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돌아가신 뒤,
우울한 기운이 길어지자
글도 같이 가라앉는다.
무작정 집으로 왔다.
도착하자마자 밥부터 했다.
잡곡에 서리태까지 챙겨 넣었다.
밥솥은 쉭쉭거리며
계속 소리를 내었는데
나는 끝내 놓쳤다.
밥은 탔다.
2년을 실버타운 밥에
익숙해진 탓이다.
해주는 걸 먹다보면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조차
까맣게 잊어먹는다.
그래도 집은 좋다.
늦게 일어나도 되고,
밤늦게까지 TV를 봐도 되고,
아무 때나 나가 밥을 사먹어도 된다.
자유다.
실버타운에서는
하루가 정해진 순서대로 흘렀다.
시간에 맞춰 식사가 나오고,
강의를 듣고, 온천을 하고
따라가기만 해도 하루가 간다.
스스로
선택한 일정인데도
관리되는 일상처럼 느껴진다.
보름이 넘도록 집에 있다.
가끔은 바깥이 떠올라
백화점에 가서
딱히 살 것도 없는데 한 바퀴 돌고,
영화를 보고,
속이 부대낄 걸 알면서도
햄버거와 피자를 먹고,
젊은 사람들 속에
괜히 한 번 섞여본다.
아침밥은 점점 늦어진다.
7시 반이 8시 반이 되고,
결국 10시가 돼서야 한 숟갈 뜬다.
사이사이는
간식과 야식으로 배를 채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실버타운에서는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극이 되어 따라 하게 된다.
집에 오면
건강은 생각뿐이다.
그냥, 안 하게 된다.
대신 집에서는
청소와 정리가 시간을 잡아먹는다.
관리 받던 시간은 사라지고,
이제는
내가 나를 챙겨야 한다.
“규칙적으로 사는 건 쉽지 않다.”
그랬더니 딸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미 고창공주님이야.”
웃어넘겼지만
듣고 보니 맞다.
편한 대신 흐트러졌고,
자유로운 대신 리듬은 깨졌다.
시간도, 식사도, 생활도
전부 내 몫이다.
고창 언니들은
빨리 오라고
전화통에 대고 소리친다.
봄 다 간다고.
https://m.blog.naver.com/pf4me/224244813474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카미 작성시간 26.04.08 규칙과 자유 사이를 마음껏 유영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은퇴한 우리가 맞이할 진정한 봄날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또한 한국에서의 생활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백지처럼 두려합니다. 내마음대로 움직일수 있는 권리, 저도 꼭 마음껏 누리고 싶네요.
기쁜날님의 글은 항상 많은 영감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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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어기여차 망고 작성시간 26.04.08 삶은 반가움" 과 싫증" 의 연속 회전인듯 해요 ㅎㅎ
이렇게 회전하며 반가움" 이나, 싫증" 이 행복의 순간도 되구요
때때로는 고통과 번민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
한 마디로요 ?>? 참 평안과 행복의 직전상황은 항상 고통의 삶이라 할 수 있어요 .. -
작성자애니원 작성시간 26.04.08 다시 고창으로 돌아가시는거죠?오월에가면 연락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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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hloe 작성시간 26.04.09 new
고창 힐링카운티 에서 3박4일 맛있는 메뉴, 또 기쁜날님 과 만남 추억이 돼였네요 .. 아직 젊은데 건강 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