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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야누스-13대 황제(98~117년)

작성자예수제자|작성시간10.09.20|조회수1,539 목록 댓글 0

트라야누스는,

로마 속주 출신으로는 최초로 황제가 된 인물이다.

트라야누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지금부터 확인해 보자.

 

 

 

로마 제국의 13대 황제이며,

오현제 가운데 두번째 황제인 트라야누스.

1957년 전 9월 18일 태어난 인물이다.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Marcus Ulpius Trajanus, 53. 9. 18 ~ 117. 8. 7)는 오현제 가운데 두 번째 황제이며, 로마 제국의 속주 히스파니아(현재의 에스파냐)의 이탈리카 태생이다.

속주 출신자로서는 처음으로 로마 황제에 올랐다.

 

로마 제국의 경계선을 동쪽으로 특히 다키아, 아라비아,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영토를 넓히려고 애썼으며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고 사회복지를 확대했다.

 

트라야누스는 스페인 남부에 있는 로마 속주 바이티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 가운데 로마 제국의 공직에서 활동한 사람은 속주 총독, 군단 사령관, 집정관, 시리아 총독 등을 역임했던 아버지가 처음이었다.

 

트라야누스의 초기 생애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아버지와 함께 로마 또는 여러 곳의 군사령부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자격으로 트라야누스는 75년경에 아버지가 총독으로 있던 시리아에 머물렀다.

 

이어서 그는 프라이토르(법무관)를 맡아 전통적인 행정관의 지위에 올랐으며 그 자격으로 89년에 스페인에서 군단 사령관을 맡았다.

이후 게르마니아 속주의 총독을 맡아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보여줬으며, 91년에는 집정관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97년 10월. 황제 네르바는 트라야누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맞이한다.

이듬해인 98년에, 트라야누스는 2번째 집정관에 임명되어 동료 집정관인 네르바와 함께 직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달도 가지 않아 네르바가 세상을 떠나고, 트라야누스가 황제로 받아들여졌다.

(‘받아들여졌다’ 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로마 황제는 원로원과 시민의 동의를 거쳐야만 로마를 통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르바 황제.

흔히들 평가하기를, 오현제 중의 첫번째 황제지만 별다른 업적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병에 걸린 상태에서 제위에 올라 로마를 문제없이 다스릴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라면,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트라야누스는 네르바를 본받아, 원로원에 대해 존중과 호의를 가지고 행동했다.

또 로마 서민층에 관대했으며, 상당한 액수의 상여금을 그들에게 분배하고 국가로부터 곡식을 무상으로 배급받는 빈민층 시민의 숫자를 늘렸다.

 

이탈리아와 속주들에 대해 트라야누스는 도시들이 황제의 등극 때 관례적으로 보내던 공물을 면제해 주었고 세금을 경감했다.

 

속주 행정을 위해 트라야누스는 유능하고 정직한 관리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재정적인 곤란을 겪는 속주들에 유능한 총독들을 파견했다.

 

그 밖에, 속주들과 이탈리아, 로마 등지에서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실시하고 장려했다.

도로와 교량, 수로의 건설, 황무지 개간, 항구의 건축 등이 시행됐고, 오늘날 스페인, 북아프리카, 발칸 반도, 이탈리아 등지에 유적이 남아 있다.

 

수도 로마 역시, 토목공사로 약간의 변화를 맞이한다.

시내에 포로 로마눔 부근에 새로운 광장을 축조하면서 공설 시장을 마련해, 시민들을 입주시킨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신분과 빈부의 차이를 뛰어넘어 로마 시민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군인 출신인 트라야누스는, 군사 원정에 적극적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더 이상 국경을 확장하지 말라는 유언을, 두 번째로 어긴 황제였기 때문이다.

 

101년. 트라야누스는 도나우 강을 넘어,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다키아(현재의 루마니아) 침공을 재개한다.

다키아는 용맹한 왕 데케발루스 때문에, 네르바의 선왕이었던 도미티아누스가 할 수 없이 포기한 곳이었다.

 

2차례의 원정(101~102, 105~106)에서 트라야누스는 다키아의 수도 사르미제게투사(지금의 바르헬리)를 점령했고, 데케발루스는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자결한다.

