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 때부터 특별한 이유도 없이 몬탁을 가보고 싶었다. 뉴욕의 동쪽 끝이라는 지리적인 상징성도 있고, 대서양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대한 유혹도 있다. 42년 전 난생처음 마주했던 대서양의 강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포공항을 출발해서 일본 나리타 – 미국 LA – Atlanta GA – Melbourne Fl로 이어지는 네 번의 비행 끝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에 가까운 깜깜한 한밤중이었으며, 한창 나이의 청년이라도 솜처럼 피곤으로 절어 있었다. 상대 회사에서 마중 나온 PM(Project Manager)이 안내한 화려한 장식의 호텔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연수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더블베드 두 개가 놓인 방이 두 개나 되는 호텔에 나 혼자 투숙했다. 이렇게 좋은 호텔의 숙박비를 내가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피로를 몰아내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쏴~아’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궁금증은 날이 희미하게 밝아지는 새벽녘에 풀렸다. 소리의 방향을 쫓아 베란다로 나가니 옅은 여명 속에 시커먼 바다와 파도가 뱉어내는 흰 거품이 보였다. Holiday Inn이라는 이름의 Ocean Front Hotel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스물일곱 살의 촌닭은 그 어마어마한 광경에 사로잡혀 해가 뜰 때까지 바다를 향해 꼼짝 못한 채 앉아 있었다.
그 강렬했던 기억이 평생을 지배했다.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왔고 미국 시민이 되었으며,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미국인(Korean-American)이 되었다. 바람에 날려 퍼지는 민들레 홀씨처럼 우연히 어리석은 인간에게 뿌려진 씨앗이 42년 동안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때 보았던 대서양에 대한 향수인지도 모른다. 생각만 있었을 뿐 기회가 없었는데, 막상 차를 렌트해 놓고 갈만한 곳이 없으니 몬탁이 딱이었다.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Waze’라는 네비에 Montauk을 입력하니 2시간 40분 걸린다고 한다. 해뜨는 시간은 6시 37분. 20분 정도 여유를 가지려면 3시 40분에 출발하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냉장고를 뒤져 요기를 한 후, 몇 가지 먹고 마실 걸 챙겨서 출발했다. 이른 새벽이라 거칠 게 전혀 없는 도로는 조지워싱턴 브릿지 건너자, 그 새벽에도 차들로 붐비는 유명한 95번 도로까지도 제한속도 이상으로 달릴 수 있었다. 항상 막히는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기분이 삼삼했다. 뉴욕의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80마일로 달려도 모든 차에 추월당해서 너무 이른 도착이 염려되었다.
그러나 완전한 기우였다. 두 시간쯤 운전했을까, 얼마 남지 않았다 싶은 5시 40분경부터 길이 막혔다. 편도 2차선 도로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그런 길을 30분이나 걸려 겨우 벗어나자, 네비가 동네 골목길을 안내했다. 출발할 때 계획과는 다르게 몬탁 스테이트 파크에 들어선 6시 40분경에는 동이 트고 있었고, 등대에 도착한 6시 50분에는 이미 해가 수평선 한참 위에 떠 있었다. 인생이 언제 계획대로 된 적이 있었던가.
등대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세찬 바람이 추위를 더해서 손이 시려 밖에서 오래 머물 수 없고, 사진을 찍으러 등대로 갔으나 펜스가 잠겨서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중천에 걸린 태양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했고, 아이와 손주들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했다. 어차피 인생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아니런가.
돌아가는 중에 트레킹 사인을 보고 두 군데를 걸으며 발자국을 남겼다. 바닷가 절벽 위에 지은 저택들이 보였다. 가끔이라면 몰라도 저런 곳에서 24 Hours 7 days 산다면 재미있을까? 네비의 목적지를 Bridgewater로 설정했다. 뉴저지를 떠나기 직전까지 살았던 곳이자, 갑작스럽게 혼자가 된 우울감을 위스키와 보드카로 다스리며 절망으로 허우적거렸던 장소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그때를 돌이켜보면 지금은 용이 되어 구름 속에서 내려다보는 미꾸라지(?)의 마음이다.
