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구원 속에 담긴 메시지
요한 묵시록에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속 같이 등장합니다. 성경과 인간의 역사 속에는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이 항상 동시에 존재해 왔습니다. 심판과 구원이 모순되는 것 같지만 같이 존재하는 것은 하느님의 하느님 되심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시면서 동시에 사랑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세상의 죄가 극에 달할 때 심판하지 않으실 수 없고, 동시에 사랑하시기 때문에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의 손길을 펴실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사람들의 운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맞아들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심판과 구원의 유일한 척도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혈을 통과했느냐, 아니냐입니다. 성경은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이 땅에 더욱 극적인 심판과 구원의 역사가 전개될 것임을 가르칩니다.
절에서 어린양이 일곱 봉인을 뜯으시면서 재앙들이 시작된다는 것은, 이 재앙들이 어린양이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집행하시는 사건들임을 말합니다. 4절에도 붉은 말을 탄 이가 권한을 받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서 수위 조절을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쟁과 분열을 일으키는 적그리스도도 아무 제동장치 없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통제하십니다.
악인들은 신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려 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을 심판한다는 것은 신자들에게는 구원이요, 축복이 됩니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것인가보다는, 미래가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이 미래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있습니다. 어린양이 이 심판을 관장하고 계시다는 것은 신자들과 교회의 운며이 하느님의 절대적인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 묵시록은 무섭지만, 결코 무서운 책이 아닙니다. 심판이 무섭긴 하지만, 그 심판을 주도하시는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심판의 대상은 하느님을 거역한 세상 권세와 추종자들입니다. 그들을 심판하셔야 그들이 박해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본문을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와 감격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의 길을 인도해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