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중순 유튜브에 나온 11월 인터뷰 동영상 여운이 4~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다. 지난주에 여수에 온 방문객 셋 중 둘이 ‘뽀리의 0시니어’ 인터뷰 동영상을 보고 나를 알게 된 분들이다. 첫 번째 방문객인 P 선생은 유튜브를 보고 나를 알았을 뿐, 역이민 카페 존재도 모르는 분으로 나를 만나려는 이유는 순전히 역이민 정보 때문이었다. 54년생의 이분도 역이민 희망자 대다수가 겪는 것처럼, 자식들이 사는 미국을 떠나기 싫다는 부인의 반대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경제적 여건은 무척 좋았다. 부인과 함께 받는 연금이 6천 불에 가까웠고, 현역 시절 401K에서 전환한 IRA, 자가 이외의 소유 주택에서 나오는 임대료와 성공한 자식들이 주는 용돈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수입이 못 된다는 이유로 역이민에 일말의 불안감을 가진 거로 보였다. 게다가 한국에서 5년 살다가 역역이민으로 다시 돌아온 이웃에게, 한국은 비싼 물가로 생활비가 턱없이 많이 들고, 사람들이 예의가 없고 무례해서 살 곳이 못 된다는 말을 들은 후 부인의 반대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장어탕으로 점심을 먹고 인근 공원을 산책하면서 내 경험을 근거로 한국 생활에 대해 대화했다. 그분의 절반도 안 되는 수입만으로도 해마다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여행을 다닌다는 것, 그 정도 돈이면 한국에서는 왕(?)처럼 살 수 있음을 강조했다. 우리 또래의 다른 교민들이 그렇듯이 이분도 골프가 유일한 낙이지만, 어느덧 일흔이 넘어 인생 황혼기를 맞다 보니 이대로 인생이 끝나는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타국에서 평생을 보낸 이민자라면 누구나 역이민을 한 번쯤 꿈꿔보지 않았을까!
1980년에 이민해서 46년을 미국에 산 이분도 그런 경우다. 이런 분을 만나 대화했을 때, 가장 큰 장벽은 선입관이다. 역이민 희망을 품고 유튜브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사람들에게 듣는다. 이렇게 사전 습득으로 굳어진 정보는 선입견이 되어 다른 사람의 의견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예를 들자면 병원비가 그렇다. 한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암 같은 중증에 걸리면 수 억에 이르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이분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에는 ‘본인부담상한제’라는 아주 강력한 안전장치가 있어서, 암 같은 중증 질환으로 수천만 원의 병원비가 나와도, 환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금액은 소득 수준에 따라 정해진 상한액까지만 내면 그만이다. 그 이상 넘어가면 국가(국민건강보험공단)가 대신 내주거나 나중에 환급해 준다. 만약 내가 중간 정도의 소득 수준인데 암 치료비로 1년에 2,000만 원이 나왔다면, 약 326만 원만 부담하고 나머지 약 1,674만 원은 국가에서 돌려받는다.
아무리 구체적으로 설명해도, 한국살이에 부정적인 선입관이 자리 잡은 분들은 좀처럼 믿으려 들지 않는다. 이럴 때는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Seeing is believing’이다. 내 아파트까지 모시고 와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파트 관리비 영수증과 같은 물증도 확인시킨다. 그래야 대화가 편해진다. 미국에서 자동차 두 대 보험료만 3천 불이 넘는다는 그분은 4백 불도 안 되는 내 1년 보험료에 놀란다. 아파트를 나와 경치를 감상할 목적으로 차를 고흥으로 가는 ‘섬섬백리길’로 몰았다.
