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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

작성자No1 Jen|작성시간09.07.13|조회수100 목록 댓글 0

스페인의 귀족인 헤르난도 코르테스는 1519 4월에 500여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멕시코의 베라크루즈에 상륙하여 1521 5월에 아즈텍 왕국을 공격하여 쉽게 멸망시켰으며 스페인에서 돼지를 사육하던 프란시스코 피사로라는 사람이 페루 정복의 꿈을 안고 스페인 왕 카를르 5세를 찾아갔다가 고작 180명의 병사와 30여필의 말을 얻었지만 그는 1533년 안데스 산중의 대제국인 잉카제국을 멸망시켰다. 이 같은 멕시코와 남아메리카 대륙의 정복은 유럽 전역에서 스페인의 국위를 드높였을 뿐 아니라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뿌리를 내리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정복자들이 아즈텍 왕국과 잉카제국에서 약탈한 보물들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더 그칠 줄 모르는 정복욕을 갖게 했으며 그 결과 북으로는 현재의 북아메리카 남부까지 그 세력이 확장되었다.

 

이렇게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는 동안 프랑스는 40여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온 위그노 전쟁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종교전쟁이 끝나면서 1584년에 북아메리카 원정을 감행하게 된다. 그 결과 1604년에 처음으로 아메리카 식민지 로이얼항이 건설되었다. 이와 같이 프랑스는 오늘날의 미국과 캐나다의 경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센트로렌스강을 따라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연이어 5대호 지방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 들어갔다. 1609년에 이르러서는 북부의 퀘벡에 식민지가 건설되었고 남부에서는 미시시피강 어귀의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식민지를 확장해 나갔다.

 

영국은 1497년 이탈리아인인 존 캐봇을 파견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탐사하는 등 식민지 건설에 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 대신 '바다의 매'라고 불리는 영국 해적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금은 보화를 가득 싣고 유럽으로 귀환하는 스페인 선박들을 공격하여 적지 않은 전리품들을 얻어냈다. 이 해적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프란시스 드레이크였다. 그는 평상시에도 스페인 요새를 공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리엔 지협에 상륙하여 페루로부터 보물들을 약탈하곤 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러한 행위를 금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해적들을 지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에 격분한 스페인은 1588 132척의 군함으로 조직된 이른바 '무적함대'를 영국에 보내어 보복하려 했다. 하지만 영국의 반격이 매우 강경한데다 설상가상으로 폭풍우까지 만나 스페인 함대는 대패하고 말았다. 그후 영국은 그러한 약탈사업외에 스페인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1587년 노스캐롤라이나의 로아녹섬에 여자17명을 포함한 150여명의 이민을 시도했으나 4년 뒤 식량을 실은 배가 그곳을 다시 방문하였을 때는 이미 그곳에는 거주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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