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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장배] 윤춘호 '바둑에 뼈를 묻겠다'[사이버오로20110325]

작성자천사끼리|작성시간11.03.25|조회수109 목록 댓글 2

윤춘호 '바둑에 뼈를 묻겠다'
[정관장배] 최병준  2011-03-25 오후 2:44   [프린트스크랩]
▲ 윤춘호 초단(일본 관서기원 소속)

98년이었던가?
축구를 박지성처럼 하는 한국기원 연구생이 있었다. 어찌나 빠른지 뒤따를 수 없었고, 앞을 막아선 사람들은 그의 현란한 드리블과 스피드에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그는 권갑용 도장의 제자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훨씬 더 된 어느날인가에 권갑용 사범이 아는 사람들에게 한국기원 근처에서 저녁을 샀고, 그 자리에 어설프게 끼어있다 자연스레 권도장을 방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도장안의 숙소에서 축구 잘하는 그 연구생을 봤다. 여러 원생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아주 세게 운영되는 그런 쪽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 '오! 드리블만 훌륭한지 알았더니 바둑도 엄청 세구나', 프로입단 순위권에 있던 그 친구의 이름은 '윤춘호'였다.

한국바둑에서 프로입단은 언제나 어려웠지만, 90년대 후반부터는 연구생들의 입단경쟁이 본격적으로 살벌해질 때였다. 프로에 입단하지 못한 연구생 적체와 연구생 출신 '이무기'라는 말도 이때쯤부터 더 사람들의 입을 타기 시작한 것 같다. 입단하지 못한 이무기들은 아마바둑을 평정했고, 몇년쯤 지나자 주니어와 시니어로 부로 나눠 대회가 치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소년 윤춘호는 계속해서 입단하지 못했고, 연구생 출신 이무기가 됐다. 윤춘호는 월드컵이 열린 2002년 지나 04년에 일본행을 택했다. 그 후 일본에서 아마추어 대회를 우승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작년에는 관서기원에서 특별 시험기를 통해 입단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2012년 3월 21일, 제9회 정관장배가 열리는 한국기원에서 그 소년을 봤다. 한국기원 연구생일때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수줍게 씨익 웃으면 미소가 굉장히 큼지막했었다. 웃음을 강렬하게 만드는 깊게 패인 주름(?)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웃음이 10년이 지나서도 여전했다. 윤춘호였다.

정관장배의 마지막 일본 선수인 요시다 미카 8단이 관서기원 소속이라, 관서기원 이마무라 도시야 단장과 함께 선수단 통역 및 총무 역할로 함께 온 것이다.


- 오랜만이다. 일본 관서기원에서 프로가 됐다고 들었다. 여전히 축구는 하고 있나?
"후후, 사람이 본질이 변할 수 있나?, 일본에서 1주일에 한 번씩은 실내축구를 하고 있다."

- 일본에 간지 10년인가? 그 정도 시간이 지나 프로가 됐다. 어땠나 심정이.
"처음 일본에 갈 땐 미래를 내다보고 간 게 아니라 홍맑은샘과 무작정 가 본 거였다. 일본에서도 뜻한대로 되지 않아 힘들기도 했다. 그땐 프로입단이나 바둑공부 자체에 대한 마음이 너무 강렬했기에 그 때문에도 더 힘들었다. 당시 바둑에 대한 어떤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택한 일본행이었다. 다행히 일본에서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그래서 오랜 생활이 가능했다. 프로가 되었다는 것은 물론 너무 기쁘지만, 입단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더 기뻤다. 프로가 됐을 때의 느낌은, '관서기원에 내가 받은 것을 갚고 싶다'는 것이었다. 은혜를 갚고 싶다는 느낌이 강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기원의 입단대회규정은 외국인에게도 대회가 개방되어 있었다. 여기서 일본의 외국인이란 개념은 '파란 눈,금발의 백인'정도로 추상적이었을 것이고, 한국과 중국처럼 프로제도가 있는 나라출신들이 일본까지 와서 입단대회에 참가할 거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재)일본기원은 홍맑은샘과 윤춘호 두사람의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이 입단대회를 지원하자, 이 외국인 규정을 그해 바꿨다. - 만 14세 이전에 일본기원 연구생에 들어온 외국인만이 일본기원의 입단대회를 지원할 수 있게 했고 두사람은 대회에 나갈 수 없었다.

