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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나 경험담

잡담한설(雜談閑說) - 100

작성자추조|작성시간25.12.30|조회수513 목록 댓글 35

 안 보이는 분들

 

 카페 덕분에 참 많은 분을 만나고 또 숱한 인생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을 따라 순탄하게 이민한 분,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고 멕시코 국경을 몰래 넘거나 위장 결혼으로 이민한 분, 한국 IMF 때 재산을 잃고 건너와 불법체류자로 지내던 분, 유학 와서 학위 취득 후 취업으로 이민한 분, 주재원으로 왔다가 눌러앉은 분 등 수많은 사연을 가진 이민자들을 만났다. 그뿐이 아니다, 맹목적으로 미국은 무조건 찬양하고 한국을 비하하는 분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보았으며, 뉴스에서 자주 인용하는 성공한 이민자만이 아니라 실패한 분도 그 이상으로 많았다.

 

 가족 초청으로 10년 이상 기다려 나온 영주권이 아까워 망설이던 차에, 때마침 들이닥친 IMF로 실직하는 바람에 한국에 갖고 있던 강남의 아파트 몇 채를 처분하고 이민했다가 후회막급인 분의 이야기도 들었다. 투자이민으로 갖고 온 50만 불을 다 날리고 신분도 해결하지 못한 채, 냄새나는 식당 주방에서 종일 접시를 닦는 젊은 부부도 있었고, 15년 전 살던 LA 부에나팍 아파트에서 전셋돈만 있어도 돌아가겠다며,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60대 후반 할머니의 촉촉한 눈망울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15년이라는 세월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좋았거나 나빴거나 그 시간 덕분에 인생이 풍요로워졌고 이야깃거리는 풍부해졌다. 한겨울 긴긴밤 잠 안 오는 불면이 시작되면, 기억의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분들의 모습이 어둠 속 관객석에서 바라보는 영화관 스크린처럼 눈앞을 스친다. 초창기 몇 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던 분들이 전혀 안 보인 지 수 년째다. 캐나다 밴쿠버의 A씨는 잘 정착했을까? 미국으로 시집온 부인의 공황장애로 퇴직 후 역이민하겠다던 미 국무부 소속 공무원이었던 분은 한국에 돌아왔을까?

 

 고인이 된 분들도 생각난다. 투석을 받으며 몇 년을 기다려온 순서가 0순위가 되었음에도 한두 달을 못 기다려 작고하신 K형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신장 이식만 받으면 한국에서 살겠다고 했었다. 편안한 노후를 위해 시골 관광지 호텔을 인수했다가 금융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마음 고생이 심하다가 암에 걸려 돌아가신 L 선생은 영원히 잊지 못할 분이다. 명문 코넬대를 나온 두 딸을 자랑스러워하시던 C 님도 잊을 수 없다. 회복해서 직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시다가 끝내는 병상에서 돌아가셨고, 캐나다에서 쓰러져 응급실에서 긴급 심장수술 받는 바람에 1억을 절약했다며 좋아하시던 J 님은 돌아온 한국에서 결국 귀천하셨다.

 

 최근에 갑자기 생각나는 분이 있다. 12살이나 많은 띠동갑이신 S 선생님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던 분이었으나 요즘은 통 보이시지 않는다. 2013년 딸 결혼식 참석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LA 산타모니카 그분 댁에 며칠 머무는 동안, 함께 아침 산책하며 들었던 개인사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지금도 생생하다. 4~50년 전 30만 불에 산 그분 집은 지금쯤 3백만 불쯤 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넓고 정원이 숲속 같았다. 카페 마지막 방문이었던 봄에 치매 증세가 있으시다는 한 줄 메모를 보고 놀랐는데, 아무쪼록 치매가 심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70대 중반에도 요세미티 하프돔을 오르시고, 그랜드 캐니언을 계곡 밑까지 트레킹 할 정도로 건강하셨던 분이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사는 겸손만이 최선이다.

 

 AI에 물어보면 될 일

 

 당분간 조깅하지 말라는 AI 충고로 홈트로 바꾼 후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겨울철이라 집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어서, 일을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경로당 청소하다가 회계장부를 들여다보니 며칠 안 남은 올 내로 써야 할 돈이 23만 원이나 남았다. 모처럼 외출하는 김에 할 일을 생각했다. 덥수룩한 머리도 깎아야 하고, 경로당 청소비로 받았던 29만 원 중에서 주방 보조에게 준 20만 원을 제외하고 경로당 몫으로 두었던 통장을 해지하러 은행에 들르고,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디지털 신분증으로 바꿀 생각으로 나왔다.

