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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어떤 본문을 묵상해야 하는가?

작성자바바스 신부|작성시간26.06.15|조회수57 목록 댓글 1

어떤 본문을 묵상해야 하는가?

 

다양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텍스트(복음서 중 하나, 바오로 서간 중 하나, 다른 성경 텍스트)를 매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이는 결혼한 평신도요 한 집안의 가장인데 매일 아침 하느님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요한복음만 2,3년간 묵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야에 초보자라면 교회가 매일 미사에서 제시하는 본문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보편교회의 삶과 전례적 시기와 조화를 이루게 되고, 성체성사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잘 선택된 제1독서와 시편, 그리고 복음이라는 각기 다른 텍스트를 묵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텍스트들을 택함으로써, 너무 건조하고 해석이 어려운 본문들을 피할 수 있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세 가지 본문 가운데 적어도 한 대목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줄 것입니다. 

 

또한 여러 텍스트를 놓고 렉시오 디비나를 하는 것은 성경의 깊은 통일성을 어렴풋하게나마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스타일도 다르고, 쓰인 시기, 내용 등이 다른데도 본문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 그들이 새로운 조화를 이루고 서로 밝게 비춰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커다란 기쁨입니다. 

 

성경 텍스트를 해석할 때, 유다고 라삐 전통의 현자들은 모세오경, 예언서, 성문서(시서와 지혜서를 포함한 그 밖의 책들)라는 성경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취한 구절을 마치 ‘목걸이를 엮듯이’ 엮어 풍요로운 의미가 솟아나게 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루카복음 24장 27-44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서론 다른 본문들을 대조하여 뜻을 밝히는 이 같은 전통은 오늘날까지 교회 교부들과 영성서적 주해자들을 통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가?

 

앞에서 강조했듯이, 렉시오 디비나의 결실은 방법의 효율성이 아니라 내적인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텍스트에 곧바로 뛰어들기보다는 충분한 준비 시간을 갖고 신앙과 갈망으로 기도하려는 바람직한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단계로 해나갈 수 있습니다. 

 

기도 때마다 하듯이 정신을 집중하고 하느님 현존 앞에 머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고 오직 필요한 한 가지를 합니다. 베타니아의 마리아처럼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주님 발치에 어뭅니다. 그러려면 현 순간에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 때때로 어렵습니다. 그런 만큼 육체와 감각이 자원들을 활용하는 것도 적절합니다. 

 

예를 들면,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눈을 감고, 몸과 마음으로 모두 현 순간에 머물며, 긴장을 풀기 위해 어깨와 근육을 이완시키는 등 육체적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또 호흡을 감지하고 천천히 깊게 호흡하는 것이나 우리 몸이 주변의 물질 세계와 접촉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땅을 딛고 있는 발, 의자에 앉은 몸, 책상 위에 놓인 팔, 성경이나 미사 경본에 놓인 손 등을 생각합니다. 말씀과의 첫째 접촉을 육체적인 접촉입니다. 접촉은 이미 듣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손으로 만져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요한 1,1)

 

충분히 이완된 것을 느끼고 우리 몸을 감지하며 현 순간에 머물게 되면,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하면서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게 될 이 순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심에 대해 미리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 당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빛을 청하고, 제자들에게 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성경에 대한 깨달음”(루카 24,45)을 주시도록 청합니다. 말씀이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와 회개를 일으키고 우리가 죄와 타협한 부분을 고발하고 비추며, 우리 삶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에 더 잘 일치하기 위애 우리 안에서 변화될 필요가 있는 것을 변화시키도록 청합니다. 이런 방향으로 우리의 갈망과 의지를 자극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우리가 잘 준비되면(준비는 필수적이므로 충분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눈을 뜨고 선택한 본문을 읽어나갑니다. 우리가 읽는 것에 지성과 마음을 모두 기울여 묵상하며 천천히 읽습니다. 성경 전통 안에서 묵상은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중얼거리고 반복하고 되새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성적인 활동보다는 육체적인 활동이 더 많습니다. 관심을 끄는 성경 구절들은 여러 번 되풀이해 읽기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흔히는 되새기면서 깊은 의미가 집약되고, 이 구절을 통해 하느님께서 오늘날 나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 본문에 대해 의문이 생길 때 지성은 당연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구절은 하느님에 관해 무엇을 말하고, 나 자신에 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어떤 기쁜 소식이 담겨있는가? 이 구절은 나의 구체적인 삶에서 어디로 초대하는가? 어떤 구절이 모호하다면 각주나 설명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렉시오 디비나 시간을 지성적인 연구 시간으로 만들지는 말아야 합니다. 특별한 맛을 주는 구절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그 구절에서 느껴지는 것에서 시작하여 하느님과 대화하기를 망설이지 맙시다. 그렇게 해서 독서에서 기도로 나아가니까요. 

