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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八福, 산상수훈(山上垂訓)

작성자abigail|작성시간12.02.09|조회수38 목록 댓글 0

八福, 산상수훈(山上垂訓)

 

1. 복이 있도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여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1~3절)

산상수훈(山上垂訓)은 예수께서 산에서 베푸신 가르침에서 따온 말이다. 신약성경의 첫번째 책인 마태복음 5장에서 7장 사이에 기록된 이 부분은 예수께서 가르친 알맹이 중의 알맹이에 속한다. 산상수훈의 첫 시작이 8가지 복에서 시작된다. 이들 8가지 복의 내용이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과는 차원이 다른 내용이다.

헬라어로 makarioi, “복이 있도다”로 시작되는 8복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으로 시작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5장 3절)

중국어 성경에서는 이 ‘가난한 자’를 ‘겸손한 자’로 번역하고 있다. ‘가난한 자’란 말에는 ‘겸손한 자’란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성 어거스틴(Saint Augustine, 354~430)에게 어느 날 한 제자가 “선생님! 크리스천들에게 최고의 덕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은즉 스승이 답하기를 “겸손이니라”하였다. 제자가 다시 묻기를 그러면 겸손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물은즉 답하기를 “교만이니라”하였다.

제자가 또 다시 묻기를 “선생님 교만은 무엇입니까?” 물은 즉 스승이 답하기를 “나는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하였다.

어거스틴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 나눈 대화를 통하여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에 담긴 의미를 짐작케 한다. “심령이 가난하다”말은 자기의 처지를 충분히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새로워질 수 있음을 아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을 의뢰하는 자의 마음을 뜻한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역설적인 말로 들린다. 일반적인 가치관으로는 애통함은 비극이요, 쾌락은 행복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가치관과는 반대로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과 짝을 이루는 가르침이 누가복음 6장에 나타난다. 마태복음의 가르침이 산 위에서 가르치셨기에 산상수훈이라 하듯이 누가복음의 경우는 평지에서 가르쳤기에 평지수훈(平地垂訓)이라 부른다.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누가복음 6장 21절)

신약성경의 원문인 헬라어로 ‘애통한다’는 PENDOS이다. 이 단어는 슬픔을 나타내는 말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가슴에 사무치는 슬픔을 뜻한다. 그런데 그 슬픔의 원인이 “우리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오히려 없어야 할 것은 있음으로 인한 슬픔이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우리들에게 있어야 할 선(善)은 없고 없어야 할 죄(罪)가 있음으로 마음 아파하는 슬픔이다. 그런 애통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실감나게 표현한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로마서 7장 19절)

“오호라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마서 7장 24절)

사도 바울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였으나 오히려 죄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자신에 대하여 애통하였다. 하나님은 이렇게 애통하는 마음을 살피시고 용서와 위로를 베푸신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복 있는 자이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5절)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여덟가지 복의 세번째는 온유한 자에게 임하는 복이다. 온유한 자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어진다고 이르셨다. 여기서 “온유하다”는 말의 원문은 PRATEUS란 단어이다. 이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태도이고 둘째는 이웃에 대한 태도와 관계이다.

첫 번째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이 인도하심인 줄로 알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종하는 마음이다. 예를 들어 욥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하나님이 욥에게서 자식과 재산과 건강까지 거두어 가셨을 때에 욥은 다음같이 말하였다.

“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욥기 1장 21절)

이런 마음가짐을 온유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무조건 신뢰와 순종을 나타내는 마음가짐이다.

온유하다는 말에 대한 두번째 뜻은 자신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람을 대할 때에 부드럽고 관대하게 대하는 태도이다.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다스려 힘과 부드러움이 잘 조화된 경우를 뜻한다. 이와 같이 위로는 하나님께 대해 신뢰와 순종을 하고 아래로 이웃에 대하여 관대하며 안으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절제를 하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땅의 주인노릇을 하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된다.

 

 

4. 의(義)를 사모하는 자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6절)

지난 날 운동권에서 쓰던 구호 중에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말이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통일운동에 헌신하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고, 인권운동에 삶을 투자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을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8복 중에서 네번째 복을 말씀하시며 그렇게 이르셨다.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갈망하듯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이 그렇게 타는 목마름으로 ‘의를 사모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였다. 그렇게 불타는 목마름으로 의를 사모하는 자는 결국에는 배부르게 되는 복이 임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의(義)란 무엇을 말하는가?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에서 의에 해당하는 단어는 DIKAIOW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의를 사모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하여 불타는 소망을 지님을 뜻한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면 그 결과로 행복이 주어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 밖에서 행복을 찾아 방황한다. 애초에 행복이 없는 곳에서 행복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영원히 영혼의 배부름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일에 타는 목마름으로 갈망함으로 우리 영혼이 배부름에 이를 수 있기를 추구하자.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7절)

‘긍휼’에 해당하는 구약의 단어는 HESED이다. 구약에서만 이 말이 150번 이상 나온다. 이 말의 기본 개념은 ‘자비와 친절’이다. ‘자비와 친절’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이 마음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의 관계를 이루는 기초가 된다. HESED, 긍휼은 애급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신 출애굽 사건 속에 나타나 있고 바벨론 포로생활에서의 해방에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은 역사적 사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에도 나타나 있다. 땅은 하나님의 헤세드로 가득 차 있고 비와 햇빛을 보내 주심에도 나타나 있다.

