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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

R.O.K.Army Colonel 군번 11412 - 아버지 HK

작성자Brian|작성시간26.05.25|조회수226 목록 댓글 6

일제의 압제를 피해(사대부 출신으로 인척 및 주위에 영향력이 있어, 협조를 거부하자 주위 사람들을 심히 못살게굴며 협박을 했다함) 만주 봉천(현 심양)으로 망명을 떠난 YJ옹의 4남1녀 중 막내로 1919년 4월 6일 HK가 태어났다. 이 년 후 거 처를 국제도시인 하얼빈으로 옮긴 옹은 오래지 않은 1926년 세상을 떠났고 부인도 얼마 후 병으로 뒤를 따라서 하얼빈 외국인묘지에 묻혔다. 

 

하얼빈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학교 교사가 된 HK는 고교 후배이자 동료 교사이던 HS를 만나 교제를 했고 곧 결혼을 하게 되었다. 병약한 장형을 대신하여 가장 역할을 하던 중형 SK는 기골이 장대하고 사업 수완이 좋아 운수업으로 가세를 일으켜 상당한 부를 쌓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나이 차이 많은 막내동생을 항시 안쓰럽게 생각하던 중형은 1942년 막내동생의 결혼식(다음해인 1943년 태어난 장녀가 지난 4/16일 올린 가족이야기의 '큰누이') 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에는 드물게도 신랑신부는 연미복/웨딩드레스에 백마가 끄는 마차까지 동원하였다. 당시 하얼빈은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 조계가 있고 20여개국의 영사관이 있는 국제도시였다. 

 

신부 HS의 아버지(일단 김옹이라 하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한국 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소위 Unsung Hero 라 할까)

 

태평양전쟁 막바지, 중형 SK는 국제정세에 밝은 사돈어른에게서 일제의 패망이 멀지 않았음을 들었고 동생 HK도 중국을 돕는다는 핑계로 소만국경을 넘어 만주로 진주한 소련군이 조만간 만주-조선의 국경을 폐쇄하리라는 정보를 들은터라, 가족회의 끝에 귀국을 결정한다. 그러는 와중에 해방이 되었고, 만주를 떠나 귀국길에 오른 대가족은 간난신고 끝에 1946년 1월 서울에 도착한다. 대구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마산에 정착한 중형과는 달리 HK는 국방경비대를 거쳐 1948년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한다(나중 육사 6기가 되었고, 당시 훈련교관이 박통이었다).

 

1950년, 이미 자식 셋을 둔 31살의 HK는 용산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중, 통한의 6.25 남침으로 미처 가족을 챙길 틈도 없이(인편으로 통보만 했다) 기밀문서등을 챙겨 본부를 따라 대전으로 부산으로 후퇴를 한다. 28살의 젊은 아내와 자식들을 거두지 못한 채 피난지 부산에 홀로 와있는 HK의 심사가 어땠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군인가족이라 처형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살아는 있을런지, 애들 엄마는 인민군에게 험한 꼴을 당하고 혹 애들은 고아처럼 떠도는건 아닌지...

 

그때까지 술담배를 모르던 HK는 시시각각 밀려오는 불안과 초조함을 떨치려 술담배를 시작하게 되었고, 불안과 울분에 따른 폭음의 연속으로 끝내는 울음으로 마무리되는 '주사' 라는 못된 버릇을 남긴다.

 

6.25 당시의 일을 기록으로 남긴 나의 큰형의 회고록을 한 페이지 들쳐보면 : "우리는(엄마,누나, 돌 지난 여동생) 살고 있던 수색을 떠나 제기동 외갓집으로 갔다. 식량을 구하겠다 나서던 서울대학교에 다니던 막내 외삼촌이 문 밖에서 붉은 완장을 찬 동네 청년들에게 잡혀 바로 의용군으로 끌려갔고 이후 영영 행방불명이 됐다.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다시 피난길에 나섰고 광나루쯤에서 한강을 건너 정처없이 걷다 경기도 광주의 시골 어느 농가에 들어갔고 그분들의 호의로 9.28 수복 때까지 무사히 숨어 있었다. 다시 아버지를 만나 온가족이 모였지만 그러나 우리의 운명 앞엔 1.4 후퇴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동료들이 무골호인이라 칭하던 군 밖에 모르던 HK는 별을 따지 못해 1968년 계급정년으로 예편을 한다. 75년 장녀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1995년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여 Paramus 의 묘지에 묻혔고 2012년 뒤를 따라온 아내가 함께 묻힌다. 

건국공로훈장, 공비토벌기장, 6.25 종군기장, 인헌, 을지, 충무, 화랑무공훈장만 남기고.....

 

R.O.K. Army colonel # 11412 그의 묘지 동판에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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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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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Bri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25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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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버밀리언 | 작성시간 26.05.25 new 한편의 영화같은 한가정의 가정사가 한국의 근대사와 함께하네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답댓글 작성자Bri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25 new 가끔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내가 어린 자식들이 딸린 가장이었다면, 당시 우리의 모든 부모님들이 견디고 버티어냈던 시련을 나도 이겨냈을까' 하는. 일제시대, 해방, 6.25의 강을 헤쳐 건너 오신 당시의 모든 부모님들께 정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열정 | 작성시간 26.05.25 new Brian 분명 이겨냈을 것 같아요.

    DNA는 무시 못하기에
    "역사는 흐른다" 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국가유공자 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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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Bri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25 new 열정 부모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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