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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초를 빛낸 선수

이동수선수(당곡초등학교)

작성자재영이 아빠|작성시간07.07.03|조회수444 목록 댓글 0
1983년 봄,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당곡초등학교. 체육선생님을 바라보는 몇몇 아이들의 눈빛이 빛났다. 손을 든 아이 중에 키 작은 꼬마가 있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지목하지 않았다. “상우야, 우리 배드민턴 배우지 않을래?” “근데, 우리 안 뽑혔잖아?” “수업 마치고 코치 선생님한테 직접 찾아가자” 키가 작기는 했지만 반에서 운동하면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탈락되자 꼬마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코치 앞에 선 꼬마는 “선생님, 저 배드민턴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코치는 허리를 숙여 꼬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진실이 보였다. 꼬마는 4학년부터 본격적으로 배드민턴을 배웠다. 처음 출전한 서울시소년체전선발전에서 선발된 7명 중 5위를 했다. 모두 6학년이었고 (네트 높이가 155cm) 팔을 위로 뻗으면 닿을락말락하는 꼬마만 4학년이었다. 누구도 이 꼬마가 90년대 세계 배드민턴 복식부문을 주름잡는 스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바로 이 꼬마가 이동수였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야했던 동수는 아현초등학교에서 위탁 훈련을 받았다. 소년체전을 기점으로 약 6개월 간을 아현초등학교로 등교했다. 그때 코치가 ‘이상규’ 씨였는데 그는 동수의 배드민턴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실력보다는 운동 선수로서의 인격과 운동 선수가 갖추어야 할 예의를 중요시한 코치는 인성 외에도 학생의 본분인 공부 또한 게을리하지 않도록 지도했다. “그때 매일 일지를 썼어요. 전 마지막 줄에 항상 ‘꼭 국가대표 선수가 되겠다’고 썼어요. 그럴 때마다 코치님은 ‘네가 국가대표를 하겠다고?’하며 웃으셨어요. 우쭐대거나 자만심을 가질까봐 부러 좋은 말을 아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운동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로지 배드민턴밖에 몰랐던 그 시절이 가장 순수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상규 코치는 아현중학교 코치도 겸했는데 아현중학교로 진학한 동수와는 가족 이상의 인연이 되었다.
대한민국국가대표(2007) (2007년)-대표코치
김천시청(남) (2007년)-선수
대한민국주니어대표(2007) (2007년)-대표코치
김천시청(남) (2006년)-선수
대한민국주니어대표(2006) (2006년)-대표코치
삼성전기(주)(남) (2005년)-선수
대한민국국가대표(2004) (2004년)-선수
삼성전기(주)(남) (2004년)-선수
대한민국국가대표(2003) (2003년)-선수
삼성전기(주)(남) (2003년)-선수
대한민국국가대표 (2002년)-선수
삼성전기(주)(남) (2002년)-선수
대한민국국가대표 (2001년)-선수
삼성전기(주)(남) (2001년)-선수
대한민국국가대표 (2000년)-선수
삼성전기(주)(남) (2000년)-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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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대학교(남) (1996년)-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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