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 일정 내내 날씨가 좋았다. 일주일 전까지 화요일마다 내리던 비도 비켜 지나서 월요일 오전에만 보슬비를 뿌렸을 뿐이어서, 6월의 뜨거운 태양이 달궈놓은 대지를 식혀주는 순기능 역할을 했다. 하루 전에 몸살로 한 명이 취소하는 바람에 11명에 불과한 참석자가 다소 아쉬웠지만, 오히려 가족적인 분위기의 오붓한 모임을 기대할 수 있었다. 3년 전만 해도 20명 이상 참가했던 봄 모임이,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는 사실이 씁쓰레했다.
참가자가 적다고 준비까지 소홀할 수는 없다. 아내는 자신이 사는 고흥에서 남편이 주관하는 행사라서 그랬을까, 먹거리에 대해 특히 신경을 쓰는 통에, 나 혼자 준비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머윗대와 죽순으로 나물을 만들고, 물김치를 담는 등 열흘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며 수고할 필요 없다고 아무리 말려도 마이동풍이었다. 어떻게 생긴 마누란데, 이런 식으로 수고하면 다시는 모임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숙소가 가장 큰 문제였다. 처음에는 팔영산 자연휴양림으로 정하려고 했으나, 모임을 공지한 5월 중순에 이미 모든 숙소는 예약이 끝나 있었다. 자연휴양림은 6월 예약의 경우, 5월 1일부터 예약이 가능한데, 10일 무렵에 이미 모든 예약이 끝난 것이다. 그렇다고 참가 인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예약하기도 어렵다. 그때부터 다른 장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펜션이든 민박이든 상상외로 비쌌다. 아내 집 가까운 곳에 있는 펜션은 방 두 개짜리 이층과 한 개짜리 일층 1박에 40만 원을 요구했다. 3박에 120만 원으로 이웃이니까 특별히 5만 원을 깎아주겠다며 그 이하로는 절대 안 된다고 못 박듯이 말했다.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발품을 팔아 이곳저곳 돌아다녔으나 비슷비슷할 뿐 별 차이가 없었다. 아내의 인맥이 빛을 발했다. 지인에게 전화하더니 ‘마복산 목재 문화 체험 숙소’를 알아냈다. 찾아가 둘러보니 최적이었다. 4인실이 5만 원 이내일 뿐인 데다가 8인실 넓은 방이 있어서 안성맞춤이 따로 없었다. 문제는 월요일이 휴관이라 화요일부터 예약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하는 수 없이 월요일 하루는 ‘썬밸리 리조트’라는 호텔급 숙소로 정했다. 18평 4인실 셋과 모두가 모일 수 있는 25평 4인실을 예약했다. 물론, 취사할 수 있는 곳이다.
다음은 먹거리다. 첫날 저녁은 생선회로 정했다. 사실인지 알 수 없어도 지역 특성을 살리기 위해, 고흥군에는 정책적으로 양식장을 없애서 자연산뿐이라고 고흥 관광 안내서에서 말한다. 이번에도 아내의 인맥이 동원되었다. 나로도 수산시장에서 12명분으로 15만 원짜리 회 두 상자를 예약했다가, 회를 못 먹는 분이 나타나는 바람에 한 상자를 급하게 취소했다. 생선회는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한 상자도 남아서 남은 회를 얼렸다가 뒤에 먹었다.
나머지 저녁은 생선구이와 돼지갈비로 정했다. 숯불 생선구이는 고흥읍 전통시장 고유 아이템으로, 고흥을 소개하는 유튜브마다 소개할 정도이며 전국으로 택배 시스템까지 갖춘 유명 먹거리니까 빼놓을 수 없다. 돼지갈비는 번거로움을 생각해서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으로, 점심은 관광 중 매식하고, 아침은 누룽지나 사발면, 토스터 등 간단식으로 정했다. 숙소와 먹거리 다음은 이틀 동안의 동선이다. 고흥 서쪽에 있는 썬밸리를 중심으로 화요일은 서쪽 위주로, 동쪽 마복산 숙소에서는 동쪽 위주로 이동 경로를 짰다. 이런 것들을 준비하고 결정하느라 카페의 다른 일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준비와 계획이 정해지면 모임의 성패는 날씨에 달린다. 날씨는 완벽했다. 햇볕은 따가웠으나 바람이 시원했고, 맑고 청명한 하늘은 나들이 나온 어른이(?)들의 들뜬 기분을 더욱 북돋웠다. 여수로 가서 KTX로 도착하는 ‘언덕’님과 여수를 임시 거주지로 해서 사시는 ‘붙들이’님을 픽업해서 리조트로 왔다. 고급 리조트답게 주변 풍광이 뛰어났고, 산책 코스도 좋았다. 9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일몰이 아주 훌륭했다.
어렸을 때 소문으로만 듣던 소록도와 영웅이었던 김일 레슬링 선수의 기념관을 거금도에서 둘러보고 해변도로를 거쳐 경치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즐긴 후, 녹동항의 유명한 맛집에서 ‘장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개인 일정 때문에 ‘오를오’님 부부가 돌아가 9명이 되었다. 오후에는 ‘고흥 분청 문화 박물관’에서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의 옛 문화를 감상하고 즐겼다. 고려청자와 이조백자 사이에 분청자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처음 배웠다.