Verrazzano Bridge를 2~3마일 앞두고 트래픽을 만날 때까지 운전은 순조로웠으나 문제는 졸음이었다. 너무 졸려서 다리를 꼬집고 뺨을 때려도 졸음을 쫓기 힘들었다. 승용차만 다닐 수 있는 모터웨이는 차선도 좁아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데도 졸렸다. 게다가 길까지 막히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졸음이 쏟아졌다. 새벽에 일어난 데다가 혼자 대여섯 시간을 운전하니 그럴만했다. 생수병에 남은 물을 목뒤에 붓자, 등줄기를 타고내리는 찬 기운에 정신이 번쩍 든다.
사서 고생한다더니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싶었다. 누구와 함께한다면 몰라도 혼자 6주는 너무 길다. 아이들 보러 오기에는 3주가 적당하다. 한국에 있다면 지금 얼마나 좋은 계절일까. 동백꽃 흐드러진 금오도 비렁길을 걸어도 좋고, 영취산 진달래 축제나 광양 매화마을도 있으며, 나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는 이렇게 오지 않으리라. 배도 고프고 소변도 보고 싶은데 차는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모터웨이에서 벗어나 브루클린 어딘가로 향했다.
주택가에 주차하고 가까운 음식점을 찾았으나 테이크아웃 음식점으로 화장실도 없다. 구멍가게에 들러 빵과 음료수까지 샀어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단다. 젠장, 빌어먹을 미국. 하는 수 없이 차로 돌아가 맥도날드를 찾아서 자연적 욕구를 해결했다. 그동안 체증이 풀려있어서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후기>
과거를 터는 추억여행은 이틀로 끝내고 차는 일찍 반납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나 자신을 한 번도 쓸모없는 노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나, 여기서는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손주들 때문인지, 불안불안하게 생각하는 아이들 탓인지 노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아무 할 일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좋은 옷도 몸에 안 맞으면 헝겊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제 며칠 안 남았습니다, 활발한 청년으로 돌아갈 날이!
▼ Montauk Lighthouse
▼ 이날 해뜨는 시각은 6시 37분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길이 막히는 바람에 20분이 늦게 도착해서, 중천에 걸린 태양을 보면서 과거를 떨쳐버렸다.
▼ 텅빈 주차장
▼ 절벽 위 저택들
▼ 42년 전 한국이라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27살 청년이 감동으로 바라 보았던 대서양
▼ 7년이나 홀로 살았던 타운하우스. 인생에서 가장 깜깜했던 시간이었다. 오른쪽 끝 이층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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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말미잘 작성시간 25.04.10 좌충우돌 지기님의 추억 여행기를 읽으며 저의 드라마를 보는 듯해 미소 지었습니다.
지송합니다~~
저희가 88년도(한국이 여전히 못살때) 미국 시골의 대명사인 켄사스시티에 유학왔을때 그곳은 너무도 크고 멋진 곳이었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그곳을 다시 찾으니 예전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우리도 변해 그때의 감정이 올라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쯤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이제 미국 생활을 접어야 할 때가 다가오니 아이들때문에 살짝 갈등은 있지만 여전히 우선 순위는 한국입니다.
아직 딸네가서 두 달을 살고 가야 하긴 하지만...
손주를 봐주는 내가 갑인데 자식이 갑인 듯한 이 기분은 뭔지 아이러니 입니다 ㅋㅋ -
작성자njcc 작성시간 25.04.10 아직은 젊은? 60 초반이지만 … 글을 읽으며 역이민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 뉴저지에서만 30년을 넘게 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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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소 여 1961 작성시간 25.04.10 몬탁 해돋이에 다녀오셨네요
글에서 살아온인생관을 찐하게 느낌인데
괜시리 제 마음도 찡~~~~
자식과 손주들 과 함께한 시간도 좋ㅇ지만
본인을 사랑해야 제일 행복함이 느껴진다는 인생~~~ -
작성자뉴팍 작성시간 25.04.10 주초님은 뉴욕에서 수십년 살은 저의 추억을 되살립니다
우드버리에 이어 몬탁까지....저의 뒤안길 입니다 -
작성자리지 작성시간 25.04.13 먹고 살기 바빠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곳도 참 많네요
뒤돌아보면 언제쯤에서 추억이 묻어 있는 그곳은 항상 다시 가고픈 곳이 아닐런지요
우리 모두 행복 그날을 그리며 행복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