람들도 어진 아내를 데려왔다고 부러워했다.

[A]옥영은 시집온 지 3일도 채 안되어 시집 일을 열심히 했다. 베틀에 올라 베를 짰고, 들로 나가 김을 맸다. 그녀는 지성으로 시아버지를 공경했고, 남편을 정성스레 섬겼다. 윗사람들을 공손히 받들었고, 아랫사람들에게는 극히 자상했다. 그녀는 인정과 사랑을 골고루 베풀었다. 원근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양홍(梁鴻)의 아내며 포선(鮑宣)의 며느리도 이보다 못했을 것이라고들 했다.

최척은 옥영을 아내로 맞이한 후 부족함이 없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사람과 혼인을 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살림도 나날이 넉넉해져 갔다. 이래서 아기자기한 세월은 흘러갔다. 그러나 최척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늘 걱정이 됐다. 생각다 못해 매달 초하루가 되면 부부 동반해서 만복사로 올라가 자식 하나 점지해 달라고 빌었다.

 

1. 윗글의 공간을 <보기>처럼 제시했을 때, 이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전쟁터) → ㉯(고향)

 ① 최척은 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이 들게 된다.

 ② 최척은 에서 로 돌아가기 위해 의병장에게 휴가를 청하는 글을 쓰게 된다.

 ③ ㉯에서 양 씨가 뇌물로 정 생원의 아내의 환심을 사서 그 아들과 옥영을 혼인시키고자 한다.

 ④ ㉯에서 옥영의 어머니조차 옥영을 양씨 집안으로 시집을 보내고자 한다.

 ⑤ 최척의 부친이 보낸 편지가 계기가 되어 최척은 에서 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2. [A]에 대한 이해로 적절한 것은?

 ① 요약적 제시를 통해 인물의 행적을 드러내고 있다.              사건의 분위기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③ 언어유희의 방법으로 해학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반어적 말하기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부각하고 있다.

 ⑤ 갈등 상황을 첨예하게 제시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3.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최적천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인물들이 겪는 사건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 작품은 최척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주인공들에게 닥친 시련이 좀처럼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시련이 제시되는 구성을 보여 주고 있다. 주인공들이 행복한 삶을 잠시 느낄 틈도 없이 시련은 계속되며, 그 강도를 더해 간다. ‘최척전은 바로 주인공들이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로, 그 극복의 과정을 통해 작품의 주제 의식이 형성되고 있다.

 ① 남원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의병장 변사정이 등장하는 점은 이 글이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연관이 있겠군.

 ② 최척이 의병이 되어 전쟁터로 나감으로써 사랑하는 옥영과 이별하게 되는 시련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군.

 ③ 양씨의 구혼으로 인해 최척과 옥영 사이에 위기가 발생하지만, 죽음을 각오한 옥영의 행동으로 이를 극복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군.

 ④ 옥영이 지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섬긴 것은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이겨 내기 위한 행동이었군.

 ⑤ 옥영이 최척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결국 사랑을 성취하게 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이 잘 나타난다고 할 수 있군.

 

4. 에서 언급된 최척의 상황을 나타낸 한자 성어는?

 ① 두문불출(杜門不出)   백면서생(白面書生)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월동주(吳越同舟)   호가호위(狐假虎威)

 

                                                                                                                            <정답> 1①    2①    3④    4

 

이듬해는 갑오년(甲午年)이었다. 이 해도 정초에 만복사로 올라가 불공을 지성으로 드렸다. 그날 밤이었다. 부인의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만복사의 부처로다 .내가 그대들의 지극한 정성에 크게 감동되었도다. 그래서 기남자(奇男子-능력이 뛰어난 남자 아이)를 점지해 줄 것인즉, 이후 부인의 몸에는 태기가 있을 것이로다.”

과연 그 달로부터 태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몽석(夢釋)이라 지었다. 최척은 피리를 썩 잘 불었다. 그는 달 밝은 밤이나 꽃피는 아침나절에 피리를 불었다. 그가 피리를 불 때면 저무는 봄날하며 아름다운 밤으로 미풍이 간들어지게 살랑거렸고, 밝은 달은 빛을 더해 현란하게 비쳤다. 바람에 나는 꽃잎은 옷에 나 앉았고, 그윽한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다. 그러면 술독에서 빚어 놓은 술을 퍼 잔 가득히 부어 마셨다. 취기가 한껏 들면 책상에 기댄 채 피리를 불었다. 그 피리소리는 간들어지게 울려 퍼져 멀리까지 번졌다.

옥영은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 “첩은 오래 전부터 아녀자들이 시를 읊는 것을 못 마땅해 했어요. 그렇지만 이런 정경에 이르러선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요.”

최척이 / “어디 부인이 한 수 읊어보오.” / 하니, 옥영은 칠언절귀 한 수를 읊었다.

왕자교 통소 불 제 달은 나지막하고 公子吹簫月欲低(공자취소월욕저)

바닷빛 파란 하늘엔 이슬이 자욱하네. 碧天如海露凄凄(벽천여해노처처)

푸른 난새 함께 타고 날아가리니 會須共御靑鸞去(회슈공어청난게)

봉래산 안개 속에서도 길 잃지 않으리. 蓬島烟霞路不迷(봉도연해노불미)

최척은 이제까지 시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부인이 읊은 시를 듣고 크게 놀랐다. 너무나 감동해 시흥이 절로 솟았다. 화답의 시를 읊었다.

요대(瑤臺)는 멀고 아득한데, 새벽 구름은 붉게 물들었네. 瑤臺縹緲曉雲紅(요대표묘효운홍)

이제도 남은 소리 공산을 채우니 달이 떨어지네. 吹徹鸞簫曲未終(취철난소곡미종)

난조 날게 한 피리소리 아직도 다할 수 없는데. 餘響滿空山月落(여향이만공산월낙)

뜰에 가득한 꽃 그림자 향기로운 바람에 흔들리네. 一庭花影動香風(일정회영동향풍)

읊기를 마치자 옥영은 몹시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도 오래가지 못할 것을 지레 짐작하고 눈물을 뿌리며 말했다.

“세상살이에는 불의의 변고가 많사옵니다. 좋은 일에는 반드시 마(魔-악귀, 재앙)가 끼어들기 마련이옵고 헤어지고 만남의 무상할 것이오니, 어찌 마음이 슬퍼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최척은 부인의 눈물을 소매로 훔쳐주며 위로했다.

“굴신(屈伸-굽힘과 폄)과 영허(盈虛-차는 일과 이지러지는 일)는 천도(天道)의 상리(常理)요.(길흉화복은 하늘의 이치임) 길흉(吉凶)과 회린(悔吝-후회와 한탄)은 인사(人事)이니 매여 살 필요가 없지 않겠소. 그러니 너무 슬퍼하거나 근심하지 마오. 옛사람이 말하되 길(吉)한 말만 하고 흉(凶)한 말은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듯이 부질없는 마음을 써 이 즐거운 마음을 상하게 할 것까지야 없지 않으오.”

 

[지문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이로부터 부부의 사랑은 나날이 깊어갔다. 이들 부부는 지음(知音)이라고 자처하면서 하루도 떨어져 있는 일이 없었다. 정유년(丁酉年) 8월이었다. 왜적이 남원 고을로 쳐들어와 성을 함락시켰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산 속으로 피난했다. 최척의 가솔(家率)은 지리산(智異山) 연곡(燕谷) 깊숙이 피난했다. 난리 통이라 인심이 흉흉했다. 어디서 무슨 변을 당할지 몰랐다. ⓐ최척은 옥영 더러 남장을 하라고 일렀다. 남복을 입으니 아무도 여자인 줄 짐작 못 했다.

산 속으로 피난 온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이미 가져온 양식은 동이 났다. 식솔이 굶주리게 되었다. 최척은 장정 서너 명과 작당하여 산 속을 벗어났다. 양식을 구하는 길에 적세(敵勢-적의 형세)를 살피면서 구례(求禮)까지 갔었다. 그곳에서 갑자기 적병을 만났다. 그들은 몸을 신속히 날려 바위틈에 숨었다. 적병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왜적들은 곧장 지리산 연곡으로 쳐들어갔다. 적들은 피난 나온 사람들을 남김없이 잡아끌고 갔다.

최척은 길이 막혀 거동을 할 수 없었다. 사흘이 애타게 지나갔다. 그는 적병이 물러간 다음에 연곡으로 급히 달려갔다. 연곡은 이미 생지옥이었다. 처참했다. 시체는 산골짜기마다 내동댕이쳐 있었고, 유혈이 내를 이뤘다. 혈안이 되어 식솔을 찾는 그때였다. 숲 속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노약한 몇 사람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고 있었다. 그 중 다소 성한 사람이 최척을 알아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적병이 이곳으로 쳐들어 왔었다네. 재화를 약탈하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지. 젊은 여자들은 섬강(蟾江)으로 끌고 갔네.

ⓑ최척은 주먹을 불끈 쥐고 대성통곡했다. 땅을 치며 피를 토했다. 이윽고 그는 섬강으로 달려갔다. 얼마 못 가서 흩어진 시체 속에서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 소리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가서 보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시뻘건 선지피가 온 얼굴을 감싸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최척은 옷을 살펴보았다. 어딘가 낯이 익은 것만 같았다. 크게 소리쳐 불렀다. / “네가 혹 춘생이 아니냐?”

