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조짐과 사무사(思無邪)
“종실(宗室)의 골육지친(骨肉之親)이 남몰래 역적의 생각을 품음이 있었고, 대신이 심복(心腹)의 부탁을 받고 흉악한 음모를 조성(助成)하여, 비천한 서얼(庶孽)로 하여금 그 사이에서 역모를 주장하게 하였다.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 같은 본성이 가까이 지친(至親)에게서 나왔으며, 효경(梟獍, 부모를 잡아먹는 새와 짐승)) 같은 독(毒)이 권신(權臣)에게서 슬그머니 나타나서,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반란처럼 나라를 간범(奸犯)하였다.”
위는 숙종 6년(1680년) 반란을 진압하고 반포한 같은 해 8월 30일 ‘회맹제(會盟祭) 서문(誓文), 대제학 서하 이민서 지음’에 기록된 반란의 조짐에 대한 기록으로 오늘날도 우리가 국가를 보전하는 데에 있어 반드시 경계로 삼을만하다. 당시 숙종대왕은 크게 세상의 지탄(指彈)을 받을 일을 한 바가 없었는데도, 골육지친(骨肉之親)이나 믿고 의지하던 대신(大臣)조차도 반란을 도모할 수 있었음이 대단히 놀랍다. 이는 오늘날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과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두 반드시 살피고 경계해야할 바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마음에 악한 미음이 항상 내재하고 있느니, ‘시경(詩經)’의 ‘사무사(思無邪, 사특한 생각을 없이하라)’ 교훈을 생각하고 평소에 스스로 마음을 수양(修養)하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찍이 사도 바울이 고백하기를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困苦)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장 21-24절)”라고 하였다.
나아가 백강 이경여 선생은 마음 수양의 방도를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한 바가 있어 주목된다.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利慾)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證驗)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효종 4년(1653년) 7월 2일, 백강 이경여 선생, ‘재변(災變) 극복을 위한 상차문(上箚文)’ 에서>.
2025.10.17. 素澹
* 회맹제(會盟祭) 서문(誓文)
회맹제와 그 제문의 내용. 환궁하여 숭정전에서 보사공신의 교서축을 반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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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단소(壇所)에 나아가서 회맹제(會盟祭)를 거행하였는데, 그에 이르기를,
“조선 국왕(朝鮮國王) 신 성(姓) 모(某)는 개국 정사 좌명 정난 좌익 적개 익대 좌리 정국 광국 평난 호성 선무 청난 정사 진무 소무 영사 영국 보사 공신(開國定社佐命靖難佐翼敵愾翊戴佐理靖國光國平難扈聖宣武淸難靖社振武昭武寧社寧國保社功臣)과 그 자손 등을 삼가 거느리고 천지(天地)·사직(社禝)·종묘(宗廟)·산천(山川)·백신(百神)의 영(靈)께 감히 밝게 고합니다.
빛나는 우리 왕조는 열조(列祖)에서 덕이 높은 임금이 잇달아 나와 반근(盤根)이 대대로 뻗어가고 천명(天命)이 끝이 없으니, 세상에 크고 밝은 이름이 있고 공훈(功勳)이 왕실(王室)에 있으므로, 금석(金石)에 새겨 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해 주고 죽소(竹素)2706) 에 실어 아름다움을 빛내어야 할 것이다. 아! 금일에 난적(亂賊)이 법도를 어기면서 흉도(兇徒)를 모으고 역적을 기르니, 전사(前史)에 듣지도 못하였도다. 시랑(豺狼) 같은 본성이 가까이 지친(至親)에게서 나왔으며, 효경(梟獍) 같은 독(毒)이 권신(權臣)에게서 슬그머니 나타나서, 오초(吳楚) 7국(國)처럼 같이 나라를 간범(奸犯)하였으나, 아름답고 빛나게 그 악독함을 구제하였도다. 둔군(屯軍)을 깊은 산골짜기에 설치하고, 남몰래 말이 많은 무리들을 사주(使嗾)하여 체부(體府)를 다시 설치하고, 군권(軍權)을 마음대로 농락하려고 도모하니, 서리를 밟는[履霜] 조짐이 점차로 얼음이 얼어붙는[氷堅] 지경에 이르렀다. 심복(心腹)이 두루 포진하고 기아(機牙)2707) 가 조밀하게 펼쳐지자, 호복(胡服)을 거짓으로 입고서 왕장(王章)을 찬탈하기를 계획하고, 흉도(兇徒)와 체결(締結)하여 신기(神器)를 엿보았다. 하늘[天]을 가리켜 활을 쏠 수 있다고 하고, 날짜를 약속하고 군사들에게 연향(宴饗)하니, 화기(禍機)의 참혹함이 목전에 가까이 있었고, 종사의 위험함이 경각에 임박하여 있었다. 한두 신하에 의뢰하여, 휴척(休戚)을 나라와 더불어 같이 하면서 선기(先機)를 예리하게 살피고서, 의리에 의지하고 충의(忠義)에 분발하여, 이에 조아(爪牙)를 시켜서 분주하게 힘쓰고 노력하게 하니, 수간(銖姦)2708) 이 반드시 알고 귀역(鬼蜮)이 도망하지 못하였다. 이에 흉얼(凶孽)을 사로잡아서 숙문(淑問)하자 자복하였으므로, 천토(天討)가 이미 시행되니, 경관(京觀)2709) 이 이미 쌓여지고 추악한 기운이 깨끗하게 쓸어 없어져서, 나라의 운수가 반석(盤石)과 같이 되었다.
