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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다른 이야기

자유와 절제(고전 8:9)

작성자바르고 다르자|작성시간26.06.10|조회수20 목록 댓글 0

자유와 절제(고전 8:9)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계 기독교 역사 속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성장과 선교의 열매를 이루며 세계 교회가 주목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높은 위상에 걸맞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기보다는, 일부 지도자들의 왜곡된 정치 성향과 극단적인 주장으로 인해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의 비판을 받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외적인 성장에 비해 내적인 성숙이 부족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초대교회의 고린도 교회 역시 풍성한 은사와 지식,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영향력 있는 교회였지만, 성장과 함께 파당과 음행, 성도 간의 송사 등 다양한 문제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다루며 성도들을 권면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였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회에서 우상의 제물은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였습니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고기가 신전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뒤 나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상의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는 성도들에게 매우 예민한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먼저 우상의 본질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상은 단순히 돌이나 나무로 만든 형상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우상의 본질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우리의 마음과 삶의 우선순위를 빼앗는 모든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상은 성공, 돈, 권력, 인기, 정치적 이념, 자기 만족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특히 물질은 현대인이 가장 쉽게 섬기는 우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돈을 버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물질이 삶의 안전과 행복의 근거가 되고 마음의 중심이 되는 순간 우리는 맘몬이라는 우상 앞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탐욕이 만들어내는 우상을 거부하고 ‘우상 숭배를 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 문제를 다루면서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한다’(8절)고 말합니다. 먹는다고 더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고, 먹지 않는다고 더 의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음식은 본질적으로 가치중립적인 문제, 아디아포라(Adiaphora)의 영역입니다. 성경이 명시적으로 명령하거나 금지하지 않은 것들은 그 자체로 사람을 구원하거나 정죄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유의 근거를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다(6절)’는 복음의 진리에서 찾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두려움이나 미신에 얽매일 이유가 없습니다.

 

이 원리를 한국교회의 현실에 적용하면 술과 담배 문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은 알코올과 도박으로 피폐해진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금주·금연을 가르쳤고, 이것이 한국교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술과 담배가 구원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공동체와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순히 자유의 지식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다(6절).’ 우리의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그분은 하늘의 영광과 권리를 가지셨지만,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비우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과한 자유는 자기 권리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너희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9절)’고 권면합니다. 지식으로는 우상의 제물도, 술과 담배도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연약한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기꺼이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길입니다.

 

이 원리는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도 적용됩니다. 바다교회의 설교자 복장은 우리에게는 충분히 자유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다른 공동체에서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취향과 자유를 주장하기보다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절제하는 것이 더 성숙한 태도입니다. 자유를 사용하는 것보다 사랑을 위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규율이나 우상의 두려움에 매여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바르게 누리며 살아갈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실족시키는 것보다 방앗간 맷돌을 매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은 매우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에 있지 않고, ‘형제를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랑’에 있습니다. 

 

높은 위상에 걸맞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신앙의 품격을 회복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자유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유를 절제하는 사람이야말로 복음이 만들어 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내 권리를 포기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이 약한 자들을 가슴에 품고 신앙의 참된 자유를 누리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바다교회 가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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