 

트라야누스는 도나우 강 북쪽의 카르파티아 산맥에 새로 다키아 속주를 창설했다.

이 속주가 생겨나면서 로마 정착민들을 위한 토지가 마련되고 풍부한 금광과 소금광을 채굴할 길이 열렸으며, 러시아 남부 초원지대에서 이동해오는 유목민들을 흡수할 방어지대가 구축됐다.

 

다키아 원정은 트라야누스 기둥이라고 불리는 대리석 기둥에 조각으로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트라야누스 원기둥.

기둥을 나선으로 올라가면서, 트라야누스의 다키아 원정 장면이 쭉 조각되어있는데,

조각의 수는 2500여개나 된다고 한다.

로마와 다키아의 무기와 전쟁 방법에 대한 귀중한 정보가 담겨 있어,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트라야누스의 2번째 대규모 군사원정은 동방에 있는 로마의 오랜 적대세력인 파르티아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

 

110년에 파르티아가 로마에 우호적인 아르메니아의 왕을 폐위시키자, 트라야누스는 그를 복위시키기 위한 원정을 벌인다.

원정의 결과 일시적으로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손에 넣는 등 선전하지만,

그 후 이어진 파르티아의 반격과 이집트 및 유대의 유대인 반란으로, 아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포기해야만 했다.

 

116년, 건강이 악화된 트라야누스는 로마로 발걸음을 돌린다.

하지만 로마로 향하던 도중, 소아시아 남해안에 면한 셀리누스(지금의 셀린디)에서 숨을 거둔다.

117년 8월. 향년 65세였다.

 

유해는 로마로 운반되어 국장을 치르고, 트라야누스 원기둥 기단에 매장됐다.

 

트라야누스의 죽음이 공표되기 직전에, 그의 조카딸의 남편인 하드리아누스가 아들로 입양되어, 후계자가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트라야누스의 뒤를 이은 하드리아누스.

하드리아누스 역시, 속주인 에스파냐 출신이다.

 

 

트라야누스의 치세 동안 로마 제국의 영토는 최대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로마 제국의 판도는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일대에서부터 이집트 남부, 북쪽으로는 브리타니아(현재의 영국) 남부에까지 미쳤다.

 

트라야누스가 세상을 떠날 무렵의 로마.

연두색은 황제 관할 속주, 주황색은 원로원 관할 속주 및 본국 이탈리아다.

로마처럼 지중해를 빙 두른 형태의 영토를 자랑하는 대제국은,

인류 역사상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트라야누스는 자기 능력에 자신을 갖고 군사적 영예를 갈망하기는 했지만,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대의 로마인들은 트라야누스의 업적과 건축사업에 매료되어 그의 재위기간을 초기 제국의 절정기로 간주했다.

오늘날의 루마니아인들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들이 트라야누스가 다키아에 정착시킨 로마인들의 후손

이라고 주장한다.

 

로마인들은, 로마 제정의 창시자 옥타비아누스에게 'Augustus' . 즉, '존엄한 자' 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초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보다 더 높은 의미의 칭호를 받은 황제가 있었다.

 

칭호의 의미의 높고 낮음을 따지는 건 바보같은 짓인지도 모르겠지만,

더 높은 의미의 칭호를 받은 황제가 있었다.

 

그 칭호는 ‘Optimus Princeps’ .

한국어로 번역하면 '지고(至高)의 황제' . 즉, 더할 수 없이 높은 최고의 황제라는 뜻이다.

이런 엄청난 칭호를 받은 황제가 대체 누굴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그 답을 알고 있다.

오늘의 주인공이니까.

 

트라야누스를 새긴, 당시의 동전.

오른쪽, 동전 뒷면에 새겨진 알파벳이 바로

'지고의 황제' 다.

 

 

<트라야누스의 연표>

1세 - 탄생하다.

39세 - 집정관에 임명되다.

45세 - 황제 네르바의 후계자가 되다.

46세 - 두번째로 집정관에 임명되다. 네르바가 사망하고, 트라야누스가 황제가 되다.

49세 - 다키아 침공을 개시하다.

54세 - 다키아 왕국을 멸하고, 다키아를 속주로 삼다.

58세 - 파르티아가 친로마파인 아르메니아 왕을 폐위시키다.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 원정을 개시하다.

65세 - 사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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