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기(出世記) - 윤대성 바른♥국어
[줄거리]
검은 땀을 흘리며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광부들.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갱도에 파묻히고 만다. 임신을 한 박여인은 아픈 배를 움켜잡고 남편이 일하는 탄광으로 급히 뛰어 간다. 남편도 다른 광부들과 마찬가지로 매몰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편 사무소에서는 광업소장과 안전실장이 광부들을 발굴하는 비용을 따지며 손익을 계산하고 있다. 홍기자는 사건 소식을 듣고 달려와 특종이 없을까 찾아다닌다. 전화가 울리고 전화를 받아 든 광업소장은 갱도 안에 전화선을 연결해 전화를 건 김창호의 전화를 받는다. 생존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각 신문사와 방송사에서는 기자들이 몰려들고 국민의 관심이 모두 김창호라는 사람이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 것인가에 쏠린다.
홍기자는 흥분한 목소리로 국민들의 성원을 촉구하는 방송을 내보낸다. 드디어 김창호가 갱도에서 끌어 올려지고 방송은 이를 마치 스포츠 중계하는 것처럼 긴박하게 전한다. 병원에서 모든 검사를 마친 김창호는 기자들 앞에 서서 갱도 속에서 자신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게 된 김창호는 어설픈 노래 실력으로 한 곡조 부르지만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즐겁게 받아 준다. 미스터 양이라는 매니저와 함께 일하게 된 김창호는 CF, 방송 출연 등 바쁜 일정을 보내며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게 된다.
한편 박여인은 서울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출산의 고통을 맞는다. 그 사실도 모르는 김창호는 매니저를 따라 룸싸롱에 가서 흥청망청 돈을 쓴다. 그러나 가지고 있던 돈이 다 떨어지자 술집에서 비참하게 쫓겨난다. 아직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김창호는 호기 있게 미스터 양을 찾아가지만 단호하게 외면당한다. 탄광을 찾은 김창호는 자신의 옛 일터인 그곳에서 마저 철저히 외면을 당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유명인사로 만들어준 홍기자를 찾아가지만 그 사람도 예외일 수 없다.
힘을 잃은 김창호는 집에 돌아간다. 박여인에게 사산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김창호는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다시 지하로 파묻히려고 한다. 지하철 공사장에서 사고가 나 사람들이 매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김창호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홍기자는 김창호를 발견하고 그와 인터뷰를 한다. 김창호는 신이 나서 생존하는 방법에 대해 떠들어대지만 인부들이 구출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모든 사람이 떠나 버린다. 김창호는 한참 생각하다가 땅 속이 아닌, 하늘로 가서 놀라운 기록을 새운다며 떠난다.
[핵심 정리]
*성격 : 우회적, 비판적
*특징 :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매스미디어가 보잘것없던 인물을 어떻게 영웅으로 만들고, 또 타락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매스미디어의 인간 상품화, 그리고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했던 당대의 사회상을 비판함.
*주제 : 방송과 언론에 의해 인간의 상품화와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이해와 감상] 1967년 8월과 9월에 걸쳐 온통 세상을 놀라게 했던 광부 매몰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화제의 광부 양창선은 충남 청양군 사양면에 있는 구봉금광의 무너진 굴속에서 16일 동안이나 견디어낸 끝에 구출되어 언론에서 큰 화젯거리로 삼았던 인물이다. 「출세기」는 바로 이 양창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삶의 환경을 투시해 보려는 의도를 지닌 작품이다.
작가 윤대성은 매스미디어의 중요한 매체 중 하나인 TV매체와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다. 「출세기」를 발표한 1974년 당시 그는 인기 절정에 올라 있던 TV 드라마 『수사반장』을 집필하고 있었고 그 뿐 아니라 『형사』, 『추적』(1974∼1976. TBC), 『미소』, 『당신은 누구시길래』, 『알뜰가족』, 『洪변호사』(1976∼1980. MBC), 『한 지붕 세 가족』 등의 드라마를 집필한 방송작가이다. 그가 발표한 희곡이 10편 남짓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희곡 창작 활동에 비해 무척 왕성한 방송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TV 방송 작가로서 대표적 매스미디어 매체 중 하나인 TV매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었기 때문에 그는 매스미디어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정확하고 다양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매스미디어라는 소재로 사회를 나타내는 「출세기」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흥미 있는 것은 1974년이라는 ‘매스미디어에 의한 사회’라는 의식이 부족했던 시기에 ‘매스미디어’라는 오늘날 현대사회의 화두(話頭-이야기의 화제)에 대해 고심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문제1]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9. 현장
홍 기자 : 여기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고한리 동진 광업소 사고 현장입니다. 지난 10월 22일 갱구 매몰로 11명의 광부의 목숨을 빼앗은 광산 사고는 올 들어 두 번째 큰 사고로 지금 유일한 생존자인 김창호씨가 무려 열 하루째 지하 1천 5백미터 아래서 구출의 손길이 닿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갇혀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부분이 사고가 난 동 5 갱구입니다. 먼저 김창호 구조위원회 회장이시며 동진 광업소 소장이신 권오창 선생님께 구조 현황을 알아보겠습니다.
갱구 입구 필름, 인터셉트(화면에 다음 화면을 끼워 넣음)된 구경꾼의 얼굴들. 손을 흔들며 웃어대는 필름들.
소장 : (마이크 앞에 선다) 에헴,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 구조대는 지주공 2명, 조수 2명, 감독 1명, 신호수 1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6시간씩 교대하여 불철주야 김창호 씨 구출에 온갖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홍 기자 : 앞으로 구출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소장 : < ㉠ > 애초 예상과 달리 갱목 철근 등의 장애물이 많은 데다 갱내에 물이 쏟아져 작업에 지장이 많습니다. 앞으로 2, 3일 더 걸릴 전망입니다. 그러나 우리로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홍 기자 : 감사합니다.
비서관, 수행원과 경찰의 호위 받으며 등장한다. 비서관, 소장의 안내로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카메라에 포즈 취한다. 기자들의 접근 막는 수행원, 경찰.
홍 기자 : (기자에게) 어떻게 보십니까? 각계각층에서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데요.
기자1 : 대단합니다. 전 국민의 성원이 이렇게 뜨겁고 클 줄은 몰랐습니다.
기자2 : < ㉡ > 현지 주민들이 기자 숙소로 옥수수와 감자들을 삶아 갖고 와서 김창호 씨를 꼭 구해달라고 호소할 땐 눈물이 핑 돌더군요.
홍 기자 : 이런 국민의 여망에 보답하는 뜻으로도 꼭 살아 나와야겠습니다. (감격해서) 생명은 존엄한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인간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젖어 왔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간에 대해 다시 한 번 그 존엄성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고 현장에서 홍성기 기자 말씀드렸습니다. (쪽지 보며) 이 방송은 여성의 미를 창조하는 몽쉘 느그므 화장품 제공입니다.
10. 사무소와 갱내
전화벨 울리며 경내를 비춘다. 지친 듯 쓰러져 있던 김창호, 간신히 몸을 움직여 전화를 받는다. 사무실엔 비서관, 수행원, 의사, 경찰 서장이 전화 거는 걸 지켜본다.
김창호 : 네? / 소장 : 나 소장이오. 지금 회장님께서 김창호씨의 건강을 염려하여 비서관님을 보내셨습니다. 받아보시오.
비서관 : (전화 바꾼다) 김창호씨, 나 신난다 비서관입니다. 회장님께선 김창호씨가 어서 구출되어 나오길 바라고 계십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고 끝까지 견디십시오. 꼭 구출될 겁니다.
김창호 : (기운 없이) 감사합니다. / 비서관 : 뭐 부족한 거 없습니까?
11. 살롱
기자1, 2 이빨 쑤시며 앉는다.
기자1 : 음식이 신통치 않더군!
기자2 : < ㉢ > 시골이 별 수 있겠어? 일류 식당이란 데가 그 모양이니…….
기자1 : 어이구, 난 일주일 동안 잠자리가 불편하니까 미치겠더군…….
기자2 : 죽든 살든 빨리 결말이 나야 우리가 고생을 덜 하지. / 기자1 : 살아 견디는 게 용해.
기자2 : 김창호 씨가 어제로 갱 속에 살아남은 세계 기록을 깼다구.
기자1 : 어떻게 되는데?
기자2 : 1948년 일본 미야끼엥 니시야마 탄광 낙반사고 때 네 명의 광부가 11일 16시간 30분 만에 구출됐고, 서독선 1963년 마힐루데 광산 침수 사고에서 14일간을 살아 나왔다구.
기자1 : 그럼 우리가 기록을 깬 거게? / 기자2 : < ㉣ > 살아 나와야지.
기자1 : 기록 갱신을 위해서두 살아 나와야 되겠군. 하하…….
마담, 차를 날라 온다.
기자1 : 마담, 미인이시오. / 마담 : 어머! 고마워라!
기자2 : 여기 사람 같지 않은데……. / 마담 : 서울서 왔어요.
기자1 : 어쩐지……. 그런데 이런 시골엔 뭣 하러?
마담 : 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원정 왔지요, 뭐.
기자2 : 김창호 씨 덕분에 이 근처 아주 호경기라더군. 여관은 대만원이야. 서울서 내려온 자가용들이 길을 메우고 촌사람들은 또 그걸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어.
마담 : 오늘 낼 사이에 구출된다지요? / 기자1 : 그런 모양입니다.
마담 : < ㉤ > 며칠만 더 끌어줬으면 좋겠는데, 닷새만 끌어주면 보증금 들어간 거 빼고 20만원 수입은 되는데.
14. 기자 회견 석상
김창호, 주치의의 호위 하에 단상에 앉는다. 기자들, 카메라맨, 카메라를 들이대자 김창호 얼굴을 가린다.
카메라맨 : 김창호씨, 얼굴 좀.
주치의 :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시력이 약화돼서 카메라 플래시에 견디질 못합니다.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김창호에게 씌운다) 참으세요, 곧 끝납니다. 전 국민에게 김창호씨 생존을 알려야 합니다. (플래시 터진다. 김창호 움찔거리지만 참고 견딘다)
홍 기자 : 김창호 씨, 우리 기자단을 대표해서 김창호 씨의 생환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제가 사고 첫날부터 현장에서 김창호 씨가 구출되기까지 쭉 지켜보았던 MBS 홍성기 기자입니다. 먼저 이렇게 살아 나오신 소감 한 말씀 부탁합니다.
김창호 : (당황)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난 집에 가고 싶습니다! (주치의, 귀에 대고 뭐라고 한다)
김창호 : 저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
기자1 : 통일일보의 원근식 기자입니다. 16일 동안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 견디셨는데 어디서 그런 인내력이 나셨는지요?
김창호 : 예?
주치의 쉽게 설명해 준다.
1. ‘9. 현장’과 ‘11. 살롱’을 대비한 효과로 적절한 것은?
① 생명의 존엄성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② 매스컴이 그려낸 현실이 왜곡된 것임을 보여준다.
③ 선동적인 표현이 지니는 미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④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된 상품의 가치를 보여준다.
⑤ 극한 환경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부각시킨다.
2. <보기>를 참고하여 위 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희곡에서는 무대에 드러나는 공간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담화를 통해 무대 밖의 공간도 나타난다. 그리고 장소에 대한 묘사는 극히 빈약하지만 등장인물의 명칭, 이름, 직함 등을 통해서 공간이 드러나기도 하고, 극행동이 전개되는 동안 등장인물의 움직임, 그들 사이에서 맺는 관계, 갈등, 대립 등에 의해 공간의 윤곽이 드러나기도 한다.
① ‘현장’과 ‘살롱’은 무대에 드러나는 공간이다.
② 김창호가 매몰된 갱내는 무대 밖의 공간이다.
③ 기자1・2와 마담의 담화를 통해 ‘살롱’의 특성이 나타난다.
④ 기자들과 소장의 담화를 통해 사고 현장의 특성이 나타난다.
⑤ 비서관과 수행원의 행동을 통해 사고 현장의 윤곽이 드러난다.
3. ㉠~㉤에 들어갈 지시문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걱정스럽게 ② ㉡ : 감격적인 목소리로 ③ ㉢ : 못마땅한 표정으로
④ ㉣ :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내며 ⑤ ㉤ : 아쉬운 듯
4. 윗글의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로 적절한 것은?
① 홍 기자는 사건을 개관적으로 평가하여 전달하고 있군.
② 소장은 취재 활동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 주고 있군.
