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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방

(요한) 예수님의 양식

작성자바바스 신부|작성시간26.06.15|조회수58 목록 댓글 1

*** 예수님의 양식

 

여인이 서둘러 우물가를 떠난 후,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요한복음에 자주 나오는 ‘두 사람간의 대화기법’을 본다. 오직 두 사람만 무대에 등장시키는 기법이다. 설령 주위에 다른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다. 예수님이 야곱의 우물에 왔을 때 제자들은 음식을 사러 마을에 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로써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만의 대화 자리가 마련되었다. 또 제자들이 돌아왔을 때는 사마리아 여인이 떠나감으로써 예수님과 제자들만의 대화 자리가 마련된다.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두 사람간의 대화기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께 온전한 돌봄을 받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마치 루카복음에서 늘 남성을 등장시키면 다음에는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여성의 인격을 존중하려 했듯이, 요한복음은 각 영혼에 대한 예수님의 온전한 돌봄을 강조하고자 이러한 대화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평소 대화는 물론이지만 특별히 복음을 전할 때 눈과 눈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어 주님의 복음이 그 사람의 영혼을 건드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음식을 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곧바로 받아 드시지 않고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신다.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적 음식을 이야기한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 그대로 먹는 음식으로 알아듣는다. 그러고는 예수님께 대놓고 묻지 않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그러지 않아도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각자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의혹의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이상한 말씀까지 하시니, 이제는 자기들끼리 아예 내놓고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다.

 

예수님은 당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직접 묻지 않는 제자들을 위해 당신 말씀의 진의를 풀어 설명하신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이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4,34) 예수님의 음식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파견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면, “나를 지탱시키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며 그 뜻에 순종하여 일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나를 보내신 분’이란 표현은 요한복음에서 17번 나오는데 여기가 첫 번째다. 이 표현은 예수님이 당신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자각하는가를 드러낸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존재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해 말할 때는 늘 ‘나를 보내신 아버지’ 또는 ‘나를 보내신 분’이라고 했다. 하느님은 당신을 파견하신 분이요,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공생활 내내 반복해서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자로서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고 있음을 알려주신다.

 

예수님이 단순히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고 선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구세주인 것은 아니다. 그분이 구세주인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시어 그분 뜻대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순종적 삶은 사탄의 불순종과 크게 대조된다. 예수님은 ‘아버지 뜻’을 따라 살았고, 사탄은 ‘자신의 뜻’에 따라 살았다.

 

학자들은 이사야 14장이 타락한 천사 루치펠을 묘사한다고 주장한다. 이사야 본문은 사탄의 반역이 하느님 뜻보다는 자기 뜻을 내세우려다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너는 네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지. ‘나는 하늘로 오르리라. 하느님의 별들 위로 나의 왕좌를 세우고 북녘 끝 신들의 모임이 있는 산 위에 좌정하리라. 나는 구름 꼭대기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아져야지.’”(이사 14,13-14)

 

여기에서 사탄이 불순종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예수님의 구원행위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화되어 오신 것은 불순종한 인간이 다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을 통해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뜻을 위해 살아가도록 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보다 우리 자신의 뜻을 더 주장한다면 큰 문제다. 하느님 곁에 있던 사탄이 제 뜻을 고집하다 파멸했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태도를 정직하고 면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사탄처럼 “내가 …하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면 곧바로 경계해야 한다. 하느님 뜻보다 내 뜻을 더 중시하면서 살다 보면 어느새 나만 내세우고 고집하는 교만에 사로잡히게 되고 어느새 하느님을 거스르게 된다. 참된 인간의 길은 오로지 예수님을 본받아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자임을 인식하고 아버지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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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주예 마리아 | 작성시간 26.06.15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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