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명기보 - 감상

[유창혁편]16년만의 대혁명 (저단자 쿠데타)

작성자은혜아빠|작성시간04.02.22|조회수414 목록 댓글 0

1988년 유창혁은 제6기 대왕전의 도전권을 들고 조훈현왕국의 성문을 두드렸다. 

三단의 신분이었다. 성주 조훈현은 기분이 좀 언짢았다. 
어찌 저런 애송이를 여기까지 오도록 내버려 두었단 말인가. 

다른 장수들은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저 三단짜리 젊은 아이하고 나서서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 

1988년 겨울이면 이창호가 슬슬 스승의 권좌를 넘겨다보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렇잖아도 어린 제자 때문에 골치가 좀 아파오려하는 판에 하나가 더 나타난 것이었다. 

올라오는 정보에 의하면 "유창혁이란 친구, 
얼굴도 하얗고 몸도 약해보여 마치 계집애 같다. 
실력이 있다한들 무엇 대수로울 것이 있겠느냐" 는 것이었지만 
출전채비를 하는 조훈현은 혼자 고개를 흔들었다. 

잊고 있었던 2년전의 일이 문득 떠올라왔다. 
"탐험대결"에서의 3연패,(당시 정선으로) "
그때는 전적으로 우연이겠지"라고 자위를 하면서도 기분은 다시 나빠졌다. 

"이번에는 한번 혼을 내줘야겠군. 버릇이 잘못 들면 곤란하니까" 

그런 마음이 오히려 조훈현으로서는 자충수가 되었던 것이다. 
노골적으로 표시는 하지 않았지만 조훈현은 은근히 2년전의 빚을 갚으며 
차제에 하늘 높은줄을 가르쳐 주리라 마음먹고 나섰던 것인데 
막상 유창혁과 마주앉고 보니 유창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코는 좀 안 좋았고 무심한 얼굴이었다. 
투사라기 보다 소년목동 같은 표정으로 유창혁은 앉아 있었다. 

도전 5번기의 결과는 3대1, 유창혁의 승리였다. 
기원은 벌집을 쑤셔놓은 꼴이 되었고 
[월간바둑] 은 "16년 만의 대혁명" 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72년 서봉수의 "명인' 쟁취 이후 16년 만에 나타난 저단자의 쿠데타였다. 

이로써 유창혁은 타이틀 경쟁에서 이창호를 한 걸음 따돌리게 되었다. 
이창호도 88년 시즌에 조훈현의 '최고위'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던 것이다. 

유창혁이 조훈현으로부터 '대왕'을 빼앗은 것은 
서봉수가 조남철로 부터 '명인'을 쟁취한 것에 결코 못지않은 쾌거였다. 

16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벌어진 두 혁명적 사건을 놓고 
어느것이 더 충격적이었느냐, 
어느 쪽의 의의 가 더 크냐 하는것을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유창혁 사건"이 갖는 충격과 의의를 "서봉수사건"의 그것과 비교할 때 
최소한 같거나 크다는 것이 바둑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러나 "유창혁 사건'은 그 의의와 충격의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값하는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유창혁이 몰고온 회오리바람, 의외로 일찍 뉴스의 홍수 속에 묻혀 버렸다,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88년은 세계대회의 원년이 되는데 
"응창기배" "후지쓰배" 양대 세계대회가 쏟아내는 화제와 뉴스에 
유창혁사건은 아쉽게도 인기차트에서 장수를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도전자 유三단은 2:1로 리드한 상태에서 맞이한 제4국이다.
이 한판만 이기면 22세의 청년 유三단은 당당 타이틀 보유자가 될판이다.

조九단이 최근 3,4년 사이에 이토록 일찍 막판에 몰려보기도 드물다.
얼마나 고대하던 세대교체이던가.

그래서 11월4일, 운당여관 대국실 주위에는 期史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팽팽한 긴박감이 넘쳐나고 있었다.

조치훈이 "명인"을 획득한 것이 만 24세, 
임해봉의 "명인" 획득은 23세.
타이틀 획득연령으로는 기록에 남을만한 것들이다.
국내기록으로는 아마도 본격기전으로 세계최연소 기록일 서봉수의 "명인" 18세가 있다.

지금 이 바둑을 유창혁이 이긴다면 "대왕" 22세가 된다.
조 - 임을 능가하는 기록이다.

그것도 명실공히 세계 최강 수준인 조훈현을 상대로 작성되기 때문에
史官은 각별히 신경쓸만 하다.
유창혁, 그대는 이제 기립박수를 받아도 된다.

유三단의 백차례, 유三단이 정상 조九단과 공식대국에서 만난것이 
이번 도전기가 최초이고 승리했던 도전 1,3국은 모두 흑번이었다.
백을 들고도 이길수 있을지 또 다른 관심거리였다.

조九단은 이 대국을 둘 때쯤엔 극히 피곤한 컨디션이었다.
2,3일에 한번꼴로 도전대국(기왕전, 명인전, 대왕전)이 강행됐고
보름후 응창기배의 대승부가 기다리고 있는 처지.

최후의 끝내기를 하는 조九단의 모습에서 또 다른 감동을 느낄수 있었다.
잔잔한 것이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거인의 풍모에서,
쓰러지는 거목의 의연한 자세에서 짜릿한 승부세계 悲愴마저도 맛볼수 있었다.

이윽고 집을 다 짓고난 조九단 입에서 침중한 한마디가 방안에 메아리져갔다.
"한집인가..." 비록 나즈막한 소리였지만
워낙 긴장감이 팽팽했던 방안이어서 12명이 내쉬는 숨결을 가차없이 헤집고
마치 뇌성벽력처럼 들렸다.

유창혁三단의 백4집반승, 3승1패로 "대왕" 타이틀을 쟁취하는 순간이었다.

흑 177은 조九단이 충격에서 저지른 빗나간 손놀림,
원래 2집반 승부가 원칙이지만 이 실수로 4집반이 됐다.

반면 1집으로 대왕 타이틀은 정식으로 유三단에게 인계됐다.
복기후 조九단은 낮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축하합니다." 목례하는 유三단.
승부는 이래서 아름다운 것 아닌가.

바둑인이 고대하던 쾌거가 마침내 이루어졌다.
그 주인공은 유창혁.
키 1m 70cm. 몸무게 55kg. 약간 마른 편이다.
22살 청년치곤 너무나 앳돼보인다.

한 17,8살로 착각할정도. 
그것때문에 손해보는 경우, 이익보는 경우가 반반이라고 한다.

그가 해낸 일은, 개인적으론 별게 아닐지 모른다고 할수있으나
바둑계로 보면 큰 일이 분명하다.

장하다, 劉昌赫.


1988년  11월 4일  덤 5집 반

백: 三단 유창혁    흑: 대왕 조훈현  281수 끝 (백 4집반 승)

제6기 대왕전 도전5번기 제4국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