③ 비서관은 현장에 등장하면서 언론을 의식하고 있군.
④ 기자들은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고 있군.
⑤ 주치의는 기자 회견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군.
[정답] 1②- ‘9 현장’에서 기자들은 ‘눈물이 핑 돈다’는 ‘존엄성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는 등의 발언을 하고 있지만 ‘11. 살롱’에서는 생활이 불편하다고 불평하거나 기록 갱신을 위해 살아 나와야 한다고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으므로,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내용(매스컴이 그려내는 현실)은 기자들의 실제 판단과는 다른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다.
2⑤-비서관과 수행원은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카메라에 포즈’를 취하는 행동만 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사고 현장의 윤곽은 알 수 없다. 3④-만족스러운 미소를 보내는 행위는 기자들이 자신들의 현실적인 이해에 따라 매몰 사건을 평가하는 장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4③
[문제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24. 기자실
김창호 : 선생님……. / 홍 기자 : 뭡니까?
김창호 : 저 모르시겠습니까? / 홍 기자 : 당신 누군데?
김창호 : 홍 기자님이시죠? / 홍 기자 : 그런데요?
김창호 : 저 김창홉니다. / 홍 기자 : 김창호? 여보 김창호란 이름이 한두 개요?
김창호 : 동진 광업소 동5 갱에 묻혀있던 광부 김창호. / 홍 기자 : 아? 김창호 씨?
김창호 : (반갑다) 역시 절 알아보시는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모두 참 고마웠지요. 전 정말 잊지 않고 있습니다. / 홍 기자 : 그런데 뭐 볼일 있수? 나 지금 바쁜데…….
김창호 : 절 좀 도와주십시오. 가족을 잃었습니다. 차비도 떨어지구…….
홍 기자 : ㉠이거 가지구 가시우. 그리고 아래층 광고부에 가면 사람 찾는 광고 취급합니다. 나 바빠서……. (김창호를 무시하고 다시 논문을 본다)
김창호 멍하니 말을 잃는다. 홍 기자가 논문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동안 천천히 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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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기자 : 결론, 따라서 매스컴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이다. 매스컴은 20세기적인 종교가 되었고 종래의 어떤 종교나 예술보다 긴요한 현실적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한한 기능으로 인해 인간 부재의 매스컴에 이르지 않는가를 부단히 경계하고 자각해야 할 것이다. 매스커뮤니케이션! 매스컴! 이 얼마나 위대한 단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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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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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
26. 현장
TV 카메라가 가운데 설치되고 있다. 구경꾼들 호기심에 카메라 앞에 몰려 있고, 경찰은 정리에 바쁘고, 홍 기자 마이크 잡고 방송 준비. 카메라에 라이트 비친다.
홍 기자 : 여기는 강원도 정선군 동민 광업소 사고 현장입니다. 메탄가스 폭발로 인한 사고로 채탄 작업 중이던 광부 34명이 매장됐습니다. 그러나 전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 광부 중 폭발한 갱구 아래쪽 대피소에 있던 배관공 22세 이호준 씨가 아직 살아 있음이 지상과 연결된 배기 파이프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지금 보시는 부분이 사고난 갱구 입구입니다.
이때 이불 보따리를 멘 김창호 일가 등장한다. ㉡홍 기자, 김창호를 발견한다.
홍 기자 : 김창호 씨. 잠깐만!(이불 보따리를 벗겨 카메라 앞에 세운다)
홍 기자 : 시청자 여러분! 기억에도 새로운 매몰 광부 김창호 씨가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지난해 10월 갱구 매몰로 16일간 갱구에 갇혀 있다 무쇠 같은 의지와 강인한 육체로 살아남은 김창호 씨!
㉢구경꾼들 일제히 김창호 씨에게 시선 주며 박수친다.
홍 기자 : 김창호 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지하 1천 2백 미터 갱내 대피소에 배관공이 갇혀 있습니다. 그 사람이 구출될 때까지 갱내에서 주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김창호 : 예, 먼저 체온을 유지해야 합니다. (신이 났다) 제 경험으로 봐서 배고픈 건 움직이지 않으면 참을 수 있는데 추운 건 견디기 힘듭니다. 전구라도 있으면 안고 있어야 합니다. 배기펌프로 공기도 계속 넣어줘야 되구요.
그 사이 기자 한 사람 뛰어 나와서 홍 기자에게 귀엣말 한다. 홍 기자 마이크 뺏어 자기 말을 한다.
홍 기자 : ㉣방금 살아 있던 것으로 알았던 배관공의 죽음이 확인됐습니다. 공기를 공급하던 배기 파이프에 가스가 차서 질식했다는 소식입니다. 정선군 사고 현장에서 홍성기 기자가 말씀드렸습니다.
카메라 치운다. 구경꾼들 이제 흥미 없다는 듯 카메라를 따라 나간다.
김창호 : (정신없다) 여보세요. 또 주의할 게 있습니다. 갱 속에서 오래 견디려면 바깥 생각은 말아야 됩니다. 그저 꾹 참고…… 언젠가는 빛이 보이겠지 하는 희망을 갖구…… 희망……. ㉤김창호 씨 일가 외엔 아무도 없다.
1. <보기>는 전체 줄거리에 따른 ‘김창호의 출세기(出世記)’를 상승과 하강 구조로 정리해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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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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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몰 : 김창호는 사고로갱내에 매몰된다. ㉯ 구출 : 김창호는 구출되고 매스컴의 엄청난주목을 받는다. ㉰ 출세 : 스타가 된 김창호는 부와 명예를 누리나, 점점 방탕한 생활에 빠진다. ㉱ 몰락 : 김창호는 모든 것으로부터 외면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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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24, 26 장면은 ㉱로 하강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
② 24 장면에서 김창호는 홍 기자가 ㉯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길 바라고 있어.
③ 26 장면에서 김창호는 여전히 ㉯에서처럼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고 있어.
④ 26 장면에서 김창호는 자신의 몰락이 결국 ㉰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있어.
⑤ ㉮~㉰로 표현되는 김창호의 ‘출세(出世)’는 ‘갱 속에서의 구출’과 ‘세속적 출세’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2. 위 글 전체에서 [A]가 갖는 기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매스컴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인물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고발하고 폭로한다.
② 사건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을 보여준다.
③ 매스컴에 빠져들어 조종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을 희극적으로 그려낸다.
④ 매스컴의 허위를 드러내는 인물이 비판의 메시지를 직접 말하는 이중적 면모를 보여준다.
⑤ 돈과 출세에 초점이 맞춰진 현대 사회의 가치관 속에서 인물이 겪는 아픔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3. 위 글을 연극으로 공연하려고 할 때, 토의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의 대사를 할 때, 홍 기자가 천 원짜리를 던져주며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연기해야겠지?
② ㉡에서 홍 기자는 김창호를 불러 세우기 위해 무대 위를 가로지르며 빠르게 달려가는 게 좋겠어.
③ ㉢에서 김창호는 처음에는 머뭇거리지만, 곧이어 구경꾼들에게 손을 들어 큰 소리로 인사하는 게 어떨까?
④ ㉣을 말할 때 홍 기자는 배관공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사를 해야겠지?
⑤ ㉤에서 조명을 김창호 일가에게만 비추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좋겠어.
[정답] 1④-26장면에서 ‘김창호’는 자신이 몰락한 원인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던 출세 당시를 그리워하고 있다.
2④-대사를 한 ‘홍 기자’는, 말로는 매스컴을 경계하면서도 실질적인 행동은 그에 반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허위성을 지닌 인물이 오히려 매스컴의 이중성을 비판하고 있다.
3④-㉣에서 ‘홍 기자’는 배관공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보도할 가치가 없어지자 급하게 방송을 끝내려고 한다.
[문제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4. 기자 회견 석상
(김창호, 주치의의 호위 하에 단상에 앉는다. 기자들, 카메라맨, 카메라를 들이대자 김창호 얼굴을 가린다)
[카메라맨] 김창호씨, 얼굴 좀.
[주치의]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시력이 약화돼서 카메라 플래시에 견디질 못합니다.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김창호에게 씌운다) 참으세요, 곧 끝납니다. 전 국민에게 김창호씨 생존을 알려야 합니다. (플래시 터진다. 김창호 움찔거리지만 참고 견딘다)
[홍기자] 김창호 씨, 우리 기자단을 대표해서 김창호 씨의 생환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제가 사고 첫날부터 현장에서 김창호 씨가 구출되기까지 쭉 지켜보았던 MBS 홍성기 기자입니다. 먼저 이렇게 살아 나오신 소감 한 말씀 부탁합니다.
[김창호] (당황)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난 집에 가고 싶습니다! (주치의, 귀에 대고 뭐라고 한다)
[김창호] 저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
[기자1] 통일일보의 원근식 기자입니다. 16일 동안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 견디셨는데 어디서 그런 인내력이 나셨는지요? / [김창호] 예? (주치의 쉽게 설명해 준다)
[김창호] 전 그저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처자식은 어떻게 됩니까?
[기자2] (민주신문) 갱내에서 가장 괴로웠던 일은요?
[김창호] 배고픈 겁니다. 나중엔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게 보입니다. 누구하고든 얘기가 하고 싶었는데 전화를 걸어도 대답이 없구---이젠 꼭 죽는구나 생각하니 괴로웠습니다.
[기자3] 살아 나오면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건 뭐였습니까?
[김창호] 꽃밭을 가꾸고 싶었습니다. (모두 의아해 한다)
[홍기자] 앞으로 건강이 회복되시면 뭘 하시겠습니까?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면---
[김창호] ㉠생각 안 해 봤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소란하기만 하구.
[기자1] 다시 광산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김창호] 싫어요! 푸른 들이 있는 데서 살렵니다. 씨 뿌리고 농사짓고 맑은 공기와 푸른 초원에서 살겠습니다.
[주치의] 자, 그만합시다.
18. 어떤 실내
(김창호, 광부 옷차림이다. 매니저, 미스터 양 헬멧을 씌워준다)
[미스터 양] 거울을 좀 보시우! 비슷한가?
[김창호] 얼굴이 좀 검어져야 강부 냄새가 나겠는데요?
[미스터 양] 분장을 좀 합시다. (얼굴에 검정을 묻힌다)
[김창호] 돈 걷힌 게 얼마나 됩니까?
[미스터 양] 현재 2백만원은 넘어갑니다. 하여간 계산은 나중에 합시다. 오늘 CF 계약하면 1500만원은 받으니까.
[김창호] 허허---
[미스터 양] 왜 웃으시우? / [김창호] 돈 벌기 아주 쉽군요.
[미스터 양] 유명해지면 다 그런 겁니다. / [김창호]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됩니까?
[미스터 양] (쪽지 보며) 12시 주간 고십 기자와의 인터뷰, 당신 사진 찍을 겁니다.
[김창호] ㉡광부 모습으로 말이죠?
[미스터 양] 예, 광산에 있을 때 찍어놓은 사진이나 있으면 이런 고생 안하지?
[김창호] 난 재미있는데---
[미스터 양] 기자가 갱 속에서 가장 괴로웠던 일이 뭐냐? 결혼은 언제 했느냐? 그런 시시껍쩔한 얘길 물을 겁니다. / [김창호] 그거 여러 사람한테 말했는데?
[미스터 양] 줄줄 외고 계시우! 시간 절약 되니까--- 조금씩 재미있게 거짓말 보태구!
[김창호] 난 거짓말을 못합니다. / [미스터 양] 차차 하게 됩니다. 그래야 이 짓도 오래 해먹지.
[김창호] 이 짓이라니? 난 그래도 양심이 있습니다.
[미스터 양] 누군 없수? 다 잊어버리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런 건 끄집어 낼 필요가 없어요! 양심을 들먹이면 아주 신경질 난다구요! 자! 녹음하기 전에 한 번 더 연습 합시다. 읽어봐요! 감정 넣어서---
[김창호] (읽는다) ㉢당신의 겨울은 새로운 입맛과 함께 시작된다. 너도 먹고 나도 먹는 새로운 라면 죽-라면.
[미스터 양] 좀 더 우악스럽게 엄마들이 들으면 먹고 싶어 환장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새끼들 한테도 죽라면을 끓여주죠. 김씨가 광고 잘못하면 죽쑤게 된다구요. -언어유희
[김창호] 어차피 죽라면인데 죽을 쓰면 어떻소?
[미스터 양] 그런 죽이 아니라 대나무순이 들어간 죽라면 이래요.
