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치
지형에서 극우와 극좌로 대변되는 극단적 편향은,
사회를 개선하는 동력이기는커녕 공동체를 갉아먹는 독소가
되었다.
평등과 계급
타파라는 거창한 명분을 앞세워 극좌의 길을 걸었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시대를 현대의 관점에서 돌아보자.
그들이 구축하고자 했던 사회가 인류 보편의 가치에
부합했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역사가 엄중한 단죄를 내렸다.
그럼에도 오늘날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해
'좌파'
혹은
'좌빨'이라는
혐오의 언어를 쏟아내는 행태가 과연 합리적인가.
과거의 과오를 현재의 정치적 상대에게 덧씌우는 낙인찍기는
본질적인 토론을 거부하는 비겁한 방어 기제에 불과하다.
질서와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극우의 광기를 분출했던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사례 역시 본질은 같다.
오늘날 자유를 외치면서도,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권리를 구속하려 드는
이른바 '극우
선동꾼'들의
행태는 역사의 교훈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면서 그 방식은 가장 반민주적인 폭압을
선택하는 기만적인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혐오와 폭력은
문명의 진보와 가장 거리가 먼 원시적 반응이다.
안타깝게도 이 원시적 전염성은 현대화된 디지털 환경을
악용하여 더욱 강력하게 증폭되고 있다.
극단주의가 위험한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믿는 가치가 절대적이므로,
이를 방해하는 모든 개인적 권리나 다양성은 희생될 수 있다"는
독선에 있다.
이 오만한 확신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을 부정하며,
인류 보편의 인권을 위협하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된다.
오직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적대감에 사로잡혀 상대의 굴복만을 요구하는 파괴적인 에너지로 변질되었고,
이는 결국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무도한 정치 세력의 횡포와 내란 사태를 겪으며,
극단적 편향이 지닌 무가치함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제는
'누가
더 옳은가'를
가리는 소모적 투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함께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어렵게 지켜낸 우리 민주주의의 가치를 한 단계 더 성숙시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