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영성의 방

***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작성자바바스 신부|작성시간26.06.08|조회수76 목록 댓글 1

***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20세기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금세기 최고의 시인입니다. 그는 “그러면 우리 갑시다. 그대와 나/지금 저녁은 마치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프루프록의 연가」로 문명(文名)을 얻고, 유명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로 시작되는 「황무지」로 정상을 굳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도교적 이상주의에 불타고 있던 가족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엘리엇은 결국 그리스도교 사상가로서의 면모가 모든 시 속에 엿보입니다. 특히 56세, 비교적 말년에 쓴 「네 사중주」는 ‘음악의 형식을 시에 원용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왓던 엘리엇이 실내악의 형식을 빌려 완성한, 종교적 색채가 가장 강렬한 작품입니다. 이 시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영혼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조용히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희망은 그릇된 것에 대한 희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사랑도 그릇된 사랑에 대한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신앙이 있다.

그러나 신앙과 사랑과 희망은 모두 기다림 속에 있는 것.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자주 인용되는 글 중 하나입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이 극적인 장면을 많은 사람들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돌아옴’이지만 그 아들을 맞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기다림’인 것입니다. 그래서 루카는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라고 표현합니다.

 

집으로 오는 아들을 멀리서 보았다면 아버지는 언제나 어디서나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큰아들은 아버지와 항상 함께 있었지만 ‘집 가까이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를 듣고서야 아우가 돌아온 것을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형은 아우를 기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멀리서 본 아버지’와 ‘가까이에서 본 형’의차이는 기다림의 차이이며, 기다림의 차이는 결국 사랑의 차이인 것입니다.

 

사랑은 기다림입니다. 밤은 낮을 기다리고 낮은 밤을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하루가 흘러가는 것입니다. 겨울은 봄을 기다리고 봄은 겨울을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일 년이 흘러갑니다. 일 년이 흘러가서 세월이 되며 세월이 흘러가서 영원이 됩니다. 삶은 죽음을 기다리며 죽음은 삶을 기다립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기다리며 인간은 하느님을 기다립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한다는 생각 없이 사랑하시고 하느님은 인간을 기다린다는 생각 없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신앙과 사랑과 희망은 모두 기다림 속에 있는 것”이라고 노래한 엘리엇의 시처럼 전능하신 하느님과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의 신앙은 결국 먼발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가는 일인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주예 마리아 | 작성시간 26.06.08 아멘. 아멘. 아멘.~~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