- 당시 프로입단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국내에도 알려졌는데, 결국 참가규정이 바뀌어 참가를 못하게 됐었다.
"일본기원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다. 일본기원이 당황했던 것 같다. 어느정도 기대가 있었지만, 홍맑은샘의 여자친구가 일본기원 홈페이지에서 대회규정을 확인해줘서, '그럼 우리도 해보자' 하고 간 것이었다."

- 프로가 되고 나서 아마추어 기사로 활동하던 이전과는 어떤 것이 다른가?
"프로기사 되면 수입이나 대우가 달라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전에 하던 바둑활동이 공식적인 것이 되고, 그래서 더 좋다. 바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이 생긴다. 홍맑은샘이 프로란 일종의 자격증이라고 했는데, 그런 면이 있다. 활동영역이 넓어져서 좋고, 내가 도움받은 사람들에게 바둑으로 뭔가를 더 할 수 있기에 좋다."

- 한국에 올 때 권갑용 도장에 가서 스승님을 만나 봤나?
"물론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꼭 들러서 뵌다. 요즘은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친구처럼 지낸다. 하하, 이건 농담이고 스승님은 여전히 어렵지만 전보다 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바둑 교류 등 나누는 이야기도 다양하다. 요즘엔 한국기원이 주최하는 대회가 개방적이고 기회도 많은 것 같다. "

- 관서기원에선 어떻게 지내나?
"관서기원 부이사장님이 제공하는 오사카 시내의 한 아파트내에서 지낸다. 관서기원의 어린이 바둑교실과 바둑도장 등의 보급일도 같이 하고 있다. 주말에 바둑을 교양으로 배우는 어린이만 2백명이 넘는다. 일본에서 예전에는 바둑도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활성화가 잘 안되어 있다. 이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

- 일본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음....,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기보단 항상 힘들다고 해야겠다. 언어의 문제는 지금은 해결이 됐지만, 그래도 내가 원래 일본사람은 아니기에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어야 한다. 일본에서 난 외국인이니까,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하니까 항상 힘들다."

◀ 윤춘호 일본아마명인 시절(06년,08년) 사진출처 일본기원

- 현재 단위는? 프로기전은?
"초단이다. 관서기원은 승단규정이 강해 이른 승단이 어렵다. 현재는 일본 7대기전 예선에 나갈 수 있고 7대 기전에서 최종예선결승에 진출 하거나, 일정 수준의 승수를 올리면 참가대회가 확대된다. 그런 참가기준을 충족하면, 관서기원 주최대회와 한국이 주최하는 세계대회 통합예선도 참가가능하게 된다."

- 관서기원에서 이런 특별 시험대국을 통해 프로입단을 하는 것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외국인으로서 시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어떤 기준 같은 것이 있나?
" 특별 시험기로 입단한 사카이 히데유키는 유키 사토시와 동문이다. 타이틀도 땄다. 의사 자격증까지 땄지만, 언제든 프로가 될 수 있는 실력이 있던 분이다. 나같은 경우는 관서기원분들의 신뢰를 받는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어느나라나 외국인들을 믿기는 힘들 것 아닌가? 일본은 그게 더 심하다. 시험기가 치러지고 그 기회를 받는 건 실력이 다가 아니다. 시험기에서 지면 입단이 안되니까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력이 다는 아니라는 거다. 관서기원에 필요한 사람인가 아닌가가 일단 가장 중요하고, 통과하고 나면 면접도 본다. 이 제도는 일본기원에서 항의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외국인에게 항시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