 

우리를 격려하는 구절에는 감사드리고, 어려움에 예상되는 회개로 초대하는 구절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도움을 청합니다. 어떤 순간에 은총이 주어지면, 독서를 멈추고 좀 더 관상적인 기도 자세 안에 그대로 머뭅니다. 그 성경 구절을 통해 하느님께서 발견하게 해주신 아름다움에 대한 단순한 감탄에 머뭅니다. 

 

예를 들면 어떤 구절은 나에게 하느님의 부드러움이나 위엄과 충실성,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신 광채를 깊이 느끼게 하여 그것을 단순하게 묵상하고 감사드리도록 초대합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궁극 목적은 길디긴 본문을 모두 읽는 것이 아니라, 관상 안에서 경탄하는 태도로 최대한 이끌고, 믿음·희망·사랑을 키우는 데 있습니다. 관상 안에서 경탄하는 태도가 항상 주어지지는 않지만 이런 것이 주어질 때는 독서를 중단하고 본문이 드러내는 신비 앞에 사랑의 마음으로 단순한게 머물러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것에서 중세의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의 4가지 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곧 렉시오Lectio(독서), 메디타시오Meditatio(묵상), 오라시오Oratio(기도), 콘템플라시오Comtemplatio(관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순서대로 밟아나가야 하는 연속적인 단계라기보다 실천할 수 있는 특정한 형태를 말합니다. 처음 세 가지는 인간의 활동에 속하는 걱인 반면, 넷째 것은 인간의 능력 밖에 없습니다. 넷째 것은 우리가 얻기를 바라고 갈망하는 은총의 선물이지만 언제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위에서 말했듯이, 여느 기도와 마찬가지로 렉시오 디비나에도 메마르고 건조한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담하지 맙시다. 찾는 사람은 누구나 얻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 권고하고 싶은 것은, 묵상 중에 특별히 마음에 다가오는 몇몇 말씀을 묵상 노트에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기록하는 것은 마음과 기억에 더욱 깊이 스며들게 합니다. 

 

렉시오 디비나 시간이 끝난 다음에는 주님과 함께 이 순간을 지낸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마음에 당신의 말씀을 성모 마리아처럼 간직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그리고 묵상 시간의 빛을 통해 좀 더 특별하게 받은 것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합니다. 

 

마타 엘 마스킨 수사가 전하는 아름다운 글을 인용하면서 이 주제를 마치고자 합니다. 

 

묵상은 오로지 소리 내서 깊이 있게 읽는 것만은 아닙니다. 묵상은 항상 더 깊이 파고들어 가 신적인 볼에 마음이 타오를 때까지 침묵 속에서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도와주기에 우리는 그분 말씀을 침묵 가운데 천천히 여러 번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타오르게 됩니다. 이처럼 묵상은 기도에대한 성실한 노력을 하느님의 은사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총과 이어주는 첫째 고리가 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묵상은 마음기도의 가장 중요하고 첫째가는 단계로 꼽혔습니다. 우리는 이 단계를 시작으로 하여 영의 열정을 갖는 단계로 나아가고, 평생을 영의 열정 단계에서 살 수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마지마긍로 권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가끔은 성경보다는 오히려 우리 삶의 어떤 순간에 특별히 와닿는 영적인 작품이나 성인들의 글을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합당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성경과 직접 만나는 것도 계속합시다. 성경은 때때로 더 어렵지만 감동을 주고, 여느 인간의 작품보다 훨씬 풍부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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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주예 마리아 | 작성시간 26.06.16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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