춘생은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눈을 떴다. 그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다 기어드는 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오, 서방님! 아씨가 적병에 잡혀갔어요. 저 저도 붙잡혀 따라가다가, 따라가지 못하니, 칼로 찔렀어요. 칼 맞은 지 한 나절만에 겨우 사 살아났으며, 드 등에 업힌 아기의 새 생사를 아 알……”

말을 다하지 못하고, 숨이 넘어갔다. 최척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발로는 땅을 차면서 통곡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얼마가 지나 정신이 들었다. 또 기운을 차려 섬강으로 달려갔다. 섬강으로 가보니, 강둑에는 칼 맞은 시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자세히 살려보니, 연곡으로 피난 왔던 사람들이었다. 최척은 더 이상 기대를 걸 수 없었다. 그는 실성하여 통곡하며 시체 속을 누볐다. 그는 마침내 자살하려고 강가로 갔다. 막 물로 뛰어들려는 찰나. 어떤 사람이 옷을 잡으며 / “ 이 난리 통에 당신 같은 이가 한 사람뿐인가? 그럴수록 용기백배해야지.” / 하고 말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지도 못하고 식솔을 찾아 강둑을 사흘이나 밤낮으로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그는 기진맥진해서 옛 집으로 돌아갔다. 집은 적화(賊火)에 다 타버렸다. 무너진 담장과 깨진 기왓장만이 흩어져 있었다. 한 곳엔 피난가지 못하고 적병에게 붙들려 죽은 사람의 뼈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전재의 참상과 백성의 고통) 발을 옮겨 놓을 만한 틈새가 없었다. 최척은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금교(金橋) 밑을 헤매고 다녔다. 마침내는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어느 날이었다. 홀연히 명장(明將)이 수십 기를 이끌고 성에서 나왔다. 금교 밑에 와 말을 씻고 있었다. 최척은 의병으로 진중에 있을 때, 명나라 병사를 응접하여 수작을 오랫동안 했었다. 그래서 명나라 말을 어는 정도 알고 있었다. 최척은 집도 불타버렸고, 가족마저 잃어버려 몸 하나 의탁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명장을 붙들고 명나라로 들어가 살겠다고 애원했다. 명장은 그의 말을 듣자. 측은히 여겼고, 그 뜻을 동정하여 말했다.

“나는 오총병(吳摠兵)의 천총(千摠) 여유문(余有文)이요. 내 집은 절강(浙江) 요흥부(姚興府)에 있는데, 비록 가난하지만 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끼리 서로 만나 마음껏 즐기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하오, 내 좁은 소견에만 매달려 뜻에 맞는 사람의 청을 어찌 들어주지 않으리오.”

그리고는 말 한 필을 내주었다. 그리고 진중에 함께 유하도록 했다. 최척은 용모가 준수했다. 헤아리고 생각함이 또한 깊었다. 그리고 궁마(弓馬)가 능숙할 뿐만 아니라 문장도 넉넉했다. 그래서 여공(余公)이 지극히 생각해 주었다. 식사도 같이 했고 잠자리에도 함께 들었다. 왜적이 어느 정도 평정되자 오총병은 군사를 이끌고 철수했다. 여공은 최척을 데리고 함께 환국했다. 그는 오총병을 떠나 고향인 요흥부로 가서 살았다.

최척의 마을에 왜적이 습격했을 때였다. 최공과 심씨는 늙고 병들어 피난 갈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적병을 피해 산골짜기에 숨어 있었다. 적병이 물러가자 골짜기를 나왔다. 이 마을 저 마을로 걸식하며 다녔다. 그러다가 연곡사(燕谷寺)에 발길이 닿았다. 그 때 승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째지게 났다. 심씨가 최공을 보며 말했다.

“누구의 아이인지는 모르나 꼭 손자의 울음소리와 같군요.”

그래서 얼마쯤 아기를 돌보다가 옆에 있는 스님에게

“이 아이를 어디서, 어떻게 데려왔습니까?” / 하고 물었다. 혜정이란 스님이 대답했다.

“소승이 쌓여 있는 시체 속에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몹시 불쌍히 여겨 데려왔소이다. 지금 아기의 부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옵니다. ㉮이 아이가 살아난 것은 곧 하늘이 내려 주신 복입니다. 어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최공은 / “정말 부처님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 아이가 어찌 살았겠소.”

하고 극구 사례했다.

그날로 최공은 손자를 데리고 불타버린 집으로 돌아왔다. 심씨와 번갈아 가며 타다 남은 집을 수리해 겨우 비바람을 피하며 살았다.

옥영은 왜병에게 붙잡혀 왜국으로 끌려갔다. 왜병 중에 늙은 병사가 있었다. 비록 글은 배우지 못했지만 부처님을 믿어 그 마음은 자비로웠다. 그는 장사를 생업으로 했다. 그리고 배타기를 익혔다. 그래서 왜정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선주(船主)로 삼아 조선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 늙은 왜병은 옥영을 아껴주었다. 부인을 집으로 데려가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주어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도망치지 않으려니 여겼다. 옥영은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는 직전에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 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배를 내어 도망치려 했으나 감시가 심해 들키곤 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옥영은 웅크리고 있다가 선잠이 들었다. 꿈결에 부처님이 나타나, / ⓒ“나는 만복사의 부처도다. 부인이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반드시 후일이 있을 것이다” / 하고 계시해 주었다. 옥영은 깨어나 그 꿈을 곰곰이 생각했다. 부처님을 굳게 믿어 후일이 있을 것을 기약하고는 자살하려던 뜻을 굽혔다.

이 왜인의 집에는 늙은 아내와 어린 딸이 하나 있을 뿐 아들이 없었다. 늙은 왜인은 옥영을 집에만 있게 했고 바깥출입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옥영은 말했다.

ⓓ“저는 몸이 작은 데다 약골이라 병이 잦습니다. 본국에 있을 때도 장정으로 안 뽑혀 출전도 못했습니다. 단지 바느질과 밥 짓는 것만 배워 다른 일은 전혀 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왜인은 더욱 가상히 여겼다. 아들같이 사랑했다. 이 왜인은 언제나 배를 타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 장사를 나서면 옥영을 배 안에 두고 밥을 짓게 했다. 왜인은 중국 민절지간(閩浙之間)을 왕래하며 장사했다.

그때쯤이었다. 최척은 요흥부에 여공과 함께 형제지의(兄弟之義)를 맺고 살고 있었다. 여공은 매부를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최척은 굳이 사양했다.

ⓔ“나는 집을 적화에 잃고 또한 노부며 약처(弱妻)며 자식의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껏 발상이나 복상도 못하고 있는 처지에 어찌 마음 놓고 아내를 얻어 평안한 생활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뚝 잘라 거절했다. 이후 여공은 두 번 다시 권유하지 않았다. 그 해 겨울이었다. 여공은 마침내 병들어 죽고 말았다. 최척은 더 이상 의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처 없이 방랑의 길로 들어섰다. 각지의 명승고적을 찾아다녔다. 소상강(瀟湘江), 동정호(洞庭湖), 악양루(岳陽樓), 고소대(姑蘇臺) 등을 돌아보며 시를 지어 읊었다. 그는 어느새 이렇게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한세상을 보내겠다는 뜻을 굳혔다. 그러다가 해섬도사(海蟾道士), 왕용(王用)이라는 사람이 청성산(靑城山)에 은거하며 황금연단(黃金煉丹)을 복용하여 백일만에 승천하는 도술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장차 촉땅으로 들어가 도사를 찾아서 배우기를 청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때였다. 다행히도 송우(宋佑)란 사람을 만났다. 그의 집은 항주(杭州) 용금문(湧金門) 안에 있었고, 경사(經史)에는 일가견을 가졌지만 공명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저서(著書)로 생업을 삼았다. 또한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성미였다. 최척은 이 사람과 사귀어 지기(知己)가 되었다. 송공은 최척이 촉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술을 마련해서 찾아왔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얼근히 취한 후였다. 송공이 최척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난세에 백일 승천하는 도술을 누구인들 원치 않으리요, 그러한 이치는 고금을 통하여 없을 뿐만 아니라. 여생이 얼마나 남았다고 그런 마음을 다 먹소, 복식(服食)하기 위하여 굶주림을 참고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할 필요까지야 뭐 있소, 그래 산귀(山鬼)와 더불어 벗하려고 그러는가? 최공은 그러지 말고 나를 따라 배를 타세, 오월(吳越)로 다니면서 비단이나 팔고 차나 팔면서 여생을 보낸다면 이 또한 달인(達人)의 업이 아니겠는가?”

최척은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래서 송공을 따라 항주로 갔다.

 

[문제] 1.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반어적 표현을 통해 풍자의 효과를 높이고 있다.        ② 상징적 소재를 사용해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③ 특정 인물의 처지를 다양한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④ 여러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병치하여 입체감을 주고 있다.

 ⑤ 현재의 장면에 과거의 장면을 삽입하여 인물의 과거사를 밝히고 있다.

 

2.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옥영’이 ‘최척’과 헤어져 왜군에게 포로가 된 원인이 된다.

 ② ⓑ : 절망감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최척’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③ ⓒ :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옥영’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④ ⓓ : ‘옥영’이 ‘돈우’의 배에서 부엌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⑤ ⓔ : ‘최척’은 자신의 처지를 근거로 제시해 상대방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3. <보기>의 [A]와 비교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군담 소설이 많이 창작되었다. 이 중 [A] ‘임진록’과 ‘박씨전’은 전쟁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한 당대 백성들의 참혹한 삶을 다루기보다는 주로 실존했던 인물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허구적(虛構的)·전기적(傳奇的)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인물들은 필연적 사건보다 우연적 사건을 통해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특히, 이 소설들은 적군에게 치욕을 당했던 실제와 달리 조선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허구의 세계에서나마 정신적 위안을 얻고, 나아가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① [A]처럼, 이 글은 전기적 요소를 빈번히 활용해 인물 간의 갈등이 해결되고 있군.