[김창호] 아 죽순 말이구만, 그럼 죽순 라면이라고 할 것이지---
[미스터 양] 다시 한번 합시다. 카메라 앞에서 대나무처럼 덜덜 떨지 말고 제발.
[김창호] 두고 봐요. 안 떨 테니--- 아 처음에야 초보운전도 다 떨지 않소.
[미스터 양] ㉣초보운전은 언제 알아 가지고---
[김창호] 이 광고 계약하면 나도 차 한대 삽시다.
[미스터 양] 알았소. 차 사줄 테니까, 자 다시한번 연습 합시다.
[김창호] 당신 수고가 많습니다. 댁의 일도 바쁠 텐데 나를 위해서 뛰어 주니 내가 인복이 많은 모양이죠?
[미스터 양] 오해하지 마시우! 난 매니저요. 당신 수입금의 10퍼센트를 먹는다구요. 양심적으로--- 어, 또 신경질 나네. (전화벨이 울린다. 미스타양 주머니 안에서 수화기 꺼내 받는다)
[미스터 양] ㉤아, 여보세요---네? ---영부인께서? 알았습니다. (전화 넣고) 이봐요. 영부인께서 김창호씨를---
[김] 어? 영부인이 뭐하는 여잔데? (미스터양 김창호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미스터 양] 이제 알았소? 인사를 잘해야 합니다. 자, 서두릅시다.
1. <보기>와 관련지어 위 글을 이해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작가는 이 글의 제목을 ‘출세기(出世記)’로 설정할 때 두 가지의 의미를 담으려고 했을 것이다. 첫째는 갇혀 있던 사람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의미의 ‘출세(1)’이고, 둘째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된다는 의미의 ‘출세(2)’이다.
① 장면 ‘15’의 김창호는 자신의 ‘출세(1)’이 ‘출세(2)’의 계기가 되리라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② 장면 ‘15’의 주치의는 김창호가 ‘출세(2)’를 하면 자신도 ‘출세(2)’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③ 장면 ‘15’의 기자들은 김창호가 ‘출세(1)’을 하기 전후의 일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④ 장면 ‘18’의 김창호는 자신에게 찾아 온 ‘출세(2)’의 상황에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⑤ 장면 ‘18’의 미스터 양은 김창호의 ‘출세(2)’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
2. <보기>를 작가의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이라고 할 때, 마지막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질문 : 작가님, 이 작품은 실제 1967년에 있었던 매몰 광부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소재를 택하게 되셨나요?
답글 : 그때 그 광부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지닌 존재로 국민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벼락 스타를 만들어 버린 거예요. 그로 인해 광고에도 자주 등장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분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분이 현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봤는데, 사람들에게 잊힌 채 비참하게 살고 있더군요. 저는 관객들에게 그분의 삶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질문 : 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장면 ‘15’와 ‘18’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이 이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대중들의 관심을 이용해 순박한 사람을 상품화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② 극한의 공간에서도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③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진실만을 보도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④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살라는 교훈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가족 공동체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3. ㉠∼㉤을 연출하기 위한 계획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위축된 목소리로 대사를 하도록 한다.
② ㉡ : 짜증이 난 듯 얼굴을 찌푸리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사를 하도록 한다.
③ ㉢ : 감정을 싣지 않고 딱딱한 어조로 또박또박 광고문을 읽도록 한다.
④ ㉣ :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사를 하도록 한다.
⑤ ㉤ : 별생각 없이 전화를 받다 갑자기 긴장된 표정으로 전화를 받도록 한다.
<정답> 1② 2① 3②
[지문 분석]
<등장인물> 김창호. 박여인, 홍기자, 미스터양, 마광필 교수 등등
1. 탄광내부
(광부1,2,3, 기타 일하고 있다)
[광부들] (합창하며)
[노래시작] 우리는 광부, 흙속에 산다.
검은 땀 흘리며 오늘도 내일도 햇볕을 등지고 오르며 내리며 탄차에 실려 시간을 먹는다.
하나, 둘, 셋, 터지는 발파음, 돌과 쇠가 부딪치는 불꽃 속에 우리는 광부, 생명을 태운다.
[노래끝] (이때 우르릉 하는 진동 소리)
[광부1] 무슨 소리야? / [광부2] 흙이 무너져 내린다! / [광부3] 갱도가, 갱도에 물이!
(일순 정적, 얼어붙은 동작, 물이 닥치는 소리, 광부들 동시에 악- 피를 토하는 괴성을 낸다)
2. 광산촌
(얼굴과 손이 온통 까만 아들과 딸. 뒹굴며 놀고 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 들린다. 멈칫 서는 두 아이. 안에서 박여인 나온다)
[아들] 사고잖아? / [박여인] 어서 들어가! / [아들] 아부지 일하러 가셨지?
[박여인] (때리며) 야 이새끼야, 아버지는 왜 찾니?
[아들] 왜 때려 나만? 아부지가 사고나도 좋아?
[박여인] 이 병신아, 아버진 10년이나 갱 속에서 일하셨어. 위험한 건 제일 먼저 아신다. 아침에 까마귀만 울어도 일을 안 하셔!
[아들] 아침에 까마귀가 울었어. 내가 봤어. -불길한 사건 암시 / [딸] 나도 봤다.
[박여인] 이놈의 자식들 까마귀가 그렇게 좋으냐? 이 철없는 것들아, 누가 그런 소리 하랬어? -진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속담 ‘말이 씨 된다.’
(부인1, 비탄의 신음소릴 내며 뛰어 지나간다)
[박여인] (무의식중 합장하며) 천지신명님. -남편의 안녕을 비는 부인의 모습
[아들] 나 구경간다. (뛰어 달아난다) / [딸] 나두. -철이 없는 아이들(비극적 상황을 강조)
[박여인] (악쓰듯) 용준아! 용희야! 이 새끼들, 구경이 다 뭐야? 이리 오지 못하겠니? 용희야! 용준아! 이 새끼들아!
(계속되는 사이렌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고 무대를 압도하듯 커진다. 부인2, 소리 지르며 지나간다)
[부인2] 사고래요, 갱이 무너졌대요.
[박여인] (배를 움켜잡는다) 왜 여자가 임신 해야 돼? 움직이지 말어! 이 원수놈의 새끼(태아)야!
(부인3, 뛰어 들어온다)
[박여인] 어디래요?
[부인3] 동 5갱이랍니다.
[박여인] 아-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어떡하나! (뱅뱅 돌다가) 여보!
(비명 지르며 나간다)
3. 갱내
(캄캄한 어둠 속에 전구가 하나 켜진다. 전등선을 잇던 김창호, 눈을 가리며 일어선다)
[김창호] 살았어, 난 아직 살았어! 여보시오. (소리 지른다) 누구 없소? 모두들 어디 갔지? 만석이! 춘광이! (사방을 돌아본다) 맙소사, 이제 그만이구나. (퍼뜩) 전화! (흙더미를 손으로 파내어 전화선을 만진다. 결사적인 동작으로 전화선을 찾아든다) 하느님, 내가 살아있다고 밖에 알려주십시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통을 두드린다. 소식불통, 다시 엎드려 전화선을 만지기 시작한다)
4. 사고 현장 사무소
[소장] 빌어먹을 사고, 사고! 이놈의 사고만 없으면 해먹을 텐데---
(안전관리실장 파이버(안전모)를 벗으며 등장)
[소장] 어떻게 됐어? / [실장] 가망 없습니다.
[소장] 피해 보상금과 발굴 비용이 모두 얼마나 들겠어?
[실장] 보상이 12명에 3억 6천만원 그리고 발굴 비용이 4천만원은 넘겠습니다.
[소장] 망했군. / [실장] 진작부터 제가 말씀드린 대로 갱내를 보수 했으면 이런 사고는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소장] 5갱에서 사고 날 줄 미리 알았단 말이오? / [실장] 갱 전체가 오래 돼서---
[소장] 갱구 하나 보수비가 얼마나 든다고 했지? / [실장] 약 2천 5백만원.
[소장] 갱구가 7개면? / [실장] 1억 7천 5백만원.
[소장] 갱구 하나 보수기간이? / [실장] 보름 잡아야죠.
[소장] 그럼 갱구 하나는 보름동안 채탄을 못해 얼마 손핸가? 실장. / [실장] 4천 500만원.
[소장] 갱구 7개면 1천 5백 75만원 보수할 동안 손해액까지 합하면?
[실장] 5억이 넘겠는데요? / [소장] 그것 봐, 사고 나서 치르는 비용보다 많지 않은가? 내가 평생 여기 소장 해먹을 건 아니잖아? -이해타산적인 소장, 하지만 인간의 생명보다 돈과 실적만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비인간적인 인물
[실장] --- / [소장] 내말 틀려?
[실장] 그럴듯하군요. (홍기자 들어온다)
[소장] 어이구, 수고 하십니다. 홍선생, 역시 소식이 빠르군.
[홍기자] (직업적으로) 사망자가 몇이나 됩니까?
[소장] 선산부 6명, 후산부 5명, 배관공 1명, 모두 12명이 묻혀 있습니다.
[홍기자] 다 죽었겠지. (적으며) 모두 12명으로 집계됨.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원인은?
[소장] 갱내 1천 5백미터 지점이 붕괴 됐습니다. 너무 오래 캐먹어서---
[홍기자] 갱내 보안시설 불비가 원인.
[소장] 홍선생, 이거 누구 목 자르려고 이러십니까? 내 그러지 않아도 주재소 숙소가 불편한 걸 알고 사택을 한 채 내놓을 계획 이었는데--- 말이 난 김에 우리 가봅시다.
[홍기자] (고쳐 적는다) 채굴 심도가 깊어 갱벽이 무너져 내리는 예기치 못하는 사고. -자신에게 사택 한 채 마련해 준다는 말을 듣고 광산의 경영자 입장을 두둔하는 글을 쓰는 썩은 기자
[소장] 같은 말이라도 얼마나 표현이 부드럽습니까?
[홍기자] 그런데 사망자 명단을 발표 않는 이윤 뭡니까? 밖에서 유족들이 아우성인데?
[소장] 조금 희망을 연장해 주는 게 낫지 않습니까? 흥분해 있는데 지금 발표를 하면 유족들이 울고불고 아우성, 더 시끄러워집니다. 밤에 좀 지쳐 있을 때 발표할 겁니다.
[홍기자] 시체 발굴에 걸리는 시간은? / [실장] 일주일 걸립니다
[소장] 그 비용만 해도 손해가 막심 합니다. 우리 나가서 목이나 축입시다. 사택도 들러 볼 겸 (실장에게) 나 까페 호수에 가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음 연락해. (전화벨이 울린다) 무슨 전화야?
[실장] (전화 받는다) 여보세요?
[김창호] (소리 지른다) 여보세요. 나 김창호 입니다. 배수부 김창호! (흥분하고 열에 들떠있다)
[실장] 어? 집에 있수? 우린 당신이 죽은 줄 알구. (소장에게) 한명 줄어듭니다.
[소장] 3천만원 절약 됐군. / [홍기자] 11명.
[실장] 당신 전표만 떼구 갱에도 안 들어갔구만?
[김창호] (기가 차서) 여기 제 1대피솝니다. 입구에서 1천 5백미터.
[실장] 제 1대피소? (놀라) 제 1대피소? 소장님.
[소장] 이리 내. (전화 뺏는다) 이봐, 김창호씨 나 소장이요. 어떻게 된 거요?
[김창호] 쾅 소리에 아무것도 안보였습니다. 나 혼잡니다. 전구를 찾아 켰습니다. 얼마나 무너졌습니까?
[소장] 지금 발굴중이오. 견딜만 하오?
[홍기자] 저 좀 주십시요. (소장의 전화를 뺏는다) 나 기잡니다. 거기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적을 태세다)
[김창호] (전화) 상황이라뇨? 무슨 소릴 하는 거요?
[홍기자] 넓이가 어느 정도 됩니까? 동료들 안 보입니까? 공기는 통합니까?
[김창호] 빌어먹을, 공기가 통하니까 살아있지요. / [홍기자] 먹을 건 넉넉합니까?
[실장] (홍기자의 전화 뺏아 든다) 아, 거기가 슈퍼마켓인줄 압니까. 저 안전관리실장입니다. 견딜만 합니까? 물은 있어요?
[김창호] 천정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받아 마십니다. 얼마나 무너졌습니까?
