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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방

∙ 하느님의 사랑은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다

작성자바바스 신부|작성시간26.06.10|조회수65 목록 댓글 1

∙ 하느님의 사랑은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것은 어떤 것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바오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들을 나열합니다. 죽음, 삶, 천사, 권세, 현재의 것, 미래의 것, 권능, 높음, 깊음,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을 나열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세상에서의 유한한 생명입니다. 천사나 권세는 타락한 천사와 악한 권세를 의미합니다. 현재의 것은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환난입니다. 미래의 것은 이 땅에 살면서 미래에 당할 수 있는 고난입니다. 또한 우리를 괴롭히는 악한 힘, 높음과 깊음의 세력까지 모두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계시를 통해 이 모든 이 모든 것들보다 더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우리 지식과 이성에 의해 제한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 지식을 초월하고 능가하는 계시가 필요합니다. 우리 지식에 넘치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에페 3,17-19)

 

바오로는 신자들이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지각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우리 지각보다 더욱 뛰어난 지각을 의미합니다. 더 탁원한 지각을 의미합니다. 그 지각은 계시, 즉 성령의 깨달음을 통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이 은총입니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비, 길이, 높이 그리고 깊이를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만물보다 탁월합니다. 충만합니다. 강력합니다. 맹렬합니다. 그런 까닭에 그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자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논리는 법칙을 의미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논리나 법칙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논리나 법칙을 초월합니다. 죄의 법칙은 죽음입니다. 심판입니다. 단죄입니다. 저주입니다. 파멸입니다. 그런데 죄의 법칙보다 더욱 신비로운 법이 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은총의 법입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사랑의 법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즉 아가페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를 완벽하게, 영원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입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제지되거나 중단되거나 감소되진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특징은 공급이 무한대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유한합니다. 그 에너지가 유한합니다. 어느 정도 사랑을 베풀다가 지쳐 버리고 맙니다. 또한 상대방이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 우리의 사랑은 식어 버립니다. 심지어는 미움으로 변해 버립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오히려 우리의 최악의 순간에 더욱 다가오시는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이 최선의 상황에 있을 때 그를 사랑하는 건 쉽습니다. 그의 상황이 최악일 때에는 어떠할까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참 사랑을 시험할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하느님ㅇ늬 사랑은 주도적입니다.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생산해 냅니다. 우리가 기대하지도 않고 받을 자격조차 없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최악의 모습일 때에도 그는 최선의 사랑을 베푸십니다. 

 

가장 강력한 끈은 하느님의 사랑의 끈입니다. 그 끈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주 속에 있는 어떤 것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끈을 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그 사랑의 끈을 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바오로가 지금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풍족하게 받아 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풍족한 사랑을 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우리는 하느님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공급이 넉넉할 때 넉넉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공급이 넉넉할 때 넉넉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의 확신은 성령의 계시로부터 왔습니다. 그가 하느님께 받은,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경험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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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주예 마리아 | 작성시간 26.06.11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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