 ② [A]처럼, 이 글은 실존 인물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하여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려 했군.

 ③ [A]처럼, 이 글은 역사적 사실과 달리 조선이 적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설정하였군.

 ④ [A]와 달리, 이 글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 사건에 의해서만 인물이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는군.

 ⑤ [A]와 달리, 이 글은 전쟁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았던 당대 백성의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군.

 

4. ㉮의 상황에 어울리는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천려일실(千慮一失) ② 천신만고(千辛萬苦) ③ 천양지차(天壤之差)  ④ 천우신조(天佑神助) ⑤ 천의무봉(天衣無縫)

                                                                                                                                       <정답> 1④ 2① 3⑤ 4④

[지문4]

그해는 경자년(庚子年-1600) 봄이었다. 최척은 송우와 함께 상선을 타고 안남(安南-베트남)을 왕래했다. 이 항구에는 왜선 10여 척이 열흘 전부터 정박하고 있었다. 때는 4월이라 모두들 노곤하여 곯아 떨어졌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었다. 물빛은 비단같이 아름다웠고, 바람이 자 물결은 잔잔했다. 물결소리조차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잠이 들어 코고는 소리만 높은데. 이따금 물새 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 때 왜선에서 염불(念佛)하는 소리가 매우 구성지게 들려왔다. 최척은 홀로 선창에 기댄 채 신세타령을 했다.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 품속에서 퉁소를 꺼내어 계면조(界面調) 한 곡을 불면서 가슴속에 맺힌 애원(哀怨)한 정을 풀고 있었다.

이 피리소리에 하늘마저 근심스런 빛을 띤 듯했고, 구름과 연기조차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배 안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도 놀라 깨어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슬픈 낯빛을 지었다. 배 안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도 놀라 깨어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슬픈 낯빛을 지었다. 피리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때 왜선에서는 염불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염불소리 대신에 조선어로 칠언절구를 한 수 읊은 소리가 들렸다.

[A]【 왕자교 통소 불 제 달은 나지막하고 / 바닷빛 파란 하늘엔 이슬이 자욱하네.

푸른 난새 함께 타고 날아가리니 / 봉래산 안개 속에서도 길 잃지 않으리.

읊기를 다하자 한숨을 휴 내쉬는 것이었다.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척은 이 시 읊는 소리를 듣고 너무도 뜻밖이어서 들었던 퉁소마저 떨어뜨렸다. 넋을 잃은 듯,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송우가 이상히 여겨, / “자네는 어째서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가?” / 하고 거듭 물어도 대답이 없다. 연해 큰 소리로 묻자, 비로소 최척은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목이 막혀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최척은 잠시 후 마음을 진정시킨 뒤 이렇게 말했다.

“저 시는 내 아내가 지은 시요, 둘만이 알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오. 더욱이 시 읊는 소리가 아내와 흡사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소, 아내가 저 배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니 도저히 그럴 리 없지.”

그리고는 왜적의 습격을 당하여 가족들이 흩어진 내력을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놀라며 이상히 여겼다. 그 속에 두홍(杜洪)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가 젊고 용감한 좀 덤벙대는 선비였다. 그는 최척의 말을 듣자 의기를 나타내 주먹으로 뱃전을 쳤다. 분연(奮然)히 일어서며,

“내가 당장 가서 찾아보겠소.” / 하고 급히 서둘렀다 .송우가 만류하며

“깊은 밤에 일을 꾸몄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두려우니, 내일 아침에 정중히 찾아보는 것이 좋을 거이오.” / 하니 모두들 찬성했다. 그날 밤 최척은 잠 한숨 자지 못했다. 아침을 기다리며 뜬눈으로 날을 밝혔다. 이윽고 동쪽이 밝아왔다. 그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어 배에서 내려왔다. 곧장 언덕으로 내려가 왜선으로 다가갔다. 최척은 조선어로 크게 외쳤다.

“어젯밤 시를 읊은 사람은 틀림없이 조선인일 거요. 나도 조선인이요. 이 머나먼 안남까지 와서 고국 사람을 한번 만나보는 것도 이 또한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옥영은 배 안에서 퉁소소리를 들었었다. 그것은 곧 조선의 곡조요, 또한 옛날에 귀에 익었던 소리였다. 그래서 남편이 그 배에 와 있지 않나 해서 시를 시험 삼아 읊었던 것이었다.(우연성) / 이때 남편이 자기를 찾는 말을 듣자. 옥영은 황망하여 몸둘 바를 몰랐다.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급히 난간을 내려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소리치면서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너무나 감격해 가슴이 막혔다. 심정이 격하여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이 극적인 광경을 보느라고 양국의 뱃사람들이 담장처럼 늘어섰다. 그들은 처음에 친척이나 친구인 줄로만 알다가(옥영이 남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급기야 부부지간이란 것을 알고는 서로 쳐다보며 큰소리로

“이상하고도 기이하도다. 이것은 하늘이 돕고 귀신이 도왔도다. 일찍이 이런 일은 보지 못했는데 정말 기쁜 일이로다.” / 하며 경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최척은 집안 소식을 물었다. 옥영은

“그 때의 저희들은 산중에서 도망하여 강가로 나왔어요. 시아버님과 어머님은 그때까지 무사했어요. 날은 저물고 창황 중에 배를 타느라고 그만 서로 헤어지고 말았어요.” / 하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또 한 번 통곡했다. 이 정경을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송우가 왜인을 청하여 백금 세 덩이를 주며 옥영의 몸값을 내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돈우는 발끈 성을 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사람을 얻은 지 4년이나 흘렀습니다. 그 단정한 거동을 사랑하여 친형제같이 사랑했고, 침식도 함께 하며 잠시도 서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여자인 줄은 미처 몰랐소이다. 이제 이런 해후를 보고 하늘과 귀신마저 감동하거늘 내 비록 완고하고 미련하나 어찌 목석과 같으리오, 어찌 값을 받을 수가 있겠소이까.”

그리고 주머니에서 열 냥의 은자를 꺼내어 옥영에게 주며 말했다.

“4년 동안이나 동거하다가 하루아침에 이별하게 되니 슬픈 심정을 참을 수 없구려. 잃었던 남편을 만리 바다 밖에서 다시 만난 것은 이 세상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요. 내가 욕심을 내어 쩨쩨하게 군다면 하늘이 벌할 것이오. 부인은 남편에게 돌아가 부디 몸조심하고 행복하게 사시오.” / 옥영은 두 손을 맞들어 올려 인사하고 이렇게 말했다.

“주인어른의 도움을 입어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서 남편을 만났으니, 그 베푼 은혜가 이미 깊사옵니다. 더욱이 이렇게 많은 돈까지 주시니 어떻게 보답할 길을 모르겠사옵니다.”

하고 치사했다.

최척도 돈우에게 극구 사례했다. 그는 옥영을 데리고 배로 돌아왔다. 이웃 배에서 모두들 찾아와 채단(綵緞-비단)과 금은(金銀)을 주며 축하했다. 최척과 옥영은 그 사례를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송우는 최척의 부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집 한 칸을 마련해 주었다. 그들 부부로 하여금 평안히 살게 해 주었다.

 

[문제] 1. 위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① 최척은 무역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다.                   ② 송우는 최척에게 통소를 불도록 하였다.

 ③ 최척은 옥영을 찾기 위해 안남으로 왔다.                ④ 두홍은 최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⑤ 돈우는 지금까지 옥영이 여자임을 알지 못했다.

 

2. [A]의 기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등장인물의 심리적 정황을 나타낸다.                     ② 등장인물의 풍류적 기질을 드러낸다.

 ③ 등장인물의 호탕한 성격을 드러낸다.                     ④ 등장인물의 위기를 예고하는 복선이 된다.

 ⑤ 등장인물 간의 대립을 해결하는 계기가 된다.

 

3. <보기>를 바탕으로 위 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보기> 이 작품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애정 문제, 가족의 헤어짐, 재회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이민족에 대한 적개심을 북돋우면서 민족적 영웅의 활약상을 통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고자 창작된 것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민족적 영웅도, 무용담(武勇談)도 없다. 전쟁으로 인한 당대 백성들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극복 과정을 사실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① 극한의 고통 속에서 인간이 견뎌 낼 수 있는 힘은 조국애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군.

 ② 위기 상황에서는 한 사람의 영웅보다는 뜻을 같이하는 민중의 연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군.

 ③ 전쟁의 비극적 참상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전쟁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을 드러낸 작품이군.

 ④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끝내 가족을 찾아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진하고 끈질긴 가족애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군.

 ⑤ 전쟁의 고통을 극복하고 부강한 국가 건설을 위해 이기주의에서 탈피하여 이웃과 사회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군.

 

4. ㉠에 해당하는 한자 성어로 묶인 것은?

 ① 천우신조(天佑神助), 전대미문(前代未聞)        ② 천우신조(天佑神助), 전인미답(前人未踏)

 ③ 천재일우(千載一遇), 전전반측(輾轉反側)        ④ 천재일우(千載一遇), 전화위복(轉禍爲福)

 ⑤ 천재지변(天災地變), 전전긍긍(戰戰兢兢)

                                                                                                                             <정답> 1⑤ 2① 3④ 4①

[지문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최척은 옥영을 데리고 배로 돌아왔다. 이웃 배에서 모두들 찾아와 채단(綵緞-비단)과 금은(金銀)을 주며 축하했다. 최척과 옥영은 그 사례를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송우는 최척의 부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집 한 칸을 마련해 주었다. 그들 부부로 하여금 평안히 살게 해 주었다. 최척은 난중에 잃었던 아내를 찾아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만리타국이라 의탁할 것이 없었으며, 사방을 돌아봐도 친척 하나 없었다. 더욱이 늙은 아버지와 어린 자식의 생사를 생각하여 밤낮으로 상심했다. 근심 걱정이 끊어질 날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만 기원했다.