뿌연 해무로 시야가 멀리 미치진 못했어도, 섬을 잇는 다리 양쪽으로 보이는 바다 경치가 일품이었지만, 경치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그분은 의아함을 좀처럼 숨기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동안 역이민카페를 통해 만난 분들의 사례를 들어 한국 생활의 장단점에 관해 내가 말했고, 자신이 미리 알고 있는 내용과 비교하는 방문객은 주로 들었다. 차를 마시는 테이블 옆 창 너머로 낚시배로 모이는 작은 배 두 척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한국의 1년은 미국의 10년에 해당한다는 말처럼, ‘빨리빨리’의 한국은 모든 게 급변하는 나라다. 병원비 이야기도 5년 전, 10년 전이라면 맞는 말인지 모르지만, 문재인 케어가 도입된 후 저소득층의 병원비 상한제는 강화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전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르게 전달된다. 부정적 심리의 사람은 같은 사실도 부정적으로 보고 말하게 마련이다. 또 알고 있는 지식과 현실은 거리가 있는 경우가 너무 흔해서 중언부언할 가치도 없다.
그분이 돌아갈 7시 기차 시각까지 두어 시간이나 남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 최근에 지어진 고급 아파트 단지로 안내하려고 했으나, 재래시장을 보고 싶다는 말에 방향을 바꿨다. 짧은 시장 투어를 마치고 더는 할 일도 없어서 한 시간 넘게 남았으나 그냥 기차역에 내려 드렸다. 다음날 병원에 건강검진이 예약되어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역이민 안내자로서 해야 할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어떤 선택이든 그분의 몫만 남았다.
<후기>
그분이 하신 마지막은 부인을 설득해서 1년 정도 살아보고 결정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문득, 2017년 가을에 작고하신 김○창 형이 생각났습니다. 투석을 받으며 몇 년이나 신장 이식 수술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0순위가 되어 12월이면 이식을 받을 수 있다고 했었습니다. 이식받고 회복하면 곧바로 역이민하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하곤 했으나, 그만 그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진료받으러 간 병원 주차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지요. 그분도 54년생이었습니다.
가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오신 분을 만나지만, 오히려 그분들이 한국살이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저도 모르는 사실들을 나열하는 걸 보고 놀라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제가 직·간접으로 경험한 사실만 전할 뿐입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 가본 사람을 이긴다는 말처럼, 누군가에게 들은 정보로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을 제압하려는 분도 보고, 또 그분들에게 모르는 사실을 배우기도 합니다.
단지,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며, 나와 다른 삶을 관찰할 뿐입니다.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하고, 좋은 글감을 만나기도 하니까요, 하하하.
▼ 오늘 산책 중에 만난 바다 풍경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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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데니보이(긴가민가) 작성시간 26.04.21 어려운 외국살이 오랜기간 잘버텨왔는데 한국 되돌이 살이는 식은죽먹기 아닌가요?-여러이유로..
인간도 동물이라 동물적본능으로 살아갑니다.
한국에서 이웃과는 잘맞추고 살면됩니다. 티만 안내고 이해해주고 지내면됩니다.
자식은 부모가 생각하는만큼 생각안합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영원히 짝사랑입니다.
저희는 자식과 떨어져 살아도 별로 연연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여러곳 살아보아도 어디건 다좋더라구요. 서울만 빼고...
한국되돌이 살이 걱정은 기우입니다.
추조님의 회원도움의 시간과 노력에 마음을 함께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추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22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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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에이미/여/1963 작성시간 26.04.22 남편이 꼼짝도 안해서 못가요.
두 아들도 정착을 했는데 애기들이 크면 캐나다로 올지도 모른대요.
아직 건강할때 고국에 가서 즐기며 살고 싶어요. 서울에 많은 친구들과 구경다니고 전국에 있는 친구네도 가보고 싶고 문화센터에서 춤과 서예와 여러 강좌들 다니고 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서점에서 책도 사고... 우리 손주들하고 놀아주고 싶은데...힝~ -
답댓글 작성자추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22 만나본 많은 분들이 말하는 걸림돌이 배우자의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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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몽구 작성시간 26.05.15 좋은 일을 많이 하시네요.. 저 한테도 든든한 분이 계셔서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