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구리 10번기, 우승 7억, 준우승 0원! 4월 3일 동아일보 보도, "세기의 대결 10번기 임박" 구체적 모습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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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구리의 '10번기 대결'이 정말 성사될 모양이다. 바둑TV가 지난 3월 25일 '2013 KB바둑리그 선발식'에서 "올 10월부터 이세돌-구리의 10번기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8개팀 감독과 관계자들에게 알렸을 때 성사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소문만 드높았다가 다시 사그러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10번기에 일정과 규모, 대회 주최사 등에 대한 사실 보도가 구체적이다. 4월 3일 동아일보는 '韓中 최고수 이세돌-구리‘천하통일 10번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올 10월부터 내년 5월까지 중국의 각 성을 돌며 10번기를 갖는 데 (이세돌-구리 양측이)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대회의 총규모는 13억원이며 우승상금은 7억원이며 6승을 먼 거둔 사람이 가져간다. 10번기의 취지에 맞게 패자는 한 푼도 없다. 이 10번기는 중국의 정부기관인 중국기원이 주관하고 중국 관영 CCTV가 주최할 예정이라 한다. 후원사는 중국 굴지의 가구회사라고 기사는 전한다. 기사에 따르면, 10월에 10번기 첫 대국이 시작하는 이유는 구리의 아내인 루위엔양이 9월 출산예정이기 때문이다. ○● 韓中 최고수 이세돌-구리 ‘천하통일 10번기’ 10월에 열릴듯 ☜ (동아일보 기사 보기) '10번기'는 지난 3월 20일 중국 징더전시에서 열린 이세돌-구리의 이벤트 대결에서 합의를 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체가 모호했던 이 이벤트 대회엔 중국기원 류스밍 원장이 참관해 크게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세돌은 이 이벤트 대국 후 "5년 후면 중국이 더 세질 것"이라고 예측했고"구리는 내 인생의 친구이자 내 인생 최고의 라이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구리와의 10번기는 상금이 10억정도면 해볼만하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10번기의 상대인 구리는 올해 1월 1일 고향인 충칭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이세돌 9단이 직접 결혼식장을 찾아 한-중 바둑계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구리는 20일 이벤트 대국을 패한 후 "나와 이세돌이 만나면 항상 격렬하게 싸운다. 다음에 그를 다시 만나면 더욱 활기 넘치는 대결을 팬들에게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세돌-구리의 대국은 한국기원 공식기록으로 이세돌 기준 '33전 15승 1무 17패'이며, 지난 3월 20일 대국까지 포함한 비공식대국 합산 기록(한국기원 기록)은 35전 17승 1무 17패로 딱 동률을 이뤘다. ○● 이세돌-구리 10번기 배경 ※ 사이버오로 뉴스 자체 인용 10번기의 배경은 이렇다. 2009년 구리와 이세돌이 LG배와 삼성배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하고 “분정항예 (分庭抗礼 서로간에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대립함, - 손님과 주인이 서로 만나 각기 대청(大廳) 양쪽에 서서 마주하고 예를 표하다. 중국성어)”의 형세를 만들어 냈다.이에 한중의 바둑팬들은 이세돌과 구리의 10번기 대결에 관한 아이디어를 냈고, 많은 이들이 호응했다. 10번기는 중국어론’10국기’라고도 한다. 10국의 결승이다.. 이런 형식의 대국은 중국 명나라 청나라시기 와 근대 일본에서 대 유행했다. 양대 고수실력의 차이를 뚜렷이 나타낼 수 있는 공인된 방법이지만, 패자에겐 가장 잔혹한 대국형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세돌-구리'의 10번기는 그냥 들어만봐도 매우 자극적인 이벤트다. 바둑을 두지 못하거나 들어만 본 사람들도 기억하는 이름이 한국에선 '이세돌'이고, 중국에선 '구리'이다. '10번기'란 이러한 한중의 최고 실력자가 서로의 실력을 겨뤄, 바둑의 '치수' 를 고치거나 혹은 누가 실력이 위인지를 확정하자는 것이다. 풀어서 얘기하면 '10번을 내리 싸워서 이기고 지는 차이에 따라 둘의 격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보통의 상금제 대회에선 지면 그만이지 치수까지 내리지는 않는다. 즉 이런 식의 10번기는 상금도 상금이지만 '바둑고수'들의 자존심을 끝없이 건드리는 측면이 있다. (이번 '이세돌 - 구리의 10번기'에선 치수 조정은 없는 것 같다) 10번기는 근대의 일본바둑에서 자주 벌어졌다. 대국료도 대국료이겠지만 자존심 대결이었다. 과거 일본에서 1930년대 이후 일본의 1인자 오청원과 10번승부를 벌여 치수가 고쳐진 라이벌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승부세계에서 멀어져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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