비괘(否卦)를 뒤엎어 태괘(泰卦)로 바꾸고, 위기를 바꾸어 곧 평안해지니, 국운이 오르내리는 때에 빛나게 임하고 신명(神明)에 간절하게 의지하여, 나라를 광복(匡復)하는 데 협찬(協贊)함은 실로 그 충정(忠貞)에 힘입었도다. 나는 오로지 그대들의 공덕(功德)을 돈독하게 여겨 잊지 아니하며 공렬(功烈)을 표창하는 데 아주 부지런하기를 힘쓴다. 옛날에 이장(彛章)이 있어서 황하(黃河)·태산(泰山)도 또한 한지(漢志)에 기록하였는데, 대개 이러한 은전(恩典)을 거행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뜻을 정표(旌表)하여 큰 작호(爵號)를 게시(揭示)하고, 사직을 보존하도록 명한다. 나누어 봉(封)하고 토지를 하사하는데, 선대(先代)에 주어 후대에까지 미치게 하여, 경사(慶事)와 상작(賞爵)이 곧 풍성하고 두터운 은혜가 깊고 넓게 미치게 한다. 이에 현단(玄壇)2710) 을 닦고 경건히 밝은 맹세(盟誓)를 올리는데, 이 강렵(剛鬣)2711) 을 삽혈(歃血)하면서 같이 백수(白水)를 가리키는 바이다. 구덕(舊德)의 남은 후손들이 또한 모두 모였으니, 오직 충성하고 오직 효도하여 백대(百代)에 이르도록 무너지지 말라. 진실로 이 맹세를 어기면 신(神)이 실지로 이에 임할 것이다. 삼가 희생(犧牲)과 예주(醴酒)로써 이에 밝은 천신(薦新)을 베푸는 바이다.”하였다. 임금이 행례(行禮)를 마치고 막차(幕次)로 돌아왔다. 이어서 환궁(還宮)하고 숭정전(崇政殿)에 거둥하여 보사공신(保社功臣)의 교서축(敎書軸)을 반포하였는데, 그 글에,
“왕은 말하노라. 기변(機變)을 살려서 적란(賊亂)을 주멸(誅滅)하는 데 진실로 충직한 신하들에게 힘입었으니, 공령(功令)에 따라서 충성과 노고에 보답하는 데 어찌 이전(彛典)을 폐하겠는가? 이에 대려(帶礪)2712) 의 맹세를 올리고 윤발(綸綍)2713) 의 윤음(綸音)을 널리 펴노라.