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옥영은 또 아들을 낳았다. 해산을 하던 날 밤,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서, / “아기를 낳으면 이번에도 등에 붉은 점이 있으리라

하고 계시했다. 과연 아기의 등에는 큼직한 붉은 점이 있었다.(전기적(傳奇的)) 부부는 몽석이가 다시 태어난 듯이 여겨 몽선(夢仙)으로 이름 지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염원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세월은 흘러만 갔다. 몽선이도 점점 자랐다. 장성하여 현부(賢婦)를 구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시간의 비약적 흐름)

이웃에 진가(陣家)의 딸이 살고 있었다. 이름을 홍도(紅桃)라고 하였다. 돌이 되기도 전에 홍도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 진위경(陳偉慶)은 유총병(劉摠兵)을 따라 조선으로 출전한 뒤 소식이 없었다. 어머니는 홍도가 다 자라기도 전에 돌아갔다. 그래서 이모부(姨母夫) 밑에서 자랐다. 장성하자, 그녀는 아버지가 이역(異域)에서 전사했음을 알고 몹시 가슴 아파했다. 얼굴도 모른 채 아버지를 잃어 더욱 상심했다.

그녀는 한 번이라도 부친이 돌아가신 나라에 가보기를 원했다. 그녀는 오래도록 맺힌 한을 품고 가슴에 소원을 새겨두었다. 그러나 아녀자의 몸이라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차였다. 조선 사람 몽선이 아내를 얻으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모부에게, / “저는 최가의 아내가 되어 한번 동국(東國)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하고 의견을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모부는 그녀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 난 터에 곧 최척을 찾아갔다. 찾아온 내력을 이야기했다. 최척 부부는, / “여자로서 그 뜻이 이와 같으니 매우 가상한 일입니다.” / 하고 마침내 홍도를 며느리로 맞이했다.(국제결혼)

며느리를 맞이한 이듬해, 기미년(己未年)이었다.

누르하치가 군사를 몰아 요양(療陽)으로 쳐들어왔다. 요양은 적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요양이 적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는 대로했다. 그래서 천하의 병마를 동원하여 이를 평정하려 했다. 이때 소주인(蘇州人) 오세영(吳世英)은 유격백총(遊擊百摠)이 되어 출전했다. 그는 최척의 재용(材勇-재주와 용기)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기를 삼아 진중으로 뽑아갔다.

출전하는 날이었다. 옥영이 떠나는 남편의 손목을 잡고 작별을 서러워하며 말했다.

첩이 박명하여 일찍이 난리를 만난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이 도와 낭군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래서 끊어진 거문고 줄을 잇고 깨진 거울을 원상태로 둥글게 해 새로운 인연을 맺었사옵니다. 더욱이 늙어서 의탁할 아들까지 얻어 즐거움을 함께 나누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흐느껴 울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이나 눈물짓다가 다시 말했다.

……지난 일을 돌아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항상 저는 이 몸이 먼저 죽어 낭군님의 은혜에 보답하려 하였사옵니다. 뜻밖에도 늘그막에 이르러 삼상(參商-삼성(參星)과 상성(商星). 동시에 볼 수 없는 별이기에 이별의 상징임)의 이별을 하게 되니 이 무슨 얄궂은 운명입니까. 이제 수만 리 밖인 요양으로 가신다면 살아 돌아오기 어려우니, 어찌 다시 만날 기약인들 할 수 있겠습니까. 작별하는 이 마당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나이다. 그래서 낭군님께옵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없애오며, 이 첩이 주야로 겪는 괴로움을 덜까 하나이다. 부디 떠나시는 낭군님은 천만 번 몸을 보중하옵소서. 저는 이로 영결(永訣)하겠어요.”

옥영은 품에 지닌 장도칼을 꺼내어 목을 찌르려 했다. 최척은 황급히 칼을 뺏으며 말했다.

하찮은 오랑캐 무리가 감히 대국과 대적하였으니 자승자박(自繩自縛)이 아니겠소. 왕사(王師)가 한번 나아가면 달걀을 바위로 치는 것과 마찬가지요. 출전하는 이 사람에게 괴로움만 더할 뿐이니, 망령된 짓은 아예 하지 마오. 내가 하루 속히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술잔을 기울여 축하나 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이제 몽선이도 성장해서 얼마든지 의탁할 수 있지 않소. 효성이 지극해 모친을 잘 모실 것이거늘, 다른 일도 아닌 싸움터에 나가는 이 사람에게 그런 근심은 주지 마오.” / 드디어 행장을 수습하여 요양으로 떠나갔다.

 

1. 윗글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부모의 개입 없이 배우자 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인공의 능력을 알고 있는 인물이 제시되어 있다.

이웃의 도움으로 주인공은 고향에 무사히 정착하고 있다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감한 인물들이 이에 대비하고 있다.

자신보다 관직이 높은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2. <보기>와 관련지어 윗글을 감상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최척전은 우연성과 비현실성을 띤 사건을 활용하거나 운명론적 세계관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전 소설의 문학적 관습을 따르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을 창조하는 데 있어 새로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다른 소설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인물들은 전기적(傳奇的) 요소에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또한 전쟁에서 공을 세워 나라를 구하는 전형적 인물형에서 벗어나 있다. 작품의 무대가 조선, 일본, 중국으로 확장되어 있으며 조선인 몽선과 중국 여인 홍도의 결연은 다른 고전 소설에서 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 만하다.

 

옥영최척과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던 끝에 얄궂은 운명을 탓한다는 것에서 고전 소설의 문학적 관습을 확인할 수 있겠군.

옥영의 두 번째 아들이 꿈의 계시대로 특유의 신체적 특징을 보이는 것은 비현실적 요소를 활용하여 사건을 전개한 것으로 볼 수 있겠군.

몽선과의 혼인을 통해서라도 아버지가 전사한 조선에 가 보려고 하는 홍도에게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겠군.

옥영에게 공을 세우겠다는 다짐 대신에 자신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기다리라고 부탁하는 최척은 고전 소설의 전형적 인물형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겠군.

최척옥영이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는 작품의 무대가 동아시아로 확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 다른 소설들과 비슷한 문학적 설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군.

                                                                                                                                                                  <정답> 1②   2

[문제]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최척이 먼 길을 떠나게 되자 옥영은 최척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의 말을 건넸다.

[A]제 운명이 기박하여 일찍이 재앙을 겪었으나, 천신만고 끝에 구사일생 목숨을 건지고 하늘의 도움으로 낭군을 다시 만날 수 있었지요. 끊어진 거문고 줄이 다시 이어지고 반쪽으로 나뉘었던 거울이 다시 합해진 것처럼 우리 부부의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이어져 다행히도 제사를 맡아 줄 아들까지 얻었어요. 함께 살며 기쁨을 나눈 지 스무 해가 넘었으니, 지난날을 생각하면 죽어도 한이 없답니다. 제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가서 서방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늘 가져 왔는데, 뜻밖에도 늙어가는 나이에 또다시 이별을 하게 되었군요. 여기서 요양까지는 수만 리 거리라 살아서 돌아오기 쉽지 않을 테니 어찌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할 수 있겠어요? 보잘것없는 제 한 목숨, 서방님과 헤어지는 마당에 자결하여 한편으로는 저에게 연 연하는 서방님의 마음을 끊고, 한편으로는 밤낮으로 느낄 제 고통을 없애 버리고자 합니다. 서방님, 잘 가세요! 이제 영영 이별이군요!”

옥영은 말을 끝내고 통곡하더니 칼을 뽑아 제 목에 갖다 댔다.

최척이 칼을 빼앗고 아내를 달랬다.

[B]그까짓 오랑캐 무리가 감히 대국(大國)의 상대가 될 수 있겠소? 이제 황제의 군대가 출정하니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처럼 깨뜨려 버릴 수 있을 거요. 군대를 따라 오랫동안 오가는 것이 좀 괴롭긴 하나 그처럼 헛된 걱정을 할 건 없소. 내가 공을 이루고 돌아오면 함께 술잔을 나누며 축하하도록 합시다. 더구나 몽선이 늠름하게 자라 당신이 기댈 만하지 않소? 아무쪼록 밥이나 잘 먹고, 길 떠나는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지 말구려.”

마침내 최척은 짐을 꾸려 떠났다.

요양에 도착하여 수백 리 오랑캐 땅을 지나, 조선의 군대와 나란히 우모채에 진을 쳤다. 하지만 명나라 장수가 후금의 군대를 얕본 탓에 대패하고 말았다. 누르하치는 명나라 군사들을 남김없이 죽인 반면, 조선 군사들은 한편으로 위협하고 한편으로 어르면서 단 한 사람도 살상하지 않았다. < 중략 >

이때 최척의 장남인 몽석은 남원에서 무학(武學)으로 군대에 차출되어 원수 강홍립의 휘하에 있었다. 누르하치는 항복한 조선 병사들을 나누어 가두었는데, 마침 최척과 몽석이 한곳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마주하고도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몽석은 최척의 조선말이 어설픈 것을 보고, 본래 명나라 병사 중에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이가 후금 군대에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조선 사람 행세를 하는가 보다 여겼다. 몽석이 의심스러운 마음에 최척에게 사는 곳을 캐묻자, 최척은 최척대로 후금의 첩자가 실상을 캐내려는 게 아닐까 의심하여 어떤 때는 전라도라고 했다가 어떤 때는 충청도라고도 하며 얼렁뚱땅 말을 둘러댔다. 몽석은 이상히 여겼으나 최척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며칠 지내는 동안 두 사람이 차츰 친해지고 서로의 처지를 가련히 여기게 되면서 의심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최척은 자신이 겪어 온 일을 사실대로 몽석에게 말해 주었다. 몽석은 최척의 말을 들으면서 안색이 바뀌고 속으로 놀라며, 반신반의하는 상태에서 최척의 죽은 아들 나이가 몇이며 신체상의 특징이 있는지 물었다. 최척이 이렇게 대답했다.

