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바빌론 (B.C. 612년)
a) 역사
세계 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바빌로니아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기원전 1830년부터 1531년까지 3세기 동안 존속한 바빌론 제 1왕조인 구 바빌로니아(the Old Babylonia)와 그
뒤 천년 후에 같은 자리에서 1세기를 못 넘긴(B.C. 605-53C)느브갓네살의 신(新)바빌로니아(The Neo-Babylonia)
로 구분됩니다.
성경에는 이런 구분이 없이 바빌론(Babylon)으로 불리워져 있습니다.
제1왕조가 망한 뒤에도 바빌론은 계속 고대 세계의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다가 앗시리아 제국 당시에는
봉신(封臣)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속적인 반역으로 앗시리아의 산헤립은 기원전 689년 바빌론을 한 때 완전히 파멸시켜 끝장을 내려고까지
했으나 그 중요성 때문에 곧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626년에 이르러 바빌론의 봉신왕이 나보포랏살은 마침내 독립을 선언하고 종주국(宗主國)
앗시리아와 전쟁을 시작했으며, 종내에는 메디아와 동맹을 맺고, 스키디아의 지원을 얻어 기원전 612년 니네베를
함락함으로써 앗시리아를 넘어뜨리는데 성공했습니다.
기원전 605년 칼케미슈에서 이집트 대군과 앗시리아 잔군의 연합 세력을 격파함으로써 명실공히 근동(近東)의
패자(覇者)가 되었으며, 같은 해 서거한 부왕 나보포랏살을 이어 느브갓네살이 등극함으로써 대제국 신바빌로니아의
찬란한 출범이 있게 됩니다.
이 신바빌로니아가 곧 다니엘서의 주요 배경인 바빌론인 것입니다.
성경에 이 바빌론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유다왕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서 회복된 후 위문사절을 보냈던 므르닥발라단(Merodach-baladan)의 경우였습니다.(사 39:1-8, 대하 32:31, 왕하 20:12-19)
당시 바빌론에서는 갈대아(Chaldean)족의 추장인 므르닥발라단이 바빌론의 왕으로 나서서 앗시리아에 대항하다가
곤경을 당하던 때였기 때문에 팔레스틴의 강력한 반앗시리아 국가인 유다와 군사적 유대를 강화하고자 사절을
파견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 므르닥발라단은 앗시리아의 사르곤 2세와 그 아들 산헤립에게 대패하여 독립 항쟁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기원전 626년 므르닥발라단의 자손으로 같은 갈대아족인 나보포랏살이 또 다시 바빌론의 왕이 되어 독립을
선언하였고, 마침내 성공하여 전술한 바와 같이 대 제국 신바빌로니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기원전 605년 칼케미슈에서의 결전에 아들 느브갓네살을 출전시켜 승리를 거둔지 얼마 후인 그해 8월 나보포랏살은
재위 21년(626-605 BC)만에 서거함으로써 같은 해 9월 이집트 접경의 전역(戰役)에서 급히 돌아 온 아들
느브갓네살에 의해 왕위가 계승됩니다.
느브갓네살 이후의 바빌론 왕들과 역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 Ⅱ· B.C.605~562): 신바빌로니아를 대제국으로 만든 가장 뛰어난 왕으로 칼케미슈
전투에서 느고 2세의 이집트를 이기고, 시리아와 유다를 포함한 팔레스틴을 정복하고, 이집트 접경까지 이른 기원전
605년 8월에 서거한 부왕을 이어 왕위를 계승한 후 43년 간을 재위했습니다.
605년의 팔레스틴 제1차 정복시에 다니엘을 비롯한 세 친구들을 볼모로 잡아갔고, 기원전 597년에는 반역한
여호야긴과 에스겔 선지자등 일만명을 포로로 잡아갔으며, 기원전 586년에는 눈먼 시드기야와 수많은 포로들을
잡아가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파괴했습니다(왕하 25:8-11).