과매(寡昧)의 젊은 나이를 돌이켜보건대, 어렵고 큰 조상의 유업(遺業)을 이어받아 비록 나라의 근심을 막으려는 데 마음이 간절하지만, 거조(擧措)가 도리에 어긋남을 면치 못하는 바이다. 간사함을 밝혀내는 데 분명히 힘이 부족하니, 참람하고 간사함이 스스로 뜻을 얻음을 다행하게 여기고, 위령(威靈)이 점점 시들어져서 점차로 변하여 화란(禍亂)이 더욱 성한 지경에 이르렀다. 종실(宗室)의 골육지친(骨肉之親)이 남몰래 역적의 생각을 품음이 있었고, 대신이 심복(心腹)의 부탁을 받고 흉악한 음모를 조성(助成)하여, 비천한 서얼(庶孽)로 하여금 그 사이에서 역모를 주장하게 하였다. 귀총(貴寵)을 도와서 궐내(闕內)를 염탐하고, 외경(外警)을 빙자하여 체부(體府)를 개설(開設)하며, 제군(諸軍)을 통솔하여 깊은 산골짜기에 나아가서 군사를 단련(團練)시키며, 노장(老將)과 약속하고 궁금(宮禁)과 교통하였다. 음모를 꾸민 지 이미 많은 시간이 이르자, 역적을 의논한 친신(親臣)의 형적(形迹)이 여러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맹세가 이루어져 회맹(會盟)하고 삽혈(歃血)하여 형세가 이미 절박해지니, 나라의 일에 음모(陰謀)가 많아지고 화(禍)가 더욱 깊어졌다. 다행히 나라를 위하여 먼저 걱정하고서 곧 능히 제때에 맞추어 빨리 대비하니, 바야흐로 사기(事機)가 호흡하는 순간에 있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하였으나, 마음과 힘을 다해서 그 찡그리고 신음하는 무리들을 살피니, 적(賊)들이 발로할 수가 없었다. 전후하여 그들이 지시한 계획과 비용이 방도를 다하게 되자, 곧 좌우의 이목(耳目) 같은 사람들이 모두 노고를 바치고 급서(急書)의 언장(言狀)이 있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하여 큰 괴수(魁首)들이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 정상이 이미 밝혀져 이매(魑酶)2714) 가 우정(禹鼎)2715) 을 도망하지 못하고, 토벌이 이에 시행되니 경예(鯨鯢)2716) 가 모두 한장(漢章)2717) 에 복주(伏誅)되었다. 이것이 비록 종사(宗社)가 내려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할지라도, 실지로 고굉(股肱) 같은 신하들의 협책(協策)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옛날을 돌이켜 생각건대, 어찌 다만 모발(毛髮)이 곤두서고 한심(寒心)하기만 하겠는가? 하루아침에 구름이 없어지고 안개가 깨끗이 걷힐 수가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진평(陳平)이 한가롭게 지내면서 깊이 생각하여 과연 여씨(呂氏)를 주멸(誅滅)한 공훈을 이루었으며, 박륙후(博陸侯)2718) 가 숙위(宿衛)하면서 충성하고 부지런하여 마침내 한(漢)나라를 부지(扶持)하는 공적을 세웠도다.
국가에서 이미 흉도(凶徒)를 제거하고 난적(亂賊)을 평정하였으니, 내가 어찌 덕(德)을 갚고 공(功)을 갚는 데 아까와하리오! 원훈(元勳)을 서임(敍任)하고 은총으로 하사하고 숭질(崇秩)을 더하며, 조그마한 공로라도 기록하여 상뢰(賞賚)를 차등 있게 주겠도다. 운대(雲臺)의 도상(圖像)2719) 을 밝게 만들어 후세에 밝게 보이기를 끝없이 하겠으며, 모토(茅土)를 나누어 계봉(啓封)하고, 그 아름다움을 더불어 같이 즐거워하며, 재서(載書)2720) 에 두루 써서 맹약(盟約)을 올리는 바이다. 욕의(縟儀)를 다 거행하고 길일(吉日)를 가려서 신기(神祇)에 고하는 것은 모두 구제(舊制)를 따른다.
아! 처음부터 끝까지 길이 보존하기에 힘쓰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 충정(忠貞)하기를 귀하게 여겨서 방가(邦家)에 지극히 부지런해야 할 것이다. 철권(鐵券)을 내려 주어 믿음을 보이고, 이에 후세에까지 미치도록 백수(白水)를 가리켜 기약을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 교시(敎示)하니, 의당 자세히 알아야 할 것이다.”【대제학(大提學) 이민서(李敏敍)가 지어서 바친 것이다.】하였다.
행례(行禮)를 끝마치자, 공신(功臣)과 제관(祭官)들이 음복례(飮福禮)를 행하였다.
<조선왕조실록>【태백산사고본】【영인본】 38책 47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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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2706]죽소(竹素) : 책(冊). ☞
[註 2707]기아(機牙) : 조아(爪牙). ☞
[註 2708]수간(銖姦) : 조그마한 간흉(姦凶). ☞
[註 2709]경관(京觀) : 적의 시체를 쌓아서 만든 무덤. ☞
[註 2710]현단(玄壇) : 제단(祭壇). ☞
[註 2711]강렵(剛鬣) : 억센 돼지. ☞
[註 2712]대려(帶礪) : 대하(帶河) 여산(礪山). ☞
[註 2713]윤발(綸綍) : 조칙(詔勅). ☞
[註 2714]이매(魑酶) : 역적들을 가리킴. ☞
[註 2715]우정(禹鼎) : 형전(刑典). ☞
[註 2716]경예(鯨鯢) : 역적들을 가리킴. ☞
[註 2717]한장(漢章) : 법전(法典). ☞
[註 2718]박륙후(博陸侯) : 한(漢)나라 곽광(霍光). ☞
[註 2719]운대(雲臺)의 도상(圖像) :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선대(先代)의 공신(功臣). 28인의 장수 초상을 그렸는데 원훈 공신(元勳功臣)을 말함. ☞
[註 2720]재서(載書) : 맹세하는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