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 순천도 넓은 지역이라서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수에 가까운 곳이라면 3~40분이면 충분하다. 여인을 소개한 유튜브는 ‘x출xtv’로 처음 접촉하는 곳이어서, 소개를 부탁하는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예의가 보이는 남자의 말투가 기분 나쁘지 않게 내 신상을 묻는 몇 가지 질문을 끝내고, 두 명 소개료로 후원금 10만 원의 송금을 요구했는데, 지불한 후원금은 어떤 이유로도 반환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이 시스템을 안 이후 백만 원까지는 기꺼이 쓸 생각이었기에 즉시 송금했고, 두 시간쯤 후에 순천 여인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홍아무개tv’부터 지금까지 상대한 네 번의 유튜버 중에서 가장 나아 보였다.
전화로 인사하고 만나자고 했을 때, 여인이 오라는 장소는 예상했던 순천이 아니라 고흥이었다. 여수나 순천은 그래도 시(市)지만, 고흥은 군(郡)으로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다. 한국형 나사(NASA)에 해당하는 나로도 우주발사기지가 있어서 그나마 알려진 지방이다. 전화 너머에서 짙은 전라도 사투리가 건너왔다. 약속 장소도 시골스럽게 면사무소 앞이었다. 한 차로 움직일 생각으로 거기서 11시쯤 만나 카페로 이동 후 서로 탐색(?)할 생각이었으나, 솔직히 어떤 기대도 없이 나들이를 겸해서 봄이나 만끽하면서 여인에게 점심이나 사주고 돌아오겠다는 마음이었다.
한 시간쯤 걸려서 약속 시각에 1~2분 늦게 도착한 시골 동네의 좁은 골목 면사무소 앞에는 봄에 어울리는 주황색 투피스 차림 여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옆눈으로 흘깃 본 조수석에 올라타는 여인은 짐작과는 다르게 시골스럽지 않았으며, 짧게 자른 머리도 잘 어울려 보였다. 여인이 안내한 대화할 장소는 시골과는 거리가 먼, 최첨단의 ‘우주발사전망대’ 7층에 있는 카페였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라고는 젊은 남자 종업원과 먼저 온 손님 한 테이블뿐이었고, 창가의 움직이는 테이블은 360° 회전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이 회전해서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오고도 한참이 지난 후, 우리는 점심 먹을 장소로 이동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르는 여성과 처음 만나서 탐색하는 자리는 항상 어색하고 불편함이 당연한데도 여인과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이상했다. 이게 뭐지? 그녀의 인상도 처음 보는 사람 같지 않았고,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편했다. 어릴 때 함께 자라서 너니 내니 하며 친구처럼 지냈던 5촌 고모뻘 되는 친척이 떠올랐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10년쯤 전 그녀의 딸 결혼식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다. 언젠가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나서 쓰디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미국에서 이혼하고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녀가 교수로 있는 이상한 낯선 이름의 무슨 대학원대학교를 영등포로 찾아가 만났었다.
“얘, 이혼할 사람은 네가 아니고 나야! 나는 내가 벌어서 두 아이를 대학까지 키웠어. 술밖에 모르는 남편은 생활비로 한 푼도 준 적이 없어. 어떻게 너 같은 범생이가 이혼을 다 하냐?”