[실장] 50미터 정도가 매몰된 것 같습니다. 꼭 구해낼 테니까 참고 기다리십시오.
[김창호] 제발 빨리 구해주시오. 내 가족들한테도 알려주구요, 무섭습니다. (전화 끝낸다)
[실장] 어떡할까요?
[소장] 기술자를 동원해서 방법을 강구 해야지, 살아있다는데 생사람 죽일 수야 있나?
[홍기자] 이건 아주 흥미 있는 사건인데--- 갱 속에 살아남은 최고 기록이 어떻게 됩니까?
5. 바깥현장
(김창호의 어린 두 남매. <대통력 각하 아빠를 구해주세요>란 플래카드를 들고 등장. 뒤에 박여인, 울상으로 따른다. 아낙네들, 광부들 <김창호를 구하자>라는 플래카드를 든 채 구호를 외치며 등장한다.
기자들 카메라 들이대고 홍기자 녹음기를 든 채 뛰어 들어와 남매 앞에 온다)
[홍기자] 아주머니 소감 한마디 하시죠. / [박여인] 남은 죽겠다는데 무슨 소감이래유,
[홍기자] 얘, 여기다 대고 얘기해, 아빠 빨리 오세요 하고. 그리고 동생하고 엄마랑 기다린다고.
[딸] (울먹이며) 아빠 빨리 오세요. 용준이 오빠랑 엄마랑 아빨 기다려요. 그리구 선생님들, 우리 아빠 구해주세요. 우린 아빠가 없음. 앙- (울어버린다)
[홍기자] 자, 너두.
[아들] 아부지, 엄마가 아버지 빨리 오시라고 치성을 드려요.(훌쩍이는 아낙네들, 광부들)
[박여인] 꼭 좀 살려주세요. 선생님들 좀 있으면 애가 또 하나 생길 텐데. 애비 없이 어떻게 기릅니까? 난 혼자 못살아.
[홍기자] (옆에 선 젊은 광부에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광부] 이명숩니다. / [홍기자] 이번 사고에 대해 같은 광부의 입장에서 느끼신 점을 한 말씀.
[광부]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본다) 마이크 시험중입니다. 하나, 둘.
[홍기자] 말씀만 하세요. / [광부] (흥분한다) 회사측이 돼먹지 않았습니다. 지난번 동고 광산 사고두 그렇지만 미리 막을 수 있었습니다. 위험하다구 안전실에 얘기해두 괜찮다고 들어가라고 합니다. 하여간 두말 제하고 김창호씨를 구출해야 합니다. 김창호씬 사람도 좋고 막걸리도 잘 마시고 저하고 잘 압니다. (마이크 의식한다) 따라서 우리 동료 광부 전원은 김창호씨의 생환을 진심으로 축하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광부 대표 이명수, 이상!
(광부들 박수 친다. 홍기자 이미 마이크 끄고 비켜 서있다)
[홍기자] 수고 했소. (녹음기를 들고 뛰어나간다)
(모두들 이들의 대답을 지켜보느라 행진을 중단하고 있었다. 이제 말이 끝나자 생각난다는 듯 구호를 외치며 퇴장한다. 지금까지 보이진 않았으나 행렬의 꼬리에는 꼬마 행상이 손수레를 밀고 온다)
[행상] 아이스크림요, 시원한 엽차요.
6. 사무소
[실장] 지금 굴착기, 전기톱, 서치라이트를 이웃 고산 광산에서 지원 받기로 돼있습니다. 구조대는 지주공 5명, 조수 12명, 감독 1명, 신호수 3명, 그리고 구조 대장으로 제가 참가 합니다. 두고 보십시오. 제 기술로 꼭 구해낼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소장] 얼마나 걸리겠어? 일주일이 걸릴지 열흘이 걸릴지 모르는데 돈이 얼마나 들겠나 생각해 봤어?
[실장] 생명은 귀중한 겁니다.
[소장] 도대체 무데기로 죽어 자빠져야 흥분하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 하나에 신이 나서 열을 올리는거야?
[실장] 그럼 저대로 내버려 둡니까?
[소장] 누가 내버려 두랬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내가 식인종인줄 아나? 난 경제원칙,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방법을 강구하자 그 말이야, 학교 때 안 배웠어?
[실장] 전 학교 안다녔습니다.
[소장] 그러니까 쉽게 흥분 하는 거야.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돈, 돈! (흥분해서 우왕좌왕 한다)
[실장] 소장님, 고정 하십시오. (의사와 홍기자 들어온다)
[소장] 아, 어서 오십시요. / [의사] 연락이 되지요?
[소장] 예. (전화 두드린다) (갱 속에 지쳐 쓰러져 있던 김창호, 전화 받는다)
[소장] 나 소장이오. (땀 닦으며) 거긴 시원하지요? (김창호 눈만 크게 든다)
[의사] (전화 뺏으며) 여보세요. 내 말 잘 들립니까?
[김창호] 여보! 당신이요. 애들 라면이라도 끓여 먹이고 있는 거요?
[의사] 나, 성모병원 의삽니다. / [김창호] 의사요. 그 병원에 남자 의사 없습니까?
[의사] 나도 의학박사에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세요. / [김창호] 예, 갱목 껍질 먹어도 됩니까?
[의사] 씹기만 하고 뱉으세요.
[김창호] 배가 고파요. 모빌이나 구리스를 먹으면 안되나요?
[의사] 큰일 납니다. 물은 마십니까? / [김창호] 벽에서 내리는 물을 받아 마십니다.
[의사] 맥박을 잡아보세요--- 그만, 몇 번 뜁니까? / [김창호] 열두 번.
[의사] 10초에 12번, 1분에 72번, 아주 좋습니다. 정상입니다.
[김창호] (악쓴다) 그래서 퇴원이라도 시키겠단 말씀이오? 지금 뭣들 하고 있는 겁니까?
[의사] 흥분하면 힘이 빠집니다. 침착 하세요. / [김창호] 힘이 빠질까봐 똥도 안 눴소!
[의사] 소변은 누십니까? / [김창호] 하루에 네댓 번 눕니다. 그거야 참을 수 있소?
[의사]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좋습니다.
[김창호] 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언제 구조 됩니까? 춥고 배고파서 못 견디겠습니다.
[의사] 꾹 참고 기다리세요. (전화 끊는다)
[홍기자] 박사님, 저 안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습니까?
[의사] 김창호씨가 건강한 사람으로 기준해서 견디는 한도는 14일이 한돕니다.
[홍기자] 앞으로 열흘? / [실장] 전, 자신합니다. 일주일 내에 구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갱내의 공기가 통하는 걸로 보아 입구에서 대기소에까지 매몰 상태가 그렇게 두터운 건 아니라고 뵈집니다. 따라서---
[소장] 제발 일주일 되기 전에 그 틈으로 기어 나와줬으면. (실장에게) 이봐요. 김씨가 그 안에서 입구를 파고 나올 가능성은 없나? 그럼 서로 시간이 절약될 텐데---
7. 병원 연구실
[연구생1] 박사님은 현재 갱내에 열흘째 갇혀 있는 김창호씨의 건강을 어떻게 보십니까? 성모병원의 김박사는 앞으로 일주일은 더 견딜 수 있다고 했는데요?
[박사1] 직접 진단하지 못해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의사의 전화 진단으로 보아 맥박이 1분에 64로 점차 떨어지고 있단 말이야. 심장과 의식은 좋은 것 같지만 탈수증에다 정신쇠약 증세가 심해지면 가사(假死-거의 죽음의 상태) 상태가 될게 틀림없어.
[박사2] 난 오박사의 견해와는 반대요. 인간의 생명이란 동물의 생명과 달리 의지라는 하나의 활력소가 존재해. 그 의지가 인간을 40일까지 굶어도 살아나게 하는 사례를 기록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인간 의지의 힘, 그것은 과학으로 풀이할 수 없는 신비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이오.
(연구생들 박수친다. 박사2, 박수에 신이 났다)
[박사2] 그렇다고 해서 나의 견해가 의학적인 뒷받침을 잃은 건 아닙니다. 즉 김창호씨의 경우 우선 생리학적으로 보아 체내에 저축된 지방이 극소수 밖에 소모되지 않았습니다. 또 전화통화 하는 상태로 보아 뇌의 지방도 소모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뿐만 아니라 심장의 기능도 비교적 정상이오. 소량이나마 수분 섭취도 가능한 만큼 생명엔 지장이 없습니다.
[박사1] (흥분된다) 저 사람은 사사건건 내 의견에 반대란 말이야. 아니 미국서 박사학위 따온 게 뭐 대단해. 왕년에 미국 가서 박사학위 안 따온 사람 있어. 난 그 어려운 일본서 박사학위를 땄어요. 선배 알기를 우습게 하는 학계 풍토가 한심해. 돼먹지 않았어. 들어봐요. 지금 김씨의 맥박이 점차 떨어져 체온이 낮아지고 있는데 그 상태는 신체가 특수 조건에 적응하는 현상이란 말이야. 따라서 인체 구조의 주성분이 점차 소모되기 때문에 이 고비에서 더 가면 맥박이 갑자기 오른다구. 그러면 심장이 견딜 수 없게 되어 빨리 움직이게 돼. 그러면 곧 죽게 돼요! 의지가 그걸 어떻게 막어?
[박사2] 두고 봅시다. 누가 옳은지. / [박사1] 두고봐, 이 버릇없는 자식! -박사이지만 자신이 선배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몰상식한 인물
8. 갱내
(누워있던 김창호, 몸을 조금씩 꼼지락거린다. 고개를 든다. 실성한 것 같다)
[김창호] 눈앞에 아른거리는 게 뭐지? 거기 누구요? 어머니! (기어 쫓아간다) 어디로 가십니까? 난 혼자 있기 싫습니다. 어머니, 날 살려 주십시오. 무슨 소리라도 들리게 해주십시오! (벽을 주먹으로 친다) 여보시오! 거기 누구 없소? 나 아직 살아 있습니다. 대답 좀 하시오. (전화를 두드린다) 여보시오. 누구 없소? 여보시오! (아무도 대답 않는다)
9. 현장
(갱 입구 높은 곳에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 읊고 있다. 아래쪽에선 TV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구경꾼들 카메라 주변에 몰려들고 홍기자 마이크 든 채 이들을 정리하고 있다. 옆에 긴장한 소장. 행상들, 장사하기에 열을 올리고 다른 한쪽엔 막 도착한 목사와 신도 일행 무릎 꿇고 기도자세. 목사, 두 손 높이 들고 기도 시작한다. 카메라맨과 기자들이 이들에게 초점을 맞출 때마다 스님과 목사는 자세를 바로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거의 동시적인 대사들)
[스님] (독경) 나모 사만도 못다남 아바라지 하다사 사다남다냐사 오카카 혜 홈 홈 아바라 아바라 바라아바라 바라아바라 디따 디리디리 빠다빠다선디카 시리예 사바하.
[행상1] 김밥 사시오. 따끈따끈한 김밥이오.
[행상2] 아이스크림, 시원한 냉차 입에서 슬슬 녹아요. 아이스크림.
[목사] (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여기 당신의 불쌍한 어린 양 한마리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그 이름 광부 김창호씨, 그는 지금 지하 1천 5백미터 아래서 하나님의 따뜻한 구하심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제트기 소음이 이 소리를 중단시키고 구경꾼들은 모두 하늘을 본다)
[스님] (독경 계속)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 아리야바 로기데 사바라야 모지 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 가르니거야 다냐타 살바다라니 말다라야 인혜혜 바라마고다 못다야 옴 살바작 수가야 다라니 인지리야 아냐 타바로기제 새비라야 살바도따 오하야미 사바하.
[여관보이] 여관은 창호 여관! 따끈따끈한 방이 딱 하나 남았습니다.
[행상1] 아이스크림, 시원한 냉차. / [행상2] 금강산도 식후경, 김밥 잡수세요.
[목사] (기도) 하나님의 아들 김창호씨는 온화한 가장이요, 성실한 일꾼으로서 우리 이웃이요, 가족이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 견딜힘과 용기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신도들의 아멘 소리. 홍기자 마이크에 대고 방송 시작한다)
[홍기자] 여기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고한리 동진 광업소 사고 현장입니다. 지난 10월 22일 갱구 매몰로 11명의 광부의 목숨을 빼앗은 광산 사고는 올 들어 두 번째 큰 사고로 지금 유일한 생존자인 김창호씨가 무려 열 하루째 지하 1천 5백미터 아래서 구출의 손길이 닿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갇혀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부분이 사고가 난 동 5 갱구입니다. 먼저 김창호 구조위원회 회장이시며 동진 광업소 소장이신 권오창 선생님께 구조 현황을 알아보겠습니다.