갑오년(1594) 10월에 태어나 정유년(1597) 8월에 죽었소. 등에 아이 손바닥만한 붉은 점이 있었다오.”

몽석이 놀라 말을 잇지 못하더니 웃통을 벗고 제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바로 그 아들이옵니다!”

최척은 그제야 비로소 눈앞에 있는 청년이 자기 아들임을 알아차렸다. 두 사람은 각각 자기 부모의 안부를 물은 뒤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말을 주고받다가 껴안고 울기를 며칠 동안이나 계속했다.

오랑캐 노인 한 사람이 수시로 와서 감시했는데, 최척 부자의 말을 알아듣는 듯 불쌍히 여기는 빛이 있었다. 하루는 뭇 오랑캐들이 모두 밖에 나가 있을 때 노인이 남몰래 최척이 있는 방에 들어와 앉더니 조선말로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이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을 보니 처음 여기 오던 때와는 뭔가 다른 듯하다. 무슨 일이 있는 게냐? 들어 보고 싶다.”

최척 부자는 화를 당할까 싶어 곧이곧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나도 본래는 평안도 삭주에서 병사로 있었다. 고을 부사의 가렴주구가 너무 괴로워 온 가족이 오랑캐 땅에 들어와 산 지 벌써 십 년이다. 와 보니 이곳 사람들은 성품이 정직하고 가렴주구도 일삼지 않더라. 인생이란 아침 이슬처럼 덧없는 것인데, 벼슬아치들의 매질에 시달리며 움츠리고 살 이유가 뭐 있겠나? 누르하치는 내게 정예 병사 팔십 명을 주며 조선 사람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했지. 그런데 지금 너희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내 비록 누르하치에게 질책을 받겠지만 어찌 너희들을 놓아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

노인은 이튿날 식량을 주면서, 자기 아들더러 샛길을 일러 주게 하여 최척 부자를 달아나게 했다.

 

1. [A][B]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A][B]는 모두 자신의 삶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A][B]는 모두 동정심에 호소하며 협조를 구하고 있다.

[B]와 달리 [A]는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부간의 사랑을 조화시키려 하고 있다.

[A]와 달리 [B]는 긍정적인 전망을 통해 상대를 위로하고 있다.

[A]에는 절박함을 가장하는 심리가, [B]에는 득의양양한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2.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최척전1619년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후금에게 격파된 사르후 전투 같은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이야기 속에 담고 있으며,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만주 등 동아시아로 공간적 배경을 확장하여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이산과 재회, 당대 민중들의 고통을 복합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이 작품의 부수적 인물 대부분은 당대의 현실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로, 이들을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적재적소에 배치한 점이 인상적이다.

 

최척과 몽석이 서로 부자 관계임을 확인하는 것은 가족의 재회로 볼 수 있겠군.

최척이 옥영의 곁을 떠나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당대 가족들의 이산을 보여 주는군.

조선과 명나라의 군대가 후금의 군대에게 패배한 것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 속에서 다룬 것이군.

노인은 당대 민중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인물로,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최척 부자의 탈출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군.

누르하치가 명나라 군사들은 죽이고 조선 군사들은 살려 준 것은 공간적 배경을 만주에서 새로운 곳으로 확장하는 소설적 장치로 볼 수 있군.

 

3. <보기>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선생님 : 최척전<자료 1 >의 첫 번째 경향에 해당하는 작품이지요. 그런데 윗글을 <자료 2>처럼 고치면 <자료 1>의 두 번째 경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럼, 아래의 <자료 2>를 참조하여 에 들어갈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자료 1>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을 소재로 한 고전 소설

첫 번째 경향

두 번째 경향

패전이 남긴 상처나 후유증을 사실적으로 다루어 비판과 성찰의 계기가 되도록 한다.

 

<자료 2>

수정한 줄거리: 최척이 후금과의 전투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해서 적군을 크게 무찌르고 항복을 받은 후 조선 병사로 종군한 아들 몽석을 만난다. 그리고 몽석을 데리고 아내인 옥영에게로 돌아가 부부가 기쁨을 누린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켜 합리적인 삶의 방식을 알게 만든다.

전기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이상 세계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결합하여 기존 제도들의 개혁을 추구하게 한다.

소설 속에서나마 현실과 다른 상황을 설정하여 정신적 위안을 얻게 한다.

욕망에 충실하려는 인물과 그것을 억압하는 사회적 환경 사이의 갈등을 부각한다.

 

<정답> 1-[B]에서 최척은 쉽게 이길 수 있는 전쟁이라는 점과 몽선이 성장해 의지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옥영을 위로하고 있다.

2-명나라 군사와 후금의 군사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작품의 공간적 배경을 만주로 확장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누르하치가 명나라 군사들은 죽이고 조선 군사들은 살려 준 것은 최척과 몽석의 재회(가족 간의 재회)를 위한 소설적 장치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 공간적 배경을 만주에서 다시 새로운 곳으로 확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3-이 글을 <자료 2>의 줄거리처럼 고친다면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영웅적 활약을 통해 현실적인 패배를 가상으로나마 보복하고, 주인공 가족의 행복한 해후를 통해 즐거움을 누리는 정신적 위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을 소재로 한 고전 소설의 두 번째 경향은, 전란의 패배를 정신적으로나마 보상받고 싶어 하는 민중들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과 관련 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박씨전이 있다.)

 

요양에 이르러 호지(胡地-오랑캐 땅) 수백 리까지 깊숙이 들어갔다. 명군은 조선 군마와 함께 중모채(中毛寨)에 진을 쳤다. 주장(主將)은 적을 가볍게 보고 싸우다가 전군이 대패했다. 오랑캐들은 명군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조선 군마도 무수히 살상을 당했다.

명나라의 오유격(吳遊擊)은 패졸 10여 명을 이끌고 저선 군영으로 들어가 의탁했다. 조선의 원수(元帥) 강홍립(姜弘立)은 그들을 보살펴 주었다.

최척은 조선인의 덕을 보았다. 게다가 격전 중에 숨어 다니다 샛길로 도망쳐 죽음만은 면할 수 있었다.

종사관 이민연(李民宴)은 적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래서 오랑캐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강원수의 진지를 염탐해서 적에게 고자질했다. 오랑캐가 일시에 쳐들어왔다. 강홍립의 군사는 적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이때 살아남은 명군은 오랑캐에게 사로잡혔고, 최척도 사로잡힌 몸이 되었다.

조선인의 포로 중에는 몽석이도 끼어 있었다.(우연성) 그는 고향에서 무술을 익히다 종군했다. 바로 강원수의 진중에 있었다. 오랑캐들은 장졸을 분치할 때 명군과 조선인으로 나누었다. 최척은 조선인으로 행세해 몽석과 함께 갇혀 부자가 상봉했으나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몽석은 최척이라는 사람이 조선어에 서툰 것을 알았다. 필시 명군인데 죽음이 두려워 조선인 행세를 하는가 보다고 여겼다. 그래서 고향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최척은 오랑캐의 밀정이 아닌가 해서 횡설수설했다. 전라도라거니, 충청도라거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몽석은 이에 더욱 의심이 부쩍 들었으나 그 심중을 헤아릴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서로 친숙해지고 정이 깊어갔다. 침식도 같이하고 서로의 처지를 동정하게끔 되었다. 서로 숨김이 없는 허심탄회한 사이가 되었다.

최척은 평생 겪은 사연을 숨김없이 털어놨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몽석은 얼굴빛이 여러 번 변했다. 마음이 마냥 떨렸다. 한편으로는 믿어지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의심이 부쩍 났다. 그래서 몽석은 / “그렇다면 잃었던 아들의 나이가 몇이며, 신체에는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생각나십니까?” / 하고 불쑥 물었다. 최척은 웬일인가고 이상히 여기며 대답했다.

“갑오년 10월에 나서 정유년 8월에 잃었다오, 등에는 붉은 점이 있는데, 어린아이 손바닥만하오.” / 이 말을 들은 몽석은 넋을 잃고 쓰러졌다. 이윽고 일어나며 옷을 벗고 등을 돌려대며, / “저는 대인의 유체(遺體-자식, 아들)이옵니다.” / 했다. 최척도 이때서야 몽석이가 자기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우연성) 부자의 기쁨은 하늘 끝닿는 줄을 몰랐다. 서로 얼싸 안고 오랫동안 울었다. 더욱이 부모가 구존(俱存-살아계심)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할 수 없이 기뻐했다.

포로를 감시하는 오랑캐 병사는 자주 드나들다 이런 사정을 알고는 불쌍히 여기는 빛이 완연했다. 하루는 오랑캐들이 다 나갔다. 그 늙은 오랑캐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최척을 몰래 불러내어 자리를 같이했다. 조선어로 물었다.

“당신들이 우는 것이 처음과 다르니, 어떤 내력이 있소? 내 듣기 원하니 들려주시오”

그러나 최척은 어떤 변을 당할지 몰라 망설였다. 늙은 오랑캐는 말했다.