그랬던 그녀를 결혼식에서 만났을 때까지도 남편인 x수 형과 잘 살고 있었다. 평생 술에 절어 중독자처럼 살았던 50년생의 x수 형은 최소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오후 4시가 지나 여인을 원하는 장소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이상했다. 이토록 편한 여인은 처음이었다. 무엇을 물어도 거침없이 답하고, 짓궂은 농담에도 싫지 않게 웃었다. 수다스럽지 않을 뿐 그렇다고 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처음 만나는 여성이면 누구나 보이는 내숭이 없어서 대하기가 무척 편했다. 늘그막에 남은 생의 반려자를 만나겠다는 마음으로 유튜브에 등장한 사람답게 솔직담백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나 장신구는커녕 그 흔한 귀걸이조차 없는 수수한 차림이 마치 나를 보는 듯했다. 시골에서 만났으나 시골스럽지 않았고, 말은 많았으나 수다스럽지 않았다. 운전하며 돌아오는 한 시간 내내, 다섯 시간 이상 보낸 첫 데이트가 처음 생각과는 딴판으로 진행되었음을 떠올리며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틀 후의 만남도 고흥에서 있었다. 두 번째 데이트였으나 열 번 이상 만난 사람들처럼 친해졌다. 첫날은 내비로 맛집을 찾다가 여수까지 왔었으나, 둘째 날은 고흥 녹동항의 유명한 장어탕 집에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서 식사했다. 그녀는 내 제안에 반대하거나 주저하는 법이 없었다. 날이 날인지라 막걸리가 생각난다고 하자, 여인은 자기가 운전할 수 있다며 하라고 했다. 바다에 인접한 공원에서 걸으며 대화하고,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는 그녀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았고, 그녀 또한 나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았다.
대화를 통해 가족이나 경제 상황도 충분히 파악했다. 주저할 이유나 걸리적거리는 조건도 없었고, 머뭇대거나 빼는 척할 나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남은 인생을 함께할지 모르는 남자가 어떻게 사는지 직접 와서 보라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녀의 집을 직접 방문하기로 하고 날짜를 잡았다.
<후기>
9년 전 제주를 떠나 여수에 정착할 때, 앞으로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여자는 없다고 했던 맹세와 함께 12년의 독수공방이 끝난 듯합니다. 그동안 서로 호감을 주고받았던 여성이 없지는 않았으나, 무서운 암과 제삼자의 이간질, 그리고 상대방의 이해할 수 없는 화냄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만, 이번에는 그 어떤 장애물이나 방해도 없을 듯합니다.
여인의 가장 좋은 점은 저를 편하게 해준다는 사실입니다. 이 나이에 그보다 좋은 장점은 없습니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을 동경해서 시골 바닷가에 산다는 여인의 검소하고 털털한 성격이 저와 비슷해서 편한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함께 있으면 서로 유치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사춘기 아이들처럼 키득거리며 시간을 보냅니다. 사별이 아니라 이혼한 점도 마음에 듭니다. 평생 남자의 사랑을 못 받은 여인을 만나, 남자의 사랑이 어떻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게 남은 인생의 꿈이자 마지막 소망이었는데, 몇 년이나 주어질지 모르는 시간 동안 그 꿈의 대상을 찾은 듯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오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캐나다 ‘메이플’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난 2월 18일 ‘메이플’님이 올리신 유튜브 링크를 보고 알게 된 중매 유튜브가 45일 만에 결과를 만들었으니까요. 기회가 되면 언제라도 ‘메이플’님에게 크게 쏘겠다는 약속과 함께, ‘여친 구하기 프로젝트’는 이 글로 매조지하겠습니다. 주책이 가득한 글을 단순 흥미와 재미로 읽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나이 열 살 무렵 젊은 엄마가 유명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본 내 사주팔자에 여자 복(福)은 약에 쓰려고 해도 없다고 했었는데, 그 심술궂은 팔자가 설마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까지 눌어붙는 건 아니겠지요, 하하하.
▼ 지난 달과 이번 달 사이에 인생의 색깔이 앙상한 가지에서 활짝 핀 벚나무처럼 달라졌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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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에이미/여/1963 작성시간 26.04.12 축하드려요.
두 분 잘 어울리고 행복해보이시네요. -
작성자차향 작성시간 2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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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ummingbird 작성시간 26.04.12 축하해요. 사진의 두분모습 너무 좋아보여요. 행복한 꽃길반 걸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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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다비드 작성시간 26.04.14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서로 인내하며 죽을 때까지 해로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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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Bena120 작성시간 26.04.16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맘이 통하는 분을 만나시듯해서 보기 좋습니다. 서로 아껴주고 배려하고 둘이라서 좋은 그런 인생을 즐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