(갱구 입구 필름, 인터셉트된 구경꾼의 얼굴들. 손을 흔들며 웃어대는 필름들)
[소장] (마이크 앞에 선다) 에헴,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 구조대는 지주공 5명, 조수 12명, 감독 1명, 신호수 3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6시간씩 교대하여 불철주야 김창호씨 구출에 온갖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위선적 인물, 양두구육(羊頭狗肉), 표리부동(表裏不同)
[홍기자] 앞으로 구출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소장] 애초 예상과 달리 갱목 철근 등의 장애물이 많은데다 갱내에 물이 쏟아져 작업에 지장이 많습니다. 앞으로 2,3일 더 걸릴 전망입니다. 그러나 우리로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홍기자] 감사합니다.
(비서관, 수행원과 경찰의 호위 받으며 등장한다. 비서관, 소장의 아내로 사무실에 들어가기전 카메라에 포즈취한다. 기자들의 접근 막는 수행원, 경찰)
[홍기자]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각계각층에서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데요.
[기자1] 대단합니다. 전 국민의 성원이 이렇게 뜨겁고 클 줄은 몰랐습니다.
[기자2] 현지 주민들이 기자 숙소로 옥수수와 감자들을 삶아 갖고 와서 김창호씨를 꼭 구해달라고 호소할 땐 눈물이 핑 돌더군요.
[홍기자] 이런 국민의 여망에 보답하는 뜻으로도 꼭 살아 나와야겠습니다. (감격해서) 생명은 존엄한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인간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젖어 왔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그 존엄성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고 강원도 태백에서 홍성기 기자 말씀 드렸습니다. (쪽지 보며) 이 방송은 여성의 탄력 있는 미를 창조하는 몽쉘 느그므 화장품 제공입니다.
10. 사무소와 갱내
(전화벨 울리며 경내를 비춘다. 지친 듯 쓰러져 있던 김창호, 간신히 몸을 움직여 전화를 받는다. 사무실엔 비서관, 수행원, 의사, 경찰 서장이 전화 거는 걸 지켜본다)
[김창호] 네? / [소장] 나 소장이오. 지금 회장님께서 김창호씨의 건강을 염려하여 비서관님을 보내셨습니다. 받아보시오.
[비서관] (전화 바꾼다) 김창호씨, 나 신난다 비서관입니다. 회장님께선 김창호씨가 어서 구출되어 나오길 바라고 계십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고 끝까지 견디십시오. 꼭 구출될 겁니다.
[김창호] (기운 없이) 감사합니다. / [비서관] 뭐 부족한 거 없습니까?
11. 다방
(기자1,2, 이빨 쑤시며 앉는다)
[기자1] 음식이 신통치 않더군!
[기자2] 시골이 별 수 있겠어? 일류 식당이란 데가 그 모양이니---
[기자1] 어이구, 난 일주일 동안 잠자리가 불편하니까 미치겠더군---
[기자2] 죽든 살든 빨리 결말이 나야 우리가 고생을 덜하지. / [기자1] 살아 견디는 게 용해.
[기자2] 김차호씨가 어제로 갱 속에 살아 남은 세계 기록을 깼다구.
[기자1] 어떻게 되는데?
[기자2] 1948년 일본 미야끼엥 니시야마 탄광 낙반사고 때 네 명의 광부가 11일 16시간 30분만에 구출 됐고, 서독선 1963년 마힐루데 광산 침수 사고에서 14일간을 살아 나왔다구.
[기자1] 그럼 우리가 기록을 깬 거게? / [기자2] 살아 나와야지.
[기자1] 기록 갱신을 위해서두 살아 나와야 되겠군. 하하---
(마담, 차를 날라온다)
[기자1] 마담, 미인이시오. / [마담] 어머! 고마워라!
[기자2] 여기 사람 같지 않은데--- / [마담] 서울서 왔어요.
[기자1] 어쩐지--- 그런데 이런 시골엔 뭣하러?
[마담] 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원정 왔지요 뭐.
[기자2] 김창호씨 덕분에 이 근처 아주 호경기라더군. 여관은 대만원이야. 서울서 내려온 자가용들이 길을 꽉 메우고 촌사람들도 또 그걸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어.
[마담] 오늘 낼 사이에 구출된다지요? / [기자1] 그런 모양입니다.
[마담] 며칠만 더 끌어줬으면 좋겠는데. 닷새만 끌어주면 보증금 들어간 거 빼고 200만원 수입은 되는데. -사람의 목숨보다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
12. 현장
(TV카메라 정면에 설치하고, 구경꾼들 모여든다. <김창호 만세> <환영 김창호>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다> 등의 플래카드.
카메라맨, 기자들 바삐 움직이고 경찰은 인파를 정리한다. 행상들은 풍선들을 들고 장사에 바쁘고 단상엔 밴드부가 대기하고 있다. 홍기자 TV 카메라 중계 준비로 머리엔 마이크로폰을 쓰고 있다. 한쪽엔 스님이 독경)
[홍기자] 국민여러분! 여기는 강원도 정선군 동진광업소 사고 현장 입니다. 지하 1천 5백미터 갱 속에 갇혀 만 16일간이나 굶주림과 추위와 싸워가며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생명을 지탱해 왔던 김창호씨, 그가 드디어 구출되기 직전에 있습니다. 그의 생환은 김창호씨 개인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기쁨이며 인간 생명의 승리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는 각 방송 보도진은 물론이려니와 국민 여러분의 성원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12. 현장
(“주께서 구원하시리라. 대한기독교 복음회 5대륙 교회"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신도들 앞에 온종일 목사 기도하고 있다. 기자 마이크 들이댄다)
[기자] 오대륙 교회에서 오신 웬종일 목사께 소감 한 말씀 묻겠습니다.
[목사] 우리의 어린양 김창호씨는 반드시 구원 받으실 것입니다. 믿습니다.
[신자들] 할렐루야!
(“빛을 보리라. 한국불교 현대종 한심사" 플래카드와 신자들에게 간다)
[기자] 한심사의 반나절 스님께 소감 한 말씀 묻겠습니다.
[스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우리 김창호 보살님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나무아미타불,
[불자들] 나무아미타불.
[홍기자] 그럼 당 영업소 소장 권오창 선생님께 몇 말씀 묻겠습니다. 구출될 시간은 대략 몇 시쯤 됩니까?
[소장] 예, 지금 김창호씨와 구조대와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30분 내로 구출될 전망입니다.
[홍기자] 김창호씨의 건강 상태는 어떻습니까?
[소장] 어제밤부터 파이프를 통해서 미음 같은 음식을 공급 했습니다만 큰 지장은 없다고 봅니다.
[홍기자] 감사합니다. 그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소장] 전 오로지 그 사람의 생환만을 바래 왔습니다. 제가 광산에 있은 지 20년이 넘습니다만 (감격) 이렇게 오늘처럼 보람 있고 감격해 본적은 없습니다. (콧물을 닦는다)
[홍기자] 우리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생명의 존엄 유지를 위한 횃불을 들어야겠습니다. 이 방송은 여성의 탄력 있는 미를 창조하는 몽쉘느그므 화장품과 스타킹 메이커 와키누가 나일론 제공입니다.
(박여인, 남매를 데리고 등장한다)
[아낙네1] 저기 김창호씨 부인이 와요. / [광부1] 비켜줘요, 비켜줘.
(구경꾼들, 길 비켜주고 축하 인사하고 홍기자 박여인을 카메라 앞으로 끌고 온다)
[홍기자] 여기 김창호씨 부인께서 와 계십니다. 어떻습니까? 기쁘시죠?
[박여인] 네,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어요. / [아들] (마이크에 대고) 아버지!
[딸] 뭐야, 엄마?
[박여인] (쥐어박으며) 조용해 이새끼들아. (마이크에 대고) 너무들 고마웠어요. 그이가 살아 나온다니까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
[홍기자] (마이크― 벅찬 감격에 말을 잇지 못합니다. (터널 쪽을 보며) 오늘 김창호씨가 구출된 후 스케쥴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대기한 1988구급차에 올라 간단한 응급조치와 진단이 있은 후 H19 공군 헬리곱터 편으로 서울로 급송 됩니다. 공항으로부터 두 대의 백차가 호송하는 가운데 메디컬 센터에 입원 가료하게 되며 연도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김창호씨를 환영할 것입니다. 현재 서울에는 경찰청장 진두지휘하의 1천명의 경찰 병력이 배치되어 도로 경비에 임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쪽지를 보며) 김창호씨가 서울병원에 입원하게 된다는 소식에 사북읍 뉴패션 양복점에서는 양복 한 벌을 로마 양화점에서 구두 한 켤레, 시장 상인연합회에서 쌀 다섯 가마를 기증했습니다. (톤 높여서)지금 막 김창호씨가 구출돼 나오고 있습니다. (구경꾼들 한쪽으로 몰린다)
[홍기자] (흥분했다) 16일간 세계 기록을 수립하고 지하 갱 속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이겨낸 초인적인 사나이 김창호 선수의 모습이 서서히 지상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5미터, 3미터---2미터--- (군중의 웅성거림, 경찰의 정리, 밴드 리더의 사인에 이어 밴드가 우렁찬 군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구조대에 부축되어 나오는 수척한 김창호. 카메라 플래시, 너무나 의외의 현상에 겁에 질린 듯 얼굴 찡그리며 눈을 가리는 김창호)
[광부들] 창호야!
[김창호] 여기가 어딥니까? (미친 듯 부른다) 만석이! 춘강이! 나 살려 주게!
[박여인] 여보! (군중과 경찰에 밀린다)
[김창호] (고개를 돌린다) 여보! 용준아! (경찰, 의사, 소장, 실장 등에 끌려 나간다. 밴드 뒤따르고 군중들 만세 부르며 따르고 텅 빈 무대에 박여인과 아들 딸만 남는다)
[아들] 아버지 왜 잡혀가? / [딸] 아버지 어디 가?
[박여인] 잡혀가는 게 아니야, 모셔간 거야! / [딸] 감옥으루?
[박여인] 이 병신들아, 감옥엔 왜가? 아버지가 뭐 잘못했다구? 그만큼 땅속에 갇혀 있음 됐지.
13. 진료실
(침대에 환자복 차림의 김창호가 누워 있다. 주치의, 인턴, 간호원 들어온다)
[간호원] 김창호 씨, 일어나세요. (김창호 놀라 눈뜬다.) / [김창호] 또 뭡니까?
[주치의] 제가 앞으로 김창호씨의 건강을 책임질 주치의입니다.
[김창호] 진찰 다 했는데요!
[주치의] 선생을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하십시오.
[김창호]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주치의] 건강이 회복되면 만나시게 될 겁니다. 먼저 건강 진단을 해야겠습니다.
[김창호] 또요?
[주치의] 지금 하는 진료는 세계 생리학협회에 보고할 자료를 위한 것입니다. 김창호 씨의 건강 상태의 변화는 생리학적인 면에서 의학계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될 것입니다.
[김창호] 집에 가고 싶습니다. 내 마누라가 해주는 된장찌개에 밥 먹으면 곧 낫습니다.
[주치의] 체온. / [김창호] 선생님. (입을 벌리는데 간호원 체온계를 입에 넣는다)
[주치의] 맥박. (인턴 한쪽 팔을 잡아 시계를 보며 맥박을 잰다. 간호원 다른 쪽 팔로 혈압 재고)
[인턴] 맥박 1분에 66 / [간호원] 1분에 66 (기록한다)
[인턴] (체온계 빼며) 체온 37도 3분.
[간호원] 37도 3분. (적고 혈압 잰다) 혈압 체고 120, 최저 100
[인턴] 호흡 1분에 22 (주치의 청진기로 가슴 대본다)
[주치의] 엎드리세요. (간호원, 김창호를 엎어놓는다) / [김창호] 선생님.
[주치의] 숨 들여마시고! (김창호 숨 들여마신다)
[주치의] 됐습니다. 일어나세요. (김창호 일어난다. 간호원, 인턴 김창호를 저울대 위에 세워 놓는다)
[김창호] 전 언제 나가게 됩니까?