 

 이발소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하니, 무턱대고 은행과 주민센터에 갈 게 아니라 혹시 필요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고, IT 강국에서 온라인으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발을 끝내고 차에 시동을 걸고 앉아 ChatGPT에게 물었다.

 - 농협 은행 계좌 해지 방법은?

 - 디지털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방법은?

 질문하자마자 방법 1, 방법 2, 방법 3 하며 줄줄이 답변을 쏟아냈다. 은행도 주민센터도 갈 필요가 없었다. 나온 김에 노인복지관에서 2천 원짜리 점심을 먹고, 마트에 들러 된장, 고추장, 북어포 같은 오래 두어도 되는 부식 거리를 22만 원어치 샀다.

 

 집에 돌아와 AI가 알려준 대로 모든 일을 전화기로 처리할 수 있었다. 디지털 신분증도 실물 주민등록증이나 실물 운전면허증과 법적으로 똑같은 효력이 있다고 하니, 지갑에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전화기 화면에 나타난 주민등록증이나 면허증은 30초 후에 저절로 사라졌다. 역시, IT 강국 대한민국다웠다.

 

 지금은 AI 세상이다. AI에 물어보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섣불리 움직이면 쓸데없는 헛수고가 뒤따른다. 게다가 이곳은 IT 후진국이 아니라 IT에 관한 한 미국보다 앞선 선진국 한국이다. 국적회복이나 거소증, 운전면허증, 여권 이름 등 모든 질문이 AI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한국에서 앞으로 조금이라도 편해지려면 AI 활용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그런 목적으로 2026년에는 QnA를 안 보이게 할 생각이다. 이 카페는 QnA 사이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유튜브

 

 며칠 전이다. 미 서부에 사시다가 역이민해서 순천에 사는 분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 지인이 보내준 유튜브를 보면, 내년부터 SSA를 받는 미 시민권자가 해외에 182일 이상 거주하면 SSA가 중지될 수 있으며, 해외에 거주하는 시민권자도 메디케어 플랜B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등, 소셜 시큐리티 규정이 강화된다는 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당근 금시초문이었으나, 듣자마자 가짜 뉴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분이 보내준 동영상은 정말이지 방송국에서 제작한 진짜처럼 잘 만들어진 유튜브였다. 바뀐 규정이라며 그럴듯하게 10개나 되는 조목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가짜일수록 진짜 같은 법이다. 정말 사실이라면 개인 유튜버가 그렇게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 필요도 없다. 보이스피싱도 진짜 같아야 속지, 가짜 티 나면 속을 사람 아무도 없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우면 이런 가짜 동영상까지 만들어 역이민자들을 불안하게 할까? 아무리 돈벌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조회수를 늘리고 싶을까? 정말 고약한 사람들이다.

 

 ● 역이민자에게는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는 가짜 유튜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B_5mMtgGFA

 

<후기>

드디어 100번째 잡담한설(雜談閑說)을 올렸습니다. 전하고 싶은 잡다한 이야기들을 한 번에 모아서 올릴 목적으로 잡담한설이라는 창조한 제목으로 올린 2014년 4월 3일 첫 번째 글 이후, 12년 만에 백 번째 글을 썼습니다. 

저도 참 지독한 인간입니다, 하하하.

 

▼ 엊그제 일요일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한 시간 반 동안 8㎞를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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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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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미소 여 1961 | 작성시간 26.01.01 정말 수많은 사연에 깜놀 합니다
    100번째 글 대단하세요
    건강하시고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 답댓글 작성자추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1 세임 투 유!!!
  • 작성자말미잘 | 작성시간 26.01.04 넓은 미국땅 여기저기서 일어났던,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민사...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일인으로 많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100회 축하드리고 이어질 새로운 글 기대합니다^^
    Happy New Year~
  • 답댓글 작성자추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5 Happy New Year!!!
  • 작성자고국사랑 | 작성시간 26.01.10 6년 전 한국방문 때 동생과 여행했던 여수의 아름다운 섬들, 바다, 케이블카, 벽화 마을, 오동도 등이 생각납니다.
    참 운취있고 문학적인 분위기의 아름다운 항구도시였던 기억이 있고요.
    아마 그래서 글을 많이 쓰시고 사색과 걷기를 즐기시는 듯,
    고국으로 역이민을 성공적으로 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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