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말 형이 이전 한 번 없이 같은 자리에서 36년 1개월간 운영하던 강남의 성형외과의원을 닫고 은퇴를 했다.
세 살 위인 형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기대를 많이 받았고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는 내내 전교 일 등을 놓치지 않았다. 주위 사람 모두들 "경기중학에 들어가야 한다" "너는 문제없이 합격이야" 칭찬과 격려를 했다. 형은 예상대로 무난히 경기중학에 합격했고(디아스타제/무우즙 파동 기억나시리라)^^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해 세칭 'KS마크' 가 되었다.
형은 모든 면에서 나의 우상이었고 하는 모든 것은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중학생이 된 형이 영어를 읽고 말하는 것이 어찌나 신기하고 부러웠던지 하루 빨리 나도 중학생이 되고 싶었다. 큰 누나를 필두로 모두 둘러앉아 전축을 틀어 놓고 "The End of The World" "He'll Have to Go" "Try to Remember" "Greenfields" 등 팝송을 부르면 작은 형이 나도 '영어 한다' 며 끼어들고... 즐거운 추억이다.
나도 중학에 진학해(물론 경기 아니다^^) 영어를 배우면서 형이 읽던 손바닥 만한 문고판 책들을 찾아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에드가 앨런 포의 "The Gold-Bug" "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등. 소녀 탐정 "Nancy Drew Mysteries" 시리즈도. 아마 이게 내가 평생 미스테리 소설에 빠지게 되는 단초가 되었을거다.
형은 고등학교에 들어간 얼마 뒤 누구의 소개인지 동대문 근처 어느 중학생의 입주가정교사로 들어갔다. 거기서 상당히 오랫동안 기거한 것으로 기억되며(2년 이상) 따라서 상당기간 형과의 접점이 뜸했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 형은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했다. 전자공학과의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을거다. 나는 기타도 술도 형에게 배웠다(라고 말할 수 있다). 집근처에 전주집이라는 매운탕 잘하는 대폿집이 있었는데 막걸리에 쑥갓을 갈아 넣어 독특한 맛이 있다며 그리고 끌곤 했다.
어쩌다 형 생각을 할 때면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놀랍고도 고마웠던 형의 행동이 있었으니...
고교 졸업식이 끝나자 형이 내 친구 몇 명을 모아 예의 그 전주집으로 데려가 홀 뒤의 방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형의 주도로 잔이 채워지고 한 두 순배 돌자, 형이 와리바시로 장단을 맞추며 '우울려고 내가 왔던가 ~' ' 님께서 가신 이 길은 영광의 길이 옵기에 ~' 처음엔 쭈볏쭈볏하던 친구들도 형이 먼저 '망가져주자' 방이 떠나가라 합세하기 시작했다. 홀의 손님들은 웬 소란인가 했다가 주인장의 졸업식 뒷풀이라는 말에 보나마나 참고 견뎌 주었겠지.
순정파 형은 2학년 미팅때 만난 외대 A양과(형수님이다^^) 연애결혼을 했고 이제 금혼을 앞에 두고 있다.
일찍 큰 누나를 필두로 큰 형, 작은 누나등 앞서거니 뒷서거니 미국, 캐나다로 떠나버려 홀로 한국에 남은 형, 그뿐인가 처제도 처남도 하와이로 조지아로 역시 이민을 가서 너무 외롭다고 쓸슬해 하던 형.
옛적 가르쳐준 Glen Campbell 의 'Today' Judy Collins 의 'Both sides Now' 는 아직도 나의 애창곡이다. 95년 아버지 장례식 끝나고, 모두 모인 노래방에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지긋이 눈을 감고 열창하던 형의 처연한 얼굴...아직도 생생하다오.
수고 많으셨소. 이제 형수님과 훨훨 마음껏 날아다니시구료.
It's always nice to have a BROTHER like you!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Bri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08 얼마나 시끄러웠으면 국민학생이던 저까지 기억하고 있겠습니까.^^ 요새와는 다른 형태의 열풍이요 치맛바람이었겠지만 당시도 경기,서울, 경복 합격시키려 대단했지요 아마.
-
작성자blackass 작성시간 26.04.09 저 또한 무우즙 때 중입학 시험을...52년 용 혹 53년 뱀 들이지요..그 때 생각이.....그리워지네요...
-
답댓글 작성자Bri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09 역전의 용사시구만요^^, 예 형이 용띠입니다.
-
작성자테리우스 작성시간 26.04.10 제게 4살 위의 형이 있습니다.
제가 20대에 한국을 떠나는 바람에 형과의 추억은 어릴때로 제한되지만, 제게는 늘 보고 싶고 그리운 형입니다.
오래전 형의 산행 친구들의 자리에 내가 우연히 함께 한 적이 있었는데, 몇잔 술로 얼콰해진 형이,
내가 세상에 제일 좋아하는 내 동생이라고 일행에게 소개하더라구요. 순간 울컥했었습니다. 저도 똑 같은 마음이거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Bri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10 누구나 형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다면 정말 '울컥' 하는 가슴 벅차 오르는 감정을 느낄겁니다만, 아무나 다 형에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거는 아닐겁니다. 형제지간의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