신약에서 헤세드에 해당하는 단어는 ELEOS이다. 엘레오스는 죄가 있어 비참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엘레오스’가 가장 잘 나타난 곳이 십자가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비난과 조소를 퍼붓는 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이 바로 ‘엘레오스’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예수의 옷을 나눠 재비 뽑을 새...”(누가복음 23장 34절)

우리가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긍휼을 받았기 때문이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8절)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카타르시스’란 말이 있다. “마음에 쌓인 응어리와 상함을 깨끗이 씻어낸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여러 시간 잡담을 나눈 후에 “아! 카타르시스 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전쟁 영화나 액션영화를 보고나서 “카타르시스가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에 쌓인 응어리들과 한(恨)을 제때에 해소하고 나면 정서적 갈등이나, 울적함이 사라져 정신건강을 유지함에 큰 도움이 된다.

 

예수께서 이르신 여덟가지 복 중에 여섯 번째인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할 때에 ‘청결’에 해당하는 말이 ‘카타르시스’이다. 청결은 헬라어로 ‘KATAROS’이다.

 

이 단어는 불순물이 없는 물, 포도주, 금 등을 말할 때에 사용되었고 흠과 티가 없는 동물을 가르킬 때에도 사용되었다. ‘카타로스’, ‘청결하다’는 말이 의미하는 핵심은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함이다.

 

오염되지 않은 물, 물이 섞이지 않은 우유와 포도주,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금 등이 카타로스이다. 그리고 생각과 동기가 순수한 사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사람이 카타로스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을 보는 경지는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만남으로 들어가게 되는 경지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곧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에 이름을 뜻한다.

 

 

7.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태복음 5장 9절)

 

신약성경의 첫번째 책인 마태복음에서 5장에서 7장까지를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 일컫는다. 산상수훈은 성경 전체의 핵심이자 기독교 진리의 진수(眞髓)이다. 그리고 산상수훈 중에서 알맹이가 첫 부분에 나오는 8복(八福)이다. 8복이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여덟가지의 복이다. 이들 중 일곱번째 복이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이다. 화평(和平)이란 말이 헬라어로는 Eirene이고 히브리어로는 Shalom이다. 히브리어에서 샬롬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완전한 복지와 행복을 뜻한다.

두번째는 바른 인간관계를 뜻한다.

 

화평케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이 복은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의 복이 아니다. 평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Peace Makers)의 복이다. 평화를 누리는 삶들은 자신은 평화를 누리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평화를 위하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삶들은 평화 애호가라 불려질 수는 있으나 평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Peace-Maker)은 아니다.

 

피스-메이커는 다른 사람들의 평화를 위하여 자신은 희생하고 고난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삶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이들이 진정한 크리스천들이다.

 

화평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샬롬, Shalom’인데 이 말에는 ‘완전한 복지와 행복’이란 의미와 ‘바른 관계’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오늘은 두번째 의미인 ‘바른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샬롬이란 말이 품고 있는 의미로서의 ‘바른 관계’는 4가지 관계가 포함된다.

 

첫째는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이다.

둘째는 이웃과 나와의 바른 관계이다.

셋째는 나 자신과 나와의 바른 관계이다.

넷째는 온갖 사물, 환경, 자연등을 포함한 주변과의 바른 관계이다.

 

이들 4가지 관계가 바로 세워져 있을 때가 진정한 평화, 샬롬의 상태이다. 그래서 누구도 자기 혼자서는 평화를 누릴 수 없다.

한 영혼이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누리고 이웃과의 바른 관계에서 평화를 누린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이고 올곧은 관계에서 평화를 누리고 나아가 자연이나 돈, 주변의 온갖 물질들과의 바른 관계에서 평화를 누린다. 그럴 때에 그가 평화의 사람이고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을 받게 된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태복음 5장 10절)

마태복음 5장에 등장하는 8복 중에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이 여덟 번째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에게 주어지는 복이다. 예수님께서 이르신 말씀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 적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말씀의 알맹이는 크리스천들이 무슨 일로 핍박을 받느냐의 문제이다. 그 해답은 ‘의를 위하여’란 구절에 있다. 이 말을 풀어서 이해하면 “예수께서 지상에 계시던 때에 살으셨던 삶과 같은 삶을 살기로 결단하였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이런 일 저런 일로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핍박을 받지만 그 사연은 각각이다. 자기 자신의 과오로 핍박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핍박에 단서가 붙어 있다. ‘의(義)를 위하여’란 단서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려다가 핍박을 받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런 사람에게 천국이 약속되는 복이다.

자신이 속한 회사나 마을이나 가정에서 ‘의를 위하여’산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려는 삶을 의미한다. 그런 삶에는 진정한 행복이 뒤따른다. 그렇게 살려다가 받는 핍박은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렇게 핍박 받는 생활에는 성령께서 함께 하여 도우시기에 행복하다.

 

2009.11.말. 김진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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