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사랑은 넉넉히 이기게 한다
우리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전쟁터는 우리 마음입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확신을 흔들어 놓습니다. 옛 뱀이 하와를 찾아와 심어 준 것이 의심이었습니다. 의혹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탄은 같은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옛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품게 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면 왜 선악과를 못 먹게 하느냐고 묻습니다. 왜 선악과를 주지 않으시냐고 의문을 품게 합니다. 선악과에 무언가 있다는 듯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아끼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옛 뱀의 전략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살고 있는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될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32)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당신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희생을 통해 증명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외아드님을 아끼지 않으시고 희생하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난 많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의 힘을 알아야 합니다. 그 힘은 승리하게 하는 힘입니다. 넉넉히 이기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기 위해서는 사탄이 무엇을 가지고 공격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서 사탄은 일곱 가지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바오로가 말하는 일곱 가지는 그가 경험했던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로마 8,35)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가 당했던 고난을 들어보면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2코린 11,23-26)
바오로가 로마서를 쓸 때 그는 그의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환난과 박해와 죽음의 위험과 역경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승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7)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신 까닭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싸움터의 현장에 있을 때 우리를 돕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를 응원하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가 승리하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성령이십니다. 마크 배터슨은 우리가 모든 것을 이기도록 도와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코너맨에 비유했습니다.
“당신이 안젤로 던디를 모를 수 있지만 무하마드 알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안젤로 던디는 20여 년 동안 무하마드 알리의 코너에 있었다. 그는 알리의 코너맨이었다. 알리로 하여금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게 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또한 그는 열다섯 명의 다른 복싱 세계 챔피언들을 길러냈다.
안젤로 던디는 코너맨으로서의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묘사했다.
‘파이터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외과의사이자 엔지니어이자 심리학자이다.’
우리의 코너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순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티모테오1서에서, 바오로는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할 것을 권고한다. 우리가 한두 차례 녹다운 당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 자체에 대항하여 3라운드를 뛰셨던 코너맨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녹다운 당하셨고, 마귀는 녹아웃 승을 거두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흘 후에 다시 일어나셨다. 죄와 죽음에 대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무덤에서 걸어 나가셨다. 지금 그분은 어디에 계시는가? 아버지 오른쪽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고 계신다. 달리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코너에 계신다.”
코너맨은 권투 선수가 권투 경기를 할 때 코너에서 선수를 응원해 주는 사람입니다. 1라운드가 끝나면 선수는 코너로 돌아옵니다. 그때 코너맨이 의자를 놓아 주고, 물을 마시게 해 주고, 땀을 닦아 줍니다. 상처를 어루만져 줍니다. 그리고 어떻게 다음 라운드에서 싸울 것인지 코치를 해 줍니다.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예수님과 함께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마크 배터슨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도 우리를 도와주시는 코너맨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호자라 부르셨는데, 이는 ‘위로자’ 또는 ‘상담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코너맨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보호자’에 해당하는 ‘파라클레토스’는 군사 용어로써, 서로 등을 맞대고 백병전을 벌이는 로마 병사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서로의 후방과 사각지대를 지켜 주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마크 배터슨은 ‘더블 축복’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맏아들은 두 몫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더블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께서 함께 중재기도를 해 주심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것이 더블 축복입니다. 우리는 거듭 예수님과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중재기도 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바오로는 로마서 8장에서 먼저 성령의 중재기도를 언급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성령께서는 우리의 나약함을 돕기 위해 기도하십니다. 또한 바오로는 예수님의 중재기도를 언급합니다.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로마 8,34)
우리는 또한 하느님의 창조의 은혜와 구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더블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한 번 위하신 것이 아니라 두 번 위하신 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전쟁터에 있을 때 우리를 돕는 분이 계십니다. 하느님이십니다. 바오로의 외침을 들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31)
우리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나약합니다. 자주 넘어집니다. 자주 실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곧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죄인을 위해 대신 희생하시는 사랑입니다. 용서하시는 사랑입니다. 새로운 희망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깁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도움으로 이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