[인턴] 체중 46킬로그램. (김창호를 의자에 앉힌다) (간호원 귀에서 피를 뺀다)
[김창호] 아! / [인턴] 혈액형 AB형. (간호원 한쪽 눈을 가린다)
[인턴] (시력 검사) 보입니까? 우측 0.5, 다른 쪽. (간호원 다른 쪽 눈 가린다)
[인턴] 보입니까? 좌측 0.5 / [주치의] 시력이 굉장히 악화됐군요. (간호원 병을 준다)
[주치의] 거기다 소변을 보세요. / [김창호] 네?
[간호원] 오줌 누세요. 소변검사를 해야 됩니다.
[김창호] 오줌이 안 마려운데요. / [인턴] 누도록 노력하세요.
(김창호 병을 손에 든 채 이들의 얼굴을 본다. 냉정한 세 사람 흡사 고문관과 같다)
[김창호] 난 이렇게 사람들이 보고 있는 데선 오줌이 안 나옵니다.
[주치의] 돌아서십시오. (김창호 관객을 등지고 돌아선다. 병에다 억지로 오줌을 누는 포즈. 다 누자, 간호원 병을 채간다)
[김창호] 똥도 눠야 됩니까?
[인턴] 앉으세요. (김창호 앉는다, 인턴 끌고 나가려 한다)
[김창호] (겁이 나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날 해부하는 건 아니겠죠?
14. 기자 회견 석상
(김창호, 주치의의 호위 하에 단상에 앉는다. 기자들, 카메라맨, 카메라를 들이대자 김창호 얼굴을 가린다)
[카메라맨] 김창호씨, 얼굴 좀.
[주치의]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시력이 약화돼서 카메라 플래시에 견디질 못합니다.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김창호에게 씌운다) 참으세요, 곧 끝납니다. 전 국민에게 김창호씨 생존을 알려야 합니다. (플래시 터진다. 김창호 움찔거리지만 참고 견딘다)
[홍기자] 김창호 씨, 우리 기자단을 대표해서 김창호 씨의 생환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제가 사고 첫날부터 현장에서 김창호 씨가 구출되기까지 쭉 지켜보았던 MBS 홍성기 기자입니다. 먼저 이렇게 살아 나오신 소감 한 말씀 부탁합니다.
[김창호] (당황)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난 집에 가고 싶습니다! (주치의, 귀에 대고 뭐라고 한다)
[김창호] 저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
[기자1] 통일일보의 원근식 기자입니다. 16일 동안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 견디셨는데 어디서 그런 인내력이 나셨는지요?
[김창호] 예? (주치의 쉽게 설명해 준다)
[김창호] 전 그저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처자식은 어떻게 됩니까?
[기자2] (민주신문) 갱내에서 가장 괴로웠던 일은요?
[김창호] 배고픈 겁니다. 나중엔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게 보입니다. 누구하고든 얘기가 하고 싶었는데 전화를 걸어도 대답이 없구---이젠 꼭 죽는구나 생각하니 괴로웠습니다.
[기자3] (KBC) 살아 나오면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건 뭐였습니까?
[김창호] 꽃밭을 가꾸고 싶었습니다. (모두 의아해 한다)
[홍기자] 앞으로 건강이 회복되시면 뭘 하시겠습니까?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면---
[김창호] 생각 안 해 봤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소란하기만 하구.
[기자1] 다시 광산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김창호] 싫어요! 푸른 들이 있는 데서 살렵니다. 씨 뿌리고 농사짓고 맑은 공기와 푸른 초원에서 살겠습니다.
[주치의] 자, 그만합시다.
15. 김창호의 집
(박여인, 아들, 딸 겁에 질려 서 있다. 기자1이 취재하고 있다)
[기자1] 김창호 씨가 오늘 오신다는 얘기 들으셨습니까?
[박여인] 예, 아까 면장이 알려줬어유. / [기자1] 기쁘시죠.
[박여인] 말이라고 해유? / [기자1] 저, 김창호 씨와 결혼하시게 된 동기가 뭡니까?
[박여인] 예? / [기자1] 어떻게 결혼하시게 됐냐구요?
[박여인] 될랴니까 됐지유. 언니가 보라고 해서 보니까 그이데유. 그래서 같이 살게 된 거지유, 자꾸 말시켜야 별거 없어유.
[기자1] 그게 언제지요?
[박여인] 내가 스물세 살 땐데 가을이에유. 그런데 왜 그런 걸 미주알고주알 캐는 거예유?
[기자1] 아! 우리 <통일일보>에 두 분 얘길 특집으로 낼라는 겁니다. (이때 사진기자 먼저 뛰어 들어오고 김창호 선물꾸러미 들고 들어온다)
[김창호] 여보! 용준아, 용희야. (아이들을 껴안는다) (사진기 플래시. 가족들은 운다)
[김창호] 찍으시우.(가족들에게) 그러는 거여, 자, 서! (그런데 익숙한 듯 포즈 취한다)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기자1] 집에 오신 소감은? / [김창호] 좋지요.
[기자1] 전국민과 동료 광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창호] 아까 역에서도 말했는데요.
[기자] 우리 신문은 다릅니다. 이번에 김창호 씨 특집을 실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김창호] (억지로) 감사합니다. 나를 구해주시느라고 애쓰시고 또 국민 여러분이 성원해 주셔서 고마울 뿐입니다.
[기자] 갱내에 있을 때 동료한테 말하고 싶은 건 뭐였습니까?
[김창호] 뭐 할 얘기가 있겠습니까? 춥고 배고프고 애새끼들 보고 싶고 살고 싶은 거지요. (가족과 얘기하려는 김창호를 자꾸 가로채며 묻는 기자)
[기자] 탄광 사고에 대한 김창호씨의 방비책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창호] 내가 뭐, 관리실장입니까? 그 사람들이 알아서 갱도나 튼튼하게 만드는 거지요.
[기자] 광산으로 다시 돌아가시겠습니까? / [김창호] 싫어유.
[기자] 그럼 앞으로 계획 같은 건? (기자들 동시에)
[김창호] 나 몰라유. 내가 무슨 계획 짜고 살았나요?
[기자] 김창호 씨, 서울로 가신다는 얘길 들었는데요? (방송기자 녹음기를 들고 뛰어 들어온다)
[방송기자] 여기 찾느라구 진땀뺏네. 김창호씨, 집에 온 소감 한 말씀.
[김창호] 국민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집에 와서 기쁩니다.
[방송기자] 결혼은 몇 살 때 하셨습니까?
[김창호] 나 결혼 딱 한번 했수다, 여러 번 한거 아니라구요.
[방송기자] 갱내에 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뭐였습니까?
[김창호] (지겹다) 나 좀 쉬게 해주세요. 좀 씻고 나와서 얘기하지요.
[기자] 김창호씨, 사진 한 장만 더 찍읍시다. 자, 다들 웃어주시고 얘들아, 너희 그 상자 들고 웃어, 아버지 보구, 됐어.
(김창호, 아이들에게 시키는 대로 포즈 취하게 한다. 억지로 웃는 표정의 가족들, 선물꾸러미를 아이들에게 안겨주고, 사진 플래시)
[기자1] 마감 시간 됐는데, 가지. (기자들 나가 버린다. 식구들 그냥 보고 서 있다)
[김창호] 나야, 왜 이러구 서 있어? 내가 이상해 보여? 이 애들아, 그거 먹어. (아이들 선물 상자 뜯는다)
[김창호] 고생 많았지?
[박여인] 또 어딜 가세유? / [김창호] 음, 서울, 내가 할 일이 있다누만, 헛허---
[박여인] 메칠이나유? / [김창호] 올라가 봐야 알겠는데 얼마 걸리겠어?
[박여인] 일해서 먹구 살아야지유?
[김창호] 염려 마, 돈이 좀 있으니까 장사래도 하지. (아이들 케이크 먹으며 싸운다)
[김창호] 이 새끼들아, 싸우지 마. 그런 거 얼마든지 사줄 테니가, 헛허---며칠 굶은 놈 같구나. 알구나 먹어. 그게 케키라는 거야.
[아들] 케키? (또 뺏고 뺏기고)
[박여인] 조용히 해, 아버지 오셨는데---
[김창호] 그래, 애기는? (박여인의 배를 본다)
[박여인] (배 만지며) 잘 자라요. 그동안 이놈의 새끼가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김창호] 아들이야! 그래서 갑갑해서 발루 차는거라구, 빨리 내보내 달라구---
[박여인] 그런가 봐유.
[김창호] 참 그런데 모두들 어디 갔어? 이웃에 아무도 없어! 어떻게 된 거요.
[박여인] 광산이 빚 때문에 망해버렸어요. 당신 구출하는데 든 비용이 많이 들었다구! 그래서 문을 닫았어요. 광산 소장은 부도내고 도망해 버리구--- 모두들 딴 광산으로 일자릴 찾아 떠나 버렸어요.
[김창호] 나 때문에---
16. 공개홀
(네 개의 의자가 전면을 향해 반원형으로 놓였다. 가운데 사회자석, 벽에는 유머게임) (ABC RADIO-TV란 글자. 사회자, 마이크 앞에 서 시계를 보며 큐 사인을 기다린다)
[사회] 좋습니까? (조종실의 사인을 받는다)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방청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노래와 웃음이 함께하는 유머 올스타 시간이 돌아 왔습니다.
(AD가 박수치는 흉내낸다. 박수소리-실제로 관객이 치게 하면 좋다)
[사회] 오늘 출연하여 총평을 해주실 교수님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음악, 미술, 영화 평론가이시며 우리 유머게임의 고정 손님이신 마광필 교수님! (박수와 함께 마광필 등장한다)
[사회] 교수님께선 최근에 ‘개짓는 소리’란 책을 펴내셨습니다.
다음에 오늘의 게스트 코미디언이며 별명이 삽살개인 이상복씨! (이상복, 등장한다 박수-)
[사회] 그리고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 엘비김! (가수 나온다. 박수와 여학생들의 기성)
[사회] 끝으로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 지난 10월 22일 갱구 매몰로 16일간이나 갱내에 갇혀있다 초인간적인 의지력으로 살아 나오신 광부 김창호씨! (우뢰같은 박수, 주악이 울리는 가운데 어설픈 양복을 입은 김창호, 개선장군 마냥 손을 흔들며 나온다)
[사회] 김창호씨! 방송은 처음이시죠? / [김창호] 예.
[사회] 긴장하지 마시고 마음을 턱 놓으세요. 김창호씨 오늘 이렇게 방송에 나오셨는데 시청자한테 한 말씀 하시죠?
[김창호] (연설조로) 대단히 감사합니다. 불초 소생이 배운 것도 별로 없지만---이렇게 방송국에 나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 국민 여러분이 애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덕택이라고 생각 합니다. 앞으로 배전(倍前-이전의 2배)의 애호와 지도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참 무식함
[사회] 네, 들어가 앉으시죠. (김창호 자리에 앉는다는 게 미끄러 떨어진다. 웃음. 김창호, 다시 앉는다)
[사회] (웃으며) 네, 편안히 앉으십시오. 그럼 오늘의 게스트 코미디언 삽살개 씨의 장기자랑부터 보시겠습니다. (코미디언 나온다. 적절한 레퍼터리(공연 작품의 목록) 선정해서 할 것-)
[사회] 네, 다음은 가수 엘비김 씨!
(가수 나온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션과 노래를 한곡 부를 것)
[사회] 엘비김 씨, 인기 대단합니다. 저, 마광필 교수님 우리 엘비김 노래와 그 다양한 제스처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마광필] 이 테레비 방속국 빨리 없어져야 합니다. 애들이 이상한 흉내만 배워 갖고는 애 버리기 딱 알맞아요.
[AD] (나오며) NG, 지금 테레비 방송하면서 방송국 없어지라고 말하면 어떡합니까?
[마광필] 뭐, 내가 말 잘못했어? (사회, 마광필 귀에 대고 사정한다)
[사회] 자, 다시 합시다. 미안합니다. (카메라 불 들어온다)
[사회] 저 마광필 교수님, 교수님께선 최근에 작곡에도 손을 대셨다고 들었습니다.
[마광필] 네, 한곡 해봤습니다. 방금 레코드 취입을 끝내고 오는 길입니다.
[사회] 가수는 누군가요? / [마광필] 안조아란 신인 여잡니다.
[사회] 곡은 어떤 곡인가요? / [마광필] 뽕짝에, 제목은 <제발 히트해 다오>
[사회] 통사정 했군요. 히트할 겁니다. 다음은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 김창호씨! (박수와 함께 일어나 나온다)
[사회] 뭘 하시겠습니까?
