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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기

역이민 돕기

작성자추조|작성시간26.05.16|조회수281 목록 댓글 5

 역이민하는 분을 돕는 이유 내가 남보다 선해서도 아니고 남보다 전문 지식이 많아서도 아니다. 2008년 미국의 경제위기(Economic Crisis) 때 예기치 않게 레이오프 된 후 생존을 위해 몇 년 발버둥 치다가 실패하고, 상처투성이 몸과 마음을 추스를 목적으로 온 고국이 너무 편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거소증)’이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을 만큼 무지해서, 글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한 역이민이었다.

 

 페널티 없이 IRA에 있는 돈을 꺼낼 수 없는 나이라, 돈을 조금이라도 덜 까먹으려고 주유소 펌핑과 공사판 노가다를 하기도 했으며, 미국 은행에 있는 달러를 가져오는 방법을 몰라서 2~3천 불짜리 개인 수표를 국내 은행에 입금하고 백 불이 넘는 수수료를 물기도 했다. 평생 책상 앞에 앉아서 펜대로 먹고살던 사람이라 힘들어서 며칠 하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한국이 편하고 좋아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그게 벌써 15년도 더 된 일이다.

 

 내가 역이민을 돕는 이유는 딱 하나다. 보잘것없는 그 경험조차 필요한 분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투입하는 노력은 1이나 2에 불과하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때에 따라 9나 10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그만한 가성비를 찾기 힘들다. 바로 역이민에 뜻을 둔 분들을 기꺼이 돕는 이유이자, 내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2년째 접어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적대 정책으로 미국 이민 사회가 요동치면서 이민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많아지겠다고 생각했으나, 미국 한인 뉴스가 전하는 내용과는 달리 그런 분을 만난 일은 없었다.

 

 지난 월요일 오후 여수는 생전 처음이라는 분을 여천역에서 만났다. 3월 말쯤 귀국해서 거소증을 받고, 2주 전에 국적회복 신청했다는 그분은 40년 가까이 산 미국에서 트럼프 등살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사연을 이렇게 전했다.

 - 인구 3~40만 명밖에 안 되는 테네시 도시에 내셔널가드 천오백 명이나 풀어서 불체자를 단속했어요. 하루아침에 스페니쉬들이 하나도 안 나오는 거예요. 일본 식당은 종업원이 없으면 운영할 수가 없어요. 종업원을 고용할 때 영주권을 봤지만, 그 영주권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내가 알아낼 방법은 없잖아요.

 

 트럼프 때문에 돌아온 분을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하루 평균 매상 5천 불 이상을 찍고, 코로나 팬데믹 전만 해도 70만 불 이상하던 식당이 팔리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 새로 이민하는 사람이 있어야 팔리죠. 신규 이민자가 없으니 팔리지도 않아요.

 얼마나 당황하고 힘들었을지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았다. 이민의 나라 미국이 트럼프 재집권 1년 만에 몰락하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의 조카들과 2박3일 여행하는 바람에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는 바람에 알려주고 싶은 건 많았지만 더 대화하기는 힘들었다. 억지로 붙들고 한국살이에 필요한 정보를 말해봤자 머리에 남을 리 없기 때문이다. 또 한국 실정을 잘 모르는 손님은 정해지지 않는 숙소가 불안한 모양이었다. 카페 인근의 호텔 - 9년 전 여수에 집 보러 다닐 때 묵었던 호텔로 안내해서 1박 4만 원에 이틀을 머물도록 안내한 후,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국적을 회복하는 12월까지 여수에서 지낼 생각인 그분이 지낼 원룸을 알아보라고 당부하고 헤어졌다.

 

 곧바로 고흥 아내에게 돌아가면서, 작으나마 내 도움이 필요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형제 집에 있는 동안에 얼마나 사람이 북적대고 시끄러운지 정신이 없었다며, 여수같이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에 살고 싶다는 말이 그랬다. 컴퓨터는커녕 스마트폰에도 익숙하지 않았고, 마치 난생처음 서울을 구경한 촌로처럼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만약, 여수에 정착한다면 끝까지 돕자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저녁 전화하니, 물정을 모르는 분답게 내가 알아보라는 지역에서 본 레지던스 호텔이 한 달 백만 원인데 좋다고 한다. 최근 정유 화학산업 침체로 불황을 겪는 여수에서 오십만 원 이하 원룸도 수두룩할 텐데, 백만 원은 말이 안 되는 가격이다. 그분에게 4만 원짜리 호텔에서 하루만 더 연장하라고 하고, 엊그제 목요일 아내와 함께 그분에게 쫓아가서, 보증금 2백에 월 30만 원짜리 원룸을 12월까지 7개월 계약하고, 당장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을 갖추게 하고 돌아왔다.

 

 그래도 한국 정착에 자신이 생긴 모양으로 그분 표정은 첫날보다 많이 밝았다. 두어 달 전이라면 할 일 없는 내가 옆에서 도울 수 있었겠으나, 지금은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느 정도 수업료를 낼 수밖에 없다. 통장에 돈이 있어도 하루 이체 한도가 있는 한국의 은행들, 온라인상에서 요구하는 인증 방법, 운전면허, 주소 이전 등 역이민 초보자인 그분에게 낯설기만 한 게 한둘이 아니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때문에, 앞으로는 이분처럼 자의 반 타의 반 돌아오는 분이 점점 많아질 듯하다.

 

 <후기>

 보석처럼 찬란한 날씨의 5월도 오늘로 허리를 넘어갑니다. 시골에서는 항상 할 일이 넘칩니다. 어제는 오전에 온라인으로 구입한 선반을 조립하고, 오후에는 산책과 운동 겸해서 뒷산에 올라 산딸기를 따 먹으며 고사리를 꺾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운동 삼아 고사리를 했습니다. 지역 특산품인 마늘을 수확한 들에서는 마늘 냄새가, 이름 모를 꽃들이 핀 산에서는 아카시아꽃, 찔레꽃 등 각종 꽃향기가 후각을 자극합니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게 행복인 5월입니다. 항상 건행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오늘 아침 산책한 오솔길

 ▼ 오늘 채취한 고사리를 삶아서 말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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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꽃피는 봄이 오면 | 작성시간 26.05.16 new 선배님 좋은 일 많이 하셔서 좋은 분도 만난것 아닐까요
    언제나 변함이 없이 이런 공간을 이끌어 오신것 존경 합니다.

    글에서 선배님의 행복한 삶을 느낄수 있네요
  • 답댓글 작성자추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16 new 괜한 공치사 글 같아서 겸연쩍네요, ^^
  • 작성자아스펜 | 작성시간 26.05.16 new 좋일 많이 하시는군요. 코로나 땜에 발묶여 한국에 머물엇던 5년전이 생각나네요. 아파트는 하나 장만 해둔게 잇엇지만
    이곳,저곳 물어보면
    생할 할땐 미국 첫발디뎌 생활 할때 보다 더어렵단 생각을 햇읍니다.5년전
    그때 선생님을 알앗다면 한국생활이 훨~~수월 햇을텐데요.^^
    역이민자에게 길잡이 하시는 모습
    보기 참 좋습니다^^
  • 작성자열정 | 작성시간 26.05.16 new 두 분 알콩달콩 소식 때문에 덩달아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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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구름 | 작성시간 09:19 new 슬슬 샘이 나기 시작 합니다.
    우쨌거나 쭉~~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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