참조 : 정식 입단대회가 아닌 별도의 시험기는 2009년에 관서기원에 도입됐다. 만26세미만의 남자들이 신청가능하고, 세계아마선수권대회 및 아마명인전, 본인방전 우승자는 30세 미만이라는 별도 조건이 있다. 관서기원의 시험기는 프로기사를 상대로 3판을 두어 2승을 거두면 입단할 수 있다. 수험료는 20만엔(약 260만원)이며, 2년간 시험적으로 운영하고, 다시 2년간 운영한다는 게 관서기원의 계획이었으나, 프로시합 예선에 관서기원 프로와 함께 참여하는 일본기원의 항의도 있는 등, 매우 유동적인 제도다. 일본기원은 "국내 예선을 관서기원과 함께 치르고 있는 이상 관서기원이 일본기원과 합의 없이 기사를 선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몇몇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들이 이 제도에 희망을 품고 있으나 실력과 함께 신뢰가 있어야 시험기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고, 매년 정규로 시행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 이제 윤춘호의 남은 바둑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일본에서 보낼 것 같다. 일본으로 처음 갈 때 이와같은 일을 예상하진 못했을 것 같다. 일본에서 (바둑인생의) 뼈를 묻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는 언제인가?
"관서기원에서 시험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줬을 때다. 기회를 주고, 나를 믿어줬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그때 여기서(일본 관서기원) 뼈를 묻어야겠다고 결심했다."

- 프로기사로서 성적에 대한 욕심은 당연할 것 같은데?
"실력으로만 보자면 일본에 처음 와서 겁없이 일본기원 입단대회에 나가고자 했을 때가 가장 세다. 그땐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의 예리함이 지금은 없다. 그런 예리함을 유지하자면 한국기원 연구생일때처럼 상당한 공부를 해야한다. 일본에서 한국기원 연구생, 혹은 한국바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데, (사실 이런 두려움때문에 일본기원이 규정을 윤춘호가 지원한 다음 해가 아닌 그해에 규정을 바로 바꿨을 것이다.) 일본에는 이미 상당한 실력자가 많다. 내가 지금 성적을 내기는 대단히 어렵다. 공부할 기보가 계속 쌓여가는데 쌓이는 것을 보고만 있다. 후. 올해부터 바둑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 볼 생각이다."

- 관서는 마음에 드나? 활발한 분위기라고 들었는데?
"난 관서가 좋다. 사람들이 활발하고 정도 많다. 관서기원 프로는 120명 정도인데 가족같다. 일본기원보다 관서기원의 분위기가 적극적이고 활발하다. 일본은 도쿄로 갈수록 일상생활에서조차 지나칠 정도로 '미안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경향이 있는데, 관서는 그런 점이 덜하다. 지금 살고 있는 오사카와 관서의 여러 도시들을 좋아한다."

- 부모님의 걱정도 많았을 것 같은데?
"알다시피 프로가 되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갑자기 좋아지고 그런 것은 아니잖나. 부모님은 이제 프로기사가 되었다고 하니 한시름 놓은 정도다. 하."

- 연애는, 결혼은? 이제 어리다고 할 수는 없는데.
"81년생이다. 훗. 현재는 혼자다.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와는 결국 헤어졌다. 친구는 한국에 돌아가야 하고 나는 일본에서 계속 생활해야하니까. 국적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결혼상대가 꼭 한국인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일본에서 같이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 한국에 프로가 되려는 많은 후배들이 있다. 입단에 성공한 사람들도 나오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데 한마디 해달라.
"정말 진정으로 원한다면, 포기하지말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런 노력을 하다보면 인간으로서도 더 성숙해지는 것 같다. 스무살이 넘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다보면 정말 많이 흔들린다. 고민이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입단과 함께 군대, 수입, 직업으로서의 문제 등 고민이 많을 것이다. 정말 바둑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그것을 원한다면 노력하고 그럼으로서 인간적인 성장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윤춘호 81년생, 04년에 도일했고, 2010년 5월, 일본 관서기원에서 마련한 특별 시험기를 통과해 프로의 꿈을 이뤘다. 한국인으로서 관서기원 시험기로 입단한 경우는 홍맑은샘에 이어 두 번째에 해당한다. 10년 5월 11, 14일 양일 열린 관서기원 시험기에서 윤춘호는 호시카와 코요(星川航洋) 2단과 기와다 카즈오미(木和田一臣) 초단을 이겨 입단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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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느림보 | 작성시간 11.03.26 윤춘호는 남잔데..말머리가 정관장배라 깜짝 놀랐다.ㅎㅎㅎ
  • 답댓글 작성자천사끼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3.26 ㅎㅎ 이번에 일본측 통역으로 오셨다고하네요ㅋ 암튼 일본에서 입단도 하시고..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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