60대 마음이 50대와 같을 수 없고, 70대의 체력이 60대와 다름은 당연하다. 6월의 따가운 햇살과 체력을 생각해서 걸음을 줄이고 드라이브 위주로 동선을 짰으며, 될 수 있으면 아침 일찍 움직이되 저녁에는 오후 서너 시에 일정을 끝내고 쉴 수 있도록 시간을 계획했다. 마복산 한옥에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돼지갈비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 후 소화 겸, 면 지역 시골을 산책하다가 초등학교 잔디 운동장에서 동심이 발동하는 바람에 즉석 축구 대회(?)가 열렸다. 저녁 8시 조금 넘었을 뿐인데, 시골 면사무소 근방에 인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은 날씨가 더 좋았다. 이렇게 좋은 날 아침 일찍 숲을 산책하면 좋을 듯했다. 고흥에서 여수로 이어지는 섬섬백리길 드라이브에서 팔영산 편백나무 숲으로 방향을 바꿨다. 모두 좋아하니 덩달아 즐거워졌다. 시간상 섬섬백리길은 팔영대교 건너 맛만 보고, 제주 용머리해안을 닮은 용바위길을 걸은 후, 나로도 우주 발사 전망대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경치를 감상했다.
점심시간에 쫓겨 서둘러 나로도의 예약한 식당으로 향했다. 지역민의 추천답게 맛있었다. 공식 일정의 마지막은 섬 안의 섬 나로도 쑥섬이다. 쑥섬을 끝으로 마복산 숙소로 돌아왔다. 이날 저녁은 생선구이였으나, 아내가 고흥읍으로 가지러 가야 했다. 마지막 저녁은 각종 생선구이로 푸짐하게 장식했다. 남은 소주 6병을 다 비웠다. 떠나는 날 아침은 전날 자정까지 아내가 준비한 샌드위치다. 아침을 먹고 순천을 향해 가다가 우도 무지개다리를 걸은 후, 순천 웃장 돼지국밥 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후기>
2년 전 5월 순천 자연휴양림 3박4일 봄 모임 이후 제가 주관한 첫 모임이었습니다. 과거 여수 돌산도와 해남 보길도 등 3박4일 봄 모임을 여러 번 준비했었으나, 이번 모임이 가장 단란하고 조촐해서, 카페가 쪼개진 결과가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깨달은 점은 과거같이 대학생 시절 MT를 답습한 모임은 더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선 체력이 전 같지 않고, 준비하고 계획함에 있어서 순발력이나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져 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60대 여행이 걷기 등 활동 위주였다면, 70대는 드라이브 위주의 휴식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참석하신 분 모두 즐거워하시는 듯해서 주관한 사람으로서 모임 내내 행복했습니다. 특히, 처음 참석해서 승용차까지 가져와 커피를 사고 마지막 날 돼지국밥까지 산 ‘자복국자 – 자랑스러운 복수국적자’님 부부께 감사드리며, 연이은 방문자 대접으로 피곤함에도 직접 농사지은 상추와 마늘 등을 가져오시고, 다음날 돌아가신 ‘오를오’님 부부께도 감사드립니다. 그 외에도 처음 참석했음에도 불평 없이 잘 협조해 주신 모든 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혹시, 말이나 행동으로 결례한 점에 대해서는 본의가 아니었다고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
모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얼마나 피곤한지 월드컵 중계나 보며 쉬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후기를 씁니다. 못다 한 이야기는 아래 사진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썬밸리 리조트에서 바라본 노을
▼ 썬밸리 리조트에서 바라본 해돋이
▼ 소록도에서 - 이하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편의상 존칭 생략, 산신령, 추조, 재황, 언덕넘어, 붙들이, 자복국자
▼ 고흥 분청 문화 전시관에서 - 재황, 자복국자, 추조, 산신령, 언덕넘어, 자복국자2, 붙들이
▼ 해설자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며
▼ 초등학교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중
▼ 누군가의 제안으로 즉석에서 열린 월드컵
▼ 팔영산 편백나무 숲에서
▼ 다시 오고 싶은 팔영산 치유의 숲 - 산신령, 봄비, 재황, 붙들이, 자복국자 1&2, 추조 1&2
▼ 용바위 해변에서
▼ 마지막 날 헤어지기 전 우도 무지개다리에서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orlimar 작성시간 26.06.15 수고하셨습니다.
고국에 있었으면 참석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함께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시간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언덕넘어 작성시간 26.06.15 이번모임에서는 지기님 어부인께서 올리마님을 대신히여 우리의 매끼니를 맛있고 풍성하게 차려주셔서
호위호식을 하였읍니다 다시한번 지기님 부인께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북청물장수 작성시간 26.06.16 저도 한구 가면 참석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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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베가스 제이 작성시간 26.06.19 모임 주관하신 지기님 과 사모님 수고가 많으셨음을 안봐도 보이네요. 무엇보다도 3년전 모임 보다도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며 씁쓰레하시는 지기님 푸념이 내용을 소문으로만 들은 저까지도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하지만 지기님 힘 내세요. 이 카페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역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음에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꼭 많은 숫자일 필요가 있나요 ? 누구인가 단 한 사람이라도 역이민에 도움이 된다면 지기님은 국가 표창 대상자입니다. 지난번 여수에서 제3 방문자로 잠시 뵈었는데 오랜 친구같은 만남 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소증 취득후 라스베가스로 돌아왔지만 늘 카페에 출석하며 멀리서 화이팅 외쳐 봅니다.누가 알어주던 말던 나는 나의 길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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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추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0 new
격려 감사합니다.
이 카페를 포기하지는 않지만, 더 좋은 운영자가 나타날 때까지 적극적보다는 소극적으로,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운영하고자 합니다.
그게 저와 제 파트너의 행복을 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과 행복하시기 바라며, 언젠가 건강한 모습으로 못다 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