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교우관계(交友關係)
아스라한 단풍 숲이 형제 갈라 놓았으나 / 迢遞楓林隔弟兄
성상 은혜 오히려 전성(專城)을 허락하셨네 / 聖恩猶幸許專城
당상(堂上)에서 기뻐 맞는 날이 될 줄 알기에 / 懸知堂上歡迎日
천애(天涯)에서 섭섭해 할 이 마음 달랠 만해 / 足慰天涯悵望情
길을 가는 차림은 매우절을 만났는데 / 行色正逢梅雨節
역참(驛站)의 길 까마득 바다 구름 닿았다네 / 驛程遙接海雲平
그대 가면 분명히 여흥자를 만날 테니 / 君歸定見驪興子
그리다가 머리털이 희어졌다 말해 주소 / 爲語相思鬢髮明
위는 상촌 신흠 선생이 지은 “봉산으로 부임하는 이수지를 전송하다[送李綏之赴鳳山(송이수지부봉산)]”란 시이다.
이때에 이수지의 형은 그곳의 가까운 고을에 귀양 가 있고, 여흥자 또한 봉산(鳳山)에 귀양 가 있기 때문에 시(詩) 안에 그 두 사람을 거론하였다.
[주-1]이수지 : 수지는 이수록(李綏祿)의 자이다. 호는 동고(東皐), 본관은 전주(全州)로 극강(克綱)의 아들이자 성록(成祿)의 아우인데, 성품이 강직하고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유명하다. 상촌보다 2세 연상이다.
[주-2]전성 : 한 성을 맡아 다스리는 목사나 군수 등 지방 장관을 가리킨다.
[주-3]당상에서 …… 날 : 당상은 존장(尊丈)이 계시는 곳으로 부모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수록이 광주목사(廣州牧使)에서 면직되어 집에 있던 중에 다시 군수가 되어 나가므로 그의 모친이 기쁘게 맞아들일 것이라는 뜻인 듯하다.
[주-4]매우절 : 매실(梅實)이 누렇게 익을 무렵에는 음산한 비가 줄곧 내린다는 데서 나온 말로, 초가을 무렵을 말한다.
[주-5]바다 구름 : 봉산군이 황해도에 있으므로 한 말이다.
[주-6]여흥자 : 민이길<閔頤吉, 이름은 유경(有慶)>을 말하는데, 민이길의 본관이 여흥이므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가까이 있다 멀리 떠나가면 천애(天涯)에서처럼 섭섭하고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으로 머리털이 희어질만한 벗이 과연 존재하는가?
전 청량리뇌병원장 최신해 선생은 말하기를 “우리의 현대사회는 그전에 그리도 중시하던 문벌과 협동의 소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서 개인의 능력이나 창조력을 문벌보다 더 중요시하는 시대로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친구나 다른 사회인들과의 교우관계도 도덕적인 연결로서 이루어지는 대신에 자기의 목적에 의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결합하게 되었다. ··· 친구란 무엇인가? 우정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용과 착취의 대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누구하나 진실한 의미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구나 하는 고독감에 사로 잡혀서 무력감에 번민하는 존재로 변모 되어 버렸다.” 하였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들은 벗다운 벗은 존재하기 매우 어려운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심성(心性)의 황폐화를 유발하고 나아가 사회악 내지는 사회범죄들을 촉발하는 동인(動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벗의 관계도 큰 테두리에서 역시 인간관계인 만큼,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회복해야만 하겠다.
맹자는 벗은 그 사람의 지위 등이 아닌 ‘덕(德)’을 사귀는 것이라고 했고, 성경에서는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친구이며, (진실한)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忠直)으로 말미암은 것.(잠언 17장 7절, 27장 6절)”이라고 하였다. 한편, 불가(佛家)에는 “맹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악한 벗을 두려워하라. 맹수는 다만 몸을 상하게 하지만, 악한 벗은 마음을 파멸시키기 때문이다.(아함경)”라는 말이 있다. 즉, 친구는 일생에 걸쳐 도(道)와 덕(德)을 나누고 서로 신뢰하고 사랑 할 수 있는 친구를 가려서 사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실존적 교제’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 뜻은 ‘순수한 혼(魂)과 혼(魂)이 아무런 이권(利權)이나 거래관계 없이 깨끗하고 투명하게 만남’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런 요구도 이권도 없이 마냥 순수한 혼과 혼의 만남은 서로를 치유하여주고 모두를 행복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교우관게(交友關係)도 이러한 기본으로 돌아가서 공자가 말한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논어(論語)>”라는 경지에 이를 수 있어야 하겠다. 생각건대 이런 아름다운 교우관계가 이루어지려면 상호간에 변치 않는 신의(信義)가 있어야 하고, 인생관 가치관 역사관의 공유가 있어야 하며, 상호간의 인격의 성숙 또한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들의 심성(心性)과 인격의 계발이 우리나라의 가장 주요한 교육목표로 돌아와 주어야만 하겠다.
2026. 6.22. 素澹