[김창호] 노래나 하지요. / [사회] 무슨 노래? / [김창호] <아내여 미안하다>
[사회] 네. <아내여 미안하다> 의지와 인내력의 사나이 김창호씨의 노래 솜씨를 들으시겠습니다.
[김창호] (노래) (음정이 맞지 않는 우스꽝스런 노래에 모두 배꼽을 잡고 웃는다)
[사회] 이 방송은 건강의 상징 설사약의 명문 강도약품 제공 입니다. (CM의 소리 압도한다)
[CM] “왕성한 정력, 갱년기 장애에는 피나 플로톤! 감기 몸살엔 에치스톱정! 설사에는 설사고만산!"
17. 어떤 실내
(김창호, 광부 옷차림이다. 매니저, 미스터 양 헬멧을 씌워준다)
[미스터양] 거울을 좀 보시우! 비슷한가?
[김창호] 얼굴이 좀 검어져야 강부 냄새가 나겠는데요?
[미스터양] 분장을 좀 합시다. (얼굴에 검정을 묻힌다)
[김창호] 돈 걷힌 게 얼마나 됩니까?
[미스터양] 현재 2백만원은 넘어갑니다. 하여간 계산은 나중에 합시다. 오늘 CF 계약하면 1500만원은 받으니까.
[김창호] 허허---
[미스터양] 왜 웃으시우? / [김창호] 돈 벌기 아주 쉽군요.
[미스터양] 유명해지면 다 그런 겁니다. / [김창호]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됩니까?
[미스터양] (쪽지 보며) 12시 주간 고십 기자와의 인터뷰, 당신 사진 찍을 겁니다.
[김창호] 광부 모습으로 말이죠?
[미스터양] 예, 광산에 있을 때 찍어놓은 사진이나 있으면 이런 고생 안하지?
[김창호] 난 재미있는데---
[미스터양] 기자가 갱 속에서 가장 괴로웠던 일이 뭐냐? 결혼은 언제 했느냐? 그런 시시껍쩔한 얘길 물을 겁니다.
[김창호] 그거 여러 사람한테 말했는데?
[미스터양] 줄줄 외고 계시우! 시간 절약 되니까--- 조금씩 재미있게 거짓말 보태구!
[김창호] 난 거짓말을 못합니다. / [미스터양] 차차 하게 됩니다. 그래야 이 짓도 오래 해먹지.
[김창호] 이 짓이라니? 난 그래도 양심이 있습니다.
[미스터양] 누군 없수? 다 잊어버리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런 건 끄집어 낼 필요가 없어요! 양심을 들먹이면 아주 신경질 난다구요! 자! 녹음하기 전에 한 번 더 연습 합시다. 읽어봐요! 감정 넣어서---
[김창호] (읽는다) 당신의 겨울은 새로운 입맛과 함께 시작된다. 너도 먹고 나도 먹는 새로운 라면 죽-라면.
[미스터양] 좀 더 우악스럽게 엄마들이 들으면 먹고 싶어 환장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새끼들 한테도 죽라면을 끓여주죠. 김씨가 광고 잘못하면 죽쑤게 된다구요. -언어유희
[김창호] 어차피 죽라면인데 죽을 쓰면 어떻소?
[양] 그런 죽이 아니라 대나무순이 들어간 죽라면 이래요.
[김창호] 아 죽순 말이구만, 그럼 죽순 라면이라고 할 것이지---
[양] 다시 한번 합시다. 카메라 앞에서 대나무처럼 덜덜 떨지 말고 제발.
[김창호] 두고 봐요. 안 떨 테니--- 아 처음에야 초보운전도 다 떨지 않소.
[양] 초보운전은 언제 알아 가지고--- / [김창호] 이 광고 계약하면 나도 차 한대 삽시다.
[양] 알았소. 차 사줄 테니까, 자 다시한번 연습 합시다.
[김창호] 당신 수고가 많습니다. 댁의 일도 바쁠 텐데 나를 위해서 뛰어 주니 내가 인복이 많은 모양이죠?
[미스터양] 오해하지 마시우! 난 매니저요. 당신 수입금의 10퍼센트를 먹는다구요. 양심적으로--- 어, 또 신경질 나네. (전화벨이 울린다. 미스타양 주머니 안에서 수화기 꺼내 받는다)
[미스터양] 아, 여보세요---네? ---영부인께서? 알았습니다. (전화 넣고) 이봐요. 영부인께서 김창호씨를---
[김] 어? 영부인이 뭐하는 여잔데? (미스터양 김창호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미스터양] 이제 알았소? 인사를 잘해야 합니다. 자, 서두릅시다.
18. 청화대 별실
(김창호의 얼굴을 다듬고 옷을 제대로 입혀준다. 이때 경호원이 먼저 으스스하게 들어온다. 두 사람 차렷 자세로 선다. 영부인이 서울시장을 대동하고 들어온다.
[영부인] 아, 이사람이군요. 건강 괜찮아요?
[김] 예, 영부인님 덕택에 제가 살아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영부인] 뭐 어려운 점 없으세요? / [김] 다들 잘해 주셔서요.
[영부인] 뭐 부탁할 것 있으면 서울시장한테 말하세요.
[서울시장]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 하십시오.
[김] 저, 제가 호적이 잘못돼서 나이가--- / [영부인] 서울시장, 알아서 조처해 주세요.
[서울시장] 예. / [영부인] 그럼 수고하세요. (영부인 나간다. 경비원 따라 나간다)
[서울시장] 말씀 하시죠.
[김] 나이가 실은 42인데 39로 돼 있습니다.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바람에, 나이값을 할려면 제 나이를 찾아야 하는데.
[서울시장] 아, 그건 염려 마십시오. 나이를 줄이거나 늘이거나 제가 얼마든지 해드리겠습니다. 이름이라도 바꿔 달라면 바꿔 드리겠습니다.
[김] 아, 그럴 것 까지는 없구요.
[서울시장] 그럼,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서울시장 나가려 한다)
[김] 아, 서울시장. -분수를 망각하는 김창호 / [서울시장] 예, (나가다 말고 돌아선다)
[김] 서울 시장 몇 년 더하게 웃분한테 잘 말해 드릴 테니, 수고 하시오. (서울 시장 꾸벅하고 나간다. 김창호 허허 거리며 웃는다)
[김] 아아, 재미있다. -희극적 장면
[미스터양] 이름이 나면 다 그런 거요, 앞으로 슬슬 더 재미있어 질 거요.
19. 김창호의 집
(박여인 물지게 지고 들어온다. 젊은 광부와 아낙네 이불짐 들고 들어온다. 마주친다)
[광부] 안녕하세요? / [박여인] 아이구, 정씨 아저씨, 어떻게 오셨수?
[광부] 광산이 다시 열린대요. / [박여인] 색신가봐?
[광부] 예, 얻었어요. 인사드려, 그 김창호씨 있지? 그분 아주머니셔.
[아낙] 안녕하세유? 말씀 많이 들었어유.
[박여인] 고생될 텐데--- 그래 뭣 때문에 기어들어와! 도회지 간다면서?
[광부] 별 수 있습니까? 우리 아님 누가 땅 속에 기어들어가 석탄을 캐겠어요? 천직이지우. (아들, 딸 뛰어들어온다.)
[광부] 너희들 많이 컸구나! / [아들·딸] 안녕하세요?
[광부] 참, 얘들 아버진 언제 온답니까? / [박여인] 곧 온다곤 하는데 바쁜가벼.
[광부] 잘됐어요. 애 아버진. 그럼 또 뵙겠어요.
[박여인] 조심해 가요. 색시 잘 살아요. (광부와 아낙 퇴장한다)
[아들] 엄마, 아버지 언제 와?
[박여인] 나한테 묻지 말어, 내가 아니? (배에 진통이 오듯 배를 만진다)
20. 룸싸롱
(김창호와 미스터양)
[김] 여기가 어디요? / [미스터양] 룸싸롱이라는데요. 마담 뭐해? (마담이 미쓰옥과 다른 호스테스 데리고 들어온다)
[마담] 미스옥 거기 앉어. / [미스터양] 잘 모셔라. 이분이 바로 김창호씨다.
[미스옥] 어머, 어디서 봤나 했더니 테레비서 본 그 사람이구나.
[호스테스] 얘 너 오늘 횡재했다. / [미스옥] 실물 좀 만져 봐도 되지요?
[김] 예. (미스옥 김창호의 팔, 어깨 등을 만진다. 김창호 어쩔줄 모른다)
[호스테스] 얘, 나도 좀 만져 보자.
[미스터양] 넌 내 옆에 가만히 앉어있어. 마담 뭐 좀 먹을 것 가져와, 돈 걱정은 말고, 외상 안 그을테니---
[마담] 알았어요, 양사장님. 미쓰옥 너무 빠지지 말어. 얜 테레비에 나온다면 아무나 다 좋아하더라. (나간다)
[미스옥] 테레비에 아무나 나오는 거유?
[호스테스] 땅굴 속에 있을 때 얘기 좀 해주세요. / [김] 그 얘긴 수십 번 했는데요?
[미스터양] 얘, 넌 그쪽에 신경 쓰지 말어. 나도 테레비에 나와.
[호스테스] 언제 양사장이 나왔어요?
[미스터양] 내가 이런 사람들 테레비에 나오도록 힘을 쓰는 사람이야, 너 한번 나가고 싶어?
[호스테스] 내보내 줄래요?
[미스터양] 목요일날 5시 MBS앞으로 와. 봉투 하나 들고, 이웃돕기 성금 모금 하는데 너 특별히 얼굴 잘 내줄께.
[호스테스] 뭐요?
[미쓰옥] 그 속에 보름동안 있으면서 여자 생각 안나요? 얘기해 봐요, 나한테만. (어쩔 줄 모르는 김창호의 손을 잡아 자기 다리 위에 놓는다. 움찔하는 김)
[미스터양] 괜찮어, 미쓰옥 당신한테 반했다구.
[미쓰옥]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어요. 돈도 많다는데? 호호
[미스터양] 김창호 씨, 뭘하고 있어? 놀자구, 인생이 노는 거 빼면 뭐 있나? (미스터양 호스테스를 끌어안는다)
[김] 같은 여자래도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빚어 놨을까? (미쓰옥 김창호를 잡아끌어 안으로 웃어제낀다)
[기생] 이러구만 있을 거야? 시시하게.
[김창호]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야? / [기생] 그럼.
[김창호] 일어나봐. (기생 일어난다) / [김창호] 한 바퀴 돌아봐. (기생 돈다)
[김창호] 웃어봐. (기생 웃는다. 김창호 끌어안으며 웃는다)
[김창호] 하하---이렇게 좋은 걸 왜 진작 몰랐을까? 아-하---
21. 김창호의 집
(어두운 조명속의 박여인의 진통의 신음)
[박여인] 아- / [아들] 아버지 어디 있어? / [딸] 엄마!
22. 미쓰옥의 아파트
(김창호와 미쓰옥)
[김] 널 만나구 보니까 내가 여태 헛 살앗던 거 같애.
[미쓰옥] 웃기는 소리 좀 하지마, 신경질나게.
[김] 신경질 내지 마, 네가 신경질 내면 나 겁나더라.
[미쓰옥] 오늘이 며칠이나 됐지?
[김] 어? 글쎄---아무 생각도 안나, 너하고 있으면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귀에 들리는 것도 없어. 그러 아득하기만 해. 굴속에 있을 때처럼
[미쓰옥] 그 소린 이제 듣기도 싫어,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김] 싫어? 그럼 안하지--- / [미쓰옥] 당신 이러구 있을 거야?
[김] 왜 다리 아픈가? / [미쓰옥] 어휴, 촌놈! 이렇게 못 알아 들어?
[김] 뭐? 말을 해봐, 나한테 말 못할 고민 있어? 네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 줬잖아? 밍크 코트도 사줬고, 다이야 반지도 해줬고.
[미쓰옥] 아직도 내게 줄게 남어 있나?
[김] 내 건 다 네 것이 됐는데 뭘? / [미쓰옥] 나도 내 청춘 당신한테 바쳤어.
[김] 암, 그랬지. / [미쓰옥] 그러니까 서로 빚진 게 없어. 그만 집에 가봐!
[김] 집에 가라니? 여기가 우리 집인데?
[미쓰옥] 야, 이건 내가 얻은 아파트야, 당신은 내 손님이었구. 볼일 다 봤으니 가셔야지---
[김] 가다니 어딜? 당신은 내 여자야.
