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투자 검토했던 MBK, '비밀유지 계약' 끝나자 '적대적 M&A'…도덕성 도마 위에
김광일 MBK 파트너스 부회장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 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MBK 파트너스와 영풍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취임한 지난 2019년 이후 악화한 고려아연의 재무구조를 지적하며 재무 건전성 회복을 위해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겠다고 주장했다. 왼쪽부터강성두 (주)영풍 사장, 김광일 MBK 파트너스 부회장, 이성훈 베이커매킨지코리아 변호사.
MBK파트너스가 2년 전 고려아연과 비밀유지 계약(NDA)을 맺고 고려아연의 신사업과 관련한 내부 자료들을 넘겨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올해 5월 비밀유지 계약이 종료된 뒤 얼마 되지않아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섰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관련 정보를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파만파확산하고 있다. MBK가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을 공개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만큼 재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2일 금융투자 업계 등에 따르면 계약 당시 MBK는 고려아연의 트로이카 드라이브 등 신사업의 재정적 지원을 도울 후보군으로 거론되면서 해당 자료들을넘겨받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MBK가 거버넌스 개선 등을 명분으로 한국타이어와 고려아연 등 국내 기업들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본격화하기 이전이다.
지난 2022년 고려아연에 대한 재무적 투자를 검토한 MBK는 이후 최종적으로 투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내부 자료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비밀유지 계약서에 서명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비밀유지 계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MBK는 고려아연으로부터 받은 자료의 세부 내용 일체를 비밀로 하는 내용과 이를 별도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비공개 매수 등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계약서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 최윤범회장(가운데)이 온산제련소를 방문해 제품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해당 비밀유지 계약은 올해 5월 종료됐다. 업계에서는 MBK가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를 시작된 시점이 9월 초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단 3개월여 만에 영풍과 콜옵션과 풋옵션 등 복잡하고 다양한 조건의 경영협력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이 계약이 수개월 이상 논의한 뒤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앞서 장형진 영풍 고문은 MBK와 논의를 시작한 시점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려아연의 한화·현대차 신주 발행과 지분 교환 등을 거론했다. 그는 "(영풍 경영진이) '우리도 수단을 강구해야겠다'라고하니 '그러면 한번 생각해 봐라. 어떤 좋은 생각이 있겠냐' 그랬다"며 "그러다가 MBK에 가서 상담을 하고 경영협력 계약을 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또 MBK가 고려아연으로부터 받은 기밀 자료를 이번 인수 계획 수립에 활용했는 지에 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해당 자료에 고려아연의 신사업 내용이 상세히 적혀있다는 점, 또 그간 MBK와 영풍이 줄곧 고려아연의 신사업 투자를 문제 삼아왔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업계에서 중대한 신뢰를 저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MBK는 이번 적대적 M&A 과정에서 줄곧 기업구조 개선을 강조하고 있는데 해당 의혹이 사실일 경우 이런 명분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MBK가 이미 국내 대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만큼 이런 의혹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업들은 앞으로 MBK 등 금융 자본을 매우 경계할 가능성이 크고, 특히 연기금 등 공적자금을 운영하는 기관투자자들도 예의주시할수 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