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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방

(요한) 여인이 물동이를 두고 간 이유

작성자바바스 신부|작성시간26.06.11|조회수84 목록 댓글 1

*** 여인이 물동이를 두고 간 이유

 

요한복음 저자가 무슨 말을 할 때 아무 의미 없이 하는 경우는 없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마을을 지나가야만 했다는 표현이나(4절) 제자들이 음식을 사러 마을로 가고 없었다는 보도(8절)는 모두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여인이 우물가에 물동이를 두고 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음식을 사러 간 제자들이 돌아왔다는 내용 다음에 바로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두고 떠난 것은 제자들의 출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제자들이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보자 여인이 당황해 황급하게 떠나다 보니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여인이 우물가를 떠난 간 곳은 자기 집이 아니라 동네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난 분이 그리스도라고 증언한다. 인간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고 구원을 갖고 오신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물동이를 두고 간 것은 그녀가 이제는 육신의 갈증을 채워주는 물보다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는 영생의 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다.

 

나아가 우물가에 두고 온 물동이는 다른 이들도 영생의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서둘러 달려간 여인의 마음을 드러낸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과 헤어진 다음 서둘러 형제나 친구에게 달려가 그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안드레아가 형 베드로를, 필립보가 친구 나타나엘을,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누구인지 깨달은 사마리아 여인도 마을 사람들에게 서둘러 달려가 그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물가에 두고 간 물동이는 상징적 의미로 그녀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명을 수행함을 뜻한다.

 

주님과의 깊은 만남은 그 사람을 선교사로 만든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처럼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던 사마리아인들에게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 우물가에서 갖게 된 신앙을 전하여 그들도 예수님을 영접하게 한다. 여인의 복음 선교는 신앙 증언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한 일 모두’란 표현으로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과거와 현재 삶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에게 한 이 말은 진정한 해방을 체험해야만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여전히 수치감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인은 예수님 덕분에 모든 정서적 혼란에서 해방되고 영적 자유로움을 체험하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동족들도 같은 혜택을 받기 바란다. 그래서 그들에게 달려갔던 것이다. 이것이 참된 구원을 맛본 사람의 모습이다. 

 

 

여성을 차별하던 당대 문화에서 사람들은 여자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자의 증언이 받아들여지려면 적어도 남자 한 사람이 그 증언이 사실이란 점을 입증해야 했다. 신앙과 관련된 증언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가 야곱의 우물가에 계시다는 말은 보통 증언이 아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하는 여인의 증언을 추호의 의심이나 의혹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뿐 아니라 여인의 증언 하나에 의존하여 예수님을 믿는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달려갈 때 이미 예수님께 대한 믿음(초보적 단계 또는 부분적 믿음)이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이 그동안 철저히 경멸하여 상대도 하지 않던 여인의 증언을 성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는 여인의 표정이나 말투가 진지했고 확신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여인한테서 평소 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마지못해 살아가는 듯한 그녀가 활력으로 넘치는 것을 보면서 여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또 여인에게 이처럼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주신 분이라면, 자신들도 틀림없이 도와주리라는 확신으로 주저 없이 그분께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배운 사람도, 선교에 대한 어떤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다. 어떤 이들은 선교를 하려면 많은 신학적 이론과 교리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호소력 있는 선교는 자기 체험에 기초한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다만 자기가 만난 주님, 자기가 직접 체험한 주님을 동네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이것이 선교의 첫걸음이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늘 무엇이든지 어렵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선교는 어려운 것이라 일정한 훈련을 받아야만,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만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스리랑카 출신의 선교사 나일스는 “선교는 한 거지가 다른 거지에게 어디서 빵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배고픈 거지의 관심사는 빵의 성분이나 제조 공정, 빵에 함유된 칼로리가 아니다. 거지의 관심사는 어디서 빵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느냐다. 복음 증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디에서 두려움을 이긴 평화를 얻게 되었는지, 내적 힘을 갖게 되었는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영생의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 한마디로 어디에서 생명의 빵을 얻게 되었는지를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음의 눈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러 오는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달려오는 무리의 맨 앞에는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는 사마리아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마치 마을 사람들과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것처럼 어울리면서 활기찬 모습으로 오고 있다. 처음 그녀가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에 왔을 때는 고통에 짓눌린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고뇌를 다 벗어던진 편안하고 환한 얼굴이다. 적대시하고 단절되었던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가 주님 안에서 다시 회복되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인생의 행복감을 맛본다.

 

우리도 이런 것을 경험하지 않는가? 세상사에 짓눌려 어두운 마음으로 성당에 와 성체조배를 한 후 힘을 얻고 밝은 얼굴로 세상으로 나가는 체험을, 또 무거운 마음으로 성경 공부를 하러 왔지만 생명의 말씀으로 지혜와 힘을 얻고 나서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성가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체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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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주예 마리아 | 작성시간 26.06.11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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