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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묵시) 5. 다섯째 봉인,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

작성자바바스 신부|작성시간26.06.08|조회수73 목록 댓글 1

5. 다섯째 봉인,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

 

"어린양이 다섯째 봉인을 뜯으셨을 때, 나는 하느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한 증언 때문에 살해된 이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님, 저희가 흘린 핀에 대하여 땅의 주민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시렵니까?'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희고 긴 겉옷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처럼 죽임을 당할 동료 종들과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조금 더 쉬고 있으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6,9-11)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네 번째 봉인을 뜯을 때까지는 패턴이 비슷했습니다. 봉인을 뜯을 뗄 때마다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너라' 했고, 그때마다 각각 다른 색의 말은 탄 이들이 달려나와 각각 다른 재앙들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다섯째 봉인부터는 바로 어떤 상황들이 일어납니다. 

 

절에 '하느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한 증언 때문에 살해된 이들의 영혼'이 나옵니다.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당하고 고난을 겪은 모든 신실한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물론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도 포함되지만, 반드시 순교자이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이것은 순교의 정신으로 살았던 모든 주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특히 일차적으로 이들은 사도 요한 당시 로마 제국의 무서운 박해 아래 신음하던 소아시아 일곱 교회 신자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 신자들이 제단 아래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이미지를 이해하려면 구약성경 레위기의 제사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제단은 반드시 제물을 죽여서 드리는 속죄제사를 위한 제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제단은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 제단에서 최초로 드려진 제물은 하느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제단 아래에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박해당하고 죽어가는 일곱 교회 신자들이 있습니다. 아무 의미없는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려지는 제사, 하느님께서 귀하게 받으시고 축복하시는 제사였습니다. 첫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픈 사건이었지만,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전 인류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로마 황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했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직장으 잃고 죽임을 당한 당시 초대교회 신자들의 고통에도 영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피와 아픔이 하늘 제단에 제물로 드려짐으로 인해, 200여 년 후에 로마제국 전체가 복음화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일곱 교회의 고나과 박해를 의미 없는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께 제물로 드려진 제사로 받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 인류를 구원하셨듯이, 그들의 피로 로마제국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복음이 얼마나 극심한 탄압과 고난 속에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졌습니다. 그 순교의 피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토록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든 처음 복음이 들어갈 때는 반드시 순교의 피가 뿌려졌습니다. 그 피를 딛고 성장의 불길이 타오릅니다.

 

절에서 순교자들이 하느님을 가리켜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역사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역사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악한 자들을 심판하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세우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오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직까지 악한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 역사가 끝나지 않고 있으니 너무 답답합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붙잡았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억울하게 욕을 먹고, 목숨도 잃었습니다. 주님의 심판이 악한 세상 권세에 완전히 임해야 우리 가슴에 맺힌 한이 풀어질 텐데 언제까지 이대로 놔두시렵니까?"

 

그러나 요한 묵시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이 여러 가지 재앙들로 불타게 되는 것은 세상으로 인한 신자들의 고통과 절규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재앙과 심판은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는 악인들의 성공을 본 신자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신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악이들을 척결해가시는 것입니다. 

 

절에서 '희고 긴 겉옷'는 거룩함과 승리, 존귀함을 상징합니다. 주님께서 순교자들에게 각각 희고 긴 겉옷을 입혀주심은 하늘 나라에서 그들이 얼마나 고귀한 상을 받았는지를 보여줍니다. 

 

'조금 더 쉬고' 있으라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임했지만 아직 완성이 아닌, 중간적 진행 형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우리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죽임을 당한 동료 종들과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를 문자 그래도 믿음 때문에 죽임 당한 순교자의 수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한 과격한 선교 단체는 순교자의 수를 다 채워야 한다고 신자들의 순교를 장려하는 듯한 주장을 하는데 아주 위험한 논리입니다. 이 말씀은 순교자의 수를 채우라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는 우리의 억울함과 답답함이 다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9절과 11절의 '살해를 당한 영혼들'은 실제 믿음 때문에 순교를 당한 순교자들뿐 아니라,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1코린 15,31)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오로처럼 삶의 현장에서 매일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견디며 살았던 모든 신실한 믿음의 신자들을 총칭합니다. 

 

유도는 초보자에게 낙법부터 가르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세계에 입문하면 믿음으로 인해 고난을 견디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믿음생활은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봄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억울한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면서도 믿음 안에서 굳게 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세례를 받을 때 이미 각오를 하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예비신자 교육은 너무 사람의 편의를 봐주는 것 같습니다. 제자로서 치러야 할 대가를 각오하게 하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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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주예 마리아 | 작성시간 26.06.09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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