* 나보니더스(Nabonidus B.C. 556-539): 느브갓네살의 사위 가운데 하나로 아들 벨사살과 함께 신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입니이다.
밝혀진 고증(考證)에 의하면 나보니더스는 본래 하란의 영주(領主) 나부발라쑤이크비(Nabubalatsu-iqbi)와 그곳의
월신전(月神殿)의 여제사장 수무아담카(Shumuadamqa) 사이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610년 메대와 바빌론에 의해 하란이 점령당할 때 그의 어머니가 느브갓네살의 처첩으로 잡혀 와 왕의
사랑받는 후궁이 되자 그의 아들인 나보니더스도 함께 느브갓네살의 신임과 총애를 받아 국사를 맡는 한편
느브갓네살의 딸 니토크리스(Nitocris)와 결혼함으로써 사위가 되었습니다.
나보니더스가 병에서 회복된 후 서북 아라비아를 원정(遠征)하여 오아시스 테마(Tema)를 빼앗아 거기서 기원전
545년까지 여러 해를 살았습니다.
기원전 539년 페르샤에 의해 바빌론이 함락될 때 남쪽으로 피신했던 나보니더스는 후에 바빌론에 돌아와 고레스에게
투항(投降)하였으며, 이어 저 멀리 카르마니아(Carmania)의 봉신(封臣)으로 보내졌다고 전합니다.
나보니더스는 정치와 군사에는 무관심하였으며, 오히려 종교와 문화 특히 고고학에 깊은 흥미를 가져 많은 노력과
시간을 바쳐 왕위까지 아들에게 물리는 나약한 치세를 했다고 여겨집니다.
* 벨사살(Belshazzar B.C. 553-539) 신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입니다.
신병으로 요양중인 부왕의 섭정으로 기원전 553년경에 즉위하여 기원전 539년 10월 13일 밤 다니엘서 5장의
주연(酒宴) 후에 침입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로써 바빌론은 영원히 멸망합니다.
b) 문화
바빌론 성은 이중성곽으로 높이 3.7미터 두께 6.5미터이고 양변이 1천8백m와 1천3백m에 달하는 거대한
직사각형입니다.
여덟 개의 거대한 성문 가운데 바빌론의 신 마루둑을 위해 세운 이슈타르 성문이 가장 유명합니다.
성문을 통과하는 길에는 유약을 바른 타일로 만든 황소(벨)와 용(마루둑의 상징)의 형상이 줄을 지어 서 있습니다,
벽에는 파란색 유약을 바른 벽돌로 만들어졌는데 거기에는 빨간색, 노란색, 흰색의 사자들(이슈타르의 상징)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당시 바빌론에는 위대한 신들을 위한 신전 53개, 마르둑신을 위한 예배당 55개, 대지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 3백개,
하늘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이 6백개가 있었으며, 여러 신들을 위한 제단이 4백개가 있었습니다.
이 중에는 ‘신의 문’이라는 뜻의 지구라트가 있었는데, 이 탑은 7층으로 높이가 90m며 8천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습니다.
바빌론은 거의 2천년 동안 황폐해진 상태로 방치됐다가 1899년부터 1917년까지 독일인 콜데바이에 의해 다시
햇빛을 보게 됩니다.
바빌론은 지구상에 알려진 고대의 성 가운데 가장 크고 장대한 성이었습니다.
바빌론에는 사자의 그림이나 조각이 많은데 이는 사자를 여신 이슈타르와 동일시했기 때문입니다.
이슈타르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유명한 공중정원이 있던 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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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왼쪽은 사탄 숭배자들이 바빌론 이름을 내걸고 축제를 하고 있으며, 손가락은 집게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을
펴서 마귀의 뿔을 나타냅니다.
가운데 사진에서는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사탄 숭배 사인을 내 보이고 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미국 L.A.에 있는 이슈타르 성문과 비슷한 건축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