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후유증이 무기력증으로 찾아왔다. 따지고 보면 욕심과 술 탓이다. 베트남에서 돌아오자마자 배낭을 지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느라 무더위를 제대로 겪었다. 비행기가 한 시간이나 연착하는 바람에 임플란트 예약한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어디 들릴 시간이 없었다. 룰루랄라 한가롭게 여행 다니다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땀으로 목욕하다시피 하며 돌아다닌 데다가 오밤중 한 시 넘어 출발한 비행기 속에서 뜬 눈으로 새웠으니 최악이었다. 덕분에 그날 저녁은 열두 시간 넘게 푹 잤다.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어리석은 자는 술에 취하면 무모해진다. 좋은 분위기에서 마신 술이라 평소보다 더 기분이 업되었다. 지하철에 내려 출구에 카드를 댔으나 삑 소리가 나며 열리지 않았다. 순간의 짜증은 그걸 뛰어넘으려는 어리석음을 불렀다. 100% 술 탓이다. 발이 걸려 못 넘고 뒤로 자빠졌다. 33일 동안의 베트남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하루 전에 벌어진 일이다. 자고 나니 허리가 몹시 아팠다. 똑바로 눕지도 엎드릴 수도 없다. 재수 없이 후유증이라도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바보 같은 자식. 나이가 70이 다 되었으면서 이 무슨 철없는 짓인가. 자책에 자책이 꼬리를 물었다.
다음날 여수로 내려온 후 컨디션은 말이 아니었다. 허리는 아프고 혓바닥은 쓰렸다. 횟집에서 회를 먹다가 혀를 깨문 듯하다. 알레르기 증상이 왜 나타났는지 모르겠으나 눈까지 가렵고 따가워서 비볐더니 퉁퉁 부었다. 무기력증은 침 맞으러 한의원에 다니고 안과에 다니며 자책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약을 처방한 안과 의사가 약을 먹으면 졸린다더니 약 탓인지 무기력증 탓인지 수시로 졸렸다. 아침에 눈을 떠도 7시가 넘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날씨는 왜 이렇게 더운지 짜증만 부른다.
할 일이 없지는 않았다. 없는 동안 있었던 경로당 지출과 수입을 정리하고 시장을 봤다. 경로당에서 점심을 드시는 할머니가 8월에 네 분, 9월에 한 분이 더 늘었다. 9월에 오신 42년생 할머니는 인천에서 이사한 지 1년이 다 되도록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좋아하신다. 그동안 너무 적적해서 우울증까지 겪었다며 수다를 늘어놓았다. 총무님(?)이 돌아왔다며 좋아하는 할머니 덕분에 정신을 차린다. 어떤 분은 반찬뿐 아니라 수박과 포도 등 과일까지 챙겨주신다.
시간이 약이다. 며칠 지나자 아픈 허리도 누그러지고, 혀의 상처도 아물고, 눈의 괴로움도 사라졌다.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던가. 몸이 편해지자 정신이 돌아온다. 베트남에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카톡으로 인사를 전하고, 생활 루틴을 정상으로 되돌리겠다고 생각했다.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일은 해야 할 일을 찾아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장부 정리를 끝낸 후에는 짝수 연도에 받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형식적인 검사라도 안 받는 것보다는 낫다. 굶고 가서 혈액을 뽑고, 구역질을 참으며 위내시경도 받았다.
오늘 아침에는 반은 걷고 반은 뛰며 7㎞를 땀 흘려 걸었다. 48일 만에 되찾은 여수에서의 아침 루틴이다. 아직은 27℃로 운동에 적합하지 않은 기온이나 바람이 시원해서 견딜만했다. 2주 전에는 쾌적한 달랏에 있었다. 33일간의 일탈에서 돌아오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내 삶은 여수에 있다.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봉사하고, 역이민 카페에 글 쓰고, 날마다 운동하며 지내는 게 내 일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언제까지인지는 모르나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다.
<후기>
올해는 어떻게 된 일인지 여수가 서울보다 더 덥습니다. 밤에도 25℃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계속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이 뜨거워진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수로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정신을 차리고 글을 씁니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일주일 후면 저 같은 역이민자들에게 우울증을 부추기는 추석 대목이 시작합니다. 찾아갈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없는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은 숨죽이고 조용히 지내는 시간입니다만, 올해는 홀로 사는 총무님(?)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경로당 할머니 덕분에 덜 외로울 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 48일 만에 다시 만난 여수 바다. 썰물인지 바닷물이 저만치 물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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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추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9.07 5~6년 전에 동네 뒷산을 오르다가 5만 원짜리 지폐를 주운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5천 원짜리로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천 원짜리 물건을 샀는데, 5만 원짜리를 주면 어떻게 하느냐는 가게 주인의 말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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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부산댁 작성시간 24.09.07 한달이나 행복하셨으니 조금의댓가는 지불하셔야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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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추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9.11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너무 덥네요. -
작성자별떵이 작성시간 24.09.09 불미스럽고 불쾌했던 일들도 웃음이 터지도록 재미있게 표현해 주셨습니당~~~~ㅎㅎㅎ
부산 댁 말마따나 그동안 행복하셨으니 그 정도의 대가쯤이야 치르셔야죠.
아무튼, 다시 회복하셨다니 다행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추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