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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의 유명한 유언

작성자樂水海(鄭乙溶)|작성시간11.12.08|조회수144 목록 댓글 0

 

알렉산더 대왕의 병세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왕실은 깊은 시름에 빠졌습니다.

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름난 명의들이 수없이 왔다 갔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허둥대는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알렉산더 대왕은 오히려 침착했습니다.

그는 얼굴에 병색이 짙었지만 타고난 강인한 정식력으로 조금씩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듯 했습니다.

 

신하들이 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말게. 사람이란 죽으면 잠을 자게 되는 법. 살아 눈뜨고 있는 이 순간 어찌 잠잘 수 있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가장 충실하게 보내겠네."

 

그러던 알렉산더 대왕도 병이 점점 더 깊어지자 자리에 앉아 있을 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황실에서는 병색이 짙은 그를 포기한 상태라 '그의 마지막 유언이 무엇일까'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하지만 사경을 해매면서도 알렉산더 대왕은 좀처럼 유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알렉산더 대왕은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어 뛰엄뛰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묻을 때 손을 밖에 내놓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시오."

 

초조하게 유언을 기다리던 신하들은 놀랐습니다.

부와 권력을 한 손에 쥐었던 왕의 유언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단지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쥐었던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뿐이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은 운명하였습니다.

 

◎ 알렉산더대왕 <Alexandros the Great>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서, 다른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탄생에도 많은 전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리스토텔레스 밑에서 전반적인 학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용맹할 뿐만 아니라 두뇌가 명석하여 특히 호메로스의 저작을 즐겨 읽었습니다.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부왕이 암살되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기원전 336년 왕이 되어 헬라스 동맹 맹주가 된 그는 기존의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각지를 점령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마케도니아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고 테베를 토벌하였으며 334년에는 페르시아 원정을 나섭니다.

이에 성공하여 페르시아 사르디스를 점령하고 그리스의 도시를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티루스, 시리아, 페니키아, 이집트 지역

까지 정복에 나섭니다.

북인도 점령 시도하였으나 전쟁에 지친 군사의 반발로 포기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얻은 열병은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가 점령한 지역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 되었습니다.

기원전 323년 젊은 나이에 사망함으로써 그의 대제국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방대한 지역을 점령하면서 형성된 문물은 이후 헬레

니즘 문화와 간다라 미술을 잉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그는 대제국의 통치를 위해 동ㆍ서 간의 이주 및 혼인을 통한 융합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아시아 여성과 그리스 군의 혼인을 인정했고, 그리스 사람들을 터키로 이주시켰으며 이주민들을 관리로 등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주민들에 대한 정책적인 혜택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에 대한 신분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주민들의

반발도 커졌습니다.

그의 사후에 제국은 셀레우코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국, 리시마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등으로 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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