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성품에 기대어 호소하다
모세가 끼어들어 하느님께 고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주신 것을 가나안 사람들도 들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이 백성을 멸하신다면 주님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기를 '너희의 신이 능력이 없어서 자기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였다.'라고 할 것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동안에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었을 때도, 하느님께서 진노하시어 타락한 백성을 모두 없애려 하셨습니다.(탈출 32장) 그때도 모세가 중간에 끼어들어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탈출 32,12) 하고 하느님께 간청하여 하느님께서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아버지가 매를 들면 어머니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말립니다. 중재기도란 이런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서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하느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이름에 먹칠할까 봐 기도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담대한 기도입니까?
창세기에서도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두고 하느님과 씨름하듯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창세 18,23-24) 하고 묻기 시작해서 결국,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없애지 않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자기 소원을 붙들고 기도할 수도 있지만, 궁극적인 기도는 하느님의 이름을 붙들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며,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 오셨는지를 알아야만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지금 백성에게 진노하시면, 하느님의 이름이 세상에 어떻게 알려지겠습니까?" 이것이 모세와 아브라함이 하느님 앞을 가로막고 서서 드린 기도의 첫 번째 기도입니다. 자기 체면을 걱정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체면을 염려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이름을 붙들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두 번째 기도는 하느님의 권능에 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힘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권능은 곧 하느님의 성품입니다. 사랑과 자비라는 성품에서 힘이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힘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성품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라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탈출 34,6-9)
하느님께서 스스로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우시고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한 하느님"이시라고 당신을 소개하셨습니다. 특히 7절을 주목하십시오.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벌을 면제하시지는 않습니다.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꼭 갚겠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