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7)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자책감에 괴로워하며 티베리아스 호수로 돌아가 고기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 주님은 그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상처를 치료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며칠 전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에게 이것처럼 고통스러운 질문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를 괴롭히기 위해서 이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의 진심을 아십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했지만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에는 아직 너무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주님에게 누구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은 베드로였기에 마음의 상처는 더욱 컸을 것입니다. 주님은 상처받은 베드로를 일으켜 세우시고 “내 양들을 돌보아라” 하고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그의 인생의 상처가 평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영원한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그분의 피묻은 손으로 만져주십니다. 비가 온 후에 땅이 굳어지듯이 회복된 상처는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합니다. 인생의 상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정채봉의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상처를 입은 젊은 독수리들이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기 시험에서 낙방한 독수리,
짝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독수리,
윗 독수리로부터 할큄 당한 독수리,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큼 상처가 심한 독수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다는데 금방 의견이 일치했다.
이때 망루에서 파수를 보던 독수리 중의 영웅이 쏜살같이 내려와서 이들 앞에 섰다.
“왜 자살하려고 하느냐?”
“괴로워서요.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낫겠어요.”
영웅 독수리가 말했다.
“나는 어떤지 아니? 상처 하나 없을 것 같지? 그러나 이 몸을 봐라.”
영웅 독수리가 날개를 펴자 여기저기 빗금친 상흔이 나타났다.
“이건 날기 시험 때 솔가지에 찢겨 생긴 것이고, 이건 윗 독수리한테 할퀸 자국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 드러난 상처에 불과하다. 마음의 빗금 자국은 헤아릴 수도 없다.”
영웅 독수리가 말했다.
“일어나 날자꾸나. 상처 없는 새들이란 이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들이다.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내가 지고 가는 인생의 십자가가 가장 무거운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들 사는 것 같은데 왜 내 인생에는 이렇게도 많은 상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의 몸에도 무수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채찍 자국과 못 자국 그리고 가시관 자국, 인생의 모든 상처를 경험하셨던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얘야, 일어나거라.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 내가 네 곁에 있어 지금뿐만이 아니라 네가 숨쉬기 시작한 순간부터 숨을 거두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