“나를 두려워하지 마오. 나는 원래 삭주의 토병이었소, 부사의 학정이 심해 견딜 수가 없어서 가족을 데리고 오랑캐 땅으로 들어와 산 지가 이미 10년이나 지났소. 오랑캐들은 솔직하고 학정이 없소, 인생이 아침 이슬과 같을진대 굳이 고초를 받으며 살 것까지야 어디 있겠소. 오랑캐의 추장이 80여 명의 정병을 주어 나로 하여금 초로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케 하고 있다오, 내가 당신들의 사정 여하에 따라 비록 추장에게 문책을 당하더라도 보내줄까 하니, 숨김없이 사정을 이야기해 보오.”

그래서 최척은 마음 놓고 지나온 사연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늙은 오랑캐는 무릎을 치며 몹시 딱하게 여겼다. 백방으로 탈출구를 모색해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이튿날 새벽이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틈을 탔다. 그 늙은 오랑캐는 양식을 마련해 주며 떠나가도록 주선해 주었다.(비현실성) 자식을 시켜 샛길을 가리켜 주기까지 해서 무사히 탈출시켰다.

이래서 최척은 아들과 함께 20년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 부친과 장모를 만날 생각으로 마음은 조급하기 짝이 없었다. 남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등창까지 나 치료를 하며 은진까지 왔다. 그러나 등창이 도져서 더 이상 길을 갈 수가 없었다. 급기야 여관을 찾아들었으나 병이 더해 죽게 되었다.

몽석은 어찌 할 줄 몰랐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돌아다녔으나 침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때 명인 진위경이 숨어 다니며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에 이 여관에 묵게 되었다. 그는 최척의 병이 위독함을 보고,

“굉장히 위독하오, 오늘이나 넘길까 생명을 건질 수가 없을 것이요.”

하며 주머니에서 침을 뽑아 등창의 고름을 땄다. 그 날로 병은 차도가 있었다. 이틀이 지났다. 지팡이를 짚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안에 들어서니 모두들 놀라 기절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온 것만 같았다. 부자가 부둥켜안고 한바탕 흐느껴 울었다.

심씨는 딸을 잃은 후로 넋 나간 사람이 되다시피 했다. 다만 몽석이만 의지하고 살다가 그마저 전쟁터에 끌려 나가 소식이 없어 상심하다 못해 병상에 누운 지 두어 달이 지났다. 심씨는 사위와 외손자가 함께 돌아온 후 무엇보다 궁금한 딸의 생사를 물었다. 살아 있다는 소리를 듣자 딸의 이름을 부르며 미친 듯이 울어대는데 슬픔인지 기쁨인지 알 수 없었다.

몽석은 명인이 아버지의 죽을 목숨을 살려주자 몹시 감격했다. 그래서 함께 데려와 그 은혜를 갚으려고 했다. 어느 정도 기쁨이 가시자 명인을 불러 함께 자리를 했다. 최척이 물었다.

“당신이 명나라 사람이라면 그래 집은 어디 있소,”

“제 고향은 항주 용금문 안이오, 만력 25년 유도독 휘하로 종군해서 조선으로 왔었소, 전라도 순천에 와 진을 치고 있을 때였소, 하루는 적세를 염탐하러 나갔다가 주장의 뜻을 거스르고 군법을 어겼소. 밤중에 도망쳐 나왔는데,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이곳에 머물고 있소.” / 최척은 그의 고향이 용금문 안이라는 말을 듣고 놀랍고 반가와,

“당신의 고향에는 부모와 처자가 있소,” / 하고 물었다.

“고향에는 아내가 있었소, 내가 출정하기 전에 한 딸을 두었소, 겨우 두 달 된 것을 떠나와 소식을 모른다오.” / 최척은 다시 / “그렇다면 딸의 이름을 알고 있소?” / 하고 물었다.

“아이를 낳는 날, 이웃 사람이 귀한 복숭아를 갖다 주어 이름을 홍도라 지었소.”(우연성-우연성 중에서도 갑인걸~~~, 둘째 아들 몽선의 아내이름이네. 그럼 사돈지간이 되고~~~)

최척은 진위경의 손을 덥썩 잡고 말했다.

“정녕 이상한 인연이외다. 제가 항주에 있을 때 진공의 집과 이웃해 살고 있었소. 진공의 부인은 신해년에 병들어 돌아갔다고 들었소, 홀로 남은 홍도는 이모부인 오봉림의 집에서 자라났소이다. 제 아들이 성장하여 며느리로 맞이했소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사돈지간이 만날 줄을 정녕 몰랐구려.”

이에 진공도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편으로는 기구한 운명을 탄식하기도 했다.

한편, 옥영

“외로운 시아버님, 어머님이며, 어린 아들을 왜란에 모두 잃고 그 생사조차 알지 못하니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구나. 요새 상인들의 말을 들으니, 왜적이 잡아간 조선사람을 본국으로 돌려보낸다더구나. 이 말이 사실이라면 어찌 한 사람이라도 살아 돌아오지 않겠느냐, 네 조부와 비록 이역 땅에서 죽어 백골이 비바람에 굴러다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선을 누가 돌보겠느냐. 원근 친척들이 난리에 다 죽었다 한들 어찌 한 사람도 살아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고국으로 돌아가자꾸나.” / “네? 고국으로 돌아간다니요?”

“그렇다 너는 배를 사서 준비해라. 여기서 조선까지는 수로로 수천 리나 되지만 순풍에 돛만 달면 한 달이 못 되어 고국 바닷가에 닿을 것이다. 이미 내 마음은 결정됐다.”

이에 몽선은 울며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어머님은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닿기만 한다면야 그 얼마나 다행이겠어요. 그렇다고 만리창파 험한 바다를 작은 배로는 건널 수 없어요. 풍파하며 교룡과 상어의 습격을 예측할 수 없나이다. 더구나 해적들이 도처에서 떼 지어 출몰하니, 어복에 장사 지내기 십상입니다.(물에 빠져 죽기가 쉽다는 뜻) 어찌하여 생사도 확실히 모르는 아버님만을 생각하셔 이런 결정을 내리셨어요. 자식이 비록 어리석으나 큰일을 앞두고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홍도가 옆에서 남편의 말을 막으며, / “너무 어머님을 탓하지 마셔요. 어머님의 마음은 이미 결정됐으니 아무 말씀도 마셔요. 비록 수화(水禍)나 해적을 만난다 하더라도 능히 면할 수 있을 거예요.” / 하고 말했다.

옥영은 며느리의 말을 듣고 나서 말했다.

“수로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내 일찍이 많은 경험을 얻었다. 일본에 잡혀 있을 때다. 장사하는 주인을 따라 봄이면 민경지방으로 가을에는 유구로 다니며 배를 탔다. 산 같은 파도 속에서도 헤어났고 조수의 흐름도 알 수 있다. 선박의 안위며 풍파 험난도 내가 다 해낼 것이다. 아무리 불행한 일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어찌 벗어날 방편이 없겠느냐.”

이어서 조선옷과 일본 옷을 만들었다. 며느리로 하여금 양국의 언어를 배우도록 했다. 그리고 몽선에게 주의하기를.

“배는 오로지 돛대와 노에 달려있으니 견고하게 만들어라. 그리고 지남철은 없어서 안 되는 것이니 꼭 마련하도록 해라. 떠날 날은 정해졌으니 내 뜻을 어기지 말아라.” 했다.

몽선은 어머니 앞을 물러나오자 아내를 책망했다.

“어머님은 여생을 돌보지 않고 만 번 죽을 곳으로만 가시려고 하시니……돌아가신 아버님은 그만이거니와 살아있는 어머님마저 어느 땅에 묻고 싶어서 찬성하는 거요? 어찌 생각이 그리도 깊지 못하오.”

“어머님은 지성으로 계획하신 것입니다. 말로만 다툴 수는 없는 것 아니어요. 이제 만류한다 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될까봐 찬성했어요. 순순히 따라 나서는 것이 좋아요. 제 근심스런 심정이야 오죽 하겠어요.”

 

[지문6] 그날 늦은 저녁에 예상치도 못한 마파람이 심하게 불어왔다. 검푸른 파도가 배보다 높이 솟아올랐고 순식간에 안개가 사방으로 번져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배를 뒤흔드는 바람에 돛은 찢어지고 노는 부러져 나갔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뱃길을 헤쳐 나가는 데 노련한 재주를 가진 옥영도 그 상황에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몽선 부부는 놀람과 어지럼증에 시달리느라 배 구석에 처박혀 꼼짝 못하는데 옥영은 이리저리 휘둘리는 몸을 세워가면서 홀로 염불을 외웠다.

‘부처님, 저희에게 갈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 풍랑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거의 부서지기 일보 직전에 놓인 배는 새까만 바닷물과 어둠을 삼키며 어디론가 흘러갔다. 기진맥진한 세 사람은 목표도 없이 떠가는 배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들은 새벽 동이 틀 무렵 어느 작은 섬에 겨우 닿았다. 파손된 배를 고치느라 머물고 있던 어느 날 기이한 모습을 한 배 한 척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옥영은 몽선 내외를 불러 배 안에 남아있는 물건들을 가리지 말고 자루에 담아 바위 동굴로 옮기게 하였다.

몽선 부부가 서둘러 그것들을 다 옮기고 나서 한숨 돌리려는데 그들의 배는 마치 날아온 듯 섬에 닿았다. 그리곤 그 안에서 시꺼먼 뱃사람들이 쏼라대며 쏟아져 나왔다. 말이나 옷차림으로 보아 그들은 조선인이나 일본인은 아니었다. 아마도 중국 어느 변방의 말 같았는데 병기는 지니지 않았으나 저마다 흰 몽둥이를 쳐들고 수리 중인 옥영의 배에 오르더니 화물(貨物-물건)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옥영이 중국말로 말하였다.