[미쓰옥] 야, 이 촌놈 새끼야? 너하고 내가 평생 살줄 알았어? 호스테스가 뭐하는 여잔 줄 몰랐어? 남자 돈 울거 내는 게 내 직업이야, 더 이상 줄 돈 없으면 당연히 물러나야지.
[미쓰옥] ---이 촌놈 새끼야! / [김창호] 뭐? 미쓰옥 갑자기 왜 그러는 거여?
[미쓰옥] (밖에다 대고) 오빠! (건장하게 생긴 청년 어깨 으쓱이며 등장한다)
[청년] 왜 그래? 누나. 뭐 잘못 됐어? / [미쓰옥] 이 새끼가 갈 생각을 안 해!
[청년] 궁뎅이가 질긴 놈을 만났군!
[김창호] 누구여? 미쓰옥 오래비 되는 사람인가? (손 내민다)
[청년] 어휴! 이런 뜸부기 같은 놈! (손을 잡아끌어 메다꽂는다)
[김창호] 어이쿠! 왜 이러는 거여? 처남!
[청년] 뼈다귀 추리기 전에 꺼지지 못해? (일어나는 김창호의 배를 주먹으로 친다. 쓰러지는 김창호)
[김창호] 말로하게, 이 사람아!
[미쓰옥] 그만해둬. 같이 산 정리를 생각해서 봐주자!
[청년] (김의 멱살 끌며) 누나 몸 망치는 놈은 내가 가만 안 둬! 꺼져!
[김창호] 내 돈! 내 돈!
[미쓰옥] 이봐요. 그동안 날 끼고 놀았으면 됐지. 먹고, 자고 일 년 생활비 안 들어?
[청년] 인생 공부한 수업료라고 쳐! (쓰러진 김을 남기고 청년 미쓰옥을 데리고 사라진다)
[김창호] 인생 공부?
23. 어느 방
(미스터 양 손톱 갈고 있다. 김창호 들어온다)
[김창호] (호기 있게) 아-미스터 양! 오랜만입니다.
[미스터양] (힐끗 보며) 미스터 양, 미스터 양 하지 말아요. 내 나이가 몇인데? (멈칫하는 김창호)
[김창호] 저, 우리 다시 그 전처럼 일합시다. 방송국도 나가고, 무슨 바자회도 열고, 내 목소리 좋아졌습니다. 아- (발성)
[미스터양] 시끄러! 시끄러! 당신 뭐하려고 그래? 난 당신 매니저 아니라구 난 신인가수 옥명아를 데뷔시킨 매니저야.
[김창호] 나두 노래 기차게 잘할 줄 안다구요. (구성진 유행가를 술집 가락조로 한 구절 뽑는다)
[미스터양] 그게 노래요? 편도선 앓는 소리지.
[김창호] 전에는 내가 한마디 하면 모두 박수쳤는데.
[미스터양] 그땐 당신이 상품 가치가 있을 때지.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구요. 신기록이 또 나오기 전엔 김창호 씬 아무것도 아니야. 매니저가 뭔데? 상품 가치가 있는 사람만 골라내는 게 직업이야.
[김창호] 그럼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갔다가 더 오래 있다 나오면 안 될까요? 그동안 잘 먹어둬서 자신 있는데--- (김창호의 얼굴 비참하리만치 진지하다)
24. 광산촌
(헬멧 쓴 광부1,2,3, 기타, 곡괭이 메고 일하고 있다. 김창호 늙고 허술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김창호] 여보게, 잘 있었나? / [광부1] 누구시더라?
[김창호] 나 몰라, 나, 김창호야, 등진 광업소에 있던.
[광부2] 김창호? / [광부1]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김창호] 돌아왔네. / [광부3] 어떻게 왔어? 자넨 서울서 아주 성공했다구 그러던데?
[광주2] 자넬 모두 기억하고 있어. 자네가 난 신문을 오려 둔 친구도 있고---
[광부1] 테레비 봤지. 그런데 어쩐 일인가?
[김창호] (쓴웃음) 혹시 내 처와 애들 못 봤나? 찾아갈 데라곤 거기뿐인데 가족을 잃어버렸네.
[광부1] 가족을 잃어버리는 수도 있나? 나는 잃어버리고 싶어도 쇠사슬처럼 묶여 있는데.
[광부2] 처자는 쇠사슬이지. / [광부1] 가세, 일할 시간이야.
[김창호] 나도 일할 수 있을까? 갱내에 들어가서?
[광부1] 자네 얼굴을 봐, 손을 보게, 우리하곤 빛깔이 달라졌어.
[광부2] 가보게, 뭣하러 들어오나? 이 흙구덩이 속에?
(모두 인사하며 노래를 합창하며 나간다. 김창호 혼자 남는다. 아주 서서히 자기 손을 들여다본다)
25. 기자실
(홍기자 논문을 읽고 있다. 때로 만년필로 가필도 해가면서)
[홍기자] 현대 사회는 다원적인 계층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광대한 지역에 산재한 생활 영역으로 인해 복잡 다양한 사회 계층을 이루고 있어서 이 계층 간에는 많은 모순과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계층은 소외되는 부분이 있게 된다. 이 사회성원 사이의 상호 이해를 위해서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미디어는 대중교통을 대리하는 것이다--- 거대한 집단으로서의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인간 사이의 개인적인 회화나 퍼스널 커뮤니케이션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매스미디어는 모든 사회적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대중사회의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다. (이 동안 김창호 등장해서 홍기자가 자기를 봐주기를 기다린다)
[김창호] 선생님--- / [홍기자] 뭡니까?
[김창호] 저 모르시겠습니까? / [홍기자] 당신 누군데?
[김창호] 홍기자님이시죠. / [홍기자] 그런데요?
[김창호] 저 김창홉니다. / [홍기자] 김창호? 여보, 김창호란 이름이 한두 개요?
[김창호] 동진 광업소 동 5갱에 묻혀 있던 광부 김창호.
[홍기자] 아? 김창호 씨?
[김창호] (반갑다) 역시 절 알아보시는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모두 참 고마웠지요. 전 정말 잊지 않고 있습니다.
[홍기자] 그런데 뭐 볼일 있수? 나 지금 바쁜데---
[김창호] 절 좀 도와주십시오. 가족을 잃었습니다. 차비도 떨어지고---
[홍기자] (돌아서서 5백원짜리 주며) 이거 가지구 가시우, 그리고 아래층 광고부에 가면 거기서 사람 찾는 광고 취급합니다. 나 바빠서---(김창호를 무시하고 다시 논문을 본다)
[김창호] 여보시오, 아무리 그래도 날 이렇게 대할 수 있소? 내가 한때는 그래도 영부인한테 초청을 받은 사람이오, 서울시장도 나한테---
(김창호 멍하니 말을 잃는다. 홍기자가 논문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동안 천천히 퇴장한다)
[홍기자] 결론, 따라서 매스컴이 없으면 하루도 살수 없는 것이 현대인이다. 매스컴은 20세기적인 종교가 되었고 종래의 어떤 종교나 예술보다 긴요한 현실적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한한 기능으로 인해 인간 부재의 매스컴에 이르지 않는가를 부단히 경계하고 자각해야 할 것이다. 매스 커뮤니케이션! 매스컴! 이 얼마나 위대한 단어냐?
26. 거리
(관객석, 또는 행인에게) 여보시오, 내가, 김창호요. 매몰광부 김창호. 날 모르겠어요?
[행인] 아, 그 김창호?
[김] 아, 아시는구려, 내가 테레비에도 많이 나갔지요. 내가 바로 그 김창홉니다.
[행인] 그러니 어쩌란 말이오? (행인 지나가 버린다. 김창호 멍해서 서있다. 맞은편 길에서 박여인 애들 끌고 온다. 거의 거지나 다름없이 된 지치고 초췌한 수염투성이의 김창호, 기다시피 걸어온다. 그러다 문득 앞을 본다. 아들, 딸을 데리고 이불짐 들고 나오던 박여인과 마주친다. 해산을 해서 핼쑥해진 박여인)
[박여인] 여보! 어떻게 여길? (말을 못하는 김창호) / [아들] 아버지?
(아들, 딸 달려간다. 아무 말 없이 한 발 주저앉아 양팔에 안고 얼굴을 부비는 김창호. 천천히 고개 든다. 부인과 마주친다)
[김창호] 애기는? / [박여인] (외면하며) 죽었어요. 사산(死産)했어요.
[김창호] (덜썩 주저앉는다) 왜? 왜 죽여? (땅을 긁으며 미친 듯) 뱃속에서 그 캄캄한 곳에서 나오고 싶어 몸부림치는 애를 왜 죽여? 왜? 푸른 하늘을 보려구 참고 열 달이나 갇혀 있던 앤데, 왜 그냥 묻어버려? 왜?
(어디선가 폭음. 사이렌 소리. 김창호 벌떡 일어난다. 사이렌 소리 더 크게)
[김창호] 아! (괴로운 비명 지르며) 가야지! / [박여인] 여보! (잡는다)
[김창호] 내가 저 속에 있어야 돼. 저 속에 내가 묻혀 있어야 돼. 난 그래두 살아남을 수 있어, 오래! 아주 오래!
[박여인] 여보! 정신 차려요!
27. 지하철 공사장
(카메라가 가운데 설치되고 있다. 구경꾼들 호기심에 카메라 앞에 몰려 있고, 경찰은 정리에 바쁘고, 홍기자 마이크 잡고 방송 준비. 카메라에 라이트 비친다)
[홍기자] 여기는 강원도 정선군 동민 광업소 사고 현장입니다. 메탄가스 폭발로 인한 사고로 채탄 작업 중이던 광부 34명이 매장됐습니다. 그러나 전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 광부 중 폭발한 갱구 아래쪽 대피소에 있던 배관공 22세 이호준씨가 아직 살아 있음이 지상과 연결된 배기 파이프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지금 보시는 부분이 사고 난 갱구 입구입니다.
(이때 이불 보따리를 멘 김창호 일가 등장한다. 홍기자, 김창호를 발견한다. 홍기자 달려온다)
[홍기자] 김창호씨, 잠깐만! (이불 보따리를 벗겨 카메라 앞에 세운다)
[홍기자]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 기억에도 새로운 매몰 광부 김창호씨가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지난해 10월 갱구 매몰로 16일간 굴속에 갇혀 있다 무쇠 같은 의지와 강인한 육체로 살아남은 김창호 씨! -다시 상품성이 있다고 여기는 홍기자의 행동
(구경꾼들 일제히 김창호 씨에게 시선 주며 박수친다. 김창호 처음에는 머뭇거린다. 웃으며 손을 들어 답례한다)
[홍기자] 김창호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지하 1천2백 미터 갱내 대피소에 인부들이 갇혀 있습니다. 그 사람이 구출될 때까지 갱내에서 주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김창호] 예, 먼저 체온을 유지해야 합니다. (신이 났다) 제 경험으로 봐서 배고픈 건 움직이지 않음 참을 수 있는데 추운 건 견디기 힘듭니다. 전구라도 있으면 안고 있어야 합니다. 배기펌프로 공기도 계속 넣어줘야 되구요. (그 사이 기자 한 사람 뛰어나와서 홍기자에게 귀엣말을 한다. 홍기자 마이크 뺏어 자기 말을 한다)
[홍기자] : 방금 살아 있던 것으로 알았던 배관공의 죽음이 확인됐습니다. 공기를 공급하던 배기 파이프에 가스가 차서 질식했다는 소식입니다. 정선군 사고 현장에서 홍성기 기자가 말씀드렸습니다.
(카메라 치운다. 구경꾼들 이젠 흥미 없다는 듯 카메라를 따라 나간다)
[김창호] (정신없다) 여보세요. 또 주의할 게 있습니다. 갱 속에서 오래 견디려면 바깥 생각은 말아야 됩니다. 그저 꾹 참고--- 언젠가는 빛이 보이겠지 하는 희망을 갖구---희망--- (김창호 일가 외엔 아무도 없다) / [박여인] 여보, 가요!
[김창호] 어디로 가? 땅 속으로, 아니야, 그래 하늘로 가자! 하늘로 가서 모두 깜짝 놀랄 기록을 세울 거다. 우리 다 같이 가자. 하늘에 가서 기록을 세우는 거다. (일가 보따리 들고 천천히 퇴장한다) < 끝 >
바른♥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