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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다른 이야기

온전하게, 굳건하게, 강하게(벧전 5:10)

작성자바르고 다르자|작성시간26.06.05|조회수18 목록 댓글 0

온전하게, 굳건하게, 강하게(벧전 5:10)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초대교회와 전혀 다른 시대처럼 보이지만, 삶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바뀌었지만, 인간이 겪는 삶의 본질과 영적 투쟁의 양태는 2천 년 전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박해와 고난 속에 있었고, 우리는 전쟁과 경제적 불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영혼의 공허 속에서 살아갑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의 두려움과 염려는 여전히 같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것 같은 영적 전투의 현장에 서 있는 우리를 향해, 사도 베드로는 먼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7절)’고 시대를 관통하는 하늘의 위로와 강력한 권고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염려(μέριμνα)’의 헬라어 원어적 의미는 ‘생각을 분열시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염려라는 무기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쪼개어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산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문제의 연속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평탄한 삶을 꿈꿉니다. 그러나 사실 평탄함 속에서 인간은 쉽게 게을러지고, 영적으로 무기력해지며, 유혹 앞에 쉽게 무너집니다.

 

염려가 우리를 짓누르는 이유는 결국 ‘내가’ 인생의 짐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책임지려고 하고, 내가 해결하려고 하고, 내가 미래를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이, 모든 삶의 짐을 ‘내가’ 지고 가려고 할 때 발생하는 영적 질병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단순히 ‘걱정하지 말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맡기라(7절)’고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결국 누가 삶의 주인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미성년자 자녀가 부모에게 모든 책임을 맡기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평안과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아버지가 되심을 신뢰할 때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참혹한 매질과 고난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고 부르짖으며, 자신의 생명을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십자가는 단지 고난의 현장이 아니라 완전한 신뢰와 순종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맡김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셨고, 죽음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삶에도 순간의 고통과 눈물은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연이나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염려를 맡겼다고 해서 방종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는 평안과 은혜의 선언 직후, 곧바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8절)’고 강력한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의 대적 사탄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안기셨고, 영원한 승리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패배한 원수 마귀는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우는 사자’처럼 굶주린 채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리에게 물리적인 고통과 핍박으로 시험을 주기도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 무서운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그것은 바로 ‘풍요와 평안이라는 덫’입니다. 우리는 이 부유함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피폐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유함은 너무나 쉽게 영적 게으름과 교만으로 이어집니다. 한국교회는 가난과 핍박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풍요를 누리기 시작한 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쉽게 세속화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마귀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육신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에 취해 하나님을 잊게 만들고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위기 속에서도, 반대로 평안의 여유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향한 ‘굳건한 믿음(9절)’뿐입니다. 성도를 지키는 것은 환경이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도, 평안 속에서도 우리를 붙드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중심은 우리의 결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고난과 유혹의 한복판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 위대한 소망의 약속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우리의 구원과 보존은 인간의 결단이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달려 있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그분은, 우리가 지나는 이 땅에서의 ‘잠깐의 고난’과 유혹의 시간을 결코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게 하심으로, 오히려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그 믿음의 터를 견고하게 하실 것(10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권자 하나님께 맡깁시다. 고난 속에서도, 풍요 속에서도 깨어 믿음으로 서십시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영원한 영광 가운데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한주가 되는 바다교회 가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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