“저는 중국 사람입니다. 고기를 잡으려고 바다에 나왔다가 표류하여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뭘 그리 찾으시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 배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표류하는 동안에 다 잃었으니까요.”

옥영의 배에서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그들은 옥영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때리려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더니 해하지는 않고 옥영의 망가진 배를 빼앗아 자기들의 배 뒤꽁무니에 묶어서 끌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나마 망가진 배라도 있을 때에는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배마저 잃자 허탈에 빠진 옥영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마른 울음을 울 뿐이었다. 바위 동굴에 숨어 있던 몽선과 홍도는 뛰어나와서 사시나무 떨 듯 하는 옥영을 끌어안고 위로했다.

[A]【“어머니 걱정 마세요. 우리는 반드시 살아나갈 수 있을 거예요. 이러다가 어머 니의 마음이 상해버린다면 저흰 어떡합니까?”

옥영의 눈동자는 다 풀려있었고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러다가 혼잣말을 하듯 웅얼거렸다.

“저들은 필시 해적들일 게야. 해적들의 거점지가 중국과 조선 사이 어디쯤 있다던데. 그나저나 이 꼴이 뭐냐. 내가 아들의 말을 듣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가 이런 낭패를 당하고 말았으니 면목이 없구나. 이젠 배마저도 없으니 어찌해야 좋을꼬. 날아서 바다를 건널까, 댓이파리에 의지할까, 구름 뗏목이라도 띄울까 흐흐흐흑…….”

바닷가는 순식간에 옥영의 통곡 소리로 그득 찼다. 처량한 그 소리는 겹겹이 밀려드는 파도에 휘말렸다 다시 먼 바다로 쓸려나가곤 하였는데 갈매기들도 그들의 애통함을 아는지 머리 위에서 빙빙 돌며 오래 머물렀다. 한참을 울어댄 옥영은 벌떡 일어서더니 아들 내외가 말릴 새도 없이 절벽으로 마구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바다를 향하여 뛰어내리려 하였으나 급히 뒤쫓아온 몽선의 만류로 주저앉고 말았다.

[B]【“얘들아, 나는 죄인이니 말리지 말거라. 자루에 남아 있는 식량으로는 사흘 정도밖엔 못 버틴다. 쓸모없는 늙은이가 어찌 그 귀한 식량을 축내고 있겠느냐.”

“어머니, 우리가 떠나오기 전에 이런 말씀 하셨지요? 설혹 불행한 일을 당한다 해도 벗어날 방도가 어찌 없겠느냐고 말입니다. 어머니, 죽는 것은 식량이 다 떨어진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만약 그 사이에 살아날 길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그 얼마나 후회막급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다른 생각은 마십시오. 어머니가 정히 그러시겠다면 저희도 같이 죽겠습니다.”

옥영은 몽선과 홍도의 간절한 설득에 자신의 뜻을 접고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 바위 동굴에서 잠을 이루었다. 어느덧 새벽 바다에 해의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곧이어 바다 밑에서부터 솟아오른 거대한 붉은 꽃잎이 서서히 온 세상을 끌어안아 가는 광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옥영은 아들 내외를 돌아보며 조용히 말하였다.

“얘들아, 내가 기진맥진한 채 잠이 들어서 그랬는지 꿈속에서도 마냥 방황을 하지 않았겠느냐. 그런데 장육금불께서 또 모습을 드러내셨구나.”

그러자 홍도가 몸을 반쯤 일으키며 물었다. / “이번에는 뭐라 하시던가요?”

“그 분께서는 ‘죽으려 하지 말거라, 잘 살아 남는다면 훗날에 좋은 일을 보게 될 것이니라.’ 라고 하시더라. 참 이상도 하시지.”

세 사람은 둘러앉아 정성을 다하여 염불을 외며 발원을 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저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구렁에서 구해주소서.”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부드러운 봄바람을 가르며 큰 돛을 단 배 한 척이 섬 앞을 지나가고 있는 게 보였다. 몽선이 깜짝 놀라 어머니를 불러 보게 하였다. 손 차양을 하고서 지켜보던 옥영은 밝게 웃음을 지었다. / “깃발이나 배 모양새로 보아 저것은 조선 배가 틀림없다. 우리에게 살 길이 열린 것 같구나.”

그들은 서둘러 조선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몽선이 높은 데로 올라가 소리소리 지르며 양팔로 옷가지를 흔들어댔는데 다행히도 그러한 모습이 눈에 띄었던지 그 배는 몸체를 돌려서 그들이 있는 섬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1. 위 글의 내용을 ‘옥영’을 중심으로 <보기>와 같이 정리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 기〉

고난 - 자연적인 재난을 만나 곤경을 빠짐 ----①

       - 위해를 가하는 무리와 만남 ---------②

반응 - 자책하여 자포자기에 빠짐 ----------③

극복 - 가족애를 통하여 마음을 바꿈 -------④

       -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함 ----------⑤

 

2. <보기>는 ㉠ 이후의 사건 전개를 여러 방향으로 구상해 본 것이다. (ㄱ)~(ㅁ) 각각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효과를 잘못 설명한 것은?

〈보기〉

조선배 - 첩자로 의심받아 구조되지 못함 ------------- (ㄱ)

           - 배를 타고 조선에 감 - 가족과 상봉함 -------- (ㄴ)

                                         - 가족과 상봉하지 못함 --- (ㄷ)

해적선 - 탈출하여 조선에 있는 가족들을 상봉함 ---- (ㄹ)

           - 해적들에게 죽임을 당함 ----------------- (ㅁ)

 

 ① (ㄱ) : 기대했다가 좌절을 맛보는 인물들의 심리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② (ㄴ) : 행복한 결말로서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③ (ㄷ) : 인물 간의 새로운 갈등 관계를 예고하여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④ (ㄹ) : 역경을 이겨내는 인물의 의지적인 면모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⑤ (ㅁ) : 계속되는 시련으로 인물의 비극적 처지를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3. 위 글이 <보기>의 글을 참고하여 쓰였다고 가정할 때, 이에 대한 평가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 기〉이때 홍도는 가산을 정리해서 조그만 배 한 척을 마련해 가지고 아들 몽진과 며느리를 데리고 중국을 떠났다. 그는 중국 복색, 조선 복색, 또는 일본 복색을 각각 준비했다. 중국 사람을 만나면 중국 사람이라고 속이고, 일본 사람을 만나면 일본 사람이라고 속였다. 두 달 만에 제주도 앞 가가도에 닿았다. 남은 양식은 겨우 7홉뿐이었다.

홍도가 몽진을 보고 말했다.

“우리가 배 안에서 굶어 죽으면 마침내 물고기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니 섬으로 올라가 목을 매어 죽는 것이 낫겠다.” / 그러나 며느리가 반대했다.

“우리가 한 홉 쌀로 죽을 쑤어 먹으면 하루는 살 수가 있습니다. 하오니 이 쌀을 가지고 7일 동안은 지탱이 되옵니다. 그리고 저 동쪽에 은은히 육지가 뵈는 듯하오니 좀 참고서 삶을 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그동안에 다행히 지나가는 배를 만나서 육지로 건너 갈 수가 있으면 십중팔구는 살 가망이 있는 게 아닙니까?”

홍도는 이 말을 좇았다. 그리고 5, 6일 지냈다. 하루 먹을 양식이 남았을 뿐이다. 이때 통제사의 사수선이 그 근처에 와 닿았다. - 홍도전

 

 ①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구도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② 고난을 극복해 나간다는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살렸다.

 ③ 인물 간의 대화 내용을 확장하여 인물들의 고난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④ ‘어머니, 며느리’에 해당하는 인물의 성격에 변화를 주어 인물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⑤ 초월적 존재가 꿈에 나타나는 내용을 추가하여 이어질 내용을 암시하고자 하였다.

 

4.〔A〕와 〔B〕에서 ‘옥영’과 ‘몽선’이 나눈 대화의 특징을 바르게 설명한 것은?

 ① 옥영은 현실의 처지를 과장해서 말하였고, 몽선은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해서 말하였다.

 ② 옥영은 현실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말하였고, 몽선은 현실의 상황을 직설적으로 말하였다.

 ③ 옥영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여 말하였고, 몽선은 현실 상황을 중심으로 말하였다.

 ④ 옥영은 현실 상황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로 말하였고, 몽선은 낙관적인 태도로 말하였다.

 ⑤ 옥영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말하였고, 몽선은 주관적인 입장에서 사태를 과장 해서 말하였다.

 

<정답> 1⑤ - 옥영은 자신에 닥친 고난을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하여 극복하기 보다는 꿈속에서 초월적 존재인 장육금불의 만나 용기를 얻어 극복하고 있다.

[오답풀이] ③ 옥영은 해적들을 만난 후에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며 자포자기에 빠지고 있다. ④ 사랑으로 설득하는 몽선 부부의 말을 듣고 옥영은 자살하려는 마음을 바꾸고 있다.

2③ - 옥영이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 조선에 가려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배를 타고 조선에 가서 가족과 상봉하지 못했다면 옥영의 허무함이나 안타까운 심정이 부각될 것이다. 새로운 갈등 관계를 예고하거나 흥미유발과는 거리가 있다.

3④ - ‘홍도전’에서 나오는 어머니와 며느리에 해당하는 인물의 성격은 ‘최척전’에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홍도전에 비해 최척전에서 인물 간의 갈등이 심화되지 않았다.

[오답풀이] ⑤ ‘장육금불’이란 초월적 존재가 나타나 구조자 나타날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4④ - 옥영은 섬에서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부정적인 면에 맞추어 말하고 있는데 비해, 몽선은 섬에서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낙관적인 면에 맞추어 말하고 있다.

