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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하느님 앞에서 사는 일관성

작성자바바스 신부|작성시간26.06.10|조회수67 목록 댓글 1

 하느님 앞에서 사는 일관성

 

지금까지 살면서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 봤습니다. 높은 사람을 만날 때는 들어갈 때부터 90도로 허리를 꺾고, 나와서는 허리가 뒤로 넘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말단 직원과 마주치니 '무엄하게도' 자기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타박까지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출세하나 봅니다. 

 

출세(出世)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출세는 악한 세상, 못난 세상에서 한 발 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출세가 아니라 구원이 곧 출세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란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세상의 기준에서는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각 지파에서 대표를 뽑아 정탐을 보냈습니다. 열두 명이 그 땅의 상황을 살피고 돌아와 보고를 합니다. 열 명이 같은 얘기를 하고, 두 명만 다른 얘기를 합니다. 열 명은 "그 땅의 백성은 우리보다 키가 크고, 철병거를 가졌으니 난공불락입니다. 가면 우린 다 죽습니다."라고 주장하고, 칼렙과 여호수아는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들이 아무리 덩치가 크다 해도 우리의 밥일 뿐입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백성들은 어느 편의 보고에 귀를 기울였을까요? 그들은 다 죽게 생겼다면서 밤새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기껏 이집트에서 빠져나왔더니 가나안 땅에서 죽게 되었다고 통곡합니다. 모두가 죽게 되었다고 울 때, 단 두 사람만이 반대 주장을 합니다. 기도 시간에 기도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도 모두 기도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왜 그럴까요? 코람 데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얘기하는 것이니 하느님께서 다 듣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기도 시간에는 점잖게 기도해도, 밖에 나가면 상스럽게 말하거나 욕을 할 수도 있는 게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말이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자랄수록 어디를 가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변함없이 견고한 삶의 태도를 보이십시오. 

 

기도 시간에 쓰는 언어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가 다르다면 위선입니다. 자칫하면 세상 사람들은 이중적이지만 교우들은 삼중적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집에서 하는 얘기와 밖에서 하는 얘기가 다를 뿐이지만, 교우들은 집에서 하는 얘기가 다르고, 성당에서 하는 얘기가 다르고, 직장에서 하는 얘기가 다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더 위선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다 죽게 생겼다고 울어 대니 하느님께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그대로 해 주마." 하고 노하시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제 모세가 중간에 끼어듭니다. 백성이 저질러 놓은 일을 수습하기 위해 중재자로 나선 것입니다. 어릴 때는 자기가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어도, 어른이 되면 자녀가 저질러 놓은 문제를 해결하러 다니는 게 부모 아닙니까? 아이가 남의 집 유리창을 깨면 부모가 가서 대신 물어 줘야 하고, 아이가 놀다가 옷을 더럽혀도 부모가 대신 빨아 줘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의 자리란 세상이 더럽혀 놓은 것을 내가 빨래하고 청소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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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주예 마리아 | 작성시간 26.06.11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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