[오답풀이] ① 몽선은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기보다는 사태를 낙관적인 면에서 말하고 있다. ② 옥영은 현실 상황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③ 몽선은 구조될 수 있는 상황(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며 말하고 있다. ⑤ 옥영이나 몽선은 각각 주관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있다.

 

[지문7] 몽선이 놀라며,

“저런 배는 아직 본 적이 없으니 걱정이 됩니다.” / 하니, 옥영이보고 말했다.

“어디? 우리는 이제 살았구나. 저 배는 조선배가 틀림없다.”

모두 한복으로 급히 갈아입었다. 언덕으로 올라가 옷을 벗어 흔들었다. 배가 가까이 다가와 닻을 내렸다. 뱃사람이 나서며

“당신들은 어떤 사람들이오? 이 고도(孤島-외로운 섬)에 살고 있소?”

하고 큰소리로 물었다. 옥영이 조선말로 대답했다.

“우리는 본래 한양의 사족이었어요. 나주로 내려가다가 졸지에 풍파를 만나 배가 전복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고 우리만 정신을 차려 부서진 판자 조각을 타고 여기까지 표류해 왔습니다.”

뱃사람들은 듣고 불쌍히 여겼다. 밧줄을 내려 배에다 태워주며,

“이 배는 통제사의 무역선이요. 갈 길이 정해져 한양으로는 갈 수 없소,”

했다. 마침내 순천에 이르러 정박했다. 세 사람을 뭍으로 내리게 했다.

때는 경신년이었다.

 

[지문8] 옥영은 조국에 처음으로 발을 디뎌 보는 아들 며느리를 데리고 험하디 험한 산길 물길을 건너 대엿새만에 드디어 남원 땅에 들어섰다. 전쟁의 참화를 겪느라 군데군데 폐허가 되어 버리긴 했으나 그래도 대부분 낯이 익었다. 순간 옛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최척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밤새워 읽던 일이며, 목을 매던 날, 돈우의 인자한 얼굴, 최척의 피리 소리…….

“곧 땅거미가 몰려올 테니 오늘은 만복사로 올라가 잠자리를 청해 보자꾸나.”

만복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옛 금교(다리 이름)가 있어 그리로 갔다. 그러나 금교는 없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노을만이 하늘을 감싸고 있어 옥영은 거기서 잠시 쉬어 가자고 하였다. 쉬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전화(戰火-전쟁)를 겪었다고는 해도 성곽이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마을의 크고 작은 골목들에도 옛 모습이 남아 있어서 그런 대로 마음이 놓였다. 그러다 옥영의 시야에 옛 집이 들어왔다. 그녀는 무언가에 놀란 사람마냥 몸을 일으키더니 손가락으로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아들 부부에게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얘들아 저어기, 저기 좀 보아라. 저기 말이다. 커다란 버드나무랑 감나무들이 서 있는 저 집이 바로 네 아버지와 내가 살던 집이었는데 여태 남아 있구나. 우리 대신 누가 들어와서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얘들아, 만복사보다는 저길 가서 하룻밤 머물게 해달라고 청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

옥영 일행은 그 집에 도착하였다. 대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옥영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안을 기웃해 보았다. 마당 왼편의 버드나무며 좀 안쪽의 감나무들이 예나 다름없이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마당 한가운데 놓인 낡은 들마루 위에서 담소(談笑)를 나누는 두 남자의 등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뜨며 그 남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옥영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네?”

“얘야, 이게 꿈이냐 생시더냐. 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저기 계시는구나. 세상에.”

대문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최척과 그의 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마주보았다. 뜻하지 않게 온 가족을 만나게 된 그들 집안은 일시에 장마당처럼 되어 버렸다. 서로들 끌어안고 통곡했다 웃었다가 얼굴을 쓸어보고 들여다보고 그렇게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옥영의 모친 심씨는 병중에 있었는데 딸 옥영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옥영은 방으로 뛰어 들어가 어머니를 품에 안고 그저 어머니가 소생하기만을 빌었다. 최척이 위경을 불러 말하기를,

“사돈, 놀라지 마십시오. 지금 사돈의 따님이 여기 와 있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모두들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 때, 홍도는 그간에 겪어 온 일들을 가족들 앞에서 소상히 말하였다. 그러자 다시금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그 만남이 마침내 이웃의 이웃들에게까지 사방팔방 알려져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예물을 갖추어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만복사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그 후로 그들의 집안은 내내 화목하였고 자손들도 잘되어 세상의 귀감(龜鑑)이 되었다.

 

1. 위 글로 미루어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은?

 ① 위경과 홍도는 부부지간이다.

 ② 옥영의 모친은 전쟁으로 헤어진 딸로 인해 병들어 있다.

 ③ 전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국내와 국외 모두 포함하고 있다.

 ④ 옥영과 최척은 부부 사이이다.

 ⑤ 최척의 집은 전란 속에서도 그 외관을 유지하였다.

 

2. 위 글을 고전 읽기 대상 작품으로 추천하려고 한다. 추천의 이유로 가장 타당한 것은?

 ①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가족들을 찾아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진하고 끈질긴 가족애를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다.

 ②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가족 이기주의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이웃과 사회로 관심의 폭을 넓혀야 함을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③ 인간의 삶 속에서 종교가 지니는 의의를 깨닫게 하여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는 작품이다.

 ④ 뿌리 깊은 고부간의 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⑤ 전쟁의 비극적 참상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단느 것을 일깨우고 있는 작품이다.

 

3. 위 글을 희곡으로 각색해 보았다. 각색한 내용 중, 새롭게 추가된 내용은?

<보기> 옥영은 천신만고 끝에 아들 며느리와 함께 고향에 도착한다. 만감이 교차하는 옥영.

옥영 : 얘들아, 날이 저물었으니 오늘 밤은 만복사에서 지내자꾸나. ……

아들과 며느리 : 그렇게 하시지요. / 옥영 : 만복사 가는 길목에 있는 저 다리가 금교란다. 금교 위 저녁노을이 너무도 아름답구나. ……

옥영, 노을을 구경하다가 시선을 마을 쪽으로 돌린다. 이 때, 어느 한 곳에 옥영의 시선이 멈춘다. 옥영의 시선과 표정이 심상치 않다.

옥영 :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얘들아 저어기, 저기 좀 보아라. 저기 말이다. 커다란 버드나무랑 감나무들이 서 있는 저 집이 바로 네 아버지와 내가 살던 집이었는데 여태 남아 있구나. ……

아들과 며느리 : 그래요, 어머니. 그렇다면 어서 빨리 저 집으로 가요, 어머니.

옥영 일행,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집으로 향한다. 대문 앞에 도착한 옥영 일행. 대문이 열린 사이로 옥영이 집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옥영, 얼굴이 창백해져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 아들과 며느리 : 어머니, 왜 그러세요? 네? / 옥영 : 얘들아, 이게 꿈이냐 생시더냐. 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저기 계시는구나. 세상에. ……

아들과 며느리 : 그게, 정말이에요, 어머니? 그럼, 빨리 가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만나 뵈어요. / 옥영 : 그래, 어서 들어가 보자꾸나. ……

 ①Ⅰ                     ② Ⅱ                         ③ Ⅲ                          ④ Ⅳ                    ⑤ Ⅴ

 

4. ㉠의 상황에서 ‘최척'이 불렀음 직한 노래로 적절한 것은?

 ①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바라보니 /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러하랴

     말씀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하노라.

 ② 님글인 상사몽이 실솔의 넉시 되야 / 추야장(秋夜長) 깊푼 밤에 님의 방에 드럿다가

     날 닛고 깁히 든 잠을 깨워 볼가 하노라.

 ③ 오늘이 오늘이쇼셔 매일에 오늘이쇼셔 / 졈그지도 새지도 마르시고

     새나마 주야장상(晝夜長常)에 오늘이 오늘이쇼셔.

 ④ 당시에 녀던 길을 몃 해를 버려두고 / 어듸 가 다니다가 이제사 도라온고

     녀던 길 알패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⑤ 반 남아 늙거시니 다시 졈든 못하여도 / 이 후나 늙지 말고 매양이면 하엿고져

     백발이 네 짐작 더디 늙게 하여라.

 

5. 다음 <보기>는 ‘귀감'과 관련하여 어휘력 확장 수업을 위해 마련한 학습 자료이다. ( )에 들어갈 말이 순서대로 바르게 배열된 것은?

<보기> ‘귀감(龜鑑)'은 거울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이나 좋은 본보기를 뜻하는 말로서 사람과 사물, 행동 등에 두루 쓸 수 있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부류의 말인 ( )은/는 학식과 덕행이 높아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서 사람에게만 쓰이는 말이다. 한편, ( )은/는 이전 사람의 그릇된 일이나 행동의 자취를 이르는 말이며, ( )은/는 하찮은 남의 언행일지라도 자신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이와 비슷한 부류의 말인 ( )은/는 따르거나 되풀이해서는 안 될 나쁜 본보기로서의 사람이나 일을 뜻하는 말이다.

 ① 타산지석(他山之石) - 전철(前轍) - 반면교사(反面敎師) - 사표(師表)

 ② 전철(前轍) - 반면교사(反面敎師) - 사표(師表) - 타산지석(他山之石)

 ③ 사표(師表) - 타산지석(他山之石) - 반면교사(反面敎師) - 전철(前轍)

 ④ 전철(前轍) - 사표(師表) - 타산지석(他山之石) - 반면교사(反面敎師)

 ⑤ 사표(師表) - 전철(前轍) - 타산지석(他山之石) - 반면교사(反面敎師)

 

                                                                                                                                 <정답> 1② 2① 3② 4③ 5⑤

바른국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